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해외 범죄조직 수하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 이 일을 시작하지만 막대한 신체적 노동과 삼엄한 감시 속에서 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직접 해외 범죄조직에 몸담았던 조직원의 경험담을 통해 실체를 파악해봤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1년 동안 중국에 있는 범죄조직에 몸담았던 A씨는 그 당시의 상황을 ‘지옥’같았다고 회상했다.
보안이 생명
A씨는 2015년 중국 광저우로 떠났다. 중국에 도착한 A씨는 굉장히 놀랐다. 허름한 사무실 정도를 예상했던 그를 최고급 아파트에 마련돼있는 사무실로 데리고 간 것. 숙소는 여자숙소와 남자숙소로 나뉘는데 대부분 사무실과 같은 아파트를 임대받기 때문에 생활하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A씨는 “처음 숙소와 사무실을 보고 기대에 부풀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옥의 시작이었다.
A씨는 이 같은 최고급 사무실에도 비밀이 있다고 했다. 비싼 아파트 일수록 자체적인 경비가 삼엄하다는 것. 이는 즉 공안들의 감시에서 조금 더 안전하다는 뜻이다.
A씨는 하루에 15시간씩 컴퓨터와 전화기를 붙잡고 일해야만 했다. 그가 했던 업무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이용자들에게 게임머니를 충전해주거나 환전해 계좌로 입금해주는 역할과 국가 기관으로 속여 돈을 뜯는 보이스피싱 두가지였다.
이런 고된 업무에도 처음 A씨가 받은 월급은 200만원가량. A씨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허황된 꿈”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물론 3개월에 한번씩 월급 인상이 이뤄지지만 거액의 돈을 만져보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은 해야 하는데 그만큼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A씨는 숙소와 사무실 이외엔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한번 새어나가면 끝인 불법 사업의 특성상 24시간 직원들을 감시했다. 심지어 핸드폰과 여권까지 뺏었다. 직원 감시는 중국 현지 조폭들이 맡았다.
핸드폰·여권 뺏고 1년 동안 가둬
임금 안주고 “장기 뜯겠다” 협박
A씨에 따르면 해외서 활동하는 범죄조직의 생명은 ‘보안’이기 때문에 아무나 뽑지 않는다. 믿을만한 사람만을 엄선해서 고른다는 것이다. A씨도 마찬가지로 지인의 소개로 조직에 들어갔다. 대체로 소개를 해주는 지인들은 ‘건달’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가끔 현지서 인원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심부름이나 망보기 등을 시키고 여차하면 돈도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들에게 주요업무를 주지 않는 이유가 있다.
A씨에게 관련 에피소드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A씨가 일한지 6개월쯤 됐을 때 현지서 뽑은 한 부부가 함께 일을 하러 왔다. 남편은 홈페이지 관리를 하고 아내는 대포통장 관리를 했다. 이런 범죄조직이 한달에 벌어들이는 돈은 100억에 가깝다.
결국 이 부부는 돈에 눈이 멀었다. 돈을 관리하는 아내가 5000만원을 송금하고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도망치려고 한 사실이 발각됐다. A씨는 “태어나서 그렇게 심한 구타는 처음 봤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일의 특성상 모든 돈은 대포통장으로 거래된다. 돈을 빼내고 도망에만 성공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것. 하지만 도망치다 걸리면 목숨까지 위험하게 된다. A씨는 “실제로 도망치다 잡혀온 사람들은 장기까지 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빼돌린 돈을 장기매매 금액으로 메운다는 것이다.
A씨는 현재 한국에 돌아왔지만 오는 과정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범죄조직의 입단속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A씨가 경찰에 누설할 경우 “가족들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달의 돈도 받지 못했다. A씨가 항의해 봤지만 “장기 뜯기지 않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라는 협박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불안 속 삶
한국에 돌아온 A씨는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있지는 않을지, 갑자기 납치당하지 않을지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 A씨는 “요즘 많은 청년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해외 범죄조직의 일에 가담하는데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지금 땅을 치며 후회한다”며 “불법적으로 쉽게 버는 돈에는 그만큼의 위험도 뒤 따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