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2016 최악의 사건사고

충격의 연속 “조용할 날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다사다난했던 2016년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했던 사건들로 조용할 날 없던 한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던 사건들을 <일요시사>에서 다시 한번 정리해본다.

지난 5월17일 오전 0시33분경 피의자 김모(34)씨는 강남역 근처 노래방 화장실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들어온 C(23)씨를 흉기로 4차례 찔러 살해했다. 김씨는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해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와는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했다.

여성 노렸다
[강남역 살인]

서울지방경찰청은 프로파일러를 투입, 두 차례 심리면담해 종합 분석한 결과 전형적인 피해망상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 유형에 부합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범행 당시 김씨의 망상 증세가 심각한 상태였고 표면적인 동기가 없다는 점,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범죄 촉발 요인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이번 사건이 묻지마 범죄 중 정신질환 유형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김씨가 화장실에 들어온 여성을 보자마자 바로 공격한 점으로 미루어 범행 목적성에 비해 범행 계획이 체계적이지 않아 전형적인 정신질환 범죄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 움직임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같은 날 오후 4시쯤 트위터에는 '강남역 10번 출구,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 이젠 여성폭력, 살해에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라는 트윗이 올라왔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사건이 발생한 상가 건물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였다.

한 시간 뒤에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국화꽃 한 송이와 추모의 글을 담은 쪽지를 남겨 피해 여성을 추모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제안에 호응한 시민들은 강남역 10번 출구 유리 벽면에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글을 적은 포스트잇(접착식 쪽지)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추모현장을 아울러 이성혐오 문제를 중심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이런 류의 묻지마 살인은 이전에도 가끔씩 있어왔으나 이번 사건은 인구의 중심지 서울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나 2015년경부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돼 왔던 이성혐오 프레임이 크게 불붙으며 반향을 일으켰다.

지하철 참사
[구의역 사고]

지난 6월1일 오후 지하철 스크린도어 보수작업을 하던 김모(19)군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선로작업시엔 작업 인원, 작업 지점은 물론, 작업자의 안전 확보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당시 해당 역과 역무원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자주 드나들어 수리하곤 했고 작업자도 협력업체나 서울 메트로가 구의역에 작업 사실을 알렸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리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평소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항상 가방에 컵라면을 가지고 다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안타까운 사건으로 남았다. 이 같은 열악한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서울 메트로의 자회사로 전환되면 공기업 직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해당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올린 글에 의하면, 피해자는 사고 직후에도 잠시 살아있었다고 한다.

강남 묻지마 살인으로 여혐 논란
전대미문 서울도심 공포의 총격전

김군 모친에 의하면 시신 상태가 처참했다고 한다. 부은 얼굴은 피범벅에 뒤통수가 없어져서 단번에 아들인지 알아보지 못했고, 짙은 눈썹과 벗겨놓은 옷가지를 보고서야 아들이 죽은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한다.

사고 현장인 ‘9-4 승강장’ 유리벽엔 숨진 김군을 기리는 포스트잇 600여장이 붙어 있었다. 구의역 역무실 옆에 별도로 마련된 추모의 벽엔 포스트잇 1200여장이 더 붙었다.
 

추모의 벽 앞엔 조화 100여다발과 김군의 가방에 들어 있던 것과 같은 컵라면, 생일 케이크 등이 놓여 있었다. 이들이 남긴 추모 글에는 성실히 일하다 죽음을 당한 또래 청년에 대한 공감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나도 당신처럼 영세 업체에 취업해 일하는 공고생이다. 당신의 죽음을 보면 남 일 같지 않다’는 등의 글이 주를 이뤘다. 김군에 대한 추모는 SNS를 통해 확산됐다.

사제총의 위험성
[오패산터널 총격]

지난 10월19일 저녁 서울 강북구 미아동 오패산 터널 부근서 성모(46)씨가 대치 중인 경찰에게 사제 총을 쏴 현장에 있던 강북경찰서 번동파출소 소속 김창호 경위가 총에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 시간 만에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성씨가 총격전을 벌이기 전 근처에서 이모(67)씨에게 사제 총을 쐈고 이씨가 달아나자 쫓아가 흉기로 가격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서 행인 이모(71)씨가 총에 맞았다고 덧붙였다.

폭행 피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오패산 터널 쪽으로 달아나던 성씨를 발견한 뒤 대치 과정서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을 발사하는 등 총격전을 벌였고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합세한 끝에 검거했다.

범행 현장 주변 등에선 성씨가 준비한 사제 총 17정과 흉기 7개가 발견됐으며 성씨는 검거 당시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성씨는 평소 자신의 SNS 계정에 경찰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등 범행을 암시하는 게시글을 자주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성씨는 페이스북에 ‘경찰 한 명이라도 더 죽이겠다’ ‘나를 상대로 한 현행범 체포 현장에 출동하지 말기 바란다. 괜히 진급 욕심내거나 상관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다간 죽을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썼다.

범인을 검거하는 데 있어 시민들의 역할이 컸는데 사건 발생 뒤 6시20분 쯤에 빠르게 신고됐고 동료와 술을 마시던 일용직 노동자였던 김모(56)씨는 총소리를 듣고 풀숲에 숨어있던 범인에게 달려들어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 데 일조했다.

같이 술을 마시던 이씨(33)는 총에 맞은 경찰을 발견하고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했다. 범행 현장 인근 상인들 역시 범인 검거에 나섰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원영이 암매장
[평택 아동 살해]

2013년 8월 당시 5세이던 원영이는 누나와 함께 친모와 살다 부모의 이혼으로 양육권이 친부에게 넘어가 친부와 함께 살게 됐다. 그 후 계모 김모씨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됐는데 계모는 남매에게 아침밥을 먹이거나 제대로 씻기거나 입히지 않았고 회초리로 자주 학대하고 베란다로 가두기도 했다.

남매는 학대의 두려움에 말수가 줄어들었고 그해 겨울에는 얇은 옷차림으로 밖에서 놀았으나 누구도 남매를 돌보지 않았다.
 


원영이의 누나는 2015년 4월 평택시에 거주하던 조모에게로 옮겨졌으며 친부와 조모는 왕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부는 원영이를 2016년 1월7일에 초등학교 예비 소집일에 데려가지도 않았고 14일에는 입학 유예를 신청했다.

남일 같지 않은 수리공의 죽음
뻔뻔한 학부모들의 여교사 윤간

원영이의 성장이 늦고 이사할 예정이라고 변명했으나 사실 원영이는 2015년 11월부터 욕실에 감금되어 극심한 학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계모는 1월28일부터 원영에게 락스를 퍼부었고 2월1일에는 옷을 벗기고 찬물을 퍼부었다.

이 상태로 20시간이 지난 무렵 결국 원영이는 사망했고 친부와 계모는 시신을 이불에 말아 세탁실에 방치했다가 부패가 심하자 12일 평택시 청북면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원영이 남매가 다니던 아동 센터는 원영이의 사망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읍사무소를 통해 아이의 안전 상태를 확인하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3월4일 원영이의 입학 유예 관련 심의를 앞두고 부부가 “아이가 없어졌다”고 변명하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닷새 뒤인 9일, 경찰은 원영이 누나로부터 학대 사실에 대한 진술을 받고 친부와 계모를 아동 학대 혐의로 구속했다.

신안서 또…
[여교사 성폭행]

지난 5월21일, 흑산도에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던 피해 여교사는 평소 자주 가던 흑산도 우체국 앞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과정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학부모가 술을 권하면서 주인을 포함한 학부모 2명 및 지역민 1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이들 3명은 술을 거절하는 피해 여교사에게 억지로 계속 술을 권해 만취상태로 만든 후 학교 관사로 데려다 준다며 잠들자 집단 윤간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남자친구라고 밝힌 네티즌이 네이버 카페에 올린 글에 의해 사건 발생 일주일 이상 지난 후에야 세상에 드러났다.

자식의 스승을 윤간한 극에 달한 패륜범죄는 카페 글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됐으며 피해자가 침착하게 대응, 가해자들의 정액과 체모 등의 증거를 수집했다.

일각에선 관사의 남교사들이 모두 육지로 외출을 하는 주말을 노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만간 외지로 돌아갈 피해 여교사에 대한 계획적인 집단 성폭행이 아니었느냐는 주장이었다.

경찰 수사 결과 가해자들은 범행을 전후로 술자리를 갖고 전화통화를 주고받은 점이나 각자의 차량을 뒤이어 운행한 점 역시 공모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특히 가해자들이 경찰 수사 도중 웃으면서 담담하게 조사에 임하는 모습이나 피해자의 몸에서 DNA 증거가 나왔는데도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며 억지로 혐의를 부인하는 태도 등은 논란이 됐다.

경찰이 정액 검출 결과를 명백한 물증으로 제시했는데도 가해자 중 한 명은 오히려 “내 정액이 왜 거기 있죠?”라고 되물으며 모르쇠로 일관해 비난 여론을 부추기기도 했다.

한편 2007년 대전의 한 원룸에 침입해 20대 여성을 주먹으로 때려 제압하고 성폭행한 미제사건 범인의 DNA를 수사 당국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조사 과정서 본 사건 피의자 3명 중 1명인 김모(39)씨의 DNA와 일치하는 것이 밝혀져 과거의 동종 범죄 사실까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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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