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올해 안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여사의 회고록이 각각 출판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의정부∼포천을 연결하는 43번 국도변 축석고개에 ‘전두환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비석은 지난 1987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43번 국도를 확포장하면서 전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해당 비석은 3m 높이의 대형 화강암으로, 비석 몸체 전면에 한자로 ‘호국로’라고 새겨져 있다. 43번 국도가 완공되면서 전씨가 직접 호국로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육필로 호국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문구가 나란히 있다.
이한동 글은 지워
앞면과 뒷면의 녹색 받침돌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의 거룩한 얼이 깃들인 이 길은 전두환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서 호국로라고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라고 전씨 찬양 일색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찬양 문구는 이것만이 아니다. 공덕비와 나란히 “이 길은 6000만 민족의 민족통일 염원과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호국의지 그리고 12만 포천군민의 애향심이 만나는 민족웅비의 활로이다. 1987년 12월10일 국회의원 이한동”이라는 글귀가 있었으나 현재는 찾아 볼 수 없다.
포천시청에 의하면, 고속도로 공사를 시행하면서 해당 조형물을 신북면 모처로 옮겼다고 한다. 이러한 글귀로 볼 때, 포천지역에서 내리 6선을 한 이한동(81) 당시 국회의원이 주도해 공덕비를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이씨는 포천 출신으로, 1981부터 2000년까지 국회의원(11∼16대)을 지냈다. 내무부장관, 국회부의장, 자유민주연합 총재,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고 제16대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6월, 이씨가 총리로 지명 받았을 때 참여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총리 인준에 반대하는 20가지 이유 중 한가지로 해당 공덕비 건립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공덕비 앞면 하단에 기재된 사업개요에 따르면 43번 국도의 사업기간은 1985년 2월∼1987년 12월로 확인된다. 사업이 종료된 1987년은 같은해 일어난 ‘6월 항쟁’ 이후로 5공화국이 실질적으로 종말을 맞은 때이고, 다음해 2월 전씨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과 2개월 전에 공덕비가 세워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해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이 다가오면 포천시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덕비를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공덕비 ‘위치’도 논란거리다. 지난 2011년부터 43번 국도를 기존 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지장물’(공공사업 수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 조사를 통해 최근 공덕비가 이동 후 재설치됐다.
원래 공덕비는 축석령에서 포천 방향 도로변의 축석초등학교 인근 무란마을 맞은편에 건립돼 있었으나 공사를 시행하면서 최근 1.5㎞가량 떨어진 축석검문소 맞은편으로 옮겨졌다. 해당 위치는 포천시와 의정부시의 경계로, 행정구역상 포천시에 속한다.
이곳은 시의 관문으로, 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이 통과하는 교차로라는 특성상 일일 통행량이 많다. 또 현재 ‘축석고개’ 전설을 담고 있는 ‘범바위(효자바위)’와 나란히 위치해 있다. 마치 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인양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 43번 국도는 앞서 밝혔듯, 전씨가 호국로라고 명명했으나 지역주민들이나 교통방송에선 ‘43번 국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14년 1월부터 시행된 도로명주소에선 도로를 따라 소재한 인근 주소들이 호국로라고 이름 붙여지면서 인근 주민과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의정부∼포천 43번 국도변 축석고개
1987년 지시해 확포장…당시 세워져
43번 국도는 포천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남쪽으론 의정부와 연결되고, 북쪽으론 강원도 철원군과 연결된다. 해당 공덕비는 의정부나 서울에 살면서 포천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구간에 있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통행량이 많아 자주 교통정체가 발생하는 구간이다. 시민들의 이용량이 높은 국도변에 광주에서 시민에게 발포명령이 내려진 것에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의 공덕비가 버젓이 조성돼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시민사회 다수의 의견이다.
취재과정에서 전씨 공덕비 인근에 살던 한 시민이 지난 몇 년간 4차례에 걸쳐 공덕비를 철거할 것을 시에 건의했으나 별다른 회신을 받지 못했음이 밝혀졌다. 이 시민은 최근 의정부로 거주지를 옮겨갔다.
SNS 상에선 “이참에 포천 축석고개에 있는 전두환 공덕비부터 철거해야 한다. 군사쿠데타 세력이 부당한 권력을 동원해 세워놓은 불필요한 상징물들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요즘 도로 내는 것보다 비싸게 들여서 누구 주머니에 넣었는지…전씨 표지석이 없어졌기에 좋아했더니 축석검문소로 이동 설치했더라. 관련자를 징계해야 한다” 등의 성토 글을 확인할 수 있다.
포천시 출신의 한 서울시민(32·남)도 “포천에 오래 살았지만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광주학살 주범의 공덕비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기분이 언짢다”고 전했다.
이명원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대표는 “전씨가 아니라 국민 세금과 노동자들에 의해 확장된 도로”라고 바로잡은 후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도로이지만 공덕비와 관련한 사연은 잘 모를 거다. 전씨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존재를 알게 될 때는 분노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굳이 보존의 가치가 별로 없을 뿐더러 반대 주장이 있다면, 시에서 명분이나 실익이 전혀 없다”면서 “헌정질서를 심각하게 유린했고 진상규명이 마무리되지 않은 광주 5·18 민주화혁명과 관련해 죄값을 다 치르지 않은 사람이다. 반민주, 반헌법적 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공덕비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다. 역사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응당 철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만철 민족문제연구소 포천지회장도 “북한처럼 김일성 주석께서 앉아있다 가신 자리라고 선전하는 것과 다를 것이 뭐냐”면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도 따져봐야 하는 문제다. 그런 인사가 명명한 길을 지석까지 세워놓고 계속 놔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왜 놔두나
포천시청 관계자는 “너무 오래 된 거라 관련 내용을 (시청 내에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누가 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시에서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지저분하다는 민원은 몇 번 있었다. 현재 추진사항이 있는지 살펴보고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협의해 검토해야 할 것 같다. 검토 후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