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폭행…그 유구한(?) 역사

‘돈’과 비례하는 ‘파이터 본능’“넌 한 대에 얼마냐?”

1979년 한국시티즌공업주식회사 이사, 여 호스티스 맥주병 위협 담배빵
현대 노조원 폭행은 전통?… 1988년 건설·1989 중공업 노조원 폭행


11월 마지막 주, 대한민국은 정신 나간 재벌 2세의 ‘맷값 폭행’ 파문으로 들끓었다.

SK家 2세인 최철원 M&M 전 대표가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50대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2000만원을 건네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

결국 최 전 대표는 구속, 수감된 상태로 추가 조사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 재벌2세의 이 같은 무개념 행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최근에 이르기까지 재벌들의 반사회적 행동은 계속돼 왔다. 재벌가 폭행, 그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봤다.

최철원(41) M&M 전 대표의 ‘맷값 폭행’은 ‘돈’이라는 상징적 물질을 눈앞에 드러내놓고 일반인을 폭행했다는 점에서 상대의 수치심을 더했다. 폭행이후 합의과정에서 합의금이 오가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매질을 할 때부터 ‘너에게 돈을 줬으니 내가 널 때리는 것은 정당하다’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고 폭행을 시작한 것.

SK그룹 창업주의 조카이자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 전 대표는 지난 10월18일 서울 용산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탱크로리 운전기사 유모(52)씨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했다. 당시 최 전 대표는 M&M의 동서상운 인수합병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된 유씨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돌발행동을 멈추지 않자 유씨의 탱크로리 차량을 구입하겠다며 유씨를 불러들였다.

이날 오후 1시40분께 M&M 본사에 도착한 유씨는 몸수색까지 받아가며 최 전 대표와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 최 전 대표와 면담을 한다던 사무실에 들어서자 M&M 측 직원들이 사무실 한가운데 유씨를 꿇어 앉혔고, 곧바로 임직원 7~8명이 들이닥쳐 유씨를 에워쌌다.

‘조폭 재벌’ 최철원
사상 최악의 ‘맷값 폭행’

이때 최 전 대표가 들어와 다짜고짜 유씨에게 발길질을 했고, 쓰러진 유씨를 향해 “1대에 100만원씩 20대를 맞아라”고 하면서 구타를 시작했다. 야구방망이로 엉덩이 10대를 맞은 유씨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이제부터는 1대에 300만원씩”이라며 강도를 한층 높여 3차례 더 때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 전 대표는 유씨를 자리에서 일으킨 다음 유씨의 입을 손가락으로 잡고 벌린 후 두루마리 화장지 한 뭉치를 입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오른쪽 주먹으로 유씨의 얼굴을 내리쳤다. 입 안쪽 살점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아픔이 컸다.


최 전 대표는 이 같은 폭행에 익숙한 듯 유씨의 입안에 있던 화장지를 꺼내 피를 닦아냈다.
40여분 간 지옥 같은 폭행이 끝나고 최 전 대표는 5000만원과 2000만원이라는 액수가 쓰인 두 장의 서류를 유씨 앞에 들이밀고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이어 그는 “2000만원은 맷값”이라며 100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유씨에게 던졌고, 사측은 사건 당일 유씨의 통장으로 탱크로리 차량값 5000만원을 입금했다.

이번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분노에 떨었다. 돈 많은 재벌은 한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고 돈만 주면 사람을 때려도 되느냐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일각에서는 국민성금을 모금해 최 전 대표에게 던져주고 그만큼 폭행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유씨는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출연에 이어 최 전 대표를 경찰에 정식 고소했고, 최 전 대표는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현재 구속 수감된 상태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점은 최 전 대표의 폭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MBC의 후속보도에 따르면 최 전 대표는 이전에도 자사 직원들을 몽둥이로 다스렸고, 여직원들의 경우 사냥개로 협박하기도 했다.

1979년 한국시티즌공업주식회사 이사, 여 호스티스 맥주병 위협 담배빵
현대 노조원 폭행은 전통?… 1988년 건설·1989 중공업 노조원 폭행
한화 김 회장 2007년 보복 폭행 이어 3남 올 9월 주점 종업원 폭행


이와 관련 경찰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최 전 대표를 구속하고 추가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사건 발생 이후 공식해명 한 번 한 적 없는 M&M의 태도는 네티즌은 물론 국민들의 화를 더욱 불러일으켰다.

<일요시사> 역시 M&M 측에 전화 취재를 요청했지만 M&M 기획팀 이모 팀장은 “듣도 보도 못한 신문사”라며 “전화통화만으로 기자인지 사기꾼인지 어떻게 아느냐. 공문을 보내라”고 말했다. 이에 M&M 측의 요구에 공문을 보내고 이틀간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걸자 또 다른 직원은 “공문은 받았지만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과거 재벌들의 폭행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1979년 경악할만한 사건이 발생한 적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한 탈선 재벌 2세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이트클럽 호스티스를 담뱃불로 지졌다는 게 사건의 주요 골자다. 1979년 7월2일 용산경찰서는 재벌 2세인 한국시티즌공업주식회사 하모(당시 25세) 이사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했다.

하 이사는 같은 해 5월20일 저녁 8시께 서울 용산구 보광동 모 호텔 209호실에서 평소 단골로 사귀던 H호텔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김모(당시 24세·여)씨를 깨진 맥주병으로 위협했다. 그리고는 “너를 영원한 애인으로 만들겠다”면서 김양의 하복부에 담뱃불로 자신의 성인 ‘하’자를 지져 새겨 넣어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혔다.


이날 하씨는 김씨에게 결혼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김씨가 이를 거절하자 김씨의 옷을 모두 벗긴 후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씨는 고통에 못 이겨 2시간 동안 실신했다가 겨우 깨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현대그룹의 노조원 폭행은 ‘전통’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이던 1988년 현대건설 간부 2명은 조폭을 동원해 서모(당시 37세) 노조설립추진위원장을 납치 폭행했다. 1988년 5월6일 서 위원장은 현대건설 최모(당시 45세) 관리이사 등 간부 6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모 룸살롱에서 아내에게 “곧 들어가겠다”고 전화한 뒤 소식이 끊겼다.

1979년 재벌2세
호스티스 복부에 담배빵

당시 최 이사는 서씨가 신원불상의 청년 4~5명에게 납치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진술, 현대건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펄쩍 뛰었고 이후 경찰에 붙잡힌 납치범들 역시 서 위원장의 자작극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사건 27일 만에 사측 간부의 지시에 의한 계획적인 청부납치였음이 밝혀졌다.

납치 당시 함께 술을 마셨던 현대건설 최 이사와 강모(당시 42세) 총무부장이 납치를 진두지휘한 사실이 밝혀진 것. 이 사건으로 최 이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강 부장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납치에 개입된 조폭들도 적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많게는 징역 1년까지 선고받고 철창생활을 해야 했다. 또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었던 이 대통령과 법인체 현대건설은 각각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 됐다.
현대건설의 노조위원장 폭행이 발생한지 1년 뒤인 1989년에는 현대중공업에서 현대그룹 노조원에 대한 집단 폭행이 있었다.

1989년 1월8일 김모(당시 40세)씨를 비롯한 현대중공업근로자 33명은 노조단합대회 현장을 덮쳐 노조위원 19명을 각목 등으로 20여분 동안 무차별 폭행했다. 이날 검거된 김씨 일당은 “노조원들의 정상조업 방해로 임금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장기간 파업이 계속됨으로써 근로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이번 사건 역시 현대그룹 고위간부가 상당히 개입된 그룹차원의 조직테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 발생 이틀 전 정몽준 현대중공업회장이 울산에 직접 내려와 비상대책회의 등을 열고 조업정상화를 독려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건방지게 프라이드’
대로변서 집단폭행

사건은 결국 경찰조사로 번졌고, 사건발생 3년만인 1992년이 돼서야 근로자 2명의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노조 테러는 정세영 그룹회장과 정몽준 회장이 총지휘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에도 현대중공업은 노조와 조율점을 찾지 못하고 잦은 무력충돌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4년 1월에는 재벌가 2세를 포함한 강남 상류층 자제 4명이 집단폭행으로 구속돼 충격을 안겨줬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994년 1월24일 롯데그룹 신준호 부회장의 외아들 신모(당시 26세)씨와 모 의류회사 사장 아들 김모(당시 20세)씨,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자 이모(당시 20세)씨를 비롯해 양모(당시 20세)씨 등 4명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고, 한모(당시 24세)씨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같은 달 17일 새벽 1시45분께 그랜저 승용차를 몰고 강남구 신사동을 지나가다 옆차선에서 프라이드 승용차가 끼어들자, “건방지게 프라이드가 끼어들어 흘겨본다”고 시비를 걸었다.
이들의 시비에 프라이드 운전자 정모(당시 26세)씨와 함께 타고 있던 강모(당시 25세)씨는 차량 밖으로 나왔고, 몸싸움을 벌이던 중 부유층 자제들은 벽돌과 화분 등으로 두 사람을 폭행해 각각 전치 8주와 4주의 중상을 입혔다.


집단폭행을 당한 강씨는 뇌출혈을 일으켜 서울 남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정씨 역시 손가락 등의 골절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경찰조사 결과 신씨 등은 강남구 청담동 모 나이트클럽에서 밤 12시까지 양주를 나눠 마신 뒤 야식을 먹기 위해 강남구 신사동의 포장마차로 향하던 길이었다.

경찰 조사를 받은 이들은 검찰에 송치, 법정에 서게 되지만 집행유예 선고로 풀려난다. 당시 재판부는 “신씨 등 피고인들이 전과가 없는데다 술을 마신 뒤 우발적으로 폭행한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후 한참 잠잠했던 재벌가 폭행사건은 2000년대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7년 에스콰이어 창업주 2세 이모(49)씨가 조폭을 동원해 동업자를 폭행하고, 물고문까지 가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이씨는 동업자 박모(44)씨와 함께 신제품 개발을 계약하고 20억원을 투자했지만 박씨가 제품을 완성했을 때 이미 외국 제품이 시판되고 있어 기대 수익을 올릴 수 없게 되자 투자금 환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앙심을 품은 이씨는 박씨를 산으로 유인, 감금·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한편,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둘째아들 보복 폭행사건으로 처벌 받은 지 3년 만인 올 9월 막내아들까지 폭행사건에 연루돼 눈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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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어설픈 양다리 작전

국민의힘 어설픈 양다리 작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안 된다”는 말로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의 마음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한다. 이질적인 집단의 지지를 모두 얻으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국민의힘에선 과연 누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지난 1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선 서울시·서울연구원이 주최하고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이 주관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가 진행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지방정부에 예산·인력·규제·교육·고용·이민 등 권한을 이양해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국을 5개의 초광역 경제권으로 나눠, 각 지역의 강점을 극대화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경제 중심지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5대 강소국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A지만, B다” 국힘 유행어 이날 토론회엔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이양수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를 포함한 소속 의원들 48명이 참석했다. 김기현 의원·추경호 전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과 김상욱·김예지·김건 의원 등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도 다수 참석했다. 오 시장의 지지자들도 다수 참석해 환호했다. 국민의힘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문 대행이 고등학교 동문 카페에 게재된 미성년자 음란물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조작한 사진이었다. 국민의힘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지난 14일 “여러 일을 처리하는 과정서 사실관계 점검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당이 국민께 사과드릴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90여명은 문 대행의 자택이 있는 아파트단지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음란 수괴 문형배’ 등 피켓을 들고, ‘문형배 사형’ 등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18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헌법기관 및 국가기밀 취급 기관에 외국인 공무원 임용을 제한하고, 이미 임용된 외국인·복수 국적 공무원에 대한 보안 심사를 대폭 강화한다”는 취지의 국가공무원법 및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엔 ‘헌법연구관과 사무처 공무원 임용 시 대한민국 국적 보유 필수 명시’ ‘외국 국적자 및 복수 국적자인 공무원에 대한 국가보안 심사 및 재임용 심사 제도 도입’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선 “중국 개입설을 토대로 한 부정선거론을 헌재와 연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서 ‘조기 대선’이란 말은 금기어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인용되면, 60일 안에 대선이 진행된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를 가정한 조기 대선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겉으로는 조기 대선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론 윤 대통령을 두둔해 강성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오 시장 등 중도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 대선주자를 사실상 관리하는 ‘양다리 작전’으로 대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KPI뉴스>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1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범보수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22.3%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15.1% ▲오세훈 서울시장 9.6%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8.8% ▲홍준표 대구시장 7.0%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4.9%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3.6%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2.6%를 기록했다. 이재명 유죄로 중도 낙마 구상? 윤 대통령 하야로 필승 재집권? 다만 이들 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양자 대결을 가정한 조사에서 이 대표를 추월하는 수치를 기록한 주자들은 없었다.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되는 상황서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이 큰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유 전 의원과 한 전 대표는 당내 비토 세력의 지지 비중이 크다. 홍 시장과 안 의원은 당내 기반이 약하다. 국민의힘으로선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의 대결로 흥행몰이 해서 보수와 중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이 대표에게 대적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적잖은 불씨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은 집토끼 단속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논리적 모순과 엇박자가 속출하고 있다. 집권당이자 원내 제2당이 폭동을 공공연하게 옹호할 순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해서도 “폭력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불법·폭력 행위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야당 대표에게도 똑같은 사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등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한 발언도 내놨다. “A지만 B다”라는 논리는 국민의힘이 지난해 12월부터 유지해오고 있는 논조다. 이들 주요 구성원들은 정국 관련 발언을 할 때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이란 단서를 달고 나서 견해를 밝힌다. 나 의원은 지난해 12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비상계엄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지난 15일엔 “더불어민주당은 ‘계엄 유발자’ 역할을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헌재와 민주당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서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과도한 조치”라면서도 헌재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 “제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 현장에 있었어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다”는 말은 세간의 비판과 중도층의 시선을 의식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도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A지만, B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A와 B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일이지만, 상대방이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고치진 않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야설에 날 선 반응 권 비대위원장은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A지만 B다”라는 발언 구조를 이어나갔다. 그는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선관위가 나서서 객관적인 검토를 받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떨지 생각해봤다”며 애매한 발언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씨에 대해선 “큰 영향력을 가진 분이 그렇게 전향하신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감사하다”는 등 ‘본심’을 드러냈다. 전씨가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서 활동했던 것을 고려한 발언이었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은 당 안팎에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의 그 많은 “A지만 B다”를 모두 모아 요약하면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탄핵 기각 시 윤 대통령은 이론상으론 직무에 복귀한다. 그런데 현재 윤 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으로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구속 피고인은 원칙상 2개월 동안 수감되지만, 심급별로 2회에 걸친 연장을 할 수 있으므로 심급당 최장 6개월까지 수감이 가능하다. 피고인에 대한 구속 기간 연장은 통상적으로 대부분 이뤄진다. 서울구치소서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까? 서울구치소서 국빈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각종 행사에도 한 발짝도 갈 수 없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현실적으로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해답으로 ‘이재명’이라는 세 글자에 집중력을 투입한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지역구(부산 수영)에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시당도 부산 전체에 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설 연휴 동안 (많은 사람이)‘이재명은 안 된다’는 강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가장 바라는 그림은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서 사실상 낙마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제1심서 징역 1년형·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서도 이 형량이 유지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항소심이 빨리 진행돼 집행유예 선고를 유지하고 상고심도 빠르게 진행돼 확정하면, 국민의힘은 더 수월한 상태서 조기 대선을 치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국민의힘은 당 차원서 재판을 통한 이 대표의 조기 낙마를 노리고 있다. 그림은 크지만… 당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은 주진우 의원은 지난달 22일엔 항소심 재판부에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9일엔 이 대표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을 비난하면서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또다시 제출했다. 이를 고려해서인지, 일각에선 ‘윤 대통령 하야설’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13일 변론기일서 “헌재가 탄핵 심판을 지금처럼 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 14일 YTN 라디오 <이익선·최수영의 이슈앤피플>에 출연해 “이재명 재판만으로 여론을 크게 흔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진짜 변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하야가 선거판을 크게 흔들 수 있다”며 “동정 여론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반이재명 진영에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그 근거로 “인기와 아쉬움이 있을 때 하야를 선언하는 것이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반영되면 윤 대통령의 형사재판서도 불구속 재판 가능성이 커지고 이 대표와 민주당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물론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일원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4일 채널A와의 인터뷰서 “하야를 운운하는 건 탄핵 공작하는 이들의 사악한 상상력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권 비대위원장도 “현실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직접 반응을 보였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하야 꼼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도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승만의 길을 가건, 박근혜의 길을 가건, 국민 관심 밖이며, 그 선택은 이미 늦었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일국의 집권당이자 보수 대표 정당이란 점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책임 있는 유력 정당은 재집권 명분을 청사진 제시를 통해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국민의힘의 정치철학과 정책이 얼마나 빈곤한지 드러내고, 이 대표의 맞상대로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대선주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자폭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각 당의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은 이질적인데, 이는 민주당도 경험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중도층 공략을 위해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 허용 ▲상속세 완화 등 ‘잘사니즘’을 제시했다. ‘강성+중도’ 두 마리 다 놓칠라 이질적 집단 아우를 정치력 부재 그러자 노동계가 민주당에 반발하는 일이 있었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며 “우향우 깜빡이를 켰으면 계속 우측으로 달려주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요란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지지 정당을 압박한다. 반대로 중도층은 조용하다. 양당으로부터 각각 실리를 얻길 바라면서, 그때그때 양당을 선택한다. 조용하므로 반응은 선거서만 확인할 수 있어, 경향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파악하기 어렵다고 무시할 수 있는 비중도 아니다. 양당은 각각 30~40%의 지지를 얻고 있고, 무당파는 20~30%의 비중을 차지한다. 딜레마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강성 지지자든 중도층이든, 선거에선 각각 1표씩밖에 행사할 수 없다. 강성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지 않으면서 중도층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호감을 얻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은 강성 지지자들에 의존하는 정치로는 정당과 정치인의 지휘력·통솔력을 확인할 수 없다. 이질적인 두 집단을 모두 묶을 수 있는 지휘력·통솔력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력이다. 이는 현대 정치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DJP연합과 국민신당 이인제 당시 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한 흐름을 타고 약 39만표 차이로 신한국당 이회창 당시 후보를 상대로 신승했다. 이회창 후보는 당내 경선을 함께 치른 후보들을 통합하는 데 실패해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막지 못했다. 이 후보는 5년 후 제16대 대선에 다시 출마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재차 낙선했다. “개혁 성향의 영남권 대선후보를 선택해 영남권 표심 일부를 이탈시키고, 호남이 전력으로 지원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대전략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엔 당 지도부와 유력 대권주자를 가리지 않고, 이질적인 집단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A지만 B다”라는 어설픈 모순 발언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하면 양쪽의 반발만 살 뿐,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림만 클 뿐, 치명적인 모순이 될 수도 있다. 강성 지지자들은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두둔한다. 중도층은 양당 모두를 객관적으로 살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모순에 민감하다. 모순이 큰 정치인일수록 지지하길 꺼린다. 지난 20대 대선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일컬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표현이 유행했던 이유도, 두 사람 모두 사적 행보와 공적 언행의 불일치가 컸기 때문이었다. 어설프면서 솔깃한 이유 국민의힘은 배출하는 대통령마다 구치소로 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대통령의 일부 핵심 측근 외엔 지역구를 토대로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의원들은 겉으로만 대통령을 두둔할 뿐, 몰락한 대통령을 가차 없이 버리고 자신의 정치 생명에 몰두하는 것을 체화하게 된다. 따라서 중도 성향 대선주자를 옹립했다가 중도 공략 실패로 대선에 패배할 경우, 책임을 그 중도 성향 대선주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특정 인물에게 책임을 몰기는 쉬운 탓이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이 어설프면서도 솔깃할 수도 있는 이유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