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의 비밀

68년 만에 보물창고 열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엔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몽골,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유물까지 약 38만여점의 소장품이 보관돼 있다. 지난 1945년 박물관이 문을 열었으나 수장고 속 유물의 전모가 완전히 파악된 것은 아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일제 수집 유물’을 광복 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조사하면서 역사적 중요성이 큰 유물이 여러 차례 발견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제 수집 유물은 유적보고서와 도면 등의 공문서, 유리 건판을 제외하고도 발굴품만 ‘16만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워낙에 양이 많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해방 후 68년이 지나도록 학계에선 해당 발굴품이 어떤 성격의 유물들이고 어디서 어떻게 출토됐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16만점 발굴
지금도 연구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1월, 해방 후 처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은 일제 수집 유물을 조사해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국박은 2022년까지 향후 10년에 걸쳐 연 5억원씩 총 50억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일제 수집 유물 조사 프로젝트가 올해로 4년째에 접어들면서 금관총 ‘이사지왕’ 명문 환두대도(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가 있는 칼)를 비롯해 학계 안팎을 들썩이게 했던 ‘역사적 발견’이 몇 차례 있었다. 학계에선 국박 수장고에서 앞으로도 이러한 큰 발견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고고학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물들이 국박 수장고에 그대로 잠자고 있다”면서 “해방 후에 일본인들이 가져가지 못하고 거의 그대로 남았다. 국박에서 지난 몇 년간 수장고를 발굴한다는 개념으로 일제 수집 유물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박은 1945년 개관하면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소장품을 고스란히 인수받았다. 이후 6·25전쟁 때 부산 피란 등 7차례나 이사를 다니다 지난 2005년 처음으로 박물관 만을 위한 공간을 건립해 서울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을 최우선으로 하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전 사회를 지배했고, 발굴조사는 개발공사를 앞두고 시행하는 ‘구제발굴’에만 머물렀다. 건축·토목공사를 위해 급하게 매장문화재를 발굴·수습하는 조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전국 각급 박물관이 땅 속에서 나온 발굴품을 보관할 수장고마저 부족한 실정이다.

일제 수집 유물 자체가 36년에 걸쳐 축적된 방대한 자료인데다 발굴조사와 수집과정에서 한국인이 철저히 배제된 점,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제대로 된 보고서를 거의 남기지 않은 점, 지하수장고에 맥락 없이 마구잡이로 방치돼 있었던 점 등이 일사정연하게 정리해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정부의 인식 부족으로 인한 예산 및 인력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지난 수십년간 발굴·보존 예산 등이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전국의 국·공립박물관에서 긴급한 보존처리를 기다리는 유물들만 수십만점에 이른다.

이 같은 이유들로 일제 수집 유물은 조사 및 복원처리에서 우선 순위에 밀렸으나 10여년 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학회와 각종 소모임을 열고 논문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연구가 진행되다 일제 수집 유물의 중요성이 공유된 끝에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국내뿐 아니라 여러나라 유물까지 소장
일제 수집품 프로젝트 4년째 큰 발견도

16만점에 이르는 해당 유물(주로 고분 부장품) 중 최초의 중요한 발견은 칼자루에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둥근 고리 검이다. 해당 유물은 1921년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금관총 발굴 중 나온 부장품 중 하나로, 지난 70년간 국박 수장고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잠자고 있었다.

2013년 7월, 이 환두대도가 발견된 후 학계에선 금관총의 주인이 이사지왕일 것이라는 의견이 유력하게 제시됐다. 현재까지 무덤 주인이 특정된 고대고분은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환두대도의 발견은 금관총의 재발굴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재발굴을 실시하면서 이사지왕 명문이 새겨진 칼집이 또다시 출토되면서 화제가 됐다.        


백제 무왕부부(서동과 선화공주)가 묻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익산 쌍릉도 새롭게 주목받았다. 국박 측은 먼저 유리 건판 사진 속에서 쌍릉의 나무널(木棺)을 꾸미는 밑동쇠(座金具)와 꾸미개를 발견하고 해당 유물이 실제로 국박 수장고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무덤 주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 4점을 국립전주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하고 DNA 분석을 의뢰한 결과, 성인 여성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무덤 주인공이 선화공주일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조사를 진행한 경주 서봉총 출토 유물도 국박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조사과정에서 ‘X자형 무늬 금반지’ 2점과 ‘가는 고리 귀고리’ 5점 등 9점이 분실된 것이 밝혀졌다. 1931년에 촬영한 출토 유물 사진에서 확인된 유물을 현 수장고에선 찾을 수 없었다. 박물관 측은 여러 정황상 일제강점기 때 도난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박은 서봉총 발굴보고서를 발간하고 마찬가지로 오는 10월까지 재발굴하기로 했다. 

속속 드러난
국보급 보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알려졌던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 사자상도 국박 수장고에 지난 60년간 보존돼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 관리 주무당국인 문화재청과 국박 사이에 협업체계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일제히 일었으나 그만큼 국박 수장고에 알려지지 않은 발굴과 발견이 많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대동여지도 목판 원판(진품) 11장이 지난 1995년 국박 수장고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해당 목판은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시절부터 수장고 내에 있었다. 이외에도 명나라 비단지본 마패인 부험(符驗), 원주 출토 고려 철조 아미타불상 등이 최근 발견됐다. 말 그대로 박물관 수장고는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유산의 보물창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일제 수집 유물에 대해 “시기 별로 다양하게 수백 건의 발굴조사와 유물이 있다. 경주국립박물관에도 일제가 수집한 유물이 많이 소장돼 있다. 최신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것을 발견해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때는 세기의 발견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박은 현재까지 일제강점기 발굴보고서와 도면 등 공문서와 유리 건판 사진을 절반 이상 공개했다. 내년까지 30만점 전체를 온라인에 공개할 방침이다. 깨진 유물은 보존처리하고, X선 성분분석과 실측 작업을 거쳐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경주·부여·공주·대구·김해 등의 국립지역박물관도 함께 작업한다. 우선 순위에 따라 2022년까지 전체 46만점을 순차적으로 공개해 일제 수집 유물을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시도다.

일제 수집 유물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수집된 것일까.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한반도 내 유적과 유물, 역사자료, 인종, 언어, 풍속 등 다방면에 걸쳐 광범위한 학술조사를 기획했다.

총독부가 자금을 제공하고 일본인 학자들이 주축이 된 학술조사사업은 식민통치를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식민통치논리’를 창출하는 작업이었다. 우리 문화의 타율성을 부각시켜 제국주의 사관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했던 것이다. 동시에 이들이 남긴 저작과 사진 등은 부족하나마 오늘날 한반도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총독부는 만주 소재 발해 도성 유적, 고구려·신라·백제·가야 고분, 소수의 석기시대 유적 등을 발굴했다. 민간에선 아마추어 고고학자 혹은 도굴꾼에 의해 일제강점기 내내 가치가 높은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기도 했지만, 총독부에선 발굴을 통해 전국에서 모은 매장문화재를 조선총독부박물관과 경성제대박물관, 각 지역 부립박물관 등에 수장했다. 부립박물관은 오늘날 국립 지역 박물관의 모태가 됐고 해방 후 이들 수장품을 고스란히 인수받았다.

1945년 처음 문 열고 조사 
유물의 전모 지금도 파악중

앞서 정인성 교수는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반출을 금지했다. 유명 수집가들이 부산까지 가져갔다가 못 가져가게 하니까 평소 알고 지낸 조선인에게 맡기거나 팔거나 몰래 어선에 실어 빼돌리려 했다”면서 “조선인에게 믿고 맡겼는데 며칠 만에 도깨비시장에 나오는 등 사사로이 처분해버린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에 의하면 해방 후 대구국립박물관에서 일본인 소유 유물을 주도적으로 수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내부자가 목록을 없애고 사적으로 착복했다. 유물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흩어져버렸다. 전국적으로 이러한 예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 고고학자는 일제 수집 유물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얻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다. 일본을 위한 ‘일본역사 새로 쓰기’였고, 그들만을 위한 문화재 정책, 박물관 정책이었다. 일제강점기 전 기간 동안 한국인을 배제하고 일제 권력자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이 학자는 “처음엔 식민사학과 관련된 것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보이지만 고적조사 발굴이 체계적으로 궤도에 오른 후엔 (자기들 목적에 맞는 것만) 선별해서 박물관에 갖다놓은 것은 아닌 것 같다”며 “가능하면 모든 자료를 원칙에 맞춰서 박물관에 보관하고 순서에 따라 보고서를 쓴 것 같다”고 지적했다.  

행방 묘연했던
작품 나오기도

결국 일본인 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활동이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뒷받침하는 행위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것이다. 앞서 학자는 “고적조사와 같은 실증적인 활동들과 조선역사 새로 쓰기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난 다음에야 이 같은 다양한 주장들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비밀통로

현재 왕실 유물을 관리하는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의 지하 수장고는 지난 2005년 서울 용산으로 자리를 옮긴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를 물려받은 것이다. 이 지하 수장고는 서쪽과 동쪽 공간으로 분리되는데, 각각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시대에 건설된 것들이다. 경복궁 근정전∼광화문 사이 지하에 위치해 있으면서 바로 옆 서쪽에 위치한 고궁박물관까지 약 300m 길이의 통로가 조성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서쪽 공간은 원래 방공호와 취조실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서쪽 건물 1층에 일제가 파놓은 지하로 통하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그 끝에 두꺼운 철문이 보인다. 철문 뒤에 100㎡(30여평) 남짓한 규모의 방이 있다. 모래를 채워 방음을 시도한 흔적으로 볼 때 조선인 사상범을 심문한 취조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하 11m 깊이에 위치한 동쪽 지하공간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든 비밀 벙커였다. 국가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해 원자탄 공격을 견디도록 철근 콘크리트로 2m 두께의 천장을 만들고 3중 철문 출입구와 제반시설을 잘 갖췄다. 정부요인의 비상대책회의와 기밀문서 보관 등 전시대비 업무를 준비한 곳이다.

벙커는 방수처리가 잘 돼 있고 널찍해서 수장고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중앙홀이 위치한 좌우로 16개의 방으로 구성됐고 바닥은 너도밤나무로 마감하고 내부 진열장과 천정은 오동나무로 제작했다. 전체면적은 3734m²에 달한다. 총 소장유물은 4만4760점인데 지하 수장고에만 3만1000여점이 보관돼 있다.

고궁박물관은 지난 3월30일 수장고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비록 10명만 수장고를 둘러본 제한적 공개였지만, 유물의 보존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박물관 특성상 파격적인 일이었다. 오는 8월, 9월, 12월에도 신청을 받아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을 70분간 공개한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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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