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도지사 선거는 피를 말리는 ‘대역전극’이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개표 중반을 넘도록 좀처럼 표차를 줄이지 못하다 읍면지역 투표함이 막판에 열리면서 0.8%포인트 차이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동안 관선, 민선 등 모두 4차례나 제주도지사를 지낸 우 지사는 이로써 다섯 번째 제주도정을 이끌게 됐다.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 등 좌절 딛고 일어나
첫 역점 과제는 ‘제주해군기지 해법 제시’ 될 전망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서 해녀의 아들로 태어난 우근민 제주도지사. 평생을 제주도에서 살아온 토박이로, 그만큼 제주 지역정서에 밝다.
제주 토박이로
제주 정서에 밝아
우 지사는 군장교로 복무하던 1974년 합참의장 출신인 심흥선 총무처 장관의 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총무처 인사국장, 기획관리실장,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91년 처음 관선 제주지사를 지냈다. 처음 출마한 1995년 민선 초대 제주지사 선거에서는 맞수인 신구범 후보에게 밀리면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1998년, 2002년에는 잇따라 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간 우 지사는 관선·민선을 합쳐 4번 지사를 지냈다. 여기에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다시 제주도민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한 번도 하기 힘든 도백을 다섯 차례나 맡게 됐다. 두 차례는 임명직이었던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는 지방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렇지만 정치인으로서 굴곡이 없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숱한 시련과 역경이 그를 기다렸다.
가장 큰 고비는 2002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신 전 지사가 축협중앙회장으로 재직할 때 대우 채권 같은 것을 사서 510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선거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데 이어 2004년 4월 대법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으면서 중도 하차한 것이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사 재임시절의 불미스런 전력은 최근까지도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6.2선거를 앞두고 그게 화근이 돼 결국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나중에 공천장을 준다 해도 찢어버리겠다”며 울분을 삼킨 우 지사는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 피 말리는 접전 끝에 현명관 삼성물산 전 회장을 누르고 신승했다.
좌절을 모르는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본인 말마따나 ‘6년 백수’는 결과적으로 절치부심, 와신상담을 위한 공백기였던 셈이다.
우 지사의 이런 강인함의 원천은 어린 시절 모진 가난을 견뎌낸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많다. 가난한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네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읜 그가 오로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매달리면서 승부 근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총무처 등 서울 생활을 하면서 쌓은 친화력과 폭넓은 인맥, 특유의 조직관리 능력도 그가 여기까지 오는데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 지사는 선거기간은 물론 당선 직후에도 “4년 후는 없다”고 했다. 마지막 도전이라는 자세로 도정에 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승부근성 생겨나
우 지사의 첫 역점 과제는 ‘제주해군기지’ 해법 제시가 될 전망이다.
우 지사가 이미 후보 당시 공약을 통해 일방적인 해군기지 공사착공 중단을 누차 강조했고, 합리적 해결방안 마련을 공언해온 마당에 해군측이 공사강행 의사를 분명히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우 지사가 도민갈등 해소와 소통 도정의 핵심사업으로 거듭 천명해온 해군기지 합리적 해법 도출에 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에 따른 우 지사의 대응이 주목되는 가운데 그는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해군이 공사 강행만을 강조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결 방안을 바라는 도민 여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 지사는 “해군기지 갈등을 풀지 않으면 제주 사회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 한다”며 “제주도민, 국방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윈윈’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 지사가 경제공약으로 내놓은 ‘일자리 2만 개 창출’도 역점 사업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식품산업과 한방·바이오융합산업 등 5대 향토자원 성장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1500억원을 투자하게 될 ‘고품질 감귤 생산 및 감귤 클러스터 구축’ 방안은 감귤 생산이 많은 지역 특성을 살린 일자리 공약으로 평가된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청년희망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었다. 우 지사는 “우수 중소기업에 1년에 500명씩 임금의 절반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2년 동안 일한 청년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향토자원 5대 성장산업 육성 5280개 ▲첨단기술 4대 제조업 600개 ▲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 7220개 ▲성장유망·타켓 기업 및 콜센터 유치 1500개 ▲중소기업 육성 연계형 일자리 1700개 ▲미래를 위한 인재육성 분야 3700개 등이 제시됐다.
일자리 2만 개 창출…희망청년 프로젝트에 눈길
“‘수출 1조원 시대 개막’ 임기 내 반드시 이룰 것”
연도별 일자리 창출 계획은 올해 1069명을 시작으로, 2011년 3095명, 2012년 3199명, 2013년 5606명, 2014년 7031명 등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예산 확보 계획은 물론 안정적 일자리 창출방안, 산업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스매치’ 해결 방안 등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민·관·산·학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 등 공론화 전략과 함께 국비 확보를 위한 중앙절충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우 지사가 약속한 ‘수출 1조원 시대 개막’은 임기 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바다. 이에 대해 우 지사는 “제주 수출은 그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해 수출입국의 변방이었고 사각지대였다”며 “수출정책은 도전과 개척의 경영마인드로 경쟁력을 갖춰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울산, 거제, 창원 등과는 다른 제주의 청정환경, 향토자원, 그리고 농수축산물을 활용해 경쟁력 있는 수출 상품을 만들고, 수출경제의 활성화를 중장기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제조업의 한계에도 도전, 레저용 선박 부품 제조업, 레저스포츠용품 제조업, 스마트그리드 및 재생에너지 부품 제조업, IT융합산업 등 첨단기술 신성장 4대 제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제주의 1차산업을 유통서비스 경영과 결합, 2~3차산업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제주의 청정농수축산물과 향토자원을 활용한 ‘제주의 식품산업’을 대한민국의 대표적 수출산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또 수출정책을 주도할 ‘통상마케팅본부’를 설치해 ‘통상마케팅본부 준비기획단’을 구성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략 산업으로 물, 농수축산물과 같은 향토자원을 활용한 5대 신성장산업을 육성할 예정이다.
우 지사는 또 영리병원은 일체의 논의를 중단해 줄 것을 도민사회에 요청했다. 우 지사는 “공공의료 체계가 미흡한 상태에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해 영리병원을 도입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일체의 논의 중단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한 내국인 카지노와 관련, 우 지사는 “경제적·재정적 이익과 더불어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분석해야 한다”며 “한쪽 측면만 중시하다가는 제주 사회에 상당히 부담될 수 있는 현안이기에 도민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논의를 보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도민 역량을 결집하고 도민 사회를 통합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환경 정책과 관련해 우 지사는 ‘선보전 후개발’ 방식을 기초로 환경과 경제의 통합, 주민 참여의 활성화, 갈등 예방 등 3대 방향을 적용할 뜻을 분명히 했다.
또 그는 탐라천년 문화권 정립사업을 국책종합사업으로 추진하고, 문화예술정책은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확고하게 지킬 것과 저출산 탈피를 위한 출산율 2.0 제주플랜과 무상보육 및 무상급식을 통한 맞춤형 보육시스템 구축에도 나설 것을 약속했다.
특히 우 지사는 특별자치와 국제자유도시라는 두 가지 제도를 충분히 활용, 동아시아 시대의 중심지로 웅비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 가칭 ‘특별자치와 국제자유도시 글로벌 네트워크’를 창설해 제주가 동아시아 지역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온 몸 바쳐 제주
발전에 헌신할 것”
이에 대해 우 지사는 “이는 도정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며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 등 도덕성을 요구받는 분들은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주셔야 한다”고 각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와 함께 우 지사는 “제가 지사직에서 물러난 후 도민 여러분이 ‘우근민 도지사와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고 행복했다’는 말씀을 하실 수 있도록 온 몸을 바쳐 제주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 프로필
학 력
1958 ~ 1961 : 성산수산고등학교
1967 ~ 1971 : 명지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학사)
1971 ~ 1973 : 경희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경 력
1982. 08 ~ 1991. 03 : 총무처 인사국장 및 기획관리실장
1991. 03 ~ 1991. 07 : 제12대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1991. 08 ~ 1993. 12 : 제27, 28대 제주도지사
1996. 09 ~ 1997. 03 : 남해화학 주식회사 사장
1997. 03 ~ 1998. 03 : 제17대 총무처 차관
1998. 07 ~ 2002. 06 : 제32대 제주도지사
2002. 07 ~ 2004. 04 : 제33대 제주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