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위기 ③

IMF세대들의 ‘통한의 목소리’

 

 

IMF의 삭풍이 몰아쳤던 1990년대 후반 대학교를 졸업한 IMF세대.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로움 속에서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을 보냈던 그들은 앞으로 남은 미래도 장밋빛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딛으려는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IMF시대라는 괴물과 취업전쟁, 그리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삶의 방식과 태도, 사고방식까지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속에 버려졌다. 그리고 10년 후인 지금, 그들은 여전히 힘들다. 지난 10년간의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세계적 경제공황 속에서 물거품이 될 위기다. 하루하루가 위태한 30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IMF는 벗어났지만 고통은 10년 째

컴퓨터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개발팀에 근무하는 전모(38)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10년간 하루도 위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밑에서 부족할 것 없는 청년기를 보냈던 전씨. 대학시절에도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봤을 만큼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렸다. 자신의 삶은 앞으로도 쭉 평화롭고 안정적일 거라는 전씨의 기대가 무너진 것은 대학 졸업을 몇 달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교과서에서나 보던 ‘IMF’란 세 글자가 연일 뉴스에 나올 때만 해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IMF의 직격탄은 전씨의 가정에도 떨어졌다.
퇴직을 10여년 앞둔 아버지가 ‘명퇴’를 당하면서 가정경제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2억원 남짓한 돈과 모아둔 돈을 합해 시작한 사업이 화근이었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뛰어든 사업은 전씨의 가정에 별 보탬이 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1998년 8월,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 공대에 다녔던 그는 유례없는 취업전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선배들이 쉽게 들어갔던 기업들에 수십 번 이력서를 냈지만 합격소식은 남의 일이었다. 결국 눈높이를 낮춰 이듬해 봄, 중소기업에 입사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씨는 대학 때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연봉의 절반수준밖에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일주일에 6일씩 야근을 하며 2년간의 직장생활을 했다. 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경제를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점점 설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20대 후반을 아등바등 살다 맞이한 30대는 더욱 매서웠다. 그가 다녔던 회사가 도산해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된 것.
몇 개월을 실업급여에 의존해 살아가던 전씨는 선배의 소개로 또 다른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규모도, 연봉도 적지만 내실 있는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회사에 몸담고 있다.
더 조건이 좋은 회사로 옮기려고도 해봤지만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 자기계발을 하며 몸값을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5년 전 결혼하면서 생긴 아파트대출금과 각종 은행대출이자를 갚느라 휴직을 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여기에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 걱정은 덤이다.
몇 달 전부터 그를 짓누르는 또 한 가지는 지난 해 무리를 해가며 산 펀드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 반토막이 나는 것도 시간문제란다.
전씨는 “IMF시대를 벗어난 지 10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난 한 번도 IMF세대라는 걸 잊어본 적이 없다”면서 “아버지가 40대에 누렸던 경제적 안정을 몇 년 후에나 맛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씨처럼 IMF를 즈음해 사회에 뛰어든 30대들은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1970년에서 1975년 전후로 태어난 이들은 이전 세대가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유년기를 맞이했다.
물론 지금의 10대와 20대들이 맛보는 정도의 풍요로움은 아니지만 ‘내 자식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모세대의 뼈아픈 희생으로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고생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대학교만 졸업하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로 다가올 시련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바로 몇 해 전에 졸업한 선배들을 봐도 그랬다. 그들에게 대학교는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낭만의 캠퍼스였고 졸업만 하면 치열한 경쟁 없이 쉽게 직장을 얻었다. 이 때문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나 막막함은 그리 크지 않았다.
92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1999년에 졸업한 김모(37)씨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교에 가서 특별히 공부를 한 기억은 없다”며 “마치 고3처럼 공부한다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보면 우리 세대는 편한 대학시절을 보낸 셈”이라고 말했다.
IMF 세대는 또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배낭여행 1세대이기도 했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면서 이들의 무대는 해외로까지 넓혀졌다. 이로 인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졌고 다가올 사회생활도 두렵지 않았다.

대학졸업과 함께 IMF시대 맞아 냉혹한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치열한 취업경쟁 뚫은 뒤 구조조정과 무한경쟁에서 고군분투


그러나 이들이 사회에 발을 들이기도 전, 대한민국은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1997년 11월21일, 경제국치라 불리는 IMF가 시작되고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외환정책의 실패,  위험성 대출자산 증가 통제불능으로 인한 기업의 연쇄도산, 기업투자의 부실화 등 각종 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한 위기는 여유로웠던 이들의 인생에 태클을 걸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의 수가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다. 이전만 하더라도 4~5월이면 대기업들은 공채사원 모집으로 수천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그러나 1998년 상반기 신입사원을 뽑은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취업준비생은 이에 비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IMF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하다. 1970년에서 1972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의 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출생인구가 가장 많은 해는 1971년으로, 87만5천1백87명이나 됐고, 1970년(85만9천8백17명)과 1972년(85만9천5백12명) 생이 뒤를 이었다. 이는 가장 수가 작은 2005년생(41만3천8백5명)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로 인해 1998년 20대 실업자는 52만명에 달했다. 이전 해의 27만여 명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수다.
이처럼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고생 끝에 취직했다고 해서 안전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언제 자신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직장생활을 해 나갔다.이때부터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이 간부급으로 승진해 정년퇴직을 보장받는 곳이 아니라 다른 직장으로 옮겨가는 교두보의 역할만을 할 뿐이란 것.
IMF를 벗어나고 21세기를 맞이했다고 해서 이들 세대의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결혼적령기를 맞은 이들은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값이 폭등해 월급쟁이에게는 전셋집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삶의 질은 높아만 갔다.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하고,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 대접받는 시대가 왔다. 여기에 주6일제에서 주5일제로 바뀌면서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드는 돈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하모(39)씨는 “아직까지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형편이지만 가족 여행과 취미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저축할 몫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전 세대에 비해 기본적인 생활비도 늘 수밖에 없다. 휴대폰, 인터넷 등 정보생활에 필요한 돈이 수도세처럼 빠져나가고 사교육비도 늘어만 간다. 그리고 이들 세대의 자녀들은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중, 고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몇해 전부터 광풍처럼 불었던 펀드와 주식바람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쉽고 가볍게 재테크를 생각하는 30대들은 실제로 재테크로 짭짤한 맛을 본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대박의 꿈마저도 앗아갔다.
불안한 직장생활의 마지막 보루로 투자했던 펀드와 주식은 바닥으로 치닫기 일쑤고 어렵게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 등의 부동산도 날이 갈수록 값이 떨어지고 있다.
직장인 박모(37)씨는 “틀림없는 정보라고 해서 믿고 산 펀드의 수익률이 끝도 없이 떨어지고 있어 자다가도 벌떡 깬다”면서 “주식실패로 자살했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30대들의 목을 조이는 또 다른 것은 ‘무서운 후배’들이다. 어느 세대든 후배들이 자신들을 치고 올라와 위협하는 것은 순리(?)겠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이들의 후배는 누구보다 능력 있는 세대다.
10대 시절에 IMF를 겪고, 바로 윗세대들이 얼마나 냉혹한 사회에서 일하는지를 지켜봤던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사회에 발을 들였다. 대학교는 술을 마시고 연애나 하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학원’ 정도로 여긴 ‘후배’들은 고3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투자를 쏟아 취업문을 통과한 인재들이다.
게다가 30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기기 힘든 것은 이들이 가진 정보력이다. 20대 후반에서야 인터넷을 접한 IMF세대와 달리 이들은 이미 10대부터 자유자재로 인터넷을 가지고 논 세대. 무려 10년이란 차이를 따라잡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모(39·여)씨는 “언젠가 부장님이 나와 후배에게 같은 일을 시킨 적이 있는데 후배는 나보다 24시간이나 빨리 보고서를 제출했다”며 “일한 경력은 내가 훨씬 길기 때문에 당연히 후배를 이길 줄 알았는데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력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IMF세대인, 30대 후반을 맞은 이들은 예고도 없이 가장 치열한 세상 속으로 들어온 뒤 10년 동안 무한 경쟁 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IMF보다 더 혹독한 경제위기라는 지금, 10년 전의 잔혹한 추억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IMF 처녀에서 88만원 세대까지 ‘그때 그 유행어들’
IMF 이후 취업난 빗댄 신조어 쏟아져


IMF 이후 10년 동안 계속 되고 있는 취업난과 청년 실업은 각종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들은 우울한 현실 속에서 쓴 웃음을 주며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잠깐 사용되다 사라진 신조어와 관용어로 굳혀진 용어들을 되돌아보자.

IMF 처녀
IMF시대였던 1990년대 후반 생겨난 신조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던 당시 기혼녀부터 해고시키는 회사방침으로 인해 결혼을 하고도 처녀행세를 하는 유부녀를 일컫는 말. 심지어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남편과 당분간 따로 사는 등 직장을 사수하기 위한 당시 직장인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갤러리족
주인의식 없이 회사 돌아가는 대로 그저 따라다니다가 그만둘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직장인들을 일컫는 말. IMF 후 구조조정으로 인해 직장인들이 강제 퇴직당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이까지만 해도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겼지만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더 나은 직장이 나오면 미련 없이 직장을 옮기는 풍속도가 생겼다. 갤러리족이라는 이름은 회사의 운명은 상관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생각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마치 골프장의 갤러리들이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박수를 쳐 주고, 선수가 이동하면 따라 나서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생겨났다.

각종 생선 시리즈
외환위기 이후 직장인들의 목숨과 관련한 신조어들도 연일 생성됐다. 명예퇴직자를 이르는 ‘명태족’, 하루아침에 생매장당한 직장인인 ‘생태족’, 어느 날 황당하게 잘린 직장인을 말하는 ‘황태족’, 30대에 일찌감치 잘린 조기 명퇴자를 일컫는 ‘조기족’, 퇴직금을 두둑이 받은 명예퇴직자를 이르는 ‘알밴 명태족’ 등이다. 이들 용어 중 명태족 등은 지금도 쓰이며 IMF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고공족(考公族)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는 이들이 늘면서 해고의 위험성이 없는 공기업과 공무원이 큰 인기를 얻으며 생긴 용어다. 고공족은 고시건 공무원시험이건 일단 붙고 보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을 일컫는다.


공휴족(恐休族)
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 이들은 주로 취업에 부담을 느낀 대학생들로 방학 중에도 쉴 틈 없이 학업 외에 3~5개 활동을 동시에 한다. 이들은 어학공부, 각종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기업 인턴십, 자격증 취득 등 졸업 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마다않고 한다.

이태백·삼태백
청년실업은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란 말을 만들었다. 장기화된 취업난은 연령대를 넓혀 30대 태반이 백수라는 ‘삼태백’으로 바뀌기도 했다.

대학 둥지족
취업이 어려워지자 휴학을 하며 졸업을 미루는 학생을 일컫는다. 이들은 어학연수, 인턴쉽 등을 핑계로 휴학을 밥 먹듯하며 사회로 나가는 시간을 유예시킨다.

버블리족
‘거품족’이라고도 하는데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거품 경기 때 입사했거나 대학생활을 보낸 직장인 중 거품경기가 사라지면서 급변하는 기업 조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 버블리족의 특징은 무관심·무능력·무경쟁으로 조직의 입장보다는 개인적 관심에의 일을 추진하고 모든 책임을 조직에 돌리는 것. 또 자신에 대한 남의 평가에 대해 관심이 없고 경쟁의식도 없으며, 근무시간에 조직 업무에 대한 집중도 취약해 공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88만원 세대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약 88만원을 받는다는 뜻. 88만원은 비정규직 전체의 평균 임금(1백19만 원)에 20대 평균 소득 수준 비율인 74%를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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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