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15>

장 대표“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그냥 매일 술만 들이켰다. 그렇게 근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내가 만난 어머니는 차가운 시신의 모습이었다.

■ 도망간 장 대표
할 수 없이 부리나케 함께 연습을 했던 여자 연기자 두 명에게 전화를 해봤다. 그녀들의 말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두 명도 장 대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서로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명은 7000만원, 또 다른 한명은 2000만원의 돈을 캐스팅 대가로 건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락을 줄테니 기다리라’고 해서 자신들도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단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지금의 사태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기. 명백한 사기극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장 대표에게 계속 삐삐를 쳤다. 하지만 역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렀다. 꼼장어와 소주. 두 병을 먹어도 취하지 않았다. 네 병, 다섯 병까지 먹은 건 기억이 났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음날 서대문 경찰서에 가서 여자 연기 지망생들과 고소장을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소장을 쓴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걸 써서 뭐한단 말인가. 이미 배역은 날아가 버린 것 아닌가. 경찰서를 나오는데 엄마가 생각났다. 속으로는 끊임없이 흐느꼈다.
그날 이후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매일 술만 들이켰다. 그렇게 근 한 달이 다되어 갔다. 사채업자들에게서 삐삐가 오기 시작했다. 카드 독촉장도 수시로 날아왔다. 7개의 카드사에서 돈을 빌린 셈이나 마찬가지니 어느덧 우편박스에는 독촉장이 가득했다. 사채업자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지껄였고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는 것밖에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돈 20만원만 빌려주라. 한 달 안에 갚을게.”
세상이 무너져 버렸다. 스타가 되어 다시 ‘왕자’가 될 것 같았는데, 그 꿈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버린 것이다. 이제 엄마의 얼굴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친구에게 빌린 돈 20만원으로 고구마 장사를 시작했다. 낮에는 땔감을 구하러 다니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꼬박 고구마를 팔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버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겨우 끼니만 때우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나마 봄이 되니 군고구마를 찾는 사람도 없어졌다. 할 수 없이 노가다판에 뛰어들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것이라 일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겨우 인력회사에 찾아가 일을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비지땀을 흘렸고 저녁이면 소주 한잔을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마음속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어두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7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길고 긴 악몽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대문 경찰서에서 삐삐가 왔다. 기획사 장 대표가 구속되었으니 와서 진술서를 쓰라는 이야기였다. 사기를 알아챈 그날의 분노와 절망이 또다시 밀려오는 듯했다.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장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왜 그러셨어요. 왜 저한테 그런 거짓말을 하셨어요!”
“미안하다, 동이야.”
장 대표는 당시 빚이 엄청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받은 돈으로 해외에 가서 도박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빚을 갚으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에서 또다시 모든 돈을 다 잃고 나서야 한국으로 들어올 때 공항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들은 더욱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했다. 합의서를 써주면 밖에 나가서 다시 탤런트로 성공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자기를 한번만 더 믿어봐 달라고 했다. 그 순간 소름이 끼쳤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몸서리가 쳐졌고, 이제 다시는 사람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그에게 남긴 말은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절대 용서하지 않아
그 후 나는 단 한 푼도 돈을 되돌려 받지 못했고 그 수많은 빚을 떠안고 하루하루 빚을 갚는 생활을 해 나갔다. 건너서 들은 이야기로 장 대표는 그 후 2년간 징역살이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또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유명해지면서 많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뤄질 수가 없었다. 장 대표가 2년을 징역살이를 하든, 20년을 하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시 모든 꿈을 잃은 채 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니,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라고 불렀다.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신 분, 나를 위해 아낌없이 사신 분, 이제 그분에게 어울리는 말은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강원도로 향했다. 철없이 어머니에게 돈을 해달라고 내려갔던 그 길을 똑같이 가면서 나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속으로 기도를 했다. 제발 살아계셔 달라고. 죽을 때 죽더라도 내 얼굴은 한번 보고 가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가 만난 어머니는 광목으로 둘러싸여진 차가운 시신의 모습이었다. 3일장 내내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친척 중 한 분은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너는 왜 눈물도 없냐’며 질타를 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현실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니.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3일장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올라왔다. 모두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기정사실화하는 그 분위기가 싫어서일까.
다시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언제나 전화를 걸면 들을 수 있었던 따뜻한 목소리. 하지만 그날은 그 전화번호가 결번처리가 되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께서 진짜로 돌아가셨다는 말인가?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에서 강원도로 향했다. 내가 그때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어머니의 무덤뿐이었다. 하염없이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3일장 동안 내내 울지 못했던 나의 울음이 그제야 터지는 듯 했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갈수록 더 악화됐다. 모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호빠에 다시 갈 수도 없었다. 그간의 고생으로 인해 살은 10kg이나 더 빠져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했다. 그렇게 또다시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사채업자들은 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다녔고 나는 그들을 피해 끝없이 도망을 다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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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