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공주 옷을 입은 여자 교주를 ‘아가야’라고 부르며 따르는 신도들이 여신도와 어린아이를 때려죽이고 암매장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아가동산 사건. 이 사건은 1996년 사회를 발칵 뒤집은 사건 중 하나다. 아가동산을 탈출한 일부 농장 주민이 살인 및 사기혐의로 교주 김기순씨 등을 고발하면서 밝혀졌다.
1989년 아가동산 창시자…신도 30여 명이 살인 및 사기 혐의로 고발
조세포탈·폭행·횡령 혐의 유죄…살인·사기 혐의 무죄 선고 받아
아가동산의 교주 김기순씨는 원래 1978년 전라북도 이리시(현재의 익산시) 주현동 주현교회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이교부 목사의 신도였는데, 당시 이교부 목사는 신흥 종교 ‘삭발교’의 창시자였다. 하지만 이 목사가 이른바 나체 댄스 사건(1978년 12월 3일부터 1979년 1월 11일까지 이 목사가 자신의 신도들과 함께 나체 춤을 추면서 예배를 본 사건)에 연루, 구속되어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김씨는 이 목사가 맡고 있던 조직을 이탈하기에 이른다.
1982년 아가농장 설립
그 후 김씨는 서울에 살다가 1982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대리에 있던 임야 1만3200여 평방미터(약 4000여 평)를 구입해 이곳에 ‘아가농장’을 세웠다. 1985년 김씨는 이곳을 ‘신나라’로 선포했고 1989년에는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의 창시자가 된다.
김씨는 기존의 성경책과 찬송가 등에서 나오는 예수를 자신을 뜻하는 단어인 ‘아가야’로 바꾸었으며 자신의 지휘 하에 협동농장, 비밀장부, 의료, 학생, 세무 등 각 분야별 책임자가 아가동산을 운영하도록 지시했다.
아가동산 신도들은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16시간 동안 계속된 공동생활에서 강제노동과 집단구타에 시달려야만 했다. 신도들은 1년에 단 4일(새해 첫 날과 광복절, 성탄절과 교주 생일)만 쉴 수 있었으며 텔레비전 시청과 신문 구독은 물론 외출과 면회도 제한됐다. 심지어 김씨는 신도들에게 금욕생활을 강요하여 신도가 부부라 하더라도 동침이 허용되지 않았고, 아가동산이 개최한 각종 행사와 종교의식은 김씨를 찬양하는 내용 일색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김씨는 신도들의 사유재산을 교단의 공동재산으로 귀속시켰고, 신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불과 6년 만에 아가동산 면적을 43만 평방미터(약 13만여 평)로 늘리는 한편 1982년 12월에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레코드 유통 전문 업체인 신나라레코드를 설립해 아가동산 농장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킹레코드와 명반레코드, 신나라레코드백화점 등을 설립, 운영했다.
핵심인물들 줄줄이 기소
아가동산 사건은 아가동산 이탈자들의 폭로가 시작되면서 비롯됐다. 아가동산을 탈출한 일부 농장 주민이 살인 및 사기혐의로 김씨 등을 고발한 것. 아가동산의 핵심인물들이 줄줄이 기소되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96년 12월1일 사이비종교단체 아가동산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30여 명이 “아가동산은 사이비종교집단이다. 아가동산은 1987년과 1988년에 신도 2명을 무참히 살해했으며 이 중 한 명이 암매장되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김씨는 1998년 6월23일 대법원에서 조세포탈·폭행·횡령 등 죄목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4년 및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매장된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살인이나 사기 등 주요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