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치유소 ‘은혜의 뜰’ 찾는 사람들

“잠시 들러 무거운 짐 놓고 가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 전쟁이 끝난 1950년대 초,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빈민촌을 형성한 곳이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정비구역으로 묶여 집을 짓거나 늘릴 수 없었다. 지난해 30층짜리 오피스텔 6동이 들어서면서 남산 조망을 막아섰다.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변 풍경은 수십년째 그대로다. 이곳에 마당과 넓은 테라스를 가진 아담한 2층집이 들어섰다.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서울분원에서 운영하는 ‘은혜의 뜰’이다.

서울역 맞은편 후암시장을 따라 100m가량 올라오면 왼쪽으로 노란색 담이 보인다. 그 골목으로 들어오면 우대성 오퍼스 대표가 “빌딩 속의 사랑채”라고 명명한 은혜의 뜰이 보인다. 이름 그대로 이곳을 처음 찾은 이들은 “빌딩 숲 한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냐”며 놀란다.

아픈 사연 경청

우씨는 서울 가회동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다. 그는 수녀회의 의뢰를 받아 지은 지 60년이 넘었고 사람이 살지 않은 지 20년이 된 수녀원 숙소를 리모델링했다. 지난해 9월14일 문을 연 이래로 지난 5월까지 2413명이 다녀갔다. 동자동에선 유일하게 마당을 가진 집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찾은 은혜의 뜰엔  김 마리로사·김 로사리아 수녀와 이 가옥의 원래 주인이었던 암코양이 점순이가 취재기자를 맞이했다.

뜰지기 김 로사리아 수녀는 “잠깐 쉬면서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주자는 뜻에서 지었다”며 “누구라도 언제든지 와서 편안히 머무는 흔들의자처럼 이용해 줬으면 좋겠다. 방문자들이 처음엔 편안하다고 하고 갈 때는 행복하다고 한다”며 미소지었다.


성분도(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의 약칭) 은혜의 뜰 창밖으로 푸른 잔디와 인동초 넝쿨이 보였다. 로사리아 수녀는 “바람이 사방으로 통하는 집”이라고 했다. 리모델링 후 첫 여름을 나는 가옥은 사방에 큰 창과 출입구가 있어 냉방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시원했다. 로사리아 수녀는 직접 만든 팥빙수와 핸드드립 커피, 방문자가 가져온 빵을 대접했다.
 

그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시대”라며 “아픔과 사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 와서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것부터가 치유”라고 말했다. 천주교 수녀회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해서 종교를 가지라고 권하거나 기도를 하자고 하지도 않는다. 로사리아 수녀는 “교황님도 그런 것은 싫어하신다”며 “신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동자동 빌딩 속 사랑채 “누구나 환영”
억울하고 아프고 외로운 마음 위로

그저 대화하길 원하는 이는 대화를 하고, 책을 보고 싶은 이는 책을 보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한다. 동자동에서 10년 넘게 노숙자를 돌봐온 개신교 목사도 자주 들른다.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2층에 꾸며진 기도방으로 올라가 같이 기도도 한다.

손자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독서를 하러 오는 노인도 있고, 근처에 직장이 있는 이들이 잠깐 와서 졸다 가기도 한다. 로사리아 수녀는 굳이 기자에게 소파에 앉아 보라고 권유했다. 2층의 안락한 소파에서 수면을 취하다 가는 이들이 많단다. 방문자들은 그림도 그리고 커피도 마시고 대화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은혜의 뜰은 사람 사이를 ‘매개’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족이 아픈 사람, 가족 중 자살자가 있는 사람들이 왔다.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데리고 온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고 나면 또 다른 이를 데리고 오는 것이 반복됐다.

로사리아 수녀는 “서로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거 같다”며 “그런 공간을 여기서 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어느 날 찾아온 한 여성은 탈모를 앓고 있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여성의 중학생 딸이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병동에 입원하고 보니 또래 아이들이 의식 없이 몇 달을 누워 있었다. 엄마들끼리 만나서 친해지고 서로 의지하게 됐다.

한 30대 청년이 자주 찾아왔다. 그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가족 이야기도 했다. 마침 자리를 함께했던 어머니 또래의 여성이 청년의 마음을 다독여줬다. 이 여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3명이나 키웠다. 너 하나를 또 자식으로 삼지 못하겠냐”고 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모자의 인연을 맺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한 유태인이 “은혜의 뜰 공사과정을 다 지켜봤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수녀님들이 계속 드나드는 것을 봤다”며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그는 출국을 앞두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가져가라”며 물품을 기부하고 떠났다. 

은혜의 뜰에선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데도 빈손으로 떠나지 않으려는 방문자가 많다. 이들은 쟁반 밑이나 식탁보 밑에 1만∼2만원씩 숨겨두고 간다. 그래서 은혜의 뜰에선 작은 기부상자를 주방에 하나 뒀다. 굳이 찻값을 놓고 가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꼭 금전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커피나 빵, 과일,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먹기도 한다. 

은혜의 뜰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엔 피정(생활하는 곳을 옮겨서 하나님과 시간을 갖는 것)이 열리고, 생활성가 콘서트, 야외음악회 등도 여러 차례 개최했다. 마당에서 음악회를 열면 100명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성화(이콘) 강좌, 이해인 수녀와 함께 하는 시교실, 성경공부 모임, 재능기부 형태로 열리는 각종 강좌 등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지난 14일 만난 한 20대 여성은 “여기에 오면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든다”며 “수녀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마음이 편하고 뭔가를 찾아가는 곳이다. 월 2∼3회 찾아와 심층 면담을 한다”며 웃었다. 지난 3월에 수녀원에 들어온 친한 언니를 통해 은혜의 뜰을 알게 됐다. 그는 성소자 모임(수녀원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여성 모임) 과 성경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은혜의 뜰을 자주 찾고 있다고 했다.

대화하고 책보고 기도
“따뜻한 마음 담아간다”

은혜의 뜰은 지난해 가을께 문을 연 이후로 건축학도와 건축 관련 종사자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 됐다. 원래 가옥은 1958년에 지어진 일본식 다다미 형태였는데, 용산구청에서 문화재 지정을 염두에 둘 정도로 건축학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았다. 건축사학자가 부근 후암동의 한옥과 적산가옥을 답사하다가 우연히 들르기도 했다. 

로사리아 수녀는 “용도가 다양한 재밌는 집”이라며 “그때그때 어떤 쓰임에든 들어맞는 집이다. 신축했으면 이런 느낌이 안 났을 거다. 옛 것과 새 것이 어우러져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옥을 리모델링하면서 벽돌집, 박공지붕, 마당과 나무 등의 원래 요소를 그대로 살렸다. 오래된 공간에 담긴 체취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새 것과 어우러지게 했다.

가옥의 외양이 카페처럼 예쁘고 차도 마실 수 있어서 방문자가 점점 늘고 있다. 처음엔 인근 주민과 직장인이 왔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멀리서도 찾아오고 있다. 맞은편에 30층 규모 오피스텔이 생기면서 인근에 음식점과 카페가 점점 늘었다. 지역민들을 위해 지었지만 주변 영업장으로부터 볼멘 소리를 들을까 염려돼 직장인들이 몰려나오는 12∼1시 사이엔 문을 닫고 있다. 일요일엔 개방하지 않고, 평일엔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5시에 닫는다. 

오는 9월이면 은혜의 뜰이 문을 연지 1년이 된다. 뜰지기 로사리아 수녀는 “이 집이 제 구실을 제가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하나님이 와야 될 사람을 오게 해주시는 것 같다”고도 했다.


흔들의자 역할

그는 “이웃들이 이 뜰에 들어와 억울하고 아프고 외로운 마음을 내려놓고 후련하고 위로 받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간다”면서 “혼자 또는 여럿이 와서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속말을 꺼내놓고, 상담도 하고, 기도도 받고 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이뤄지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이들의 흔들의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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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