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진땀 흘린 이세돌

알파고와 멋진 승부 “대단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알파고’가 한판 승부를 벌였다. 이 9단은 AI와 바둑을 둔 프로 기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 9단은 바둑계를 제패한 포스트 이창호 시대의 최고의 바둑기사로 ‘바둑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조훈현, 이창호에 이은 세계 바둑 최강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기사다.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이창호 다음으로 많고, 12세에 입단해 한국 프로 기사 중 최연소 입단 3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위는 조훈현 9세, 2위는 이창호 11세다.

역사에 기록될 5국
바둑천재 파격행보

이 9단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 출신이다. 꽤 특이한 이름의 소유자인데 그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인 돌(乭)자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한자다. 돌(石)석자에 을(乙)자를 합쳐 만든 글자다. 석(石)자는 돌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을(乙)자는 한자와는 상관없이 돌의 받침 ‘ㄹ’을 나타낸다.

이 9단은 2012년 발간된 자서전 첫 머리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단언한다. 그의 부친은 대학 졸업 후 몇 년 간 교편을 잡았으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고향 섬 비금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5남매를 길렀고 자식 모두에게 직접 바둑을 가르쳤다.

이 9단은 만 5세 무렵 또래의 섬 아이들과 함께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1989년 조훈현의 응씨배 우승이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계기였다고 한다.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9세에 서울로 바둑유학을 왔다.


12세에 프로기사로 입단했다. 형인 이상훈을 프로를 따라 입단했으나 자신보다 기재가 뛰어난 동생을 본 형은 “나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은퇴하겠다”고 선언하고 동생 이 9단 지원에 전념한다.

1995년에 입단하고 그 뒤 2단이 되는 데 3년이 걸렸다. 1999년에 3단이 된 뒤로 크게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두각을 나타낸다. 32연승이라는 역대 연승 3위 기록을 세우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당시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했다. 이후 3년간 바둑계를 휩쓸지만 당시 3단에 불과했다.

이는 이세돌이 더 높은 단을 달기 위해 치러야 하는 승단대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식에 젖어 과도한 대국수로 스타급 기사를 혹사시키는 승단대회의 문제점은 이전에도 지적되고 있었지만 최초로 그 제도에 정면으로 대항한 사람이 이 9단이었다.

3단에 불과한 이 9단은 메이저 세계대회인 후지쯔배를 우승하고 LG배 결승에 진출하면서 승단대회 무용론을 몸소 보여줬다. 이때 여론의 지지도 받게 된다.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부터 승단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시 3단 승단, 준우승시 1단 승단”을 추가했다. 이세돌은 이 대회들에서 우승하며 단 5개월 만에 9단이 된다.

이후에도 2009년 5월까지 국내랭킹 1위, 10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하는 등 정상급 기사의 면모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바둑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하면서 괘씸죄로 징계를 받게 된다. 그러자 이 9단은 이에 반항해 2009년 6월30일부터 2010년 12월31일까지의 18개월 휴직계를 제출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이 9단은 기보에 대한 저작권 문제와 대국료 관련 문제로 한국기원과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이 9단은 휴직 6개월여 만인 2010년 1월 11일 한국기원이 복직조건으로 내건 ▲소속기사 내규의 준수 ▲중국리그 수입 일부를 기사회 기금으로 내는 문제의 수락 ▲공동저작물인 기보저작권의 사용 권한을 기사회에 위임하는 것 등에 대해 합의 하면서 휴직을 끝냈다.

비금도 출생…5세부터 아버지에게 배워
프로기사 목표로 9세 때 서울 바둑유학


한국기원과의 앙금을 청산하고 복직하자마자 파죽지세로 24연승과 함께 덤으로 제2회 BC카드배 결승에서 창하오 9단을 3:0으로 압살하면서 세계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된다. 세 판 모두 불계승.

이 대회 16강전에는 당시 중국 랭킹 1위이던 콩지에를 상대로 초반에 대마가 잡혀 85집 정도를 잃은 상태에서도 역전승을 했었다. 그날 인터뷰에서는 이 9단은 “초반에 밀려서 그냥 두는 데 의의를 뒀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2011년 4월 제3회 BC카드배 결승에서 라이벌로 여겨지는 구리 9단을 상대로 3:2 신승을 거두고 BC카드배 2회 연속 제패에 성공한다. 2012년 12월13일,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에서 구리 9단을 2: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삼성화재배는 통산 4번째 우승한 것. 구리 9단과의 상대전적도 10승 1무 14패로 약간 회복했다.

2014년 구리 9단과의 인생승부 10번기를 시작했다. 10번기는 제한시간이 4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월드컵 기간인 6월을 제외하고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개최되며 먼저 6승자가 나오면 종료된다. 승자는 우승상금 500만 위안(약 8억 4000만 원)을 패자에게는 20만 위안(약 3500만 원)의 여비가 지급된다. 단, 최종 성적이 5승 5패일 경우 상금을 절반씩 나눈다. 이 대회에서 이 9단은 6승 2패로 승리한다.

세계 바둑계 평정
구글 인정한 실력

2011년 4월, 제3회 BC카드배 결승에서 라이벌로 여겨지는 구리 9단을 상대로 3:2 신승을 거두고 BC카드배 2회 연속 제패에 성공한다. 2012년 12월 13일,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에서 구리 9단을 2: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삼성화재배는 통산 4번째 우승한 것. 구리 9단과의 상대전적도 10승 1무 14패로 약간 회복했다.

이 9단은 30대에 접어든 이후부턴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준우승만 내리하며 서서히 기량이 하락하고 있다. 2016년 2월 한국 랭킹은 2위(1위는 박정환 9단)로 떨어진다. 다만 박정환 9단이 세계무대에선 국내무대만큼 기량을 잘 못발휘하는 편이라 국내용이라는 오명이 있다 아직도 한국바둑에서 이 9단의 위상은 죽지 않았다.

2016년은 연초부터 굵직굵직한 대국이 이어지고 있는데, 몽백합배 결승전에서 커제와 접전 끝에 준우승했다. 이후 이 9단은 제34기 KBS바둑왕전, 제43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에서 결승대결을 펼치면서 일명 8번기를 펼쳤다. 바둑왕전에서는 박정환 9단에게 첫 판을 딴 후 내리 두 판을 내주며 준우승했다. 명인전에서는 3승 1패로 박정환 9단을 꺾으며 통산 4번째 명인전 우승을 차지한다.

이 9단은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바둑기사다. 평소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한다.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내가 우승해서 미안합니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 “이름도 잘 모르는데 그들의 바둑 실력을 어이 아나?” 등이 대표적인 이 9단 어록이다.

구글이 선택한 이유?…저돌적인 스타일
묘수·잔수 강해 “아마추어에 인기 굿”

이창호의 바둑이 느긋하면서도 안정적인 계산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라면, 이 9단은 압도적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로 상대를 난전으로 끌어들인다. 상대를 혼란시키고 압살해버리며 묘수와 잔수가 아주 강해서 전투가 많이 일어난다. 때문에 아마추어와 일반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구글이 이 9단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유이기도 하다. 이 9단의 이 같은 전투 스타일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센돌’이란 별명에서 보듯이 이 9단의 힘은 가공할만 하다. 저돌적이며, 모험심이 가득하며,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지구상 최정상 프로바둑기사 중 이 9단은 가장 창조적이며 직관과 상상력에 기반둔 착점으로 일관하는 기사”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 같은 평가를 구글이 중요시 한 것이다. ‘돌부처’ 이창호라면 워낙 신중하기에 알파고 도전에 장고할 수 있겠지만, 이 9단의 경우는 호기심이 많아 도전에 응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9단은 구글의 제안을 단 5분도 되지 않아 승낙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고의 도전장을 큰 고민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 구글의 노련한 노림수가 숨어 있다. 박정환 9단이 국내 랭킹 1위이긴 하지만, 이 9단은 중국 프로기사에 공포의 대상이다. 중국에선 한국에서 가장 강한 상대를 이 9단으로 꼽는 것이다. 예전 이창호의 자리를 그가 꿰찬지 오래다.

특히 이 9단에 대해서 중국 바둑팬은 부러움과 질시, 두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바둑원조’인 중국에선 구리 9단과의 ‘10번기 이벤트’에서 이 9단이 구리 9단을 누른 것에 여전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거침없는 입담
중국인이 질투

구글이 중국의 자존심이었던 구리 9단을 인상적으로 누른 이세돌과의 알파고 대결을 추진한 것은 그래서다. 이 9단에 지면 지는대로 의미있고, 이긴다면 중국 바둑에게도 우세하다는 평가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IT업계도 인공지능 개발과 진화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9단과의 세기의 빅이벤트는 구글로서는 인공지능 측면에서 ‘중국보다 한참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할 기회로 여겼다는 것이다.   
 

<min1330@ilyosisa.co.kr>

  


[구글 알파고는?] 

구글의 인공지능개발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두 가지 신경망을 통해 결정을 내리며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알파고는 2016년 3월9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는 이세돌 9단과의 세기의 바둑대결로 화제가 되고 있다. 알파고는 다른 바둑 프로그램들과 총 500회 대국을 벌여 499회 승리하기도 했다. 2015년 10월에는 유럽바둑대회 3회 우승자인 판 후이(Fan Hui) 2단을 상대로 대국, 5전 전승했다. 이 승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전문바둑기사를 상대로 거둔 사상최초의 승리였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대결에서 승리하며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바둑은 컴퓨터 인공지능이 도전하기에는 버거운 분야로 여겨졌다. 체스가 한 위치마다 가능한 수가 평균 20개 정도라면 바둑은 200개 정도일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바둑판에서의 경우의 수는 10의 170승으로 전 세계 원자 수보다 더 많다고 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 선택하기 위해 알파고는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네트워크 프로세스를 이용한다. 수의 위치를 계산하는 ‘정책망’으로 탐색의 범위를 좁힌 뒤, 가치망으로 승률이 가장 높은 수를 판별해낸다. 이 두 네트워크가 서로 얽혀가며 바둑판에서 상대 수를 읽고 확률을 측정해 다음 수를 두게 된다.

또한 알파고는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다. 알파고는 2015년 10월 판후이 2단과 대국을 치른 이후 대폭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전해졌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2016년 3월 8일 기자회견에서 “알파고가 자기학습으로 지난 5개월 동안 스스로 학습하면서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생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는 분산 시스템 버전의 알파고가 참여했다. 48개 CPU(중앙처리장치)를 사용하던 단일 시스템 버전과 달리 1200여개 CPU를 사용해 더 강력해졌다. 판후이와의 대국 때에도 분산 버전이 사용됐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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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