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굿바이 2010> ③재계 달군 핫 키워드 7

말 많고 탈 많았던 경인년 ‘정신없이 갔다’


지긋지긋’ 글로벌 금융위기 끝난 안도감 잠시
곳곳서 뿜어져 나온 ‘냉기’로 다시 긴장모드

2010년 재계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 ‘냉기’로 다시 긴장모드가 조성됐다. 경인년 재계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굵직굵직한 일곱 가지 이슈로 되돌아봤다.

2010년 불어 닥친 스마트폰 열풍은 IT업계의 최대 이슈였다. 그 여파가 생활의 방식마저 바꿀 정도로 컸다.
지난해 12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며 불붙은 스마트폰 시장은 지난 1년간 급성장했다. 2010년 한해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무려 600만명에 달한다.

삼성 웃고 LG 운
‘스마트폰 열풍’


지난해보다 12배가 늘어난 규모다. 휴대폰 판매순위도 1∼4위를 모두 스마트폰이 싹쓸이했다. 내년엔 스마트폰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50∼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비해 뒤늦게 스마트폰 ‘갤럭시S’를 내놨지만 대히트를 쳤다. 아이폰은 160만대가, 갤럭시S는 출시 5개월 만에 무려 180만대가 팔렸다.

부진에 허덕이던 팬택은 스마트폰 바람을 타고 스마트폰 시장 2위로 올라섰다. 팬택은 ‘시리우스’ 12만대, ‘이자르’ 25만대, ‘베가’ 24만대, ‘미라크’ 19만대의 국내 판매고를 올렸다. 반면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LG전자는 지난해만 해도 30%의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올해 반토막이 났다.

실적도 스마트폰 분야에 대한 부진으로 3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되는 굴욕을 당했다. ‘옵티머스’시리즈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과거의 점유율을 되찾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저주만 내린
‘M&A 태풍’

올해 재계엔 인수·합병(M&A) 태풍이 몰아쳤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 M&A가 활발했다. ‘주인’을 기다린 매물들도 하나같이 대어급이라 경쟁이 치열했다. 가장 관심을 모은 인수전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이 ‘혈투’를 벌인 결과 현대그룹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대혼란을 겪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금액으로 약 5조5000억원을 제시했는데, 돈이 없는 게 문제다. 상당 부분을 차입하다보니 뒷말과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채권단은 현대그룹으로의 현대건설 매각작업이 중단되는 쪽으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그룹으로선 ‘다잡은 고기’를 놓치기 일보 직전인 셈이다.

외환은행도 주인을 찾았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4조7000억원짜리 외환은행을 단숨에 낚아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이다. 아직 투자자를 유치하지 못했고, 외환은행 내부의 반발이 심하다. ‘먹튀’론스타의 배를 불려준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두 인수전이 난항을 겪자 재계에선 ‘승자의 저주’가 자주 거론됐다.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한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호아시아나그룹,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먹었다가 감당이 안 돼 도로 뱉은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2006년 홈에버를 인수한 이랜드그룹, 2007년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그룹, 2008년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등도 모두 비슷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났다는 안도를 할 무렵부터 검찰의 매서운 칼날이 재계 전방위로 확산됐다. 재계는 바짝 긴장했다. ‘검풍’이 언제 어디로 휘몰아칠지 몰라서다.

기업 수난시대
‘전방위 검풍’

재계를 향한 사정폭풍이 감지된 것은 지난 6월부터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지만, 대기업들이 굼뜬 움직임을 보이면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개점휴업’에 들어갔던 대검 중수부가 1년4개월 만에 재가동되자 대대적인 ‘대기업 손보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재정비를 끝낸 검찰은 예전보다 더욱 예리해진 칼날로 재계 압박에 나섰다. 그 신호탄은 한화그룹이었다. 이어 태광그룹, C&그룹까지 검풍이 동시다발로 매섭게 몰아쳤다. 검찰과 재계, 정치권 안팎에선 ‘다음 타깃’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화, 태광, C&에 이은 제4, 5의 ‘제물’로 유력한 대기업은 적게는 2∼3곳, 많게는 5∼6곳으로 압축됐다. 이들 기업은 구린내만 풍기다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사건을 품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개월째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모양새다. 검찰이 별다른 소득 없이 변죽만 울리다 말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재계는 갈 길 바쁜 기업들의 발목이나 잡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빛을 발한 곳은 상조업계다. 올해 국내 내로라하는 상조업체 경영진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고객돈 빼돌린
‘상조비리 파문’

검찰은 지난 5월 불공정 계약을 통해 300억원대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최 회장은 지난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또 지난 9월 회원수 15만명을 보유한 한라상조 박헌춘 대표가 회삿돈 25억원을 빼돌려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된데 이어 지난 11월 회사 자금 약 131억원을 빼돌려 개인 재산을 불린 박헌준 현대종합상조 회장이 구속됐다.

최근엔 직원 수당을 허위 지급하거나 회사 자금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고가로 사들이는 수법으로 122억원을 횡령한 나기천 국민상조 대표가 구속기소됐다. 상조업체들은 숨죽인 채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후폭풍이 업계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조업체들 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납입한 회비를 떼일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곪을 대로 곪은 상조업계의 문제는 이미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개정안(고객 납입금의 50%를 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금융기관에 예치 등)이 지난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사실상 ‘무법지대’였다.

권택기 한나라당 의원은 “주요 상조업체들의 회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회사들이 자본잠식 상태”라며 “상조업체들의 부실은 줄도산으로, 줄도산은 소비자 피해로 연결되기 때문에 업계 전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총수들 컴백
‘왕의 귀환’

검풍이 거세게 몰아친 와중에 과거 문제를 일으키고 사퇴했던 거물 총수들이 속속 컴백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3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김용철 변호사(삼성그룹 전 법무팀장)의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에 따른 특검 수사로 2008년 4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23개월 만이다.

‘왕의 귀환’은 2008년 말 단독 사면이 결정된 순간부터 가시화됐다. 이후 사면된 지 열흘 만에 가족과 함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복귀론이 힘을 받았다. 국내 재계의 최대 거물인 만큼 그의 컴백을 놓고 의미와 배경, 전망 등이 쏟아졌다. 이 회장의 경영 복귀 명분은 ‘위기 극복’이었다. 그는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이 10년 뒤엔 사라진다”며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지난 11월 돌아왔다.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벌인 ‘형제의 난’으로 왕좌에서 물러난 지 15개월 만이다. 직함도 명예회장에서 다시 회장을 되찾았다.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대한통운 등 박찬구 회장이 맡고 있는 석유화학 부문을 제외한 계열사들의 경영을 맡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합병의 후유증으로 지난해 말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박 회장은 사장단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공식 대외활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인 대내외 활동을 벌이며 경영 정상화에 앞장서고 있다.

올 하반기 기업 내부 분위기는 삭막하다. 엄격한 신상필벌의 평가와 분위기 쇄신, 과감한 ‘황태자 체제’ 전환 등이 맞물려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룹 내 서열지도가 새롭게 짜였다.


젊게 더 젊게
‘조직 물갈이’

재계 인사의 최대 이슈인 삼성그룹은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를 염두에 둔 기본 틀을 재정비했다. 노장들이 물러난 자리에 ‘젊은 피’들을 대거 수혈한 것. 이건희 회장이 앞서 수차례 강조한 젊은 조직론, 젊은 리더론 대로 사장으로 승진된 인사들의 평균 연령은 기존 53.7세에서 51.3세로 대폭 떨어졌다.

LG그룹도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각 사업부의 수장이 대거 교체됐다. 이밖에 현대·기아차그룹, SK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등 주요 대기업 인사도 모두 ‘쇄신’에 방점이 찍혀 있다. 특히 금융권에 인사 태풍이 예고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내년 2월 중순으로 예정된 이사회까지 라응찬 전 회장 후임 최고경영자를 선임할 예정이다. 검찰이 라 전 회장과 신상훈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최고경영진에 대한 조사를 조만간 마무리할 예정이어서 검찰의 기소 여부에 따라 CEO 교체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이종휘 우리은행장 등 우리금융지주 경영진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김종렬 사장, 김정태 하나은행장 등 하나금융지주의 주요 경영진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KB금융지주는 이미 지난 8월 부행장 7명을 교체하는 등 대규모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피자에 치킨까지
‘초저가 전쟁’

초저가 먹거리도 화제를 모았다. 이마트는 지난 3월부터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냉동 피자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수도권 점포에서 판매되는 이 피자는 지름이 45㎝로 유명 피자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반 사이즈보다 12㎝가 더 크지만 가격은 1만1500원으로 3분의 1 정도다. 이 피자를 판매하는 매장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다. 한 번 주문하면 최대 2시간 정도가 소요될 만큼 인기가 좋다.

롯데마트는 지난 9일 ‘통큰 치킨’을 내놨다. 이마트 피자의 성공이 자극이 됐다. 롯데마트 치킨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라이드 1마리(약 900g)를 시중 치킨값에 비해 1만원 정도가 싼 5000원에 파는 파격적인 가격이 비결이다. 개점하자마자 200∼400마리의 하루 판매량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하지만 ‘영세상인 죽이기’란 논란이 적지 않았고, 롯데마트는 결국 지난 16일 치킨 판매를 중단했다.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던 이마트는 이번 롯데마트의 결정과 상관없이 피자를 계속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 측은 “피자는 치킨과 전혀 다르다. 판매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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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