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2015 이슈메이커> '베스트&워스트'

국민들 울리고 웃긴 사람들 누구?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새해 첫날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건만 어느덧 한해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건·사고들은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훗날 2015년을 되돌아보며 격변의 시대였다고 되새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2015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올 한해 굵직한 이슈를 만들어 낸 인물들을 각 분야에 걸쳐 ‘베스트&워스트’로 나눠 선정해 봤다.

[정치]

[Best] 모난 돌 유승민

지난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에게 날선 분노를 표출했다.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했다고 봐도 무방한 사안이었다. 대통령이 당 원내대표에게 사퇴 압력을 행사하는 건 옳지 않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국 유 의원은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박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해 온 유 의원의 언행이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탓이다.

전화위복이랄까. 당내에서 실권을 상실한 유 의원은 오히려 앞날이 기대되는 정치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할 말은 하는 올곧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마저 더해졌다. 지지율은 급등했고 어느새 차기 대통령감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유 의원의 인기를 거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그의 정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Worst] 억울한 성완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4월9일 메모를 남긴 채 죽자 엄청난 후폭풍이 불러왔다. 앞서 해외자원개발 비리 혐의로 성 전 회장을 지목한 검찰은 경남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강화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당시만 해도 경제인의 개인 비리쯤으로 인식되던 사건은 성 전 회장이 북한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성 전 회장이 죽기 전 남긴 메모에는 허태열, 홍문종, 홍준표, 김기춘, 이완구 등 현 정권의 유력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성완종 리스트’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성완종 리스트가 불법대선자금 게이트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그러나 지난 7월2일 검찰은 2012년 대선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일축했다. 성 전 회장의 리스트가 정치권의 살생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별다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검찰의 용두사미 수사로 리스트의 진실은 미궁 속에 남았다. 다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한층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

[Best] 성공신화 서경배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화장품을 수출 효자 상품으로 부상시킨 일등공신이자 올 한해 재계에서 가장 빈번히 언급된 인물이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아모레퍼시픽의 수출실적은 1억9700만달러로, 전년동기(1억3000만 달러) 대비 51.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수출액도 1억8253만 달러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2억달러 수출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국내 화장품 기업 최초로 ‘1억달러‘ 수출 금자탑을 쌓은 지 2년 만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눈부신 성장의 배경에는 서 회장의 치밀함이 숨어있다. 내수시장의 한계를 절감한 서 회장은 2000년대 초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시도했고 결국 아모레퍼시픽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서 회장은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7일 ‘제52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최고등급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Worst] 뒷방신세 신격호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불거진 경영권 다툼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입김이 축소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롯데그룹의 면세점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주력사업 곳곳에서 불안정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지만 오너 일가는 여전히 경영권 다툼에 혈안이 돼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담하다. 특히 신 총괄회장에서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커지고 있다.

아들 간 분쟁을 조정하고 화해를 유도해 경영정상화에 힘을 보태야 할 신 총괄회장이 왜 더 갈등을 키우는 쪽으로 일을 벌이는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오늘날 롯데를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일궈온 그의 지난 행보는 어느덧 퇴색된 지 오래다. 힘없고 늙은 뒷방 어른쯤으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유승민·성완종으로 떠들썩했던 정계
‘형제의 난’롯데그룹 오너일가 구설수

[사회]

[Best] 희망메신저 김정원

지난 8월4일 벌어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은 한 개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부각시켰다. 당시 사고로 김정원 하사는 오른쪽 발목 아래가 절단됐다. 국군의무사령부는 김 하사 치료를 계기로 부상 장병을 중앙보훈병원에서 재활 치료하는 동시에 이 병원 보장구센터의 보장구 제작ㆍ수리 서비스를 받기로 협약을 맺기도 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에서 성공리에 수술을 마치고 서울 중앙보훈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김 하사가 이전처럼 멀쩡히 걷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김 하사는 4개월간 재활치료 기간 동안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비록 의족의 도움이 절대적이지만 걷는데 큰 지장이 없을 만큼 상황이 호전됐다. 계속 군복무를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김 하사는 “발을 잃었지만 수십배 가치가 있는 모든 분들의 격려와 응원이 있어서 일어서게 됐다”며 “다치기 전과 다름 없이 밝고 현재를 즐기려고 한다”고 말해 감동을 주었다.
 

[Worst] Ctrl+V 송유근

지난달 24일 ‘천재 소년’으로 불리던 송유근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블랙홀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송군이 논문을 게재한 천체물리학저널(ApJ·Astrophysical journal)은 송군의 논문이 표절로 확인됨에 따라 게재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표절 대상으로 지목된 학술대회 발표자료(Proceeding)의 원저자인 박석재 위원은 표절논란에 대해 “송군이 쓴 논문과 내 발표 자료가 많은 부분이 같거나 비슷해 일반인이 보기엔 표절로 의심할 수 있다”며 “논문의 앞부분은 비슷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고 핵심인 편미분방정식이 다르므로 이 둘을 서로 다른 논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론은 송군의 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천재로 불리던 한 소년의 씁쓸한 성장기는 우리 사회가 지닌 실적 우선주의가 불러온 단면이나 마찬가지였다.

[종교]

[Best] 갈등 봉합한 자승

지난달 발생한 민중대궐기는 반목과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죄를 물은 경찰과 노조 측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았다. 이 과정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자승스님은 조계사에 24일간 은신한 한 위원장이 경찰에 자진 출두하는데 힘을 보탰다.

일촉즉발의 순간 모습을 드러낸 자승스님은 “한상균 위원장의 거취를 해결하겠다”며 중재안을 냈다. 자승스님은 ‘내치지 않되 협조하지 않는다’는 조계종의 기조를 유지했고 경찰은 자승스님의 입장을 받아들여 공권력 투입을 보류했다.


자승스님은 2009년 10월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80명과 전국 24개 교구 본사 선거인단 등 총 320명이 참가한 가운데 치러진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전체 317표 중 290표라는 역대 최고 지지율로 당선됐다. 2011년 3월부터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3년 11월 제34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했다.
 

[Worst] 우울한 말년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를 둘러싼 의혹은 올해도 계속됐다. 이미 헌금을 빼돌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조 목사이다. 이번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30명이 공동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 목사의 비리 혐의는 800억원에 대한 부당이득이다. 2004년부터 5년간 매년 120억원씩, 총 600억원이 특별 선교비란 명목으로 지급됐는데 이 돈을 조 목사가 개인적으로 챙겼다는 것이다.

조 목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장로들이 검찰에 고발장을 낸 건 이번이 두 번째. 이들은 2011년부터 이른바 ‘교회바로세우기 장로모임’을 만들고, 조 목사와 장남 조희준씨를 교회 헌금을 빼돌린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조 목사는 지난해 1심에 이어 2심 재판에서도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교회 측은 이번 고발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조 목사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한층 냉담해졌다.

신경숙·송유근 표절 논란
계속되는 종교인들 비리도


[연예]

[Best] 인생 한방 이애란

방송가를 뜨겁게 달군 ‘쉐프’ 열풍도 이애란의 “~라 전해라”에 비견할 수 없었다. 지난해 EXID가 기적적인 역주행을 이뤄냈다면 올해는 이애란이 그 주인공이다. 소위 말하는 '짤방' 스타로 뜬 이씨는 자신이 과거에 발표한 곡 '백세인생'에서 계속 반복되는 가사인 ‘못 간다고 전해라’ ‘와있다고 전해라’ 등이 유행어로 떠오르며 요즘 대세임을 제대로 입증했다.

백세인생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씨의 몸값은 6배 이상 치솟았다. 메신저 속 이모티콘으로 출시된 것도 모자라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하며 데뷔 25년 만에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이씨는 연예인 인기 척도인 CF 문의가 쇄도하는 상황이다.

[Worst] 아빠된 김현중

김현중의 아이라고 주장했던 전 여자친구 최씨의 말이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김씨가 아버지일 확률이 99.9999%라는 감정결과가 마침내 공개된 것이다. 김씨에게는 남은 군 복무를 성실하게 마치고 아이 아빠로서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이제 쟁점은 16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쏠렸다. 사실 친자 여부는 최씨 측에서 제기한 16억원대 위자료 청구 소송과는 관계가 없다. 최 씨는 반복적인 임신과 유산에 따른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서 16억원에 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앞서 김씨는 2012년부터 2년여 간 교제한 최 씨와 임신-폭행-유산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을 벌여왔다. 최씨는 지난해 5월 폭행을 당해 유산됐다며 김씨를 고소했지만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취하했다. 이후 최씨가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김씨를 상대로 지난 4월 1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다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씨는 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변함없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씨는 군 복무 중인 김씨의 ‘남자다운’ 사과를 원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문화]

[Best] 한국의 쇼팽 조성진

동양인에게 콧대를 숙이지 않았던 쇼팽 콩쿨이 한국의 전도유망한 청년에게 결국 무릎을 꿇었다. 지난달 21일 프레데릭 쇼팽 협회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결선의 최종 심사 결과 조성진이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그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가능성으로 충만한 연주자였다. 2008년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1위 등 그는 국제무대에서 차곡차곡 수상 이력을 쌓아 왔다. 6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만 11세이던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조군은 2008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최연소 우승, 2009년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제14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했다.
 

[Worst] 표절 권력자 신경숙

소설가 이응준이 지난 6월 신경숙씨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일부를 표절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진 ‘신경숙 표절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출판사 창비의 내부인사들이 물러났지만 문학계의 폐쇄적 구조는 좀처럼 허물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10년 전부터 표절 의혹 제기됐음에도 창비가 무시한 사실이 밝혀지고 창비가 여론과 동떨어진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여기에 신 작가의 모호한 입장 표명도 사태를 더욱 키웠다. 문학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소설이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불거진 신 작가의 표절 논란은 한국소설의 위기론을 더욱 부채질했다. 어쩌면 이번 표절 사태는 문단 내 자정의 목소리가 모처럼 힘을 얻을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

[Best] EPL 입성 손흥민

한국축구의 기대주 손흥민이 토트넘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꿈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했다.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17골을 터트리며 활약한 손흥민은 토트넘 이적 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축구의 본고장 잉글랜드에서도 적응 기간 없이 곧바로 자리 잡아 올 시즌 3골 5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올해 국가 대표 팀이 치른 13경기에 출전해 팀 최다골인 9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손흥민은 축구팬이 뽑은 2015 올해의 남녀 선수에도 선발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5년 한해 동안 축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올해의 선수’ 인터넷 투표를 실시했다. 손흥민은 전체 2242표 중 656표(29.2%)를 획득해 574표(25.6%)를 얻은 기성용(스완지시티)을 제치고 남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Worst] 나쁜 손버릇 임창용

올해 상반기에 프로농구가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홍역을 치렀다면, 하반기에는 프로야구가 해외 원정 도박 파문에 시달렸다. 야구 선수들의 해외 원정 도박 사실은 검찰이 기업인과 도박을 알선한 조직폭력배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원정 도박자 명단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급 선수인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의 이름이 나온 데 이어 오승환까지 검찰에 출두하면서 팬들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임창용은 지난달 11일 가장 먼저 검찰에 출석해 13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이어 지난 9일 오승환이 5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지난해 11월말 마카오에서 수억 원 상당의 칩을 빌릴 건 맞지만 실제 도박 횟수와 액수는 많지 않다며 억대 도박금액에 대해선 부인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임창용은 삼성으로부터 방출돼 불명예 은퇴의 위기에 놓였다. 예전부터 다루기 힘든 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임창용은 도박 파문으로 선수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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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