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조희팔’ 3000억대 다단계 사기 전말

목발 장애인·폐지 노인도 “당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다단계 사기의 수법이 구태의연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전국을 무대로 투자자를 끌어 모아 3000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이다 도주한 이모씨가 구속 재판 중이다. 그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리틀 조희팔’로 불렸다. 피해자들은 이씨가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서울 강남을 무대로 지난해 초부터 사기행각을 시작했다. 불과 1년 만에 피해자 수 4800여명에 피해액이 2886억원으로 급속하게 불어났다. 이씨는 직원 수 십여명을 고용해 서울 서초동에 ‘J모 그룹’이라는 다단계 회사를 차렸다. 그의 밑에서 팀장급만 20여명의 직원이 일했다. 그에겐 이미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1년을 복역한 전과가 있었다.

지금도 설명회

지난 11일 찾아간 서초동 모 빌딩에선 현재도 또 다른 업체의 다단계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로 중장년층이 참석한 가운데 높은 열기 속에서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해당 빌딩은 이씨가 사무실을 빌려 입주해 있었던 빌딩으로, 그는 이곳에서 매월 수 천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지하 1층 전체를 썼다. 이씨는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지난해 10월께 중요 서류를 챙겨 달아났다. 그러나 경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수서경찰서에 직접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은 후 구속됐다.  

J모 그룹은 회원 가입을 하고 매달 회비 5만원을 100번 납입해 500만원이 되면 더 이상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전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현혹했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전국 2500여개 병/의원, 750여개의 호텔, 콘도, 펜션, 스키장, 스파, 여행, 웨딩, 상조서비스, 농축산물, 건강식품, 화장품 업체 등과 제휴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할인해 제공한다고도 했다.


자사 소유의 연예기획사에서 신인 연예인을 발굴 중이며 지난해 중반기에 방영된 SBS 모 드라마에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고 선전했다.

시가 13억가량인 반포 모 아파트 150채를 9억에 분양한다며 회원들에게 7000만∼1억5000만원의 계약금을 받아 챙겼다.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이씨는 극소수의 회원에게 실제로 아파트를 1채씩 양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더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 30여개소의 사업장, 상당수의 전업사원과 수 만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언론에도 광고했는데 이 과정에서 모 국회의원의 동생인 김모씨가 지역광역시의 지점장으로 소개됐다. 이들은 언론에 각종 홍보기사를 냈는데 관련자가 구속됐음에도 여전히 인터넷 상에서 J모 그룹과 관련한 현혹성 기사가 검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외에도 러시아 광물 수출사업과 심해수 원료 화장품에 투자하면 원금의 120%를 돌려준다고 현혹했으나 수익금은커녕 이자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이씨는 새 회원의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 지급하는 ‘돌려막기’식으로 운영하며 시간을 벌었다. 1인당 피해액이 최소 1000만원∼최대 수 십억원까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숙박사업에 관심을 가졌는데, K 호텔과 I 호텔 등을 인수했다고 투자자들을 속였다. 이들 호텔의 경우 계약금만 지불한 상태였거나 구입했어도 단시간 내에 타인에게 되판 경우로 확인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개의 사업자번호도 등록했다. 실제로 목격자에 의하면, 수십 개의 사업자등록증과 통장이 담긴 여러 개의 상자, 5개의 금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씨는 연예인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활용했다. 사무실 내부에 연예인 사진 약 50점을 걸어놓고 회원이라고 과시했다. 이들 중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연예인이 몇몇 포함돼 있을 뿐 아니라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낯익은 조연 및 단역 배우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J모 그룹 측은 대규모 설명회를 전국 각지에서 열고 모 유명가수를 초청해 공연하기도 했다.


“13억 아파트 9억에 분양” 계약금 챙겨
해외사업 투자 120% 돌려준다고 현혹

지난 11일 서초동의 J모 그룹 전 사무실 근처에서 만난 한 남성은 “나도 지인에게 200만원을 투자하면 몇 개월 안에 400만원을 돌려준다고 투자를 권유 받았었다”면서 “그땐 솔깃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씨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던 빌딩의 관계자는 “내 사촌동생도 4000만원을 투자했다가 피해를 당했다”면서 “줄을 서서 돈을 냈다. 한번 설명회가 열리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10대도 넘었다. 타 다단계의 경우 물건은 있다. 근데 이 사람들은 물건도 없었다. 이 건물이 자기네 거라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씨와 직원들이 도주한 후 찾아온) 피해자들에게 그 사람들이 한달치 월세도 안내고 도망갔다고 하니 처음엔 내 말을 믿지도 않았다. 되려 그럴 리 없다며 화를 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 중엔 목발을 짚은 장애인, 폐지 줍는 노인 등 어렵게 돈을 모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가정주부 피해자가 많았는데 “이혼하자” “같이 죽자”며 싸우는 부부도 사무실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됐다. 
 

회장 직함을 단 이씨는 3억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그는 외모가 출중한 3명의 여비서를 고용했다. 그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양쪽에서 비서 2명이 수건을 들고 대기하도록 교육을 시켰다.

앞서 관계자는 “대통령도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렸다”면서 “그는 점잖은 인상이었고 사기꾼 느낌은 아니었다. 달변에 인사도 잘했고 투자자들을 상대로 강의도 직접 했다”고 귀띔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월16일 이씨 외 4명을 재판에 넘겼으나 현재 수서경찰서 지능팀에서 사건을 계속 수사 중이다. 피해 사실과 피해액이 추가적으로 속속 확인되면서 검찰이 일부 공소사실을 확정해 기소했음에도 사건을 종결하지 못하고 추가로 수사 중에 있는 것.

지능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계속해서 피해를 확인 중에 있다. 현재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보다 더 많은 숫자”라며 “이씨는 KBS 등 TV에도 이미 여러 차례 피해 사례가 방영이 됐었다. 미리 출국금지를 시켜 자진출석하도록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수서경찰서는 피해자 고소가 아닌 첩보에 의한 ‘인지수사’에 착수해 이씨 일당을 구속했다. 이씨에게 동종 전과가 있기에 가능한 일로 보였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입는 줄도 모르고 이씨에게 선뜻 투자금을 안겼다.            

이씨를 비롯한 정모씨와 팀장급 3명 등 총 5명이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유사수신 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남의 돈으로 호사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재판과정에서 피해 정도, 죄질 등이 면밀하게 검토돼야겠지만 중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최근 우리 법원에선 블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무차별적인 불법영업행위에 대해 엄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큰 피해가 확인된다면 사회에 나와서 다시 이런 일을 할 수 없도록 중형이 선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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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