2018 KBO 신인드래프트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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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10.10 10:35:41
  • 호수 11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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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고졸들 프로무대 선다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는 지난달 11일 서울 소공동의 웨스틴조선호텔서 ‘2018 KBO리그 신인드래프트’를 실시했다. 지난 6월 각 구단 별로 연고지 고등학교 출신 선수들을 한 명씩 지명했던 1차 지명 때와는 달리 이번 2차 지명의 신인드래프트는 전년도 프로야구 각 구단의 리그 성적 역순으로 10명씩 총 100명의 신인 선수들을 지명했다.
 

이번 2차 드래프트의 대상이 되는 선수들은 총 964명(고졸 754명, 대졸 207명, 군 전역자 3명 등)이었다. 지명된 총 100명의 선수들 중 투수가 60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고 포수가 10명, 내야수가 21명, 외야수가 9명이었다. 

포지션 별 지명의 쏠림 현상에 따라 앞으로 유소년야구와 중고교 엘리트야구서 투수 포지션의 선호도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수 포지션
선호도 심화

대졸자로 지명된 선수는 18명에 불과했다. 작년도 지명에서는 대졸 선수가 24명이었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앞으로도 대졸 선수의 프로야구 진출은 계속 숫자가 하락될 전망이다. 대졸자로 지명된 선수 중, 야수는 모두 7명이었다.

포지션별로는 포수가 3명, 내야수가 2명, 외야수가 2명이었다. 내야수 2명은 모두 유격수로 한양대의 이창엽(kt 위즈 9순위 지명)과 성균관대의 이호연(롯데 자이언츠 6순위 지명)이었다. 외야수 2명 중 LG 트윈스에 마지막 10차로 지명된 강릉영동대의 문성주는 대학야구 2부 리그인 2년제 대학출신의 유일한 대졸자로, 이번 2차 지명의 바늘구멍을 통과하게 됐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체 10개 구단 중 한화 이글스와 SK 와이번스는 1·2차의 지명서 모두 고졸 선수로만 지명했다.

우리나라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고졸 투수들이 가장 많이 배출됐다는 올해 신인드래프트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됐던 선수는 강백호(서울고 3학년)다.

중학교 때 경기도의 부천서 서울로 전학 오며 지역 연고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난 6월의 1차 지명 대상서 제외됐던 강백호는 2차 지명서 최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kt 위즈 구단이 양창섭(덕수고 3학년, 투수)과 김선기(상무, 투수) 등 3명의 선수를 놓고 고심을 하게 만드는 대상자였으나 역시 kt 위즈의 선택은 강백호였다.

100명 중 투수 60명 ‘절대 다수’
대졸자 18명 불과…갈수록 하락?

서울고 1학년 재학 시절 고척돔 야구장의 1호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넓혔던 강백호는 흔히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의 ‘오타니 쇼헤이’와 비교되는 투수와 타자의 겸업 선수다.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서면 150km/h의 강속구를 뿌린다. 야수로서의 포지션은 포수. 타자로 나가서는 장타력이 동반된 맹타를 휘두른다.

고교 1학년 재학 때인 2015년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서 홈런상을 받았고 2학년 때인 2016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선 타격상과 최다타점상을 수상했다. 3학년에 올라 2017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타점상과 대통령배 타격상·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2차 지명 직전 폐막된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U18)서도 맹활약하며 우리나라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타고난 동체시력과 야구의 재질로 우리나라 프로와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을 통틀어 빠른 공을 가장 잘 공략하는 톱클래스 급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일한 약점인 느린 변화구에 대한 공략을 보완한다면 타격으로만 볼 때 프로야구의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백호와 2차 지명 1순위를 다투던 덕수고등학교의 투수 양창섭은 1라운드 2순위로 삼성 라이언즈에 지명됐다. 
 

양창섭은 원래 지난 6월의 1차 지명서 연고지인 서울의 3개 구단 중에서 지명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받았을 만큼의 대어급 선수였는데 1차 지명서 지명을 받지 못하면서 2차 지명으로 순서가 넘어갔고, kt 위즈가 첫 번째로 강백호를 지명하며 다음 순서인 삼성 라이언즈의 지명을 받게 됐다.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언제나 동 세대의 최고 투수로 군림해 온 양창섭은 노원리틀야구단과 청량중학교, 덕수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스카우트의 표적이 된 투수다. 최고 구속 150km/h의 빠른 공을 고교 1학년 시절부터 던졌다.

고교 2학년 때인 2016년 황금사자기의 최우수선수상(MVP)를 수상했고, 청룡기 우수투수상, 고교 3학년인 올 시즌 황금사자기 최우수선수상(MVP)를 2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2년 연속으로 발탁돼 얼마 전에 준우승으로 막을 내린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서도 활약했다.

양창섭과 함께 서울지역의 고등학교 투수로 150km/h의 강속구를 자랑하던 청원고등학교의 조성훈(SK 와이번스 지명)과 장충고등학교의 성동현(LG 트윈스 지명), 경기고등학교의 박신지(두산 베어스 지명) 등도 모두 각 구단의 1순위로 지명됐다.

지방에 위치한 각 고등학교의 강속구 투수로 관심을 모았던 마산용마고등학교의 이승헌(롯데 자이언츠 지명)과 야탑고등학교의 이승관(한화 이글스 지명), 세광고등학교의 김유신(KIA 타이거스 지명)도 각 구단으로부터 1순위로 호명됐다.

특히 세광고등학교는 이번 드래프트서 자교 출신 선수 4명이 프로구단들로부터 지명을 받았는데 올 시즌 세광고의 투수와 포수였던 김유신과 김형준은 각각 KIA 타이거스와 NC 다이노스서 1순위로 지명됐으며 넥센 히어로즈의 1순위 지명자인 투수 김선우도 세광고 출신의 선수로 관심을 모았다. 

세광고의 1루수를 맡고 있는 조병규 또한 넥센 히어로즈가 7순위로 지명해 세광고의 저력을 나타냈다.

호명된 에이스
세광고의 저력


올 시즌 고교야구 주말리그를 통해 대기록을 세웠던 선수들의 지명도 눈에 띈다. 전반기 경기권역서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운 야탑고등학교의 투수 신민혁은 NC 다이노스의 5순위 지명 선수가 됐고, 역시 경기권역의 주말리그 경기서 사이클링히트의 기록을 만든 부천고등학교의 유격수 윤정빈도 삼성 라이언즈가 5순위로 지명했다.
 

예상과 조금 다른 결과도 있었다. 최우선 지명권을 가진 kt 위즈가 강백호와 양창섭까지 사이에 두고 고심을 할 것이라는 예상의 대상자 중 한 명이었던 김선기(상무, 세광고-시애틀마리너스)가 의외로 전체 순위 8순위로 밀리면서 넥센 히어로즈로부터 지명을 받았다.

당초 세광고를 졸업한 후 미국 메이저리그 시애틀마리너스와 계약해 미국에 진출했던 경력으로 즉시 전력감으로 분석됐으나 귀국 후의 공백기간으로 인한 경기력에 대한 의문 때문에 구단들이 선뜻 지명하지 못한 것 같다는 중평이었다.

최대 이변은 LG트윈스가 4라운드서 전체 37순위로 지명한 서울 성지고등학교의 투수 조선명(183cm/76kg, 우투우타)이었다. 

창단 3년째를 맞은 대안학교 출신의 선수로, 선수 본인도 중학교 때까지는 기존 각 급 학교의 엘리트 야구부서 야구를 하지 않고 취미활동으로 리틀야구단서 주말에만 야구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신체조건도 투수로서는 평범한 편에 최고 구속도 140km/h를 기록할 만큼 압도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고교 1학년 재학 시절부터 투수로 자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온 선수였다. 


아마도 LG 트윈스 구단은 조선명을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해왔고 그의 장래성에 기대를 건 것으로 보인다.

이번 드래프트의 결과로 한국프로야구 각 구단서 공통적으로 지양하는 선수들의 스타일이 몇 가지 도출되고 있다. 일단 투수 부문에선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정통파의 강속구 투수를 가장 선호한다는 것이다. 

1차 지명과 2차의 1순위 지명을 통해 프로야구 구단들로부터 선택된 투수들의 신체조건과 그들이 지닌 최고 구속이 증명한다.

넥센 히어로즈의 1차 지명 투수인 휘문고등학교의 안우진과 kt 위즈의 김민, 삼성 라이언즈의 최채흥(1차 지명)과 양창섭, SK 와이번스의 김정우(1차 지명)와 조성훈, LG 트윈스의 성동현, 두산 베어스의 곽빈(1차 지명)과 박신지 등은 모두 185∼195cm 내외의 신장과 150km/h를 전후한 최고 구속을 갖춘 선수들이다. 

최채흥(삼성 라이언즈)의 경우 희소성을 갖춘 좌완의 투수다.

서울 강백호·덕수 양창섭
각각 1·2순위 kt·삼성행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더라도 중고교 때 선수생활 중에 부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거나 유급, 휴학, 혹은 해외 진출 등으로 국내서의 리그 경기 참여에 공백이 있었다면 지명서 제외되거나 지명이 되더라도 후순위로 밀렸다. 

이는 고교 혹은 대학 시절 투수 본인과 소속 팀이 올렸던 성적과 능력보다 더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야수의 경우는 포수와 내야수, 외야수로 구분돼 프로구단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분류된다. 포수는 많은 경기 경험이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조건인 듯하다. 포수로 지명된 대부분의 선수들이 저학년 때부터 소속팀의 주전으로 수 많은 경기에 나가 활약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투수는 고졸 선수이든 대졸 선수이든 1학년 때와 2학년 때는 거의 경기 경험이 없었던 선수들도 고학년 때의 활약으로 지명되곤 하지만 포수는 지명된 선수들이 예외 없이 1학년 때부터 팀의 주전으로 활약해 온 선수들이었다. 
 

이번 드래프트서 지명된 7명의 대졸자 야수 선수 중 3명의 지명자가 포수들인 것도 주목된다. 그만큼 포수는 특화된 포지션이라는 방증이다.

내야수는 타격보다 수비력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보편적으로 수비력이 가장 출중한 선수들이 각 팀의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한다고 볼 때 유격수는 야수인 선수들이 프로에 지명받기 위한 선결 조건.

이번 드래프트서 지명된 단 2명의 대졸 야수인 한양대학교의 이창엽(kt 위즈 지명)과 성균관대학교의 이호연(롯데 자이언츠 지명)은 이미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프로팀들의 관심을 모았던 출중한 수비력의 유격수들이었다. 특히 송구력이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최대 이변은
성지고 조선명

1루수와 외야수의 포지션에 있어서는 프로야구 구단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앞서 언급한 조건과 다르다. 

1루수와 외야수들에게는 공격력이 필수적인 조건. 타격의 정교함은 물론이고, 외야수들의 키를 넘기는 타구를 칠 수 있는 장타력이 반드시 겸비되거나 아니면 매우 높은 출루율과 스피드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타격과 경기력이 최소 두 시즌 혹은 세 시즌 이상 꾸준히 유지돼야만 프로구단의 부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최근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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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