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천국’ 대한민국 현주소②

어느 분야 못지않게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다. 선거철이 되면 특히 의원과 의원, 의원과 기업, 의원과 시민 등 명예훼손에 따른 쌍방 고소·고발 건은 계속해서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의 고소·고발은 처음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정도로 떠들썩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고소·고발을 모두 취소하거나 대부분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정계에 있었던 대표적인 고소·고발 사례를 들춰봤다.


<사례1>
한나라당 vs 민주당
BBK 김경준’ 의혹 사건

지난해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전투구 식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고소·고발을 쏟아냈다. 고소·고발 건은 대부분이 명예훼손으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돼 고소인이 취하하면 검찰은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후보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고소·고발로 인한 수사의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검찰이 정치권 공방에 휘말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선과 관련해서 고소·고발 건이 가장 많이 나왔던 대표적인 사건은 여야를 막론하고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BBK 김경준’ 사건이었다. BBK 대표 김경준씨가 국가정보원과 정치권의 사전 음모에 의해 귀국했다는 이른바 ‘기획입국’ 의혹은 검찰 수사 결과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당시 김씨는 대선 정국을 잘 이용하면 자신의 수사나 재판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귀국했으며 “BBK의 실소유자는 이명박 후보”라는 김씨의 거짓말에 정치인들이 ‘놀아난’ 것이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공안1부는 ‘기획입국’과 ‘BBK 의혹’ 등으로 여야 정치권이 고소·고발을 주고받았던 사건과 관련,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정두언, 나경원, 정형근 의원 등과 대통합민주신당 박영선, 김종률, 이해찬 등 여야 정치인 20여명에 대해 결국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불교방송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던 정동영 전 후보에 대해선 혐의는 인정되지만 고소가 취소된 점 등을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또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부인 김윤옥씨가 고급 외제 시계를 차고 있다”고 주장한 민주신당 김현미 전 의원에 대해선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후보가 BBK를 100%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민주신당 정봉주 전 의원과 “이 후보 재산이 8천억~9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한 자유선진당 곽성문 전 의원 등은 불구속 기소됐다.

또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와 박근혜 후보 캠프가 서로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했다. 그러던 중 이명박 후보 측은 고소·고발을 취하하라는 당 지도부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한 각종 고소·고발을 취하했다.

취하 건으로는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가 박근혜 후보 측 유승민·이혜훈 의원, 서청원 상임고문과 경향신문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 ▲김씨가 대주주인 ㈜다스가 이혜훈 의원을 고소한 사건 등에 따른 고소·고발을 취하했다.

이 후보 측은 그러나 고소취하 입장이 관련 의혹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김씨의 부동산 거래 계약서 등 각종 자료를 당 검증위에 제출했다.


<사례2>

청와대 VS 이재오·박계동 의원
이재오·박계동 명예훼손 ‘무혐의’

고소·고발 건 중 청와대가 국회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한 사례도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청와대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혐의가 인정된 박계동 전 의원은 약식기소 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대선 당시 청와대 공작설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이 전 최고위원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6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현해 “청와대 비서관들이 퇴근 후 서울 공덕동 창평포럼에 모여 노무현 정권 연장과 이명박 후보 죽이기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정보와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해 청와대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이 전 최고위원이 청와대 비서관들의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모임에서 대선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제보를 받은 사실 등이 인정돼 혐의 없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또 지난해 7월 청와대의 정권재창출 TF팀이 있다고 발언해 고소당했던 박계동 당시 한나라당 위원장에 대해서는 당시 발언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해 벌금 3백만원에 약식기소 판결을 내렸다.

<사례3>
주성영 의원 VS 고대녀
주 의원 공개사과…고대녀 “절대 용서 못해”


시민이 한나라당 현직의원을 고소·고발해 화제가 되었던 사건도 있다. 지난 6월20일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MBC ‘100분토론’에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학생의 프로필이 기록된 문서를 들고 나와 김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주 의원은 “지난주에 MBC ‘100분토론’에 서강대녀와 고려대녀가 나온 적이 있다”며 “고려대 여학생의 프로필이다. 김지윤 학생”이라며 A4용지 한 장을 들어보였다.

이어서 “김지윤은 고려대 학생이 아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이력을 보면,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도 선거운동을 했다. 정치인이다”라며 “그런데 프로그램에 나올 때는 고려대학교 재학생으로 나왔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지윤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제적됐다가 복학해서 현재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김씨는 “정말 황당하고 화가 난다. 저는 지금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2006년 출교 조치 이후 2007년 법원으로부터 무효판결을 받았고 가처분 판결을 통해 학생 신분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또 “저는 몇몇 인터뷰를 통해 제가 출교를 당했었고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밝힌 바 있다”면서 “주성영 의원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저를 마치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공중파 방송에서 경솔하게 한 학생의 명예를 완전히 훼손하는 주성영 의원의 행동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전했다.

결국 주 의원은 김씨에게 공개사과를 했고 김씨는 허위사실을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주 의원을 고소·고발했다. 김씨는 “이 사건에 대해 주변에서 질문을 많이 받아 얼마 전 검찰에 문의를 했는데 검찰 측에선 아직 조사 시작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례4>

전직 대통령 VS 주성영 의원
DJ, 허위사실 유포·명예훼손 고소


최근 주성영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DJ) 측으로부터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대검찰청에 고소당한 상태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의원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주 의원은 지난달 21일 한 라디오 프로 인터뷰에 출연해 전날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제기한 이른바 DJ 비자금 문제를 다시 발언함으로써 고소를 당한 것이다.

주 의원은 이날 “2006년 3월초 전직 검찰 관계자로부터 1백억원짜리 CD(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 제보를 받았다”며 “DJ 비자금 문제는 전부 해외계좌에 연결되어 있고 6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DJ 측의 법률대리인 이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한강)는 이날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낸 보도 자료에서 “이러한 피고소인의 발언은 그동안 미국에 있는 일부 무책임한 교포신문들이 수년 동안 거듭 주장해온 허무맹랑한 내용들이다”라며 “한국의 일부 언론도 이를 받아썼다가 법정에서 사과하고 정정보도를 낸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피고소인은 그 어느 것도 사실로 밝혀진 것이 없음에도 익명의 검찰 관계자를 내세워 마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의혹인 양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다”면서 “국회의원은 일개인이 아니고 국가기관이다. 무책임한 허위 사실을 함부로 퍼뜨려서 국민을 현혹시키고 무고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고소 배경을 밝혔다.

<사례5>
언론사 VS정청래 전 의원
문화일보 기자 무혐의 판결에 이의 제기


지난 4월7일 총선을 앞두고 <문화일보>는 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이 4월3일 한 초등학교에서 김 모 교감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다 모가지 잘리는 수가 있어”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을 보도해 당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및 제보자 2명 등에 대해 명예 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7월24일 서울 중앙지법은 제보자 2명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하고 해당사의 기자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정 전 의원은 8월11일 국회 기자실을 찾아가 “거짓 기사를 쓴 거짓 기자에 대해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처리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항고를 해서라도 끝까지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교감 폭언 사건에 대해 “<문화일보>가 서울 중앙지법에 공개한 취재원은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한나라당 현역 구 의원이었다”면서 “이 한나라당 구 의원은 가짜 학부모를 동원해 <문화일보> 기자에게 허위제보를 하게 하고 문화일보 기자는 사실 확인도 안 한 채 허위 날조 기사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김 교감이 교육청에 제출한 경위서에 따르면 ‘폭언, 폭행을 당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으며, ‘행사장 진입을 막았고 정 의원이 항의를 했다는데’라는 말에는 ‘70% 정도 맞다’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화일보>가 이 내용을 섞어 ‘폭언, 폭행을 당했느냐’는 질문에 ‘70% 정도 맞다’고 대답한 것으로 조작해 기사를 쓴 것이다”고 정 전 의원은 주장했다.

이어 “KBS <미디어포커스>에서 선거 직후 ‘정청래 죽이기’의 실상을 보도하자 이 모 기자가 김 교감을 찾아가 ‘회유성 입 맞추기’를 시도, 녹음까지 하는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며 “언론으로서 <문화일보>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정 전 의원은 “이 같은 검찰 수사 결과를 볼 때 <문화일보> 기자에 대해 ‘허위 제보임을 알고도 악의적으로 기사를 썼다’는 양심 고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판결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정 전 의원의 고소에 대해 “4월2일자 시비과정에서 고소인 정청래가 S초등학교 교감 K에게 면전에서 ‘잘라버리겠다’고 실이 없고, 위 학교 교장 C로 하여금 3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는 등 무례하게 군 사실이 없음에도 <문화일보> 기자인 000, 000이 위와 같은 기사를 작성했고 문화일보 편집국장인 000 등이 위 기사들을 보도해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의 보도가 된 점은 인정된다”고 결론내림으로써 해당기사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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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