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정국이 멈춰 섰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 상황이다. 정가 안팎을 들썩였던 모든 이슈들이 얼어붙었다. 정치권을 향한 검찰의 사정바람도, 청와대를 향한 야권의 공세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밑에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적인 관심이 연평도에 집중되면서 시선을 끌고 파장을 일으키기는 힘들게 됐다. 정국을 덮친 북풍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찾아봤다.
사정 태풍 ‘잠잠’, 청와대 향한 공세에도 ‘정지 신호’
검찰 날선 칼날 앞 떨던 이들 웃고, 저격수 울었다
남북관계에 다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정국이 멈춰 섰다. 정치권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이 중에는 남 몰래 울고 웃는 이들이 있다. 무슨 사연일까.
몰래 우는 이유는…
최근 정가의 시선은 여의도를 향한 사정 바람과 청와대를 향한 공세에 집중됐었다. 검찰이 여의도에 칼끝을 겨누는 일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사정 태풍’이 여의도에 상륙했던 것.
가장 빠르게 여의도를 덮친 것은 한화·태광·C&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다. ‘비자금 조성’에 대한 수사가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것으로 불길을 옮기면서 정·관계 로비 의혹이 고개를 든 것. 이들 기업과 개인적인 친분을 나눴거나 사업상 관련성이 있는 전·현 정권의 실세들의 이름이 수시로 ‘살생부’에 오르내리게 됐다.
기업 비자금 의혹보다 늦게 터졌지만 폭발력을 갖춘 청목회 입법로비가 검찰의 손 안에 있다. 청목회가 청원경찰의 처우 개선 내용을 담은 청원경찰법 개정과 관련, 여야 의원 수십명에게 후원금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은 정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 고양시 식사지구 재개발사업 로비 의혹에도 정·관계 로비 의혹이 따라 붙었다. 여당 출신 정치인의 이름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을 시작으로 여야 전·현직 의원 5~6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
검찰이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조합과 시행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압수수색으로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제까지 여의도 주변을 떠도는 소문 중 하나였던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가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친이계 핵심인 장광근 의원이 원외시절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후원금을 받아 사용한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아 한나라당을 긴장케 했으며, 민주당에서는 최철국 의원의 보좌관이 한 소방시설 제조업체에서 한국전력에 납품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이 경남 김해에 있는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최 의원에게도 돈이 전달됐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1월23일 소방업체 대표 김모씨와 함안 모 사찰 주지 신모씨에 대한 공판에서는 소방업체 납품비리 혐의와 관련, 소방업체 대표가 최 의원에게 전달해달라며 4000만원을 건넸으며, 최 의원이 납품 과정에서 적잖은 도움을 줬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농협 후원금’과 관련, 국회 농수산식품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이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국회 환노위 소속 의원들을 조사한다는 말도 있다”며 “광주은행 노조의 정치 후원금에 대한 수사 등 정치 후원금에 대한 수사에 한정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확인되고 알려진 것만 하더라도 4건의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의도의 숨통을 노렸던 검찰의 사정태풍은 그러나, ‘찻잔 속 태풍’이 되고 말았다. 검찰은 “국가 대사인 G20 정상회의까지는 수사를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이귀남 법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를 자제하면서 G20 정상회의 후를 노렸다.
알선수재 혐의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로비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도 G20 정상회의 후 귀국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수사에 재차 시동을 걸기도 전에 ‘북풍’에 가로막히게 된 것.
정가 한 인사는 “청목회 수사로 여야 정치인 33명, C&그룹 수사로 10여명, 농협 입법로비 의혹으로 10여명을 수사대상으로 잡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며 “검찰이 드리운 ‘성긴 그물’에 걸렸던 이들은 모두 한숨을 몰아쉬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난감한 처지가 된 저격수는 여의도에도 있다. 민주당은 최근 ‘대포폰’ 등 민간인 사찰 의혹 등으로 청와대를 향해 화력을 집중해왔다. ‘대포폰’ 의혹을 제기했던 이석현 의원이 예결위 회의에 교체 투입돼 “2008년 7월 (총리실) 지원관실이 설치되기 이전 청와대가 직접 사찰한 사례가 있다”며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추가 의혹을 들고 나와 정권의 심장부를 노리기도 했다.
여기에 강기정 의원이 제기한 김윤옥 여사의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몸통’ 의혹과 이종걸 의원이 제기한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한국수출입은행 중소기업 육성사업 선정 특혜 의혹도 있다.
이러한 의혹들은 이 대통령의 부인과 큰형 등 ‘최측근’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박지원 원내대표가 “자료가 민주당에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제보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검증해서 하나하나 공개하겠다”고 추가 폭로를 예고해 당·정·청을 바짝 긴장케 했다.
‘북풍’이 모두 쓸어가
하지만 ‘북풍’이 여의도를 휩쓸며 이러한 공세도 다소 힘이 빠지게 됐다. 저격수들의 공격이 정가 안팎을 요동치게 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분위기를 띄우는 ‘여론전’도 한 몫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지금 당장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며 “북풍이 주춤해질 즈음이면 다시금 활기를 얻고 정가 주변을 몰아칠 사안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얼어붙은 정국’이 끝나면 숨죽였던 의혹들이 정치권과 청와대의 목줄기를 물어뜯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