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유명 대학병원과 종합병원들이 골절 응급환자를 소형 병원에 넘기는 대가로 돈을 받아오다 대거 적발됐다. 이들은 환자를 물건 취급하며 불법적인 거래를 자행했다. 의료인의 양심을 저버린 의사들은 무려 80여명에 달했다.
서울대학교병원 등 수도권 일대 대형병원 레지던트들이 뒷돈을 받고 특정 병원에 환자를 몰아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환자를 특정 병원에 소개해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아 챙긴 박모(33)씨 등 수도권 병원 10곳 레지던트와 구급차 기사 등 45명은 의료법 위반 및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또 이들에게 돈을 건네면서 로비한 정형외과 전문 A병원장 이모(59)씨와 본부장 윤모(47)씨 등 8명도 배임수증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A병원을 포함한 법인 11곳도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환자좀 보내줘”
박씨 등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대병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청구성심병원 등 수도권 일대 대형병원에 근무하면서 이씨 등이 제공한 뒷돈 약 2억9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씨 등은 같은 기간 서울 서대문구에 A병원을 운영하면서 박씨 등에게 정형외과 관련 응급환자 등을 자신의 병원으로 보내도록 청탁하고 대가성 뒷돈을 건넸다.
박씨 등은 근무하던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응급실에 환자가 많고 현재 전문의가 없다” “수술은 내일이나 돼야 가능하다” 등의 핑계를 대면서 A병원으로 옮겨갈 것을 종용했다. 이씨 등이 넘겨받은 환자는 모두 12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퇴부 골절 50만원 ▲상완골 골절 30만원 ▲손가락절단 30만∼40만원 ▲인대 및 신경 손상 20만원 등 환자 견적에 따라 대가를 지불했다.
박씨 등은 병원 4년차 레지던트인 ‘의국장’들이었다. 의국장은 응급실 등에 근무하는 후배 레지던트들에게 보고를 받고 수술 여건에 맞지 않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씨 등은 이 같은 응급실 구조를 알고 박씨 등에게 집중적으로 로비해왔다. 박씨 등 의국장들은 직책 교체 기간 이씨 등과의 유착관계까지 함께 인수인계했다. 현재 뒷돈 거래에 연루된 레지던트 가운데 일부는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거나 다른 병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손가락 절단 30만원, 대퇴부 골절 50만원
유치 많이 하면 1000만원 보너스 지급도
박씨 등은 조사과정서 ‘관행’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등 죄의식 없는 모습을 보였다.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서 “용돈을 조금 받았을 뿐인데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취지로 진술한 레지던트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의국장들은 환자에게 병원을 소개해주는 일이 관례고, 소액을 받았다는 이유로 죄의식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의국장들이 속한 병원 7곳 등도 함께 입건하고 병원에 진통제를 처방하게 하는 대가로 현금 2억원을 제공한 제약업체 관계자들도 별도로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 등은 대형병원 원무과장, 구급차 기사 등에게도 뒷돈을 건네 환자를 유치했다”며 “100만원 미만의 뒷돈을 받은 레지던트 등 32명과 소속 병원의 경우에는 별도 입건을 하지 않고 보건복지부에 통보 조치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환자 거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13년에는 정신병원 등에서 민간 응급환자 이송단 및 병원 사무장 등을 통해 환자 1명당 30∼50만원 알선료를 지급하는 등 총 40억원대 환자 유치비용을 지불하고 환자를 불법 유치한 B병원 원장 안모(42)씨 등 45개 병원이 적발돼 병원장 등 143명이 의료법 등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안씨 등은 환자 유치를 위해 민간 이송업체 경력자나 환자 유치 경력이 많은 병원 사무장 등을 급여 이외에 영업비 명목으로 매월 100만원서 최고 1000만원까지 지급하며 채용했다.
유대 관계가 있는 민간 이송업체 직원 또는 다른 병원 사무장들과 결탁해 주로 알콜중독, 정신질환 환자를 보내 주거나 받으면서 소개 받은 환자 1명이 입원할 경우 소개료 등 명목으로 국민건강보험가입환자는 40만∼50만원, 기초생활수급자는 30만∼40만원을 지급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알콜중독 환자는 통상 3∼4개월, 정신질환자는 2년 정도 입원하는데 환자가 특정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은 180일로 이를 경과할 때는 각 지방자치단체 정신보건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하며 특정 병원에 계속 입원 연장 승인을 받으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이들은 이를 악용해 병원 사무장들이 결탁해 환자를 통상 140~150일이 경과하면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가 2∼3주 후 다시 환자를 데리고 오는 방법으로 환자를 돌려가며 유치했다.
환자를 병원서 다른 병원으로, 또는 민간 이송업체서 병원으로 소개하는 등 불법 거래를 하다 보니 민간 이송업체에선 수십개 병원에 환자를 소개하고 사례비를 받는 등 이들의 환자 불법 거래 행위가 거미줄처럼 형성 관계를 유지하며 환자를 소개하고 사례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성남소재 C병원의 경우 정신과등록병원은 전공과 관계없이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후배 정형외과 의사 정모(36)씨 등 2명의 명의를 빌려 2개의 정신병원을 운영했다. 환자를 불법 거래하는 병원과 민간 이송업체들은 환자 유치 비용을 일명 ‘통값(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비속어)’이라 불렀다.
이들 병원서 국비로 수령한 건강보험 요양급여는 총 2111억원으로 실질적으로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에 대한 요양급여도 포함돼있어 국민건강보험료를 허위·부당 청구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도 거셌다.
당시 경찰은 “보완 수사 후 관계기관에 통보해 환수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6일 열린 상임이사회서 토의 안건으로 이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의협 한 관계자는 “해당 사건에 연루된 의사들을 중앙윤리위에 회부해 자체 징계하는 방안이 논의됐다”며 “회의 참석자들을 상대로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 윤리위에 넘겨 징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고 밝혔다.
이송업체가 소개
이 관계자는 “다만 이번 사건이 병원의 시스템상 문제에서 발생한 것인지, 개인의 일탈인지 여부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윤리위 회부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며 “이르면 5월 중 상임이사회서 (윤리위 회부 여부를)결정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대학병원 의사 40여명 중 대부분이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복무 중인 것으로 확인돼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