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경성에 푹 빠진 도미 마사노리 객원교수

서울서 ‘모던경성’ 흔적 찾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김사량 단편 <천마>(1940) 속 주인공 현룡은 아침에 유곽에서 일어나 혼마치(本町) 방향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유곽은 현재 동국대∼그랜드앰배서더 호텔 사이에 있었고 혼마치는 명동 일대다. 혼마치에서 동료들을 만나 논쟁하다가 소설 말미엔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에 앉아서 존다. 도미 마사노리(67) 한양대 건축과 객원교수는 소설을 보고 현장을 찾아 “김사량이 여기서 그랬구나”라며 ‘모던경성’의 거리 모습을 복원해왔다.     

“명동 예술극장(1936년 메이지좌로 설립)이 상징적 의미가 큰 공간이다. 맞은편에 카바레가 있었고, 뒤엔 주식거래소가 있었다. 여기에 전 세계 정보가 다 모였다. 주식해서 돈 벌면 카바레 가서 펑펑 쓰고 잘 안되면 ‘오늘은 한 잔 하자’ 하고 또 카바레로 갔다. 예술극장 주변엔 예술가가 다 모였다. 지금은 명동8길이 지가가 가장 높지만 당시엔 남대문로와 태평로가 가장 비쌌다.”

1983년 한국으로

도미 교수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지적도와 전화번호부를 구해 등재된 상호와 주소를 지적도에 표시하는 방식으로 경성거리를 복원해나갔다. 1년6개월이 걸려 종로(일민미술관∼동대문), 명동(신세계 본점∼동국대) 구간 전체 4.8㎞를 입체적으로 재현해 냈다.

혼마치 83곳, 메이지마치 74곳, 종로 102곳의 카페 상호와 주소를 알아냈다. 그의 작업을 통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김사량의 <천마>에 나오는 거리 풍경을 가늠해낼 수 있다. 건물은 다 바뀌었지만 당시의 대로와 필지는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지난 2011년 ‘이방인의 순간 포착, 경성 1930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석 달간 전시하면서 첫 두 달엔 관람자가 뜸했다. 마지막 한 달엔 입소문이 나면서 도시연구자는 물론 사회사, 패션사, 젠더 연구자가 몰렸다. 그는 틈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같은 전시를 동경과 요코하마에서 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서 나고 자란 일본인과 가족이 전시장을 찾았다.


80∼90대 노인들이 “여기 빵가게에서 빵 먹었잖아”라며 미소 지었다. 현재는 없는 고향을 찾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명동에 일본 초등학교가 2개 있었는데 동문회에서 많이 왔다고. 두 나라의 전시 분위기는 그렇게 달랐다.

도미 교수가 한국에 온 것은 1983년, 35세 때다. 주남철 고려대 교수의 논문 <한국의 전통적 주거>를 읽고 한옥의 매력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낭을 둘러메고 양동마을, 하회마을, 부여,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는 “내가 연구하고 싶은 앞마당이 한국에 있더라. 깊은 문화에 생활이 보이는 환경이 맘에 들었다”며 “식사도 맛있고 문화수준도 아주 높았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한국문화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지금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다 아팠다”며 웃었다.

그는 또 “일본은 가볍고 인공적인 건축인데 비해 한국은 무겁고 자연친화적인 건축”이라며 “석굴암과 부석사를 좋아한다. 부석사는 돌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무거운 것이 떠 있는 것, 그것이 한국건축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도미 교수는 한옥 연구를 시작으로 대만, 만주, 한국, 일본의 근대가옥과 그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나라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일본식 주택에 해당국가 사람이 거주하면서 어떻게 리노베이션 해왔는지가 주제다.

그는 “각 나라의 국민성과 지역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건 문화 이야기다. 그 시대에 건축을 문화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좋아 혹은 싫어, 그런 얘기가 아니다. 모르고 비판하면 안 된다. 그런 시대가 앞으로 올 거 같아서 천천히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명동의 일본식 2층 목조주택, 문래동 방적공장 터, 인천 차이나타운, 군산·목포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한국서 제일 인상 깊었던 일본주택을 꼽아달라고 하자, 군산 이영춘 가옥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쓰비시(三菱) 줄사택 단지를 꼽았다. 군산의 대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이는 2만명의 한국인 소작농을 거느렸다. 이들은 노역에 시달리며 자주 아팠다. 구마모토는 의사 이영춘을 고용해 이들을 돌보게 했다.


“지자체에서 근대가옥 복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영춘 가옥은 한지붕 밑에 리빙룸, 다다미, 온돌방까지 3개가 다 있어 굉장히 재밌다. 여름엔 다다미, 겨울엔 온돌을 쓴 거다. 지금은 전시장으로 만들어 보존 중인데 건물은 생활이 보이는 방식이 좋다. 전시장은 옆에 만들고 건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 좋을 것 같다. 부평동은 일제강점기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 건축가가 720채에 달하는 대규모 사택을 설계한 거다. 지금은 대우공장이 있다.” 

전통한옥 매력에 빠져 현해탄 건너
조선총독부 지적도로 경성거리 복원

도미 교수는 보통 건축사학자들과 달리 교육과 건축설계도 병행한다. 그는 지난 8일, 한양대 내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학생들과 새 집 천정에 들어갈 한지 조명을 작업 중이었다. 도미 교수는 “학생들이 어렵고 까다로운 연구실에 와서 고생한다”며 취재진에게 옥수수수염차를 거듭 권했다.

2014년 인천 관동갤러리 작업 당시 학생들과 섞여 지붕 위에서 일했다. 망치질도 하고 톱질도 했다. 건축사들이 설계를 마치면 현장에 잘 가지 않는 것에 비해 도미 교수는 일주일에 2회씩 현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인부들이 “진짜 교수냐”고 물을 정도다.

현재 그는 용인 동천동 마을 건립 프로젝트의 막바지 작업 중이다. 건축사 6명과 공동설계자로 참여했다. 경사지를 그대로 살려 마을을 만드는 레퍼런스를 찾아 건축주와 함께 오사카, 도쿄에도 다녀왔다. 교사와 학부모가 공동설립한 협동조합이 건축주가 돼 주택 15채와 마을회관, 어린이집까지 마을 하나를 완성하는 큰 프로젝트다. 도미 교수는 이 중 주택 5채를 설계했다.

그는 “보통은 건축에 소통을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데 처음부터 커뮤니티가 있는 사람들이 땅을 공동으로 사서 하나하나 만든 것”이라며 “어떤 멋있는 마을을 만들어줄까 고민했다”고.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13년이 됐다. 그 때부터 제자들에게 ‘단독주택 설계시대’가 올 거라며 어떻게 좋은 설계를 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국도 일본도 내 집을 장만하는 데 돈을 쏟아 붓고 나면 여유자금이 없다. 그렇게 구입한 집들은 자녀들이 출가하고 생애주기가 바뀌면 빈 방이 생긴다. 자기 집을 마련하고 나면 결혼한 자녀들 집을 또 걱정한다. 도미 교수는 그런 부분에 건축가들이 주목하고 서포트해야 한다고 했다. 

앞마당 연구

“짓고 싶은 집은 역시 목조주택이다. 다른 재료보다 싸다. 돈이 없어도 잘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을 설계하고 싶다. 주택엔 일상생활 뿐 아니라 생산적 프로그램도 병행하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뜰리에를 만들 수도 있고 비즈니스 매매를 해도 좋고 레스토랑 공간을 만들어 줘도 된다. 결혼한 딸과 함께 사는 2∼3세대 주택도 짓고 싶다. 단독주택은 별채, 반지하, 다락방 같은 재밌는 공간이 많이 나온다. 그런 걸 연구하면 주택난이 해결될 거다.”


<shin@ilyosisa.co.kr>

 

[도미 교수는?]

▲1948년 도쿄 생
▲가나가와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72)
▲가나가와대학교 재직(1973~2008)
▲서울대학교 재외 연구원(1987~1988)
▲동경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1996)
▲동경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1997~현재)
▲한양대학교 건축대학 전임교수(2008~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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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