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수 기자 =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KAI 키맨’ 손승범이 수사 도중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다. 벌써 한 달째다. 그를 놓친 검찰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 홀연히 사라진 그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방산비리 혐의를 잡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한 것은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는 개발비 등 원가조작을 통해 제품 가격을 부풀려 부당한 이익을 취한 혐의(사기) 등과 관련해 KAI의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하늘로 솟았나
KAI는 다목적 헬기인 수리온,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등 국산 군사 장비를 개발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공 관련 방산업체. KAI가 수리온·T-50·FA-50 등을 개발해 군에 납품하는 과정서 원가의 한 항목인 개발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최소 수백억원대, 최대 수천억원대의 부당 이득을 챙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앞서 감사원은 2015년 KAI가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원가를 부풀려 계상하는 방식으로 240억원대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금융계좌 압수수색과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등 장기간 KAI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왔다.
일단 타깃은 하성용 전 사장 쪽이다. 검찰은 하 전 사장 재임 시절 대규모 분식회계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하 전 사장이 협력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뒷돈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KAI의 협력업체 중 한 곳의 대표가 친인척 명의로 된 차명계좌 여러 개를 관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자금 흐름을 추적하며 하 전 사장으로 흘러들어갔는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하 전 사장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적인 인물이 바로 손승범씨다. 나아가 KAI 의혹 키맨으로도 꼽힌다. KAI 인사담당 차장을 지내는 등 하 전 사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2007∼2014년 수리온 등 개발을 맡는 외부 용역회사를 선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손씨는 자신의 친척 명의로 법인을 설립해 수백억원대의 KAI의 일감을 몰아준 후 과대계상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를 받고 있다.
문제는 수사가 ‘머리’로 올라가지 못하고 ‘허리’서 멈춰 있다는 점이다. 사건 해결의 주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손씨의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이다. 1년 전부터 검거에 나선 검찰은 6월24일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이어 지난달 24일 공개 지명수배했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검찰은 부랴부랴 손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처음 손씨의 도피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검거를 자신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거반이 소재를 파악하고 위치를 추적 중이라 곧 검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언장담했던 검찰의 검거 소식은 지난 11일 현재까지 들리지 않고 있다. 벌써 한 달째다.
그렇다면 홀연히 사라진 손씨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검찰 안팎에선 손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자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여러 의혹과 관측이 나돌고 있는 것.
먼저 ‘해외출국설’이 제기된다. 손씨가 사라진 게 확인된 것은 지명수배 직전이다. 그보다 훨씬 전에 도망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손씨가 본격적인 검찰의 추적 직전 해외로 출국했다는 시나리오가 그래서 나온다.
수사 시작되자 도주해 한 달째 행방 묘연
밀항설, 비호설, 살해설…온갖 추측 난무
같은 맥락서 ‘밀항설’도 배제할 수 없다. 수배 이후 배로 몰래 외국으로 도망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밀항은 피의자들이 법망을 피해 달아나는 대표적인 수법.
일본이나 중국, 홍콩,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단골’ 밀항지로 꼽힌다.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 그 사례다. 수사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기업인들도 한둘이 아니다. 만약 밀항했다면 그의 도피행각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손씨가 해외로 출국한 출입국 기록은 없는 상태다. 손씨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해외 도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검찰은 손씨가 국내에 도주 흔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국내에 남아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해외출국설과 밀항설의 연장선상서 ‘비호설’도 힘을 받고 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도피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서다. 손씨는 업계서 ‘마당발’로 알려져 있다. 평소 고위 임원 등 거물급 인사와도 친분을 자랑했다는 후문이다.
잠적이 길어지면서 ‘신변이상설’까지 부상하고 있다. 검찰이 잡을 수 없는 ‘사고’가 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특정 세력에 의한 ‘납치감금설’과 ‘살해설’이다. 나아가 검찰 추적은 물론 특정 세력의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자살설’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안 잡냐 못 잡냐’는 논란 속에 일각에선 ‘성형설’마저 나돈다. 촘촘한 수사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외모를 바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이다. 영화 같지만 범죄자들이 추적망을 피하기 위해 성형수술로 얼굴이나 체형을 바꾸는 일은 비일비재할 정도다.
실제 서울 강남 한복판서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난 해남 ‘십계파’ 두목 박모씨는 쌍꺼풀 수술과 보톡스 시술 등으로 얼굴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4년간 도피하다 체포된 바 있다. 외국에선 범죄자 성형은 흔한 일. 심지어 성전환까지 한다.
땅으로 꺼졌나
검찰은 각종 설을 일축했다. 한 관계자는 “누가 잠적하면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기 마련”이라며 “그런데 모두 억측일 뿐이다. 손씨는 국내서 칩거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 전국을 샅샅이 뒤지고 있으니 반드시 꼬리가 잡힐 것”이라고 자신했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꼬이는 KAI 수사
검찰의 KAI 수사가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4일 검찰이 처음 구속영장을 청구한 KAI 전 생산본부장(전무) 윤모씨에 대해 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다.
윤씨는 부장급 부하 직원 이모씨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1억원과 2억원 등 현금 3억 원을 차명 계좌로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2015년 KAI 협력업체 D사로부터 납품 편의를 제공하는 등의 대가로 총 6억원을 받았고, 이 중 절반을 윤 씨에게 상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두 번째 청구한 영장도 지체되고 있다. KAI 협력업체 대표가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KAI 협력업체 D사 대표 황모씨는 지난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했다.
KAI에 항공기 날개 부품 등을 공급해온 황씨는 D사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실적을 부풀린 허위 재무제표를 토대로 거래 은행서 수백억원대 대출을 받은 혐의(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