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경 “뿌리는 간직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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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03.22 13: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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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 주역 중 한명인 소리꾼 민은경(35)은 지난겨울 지리산서 일주일 간 '산(山)공부'를 했다.

'산공부'는 소리꾼들의 정통 수련 방법으로 산에서 숙식하며 판소리를 익히는 일이다. 어릴 때 방학마다 산 속에 한달간 틀어박혀 소리를 배운 습관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장충동 국립극장서 만난 민은경은 "명창 김소희 선생님을 비롯해 유명한 선생님들이 소리를 하셨던 곳이었다. 정기가 좋아 그런지 소리가 잘 들리고, 소리도 잘 나왔다. 그 기를 무시할 수가 없더라"고 웃었다.

"판소리는 말 그대로 판에서 나는 소리에요. 인간이 내는 소리뿐만 아니라 판(장소)에 따라 바람 소리, 물소리, 귀신 소리 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죠."

민은경이 이 판의 소리를 공연장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완창판소리'의 올 상반기 첫 공연을 장식한다. 오는 25일 오후 3시 장충동 국립극장 KB하늘극장서 '민은경의 심청가'를 펼친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8~9시간까지 완창하는 무대인만큼 박동진 명창을 비롯해 성창순·박송희·성우향·남해성·송순섭·안숙선·신영희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만이 올랐던 꿈의 무대다.


지금까지 30여 년간 270여 회 공연되며 소리꾼에게는 최고 권위의 판소리 무대를, 관객에게는 명창의 소리를 매달 접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이번 상반기 '완창판소리'는 탄탄한 소리 실력을 바탕으로 국립창극단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단원들을 주목하는데 민은경이 첫 주자로 나서게 됐다.

민은경은 애초 2~3년 전에 이 무대에 오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소리가 자신과의 싸움인데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공부 단계라고 생각해서 도전하게 됐다"며 "물론 선생님들만큼 잘할 수는 없지만 그 분들의 맥을 이어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겸손해했다.

중요 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인 민은경은 이번에 강산제 '심청가'를 완창한다. 강산제는 고(故) 박유전 명창이 조선 고종 시대에 창시한 유파로 서편제의 애잔함과 동편제의 웅장함이 어우러진 소릿제다.

그 중 '심청가'는 강산제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리 중 하나다. 작은 몸집에서 나오는 분명한 성음과 강인한 통성이 특징인 민은경에게 어울린다.

4시간 이상 소리를 내는 일은 상당한 체력도 요구한다. 한남동에 사는 민은경은 산을 타고 극장에 출퇴근하며 체력을 길렀고, 고기는 물론 처음으로 보약도 챙겨먹었다.

객석서 같은 시간 동안 소리를 듣는 일은 관객들에게도 부담이다. 퓨전 밴드 보컬, 소리꾼 이자람·뮤지컬스타 차지연과 함께 뮤지컬 <서편제> 주역을 맡는 등 다방면서 활약한 민은경은 연극적인 요소를 더한 재미로 이 어려움을 격파한다. 물론 소리의 뿌리는 단단히 붙잡고 있다.


전남 목포서 어린 시절을 보낸 늦둥이인 민은경의 재능은 음악을 좋아한 사업가 부친이 발견했다. 어릴 때부터 TV서 흘러나오는 주현미의 노래를 구성지게 따라 부르는 등 항상 흥얼거리던 그녀를 눈여겨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립국악원의 명창 안애란 문하에 맡겼다. 비보이 팝핀 현준의 아내인 국립창극단 출신 박애리가 선배로 같이 수학했다.

20대에는 활동을 보폭을 넓혔다.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심청'에 출연했고, 방송에서 가수 JK김동욱과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몸담은 밴드에는 약 6년간 있었다.

"밴드에 있었을 때는 대중음악을 주로 불러서 목소리를 예쁘게 내야 했어요. 주변에서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을 하셨죠. 하지만 제 뿌리만큼은 흔들리지 않게 노력했어요."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이후에는 창극에 관심을 쏟았다. 민은경과 함께 이소연, 정은혜(퇴단)가 입단 동기인데 이들은 '황금 트로이카'로 통한다.

"20대 중반까지는 노래에 많이 치중을 했어요. 마당놀이, 뮤지컬을 거치면서 이 모든 것이 판소리 안에 다 들어있다는 걸 알았죠. 소리를 더 잘하기 위해서는 극화된 공연 역시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창극단에 입단했죠."

자그마한 체구에 동안인 그녀에게는 주로 어린 역이 주어졌다. 입단 한참 전인 2006년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의 심청 역을 비롯해 <서편제> 어린 송화 역 등이 그렇다.

하지만 강단 있게 폭발력이 똬리를 튼 소리를 들려주는 그녀에게 '수퍼 땅콩'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점차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가 주어졌다. 2014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의 춘향 역이 대표적이다.

루마니아 출신의 거장 연출가인 서반은 춘향에 주로 녹아든 여린 이미지 대신 굳세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는 힘을 발견했고, 그것을 민은경에게서 또 찾아냈다.

2005년 재일 연출가 정의신이 최초로 창극에 도전한 작품인 <코카서스의 백묵원>서 처음으로 할머니 역을 맡아 귀여움과 미모를 싹 지운 연기 역시 민은경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고선웅 연출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역의 당찬 옹녀 역에도 잘 어울린다는 평도 나온다.

한국무용, 기타 그리고 탭댄스까지 배우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는 민은경은 "뿌리는 간직하되 재미있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소리라는 것 자체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잖아요. 저 역시 생생한 재미를 관객들에게 드리고 느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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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