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주년 기획특집>⑧백범 암살범 처단한 ‘버스기사’ 박기서

"해야 할 일 했을 뿐 후회는 없다"

1949년 6월26일 일요일 오전, 육군 소위 안두희는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 선생을 찾아가 45구경 권총으로 살해했다. 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된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석 달 뒤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됐고, 다음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현역으로 복귀, 대령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전역 후 안두희는 민족의 지도자로 존경받던 백범 김구 암살범이라는 이름하에 여러 사람들에게 피습위협을 받았지만, 암살 배후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은신과 도피를 되풀이하던 안두희의 마지막은 참담했다. 그는 백범 암살범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백주대로를 활보하는데 의분을 느낀 버스운전기사 박기서(당시 46세)씨에 의해 1996년 10월23일 처단됐다.

학창시절부터 백범 김구 선생 추앙, 안두희 살해 결심
정의봉으로 안씨 처단, 죗값 치른 뒤 평범한 일상으로

당시 79세였던 백범 암살범 안두희는 1996년 10월23일 오전 11시30분경 인천 중구 신흥동 3가 동영아파트 502호 자택에서 피습 사망했다.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씨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부천 소신여객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던 박씨는 이날 오전 안두희를 찾아갔다. 마침 안씨의 부인인 김명희(당시 63세)씨는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중이었고, 그 순간 박씨는 "안두희를 죽이러 왔다"면서 장난감 권총과 ‘정의봉’이라고 쓴 40cm가량의 목봉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김씨의 반항을 막기 위해 김씨를 안방으로 끌고 가 흰색 나일론 끈으로 손발을 묶어놓은 후 안두희가 누워있는 옆방으로 발을 돌렸다.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

박씨는 안두희에게 물었다. "네가 안두희냐?" 오랜 은둔생활과 도피로 병마에 지친 늙은 안두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겨우 고개를 돌렸고, 순간 박씨는 정의봉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박씨의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하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정의봉을 휘둘렀다. 박씨는 생각했다. 겨레와 조국에 죄를 지은 자가 하늘이 주는 수명을 다하는 것을 절대 볼 수 없다고.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는 그렇게 허망하고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범행 후 박씨는 자신이 다니던 성당으로 향했다. 고해성사를 마친 박씨는 자수했고, 성당의 신부와 함께 오후 8시께 인천중부경찰서로 찾아가 범행일체를 자백한 뒤 긴급구속됐다.

경찰에서 박씨는 초지일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살해동기에 대해 그는 "민족의 지도자인 백범 선생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암살한 안두희를 죽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담담한 표정으로 "안두희는 당연히 응징돼야 하며 그를 죽인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공모여부를 추궁하는 경찰에게 오히려 반문했다. "의를 실현하는데 공모가 있을 수 있느냐"고.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학창시절부터 김구 선생을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백범일지>를 처음 읽은 지난 1995년 초 백범의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

이 같은 개인적인 추앙은 박씨로 하여금 안두희를 살해할 동기가 됐고, 박씨는 안두희를 살해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안두희를 10년 넘게 추적한 권중희씨의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는 책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씨는 천천히 안두희 피살을 준비했다. 10월 초 나무방망이를 구입했고, 같은 달 21일에는 자신의 집 앞 문방구에서 장난감 권총을 구입했다. 칼과 흰색 끈은 집에 있던 것을 사용했고, 방망이에는 정의봉이라고 직접 썼다. 화선지에는 자신의 역사적 행동의 취지를 밝히는 글로 견이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박기서라고 썼다.

박씨는 평범한 버스 운전기사였다.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용달차를 장만해 운송사업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1995년 7월 부천소재 소신여객에 입사해 운전사로 일해 왔다.

박씨와 관련. 당시 회사 동료들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평소에 농담을 별로 하지 않았고, 회사 일에도 적극적이었다"면서 박씨가 안두희를 살해한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당시 사회적 파장은 대단했다. 민족정기구현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박기서 의사 후원 및 석방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회 측은 "박씨는 자신을 희생해 민족반역자 안두희를 처단한 만큼 단순한 살인범이 아니라 의사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심판 이루리라


이듬해 3월 검찰은 박씨에 대해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안두희가 백범을 암살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듯이 피고인이 정의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또 하나의 살인을 한 행위 또한 용인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심에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고, 1997년 8월 항소심은 박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 대법원에서도 이를 확정했다.

안양교도소에서 1년을 복역하고 청주교도소에서 6개월을 복역하던 박씨는 3·1절 특사로 풀려나 가정의 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회가 박씨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처럼 곱지만은 않았다. 특사로 풀려났지만 어떤 회사에서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고, 박씨는 결국 개인택시를 마련해 아직까지 운전대를 잡고 있다.

세간에는 그날 박씨가 한 일을 두고 개인이 개인을 사적으로 징벌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단순 ‘살인범’인지 진정한 ‘의사’인지는 역사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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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