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떠난 민주화의 거목…고 김영삼 전 대통령

닭 모가지 비틀어도 새벽은 왔는데…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민주화운동의 영웅이 스러졌다.” ‘민주화의 거목’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거하자 정치권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일요시사>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그가 남긴 족적을 다시 되짚어 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0시22분 향년 88세 나이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먼저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 현재 생존해 있는 김종필 전 총리와 함께 대한민국 현대 정치에 있어 ‘3김시대’로 상징되는 정치거목이었다. 거산(巨山)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정치권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화의 상징
정치권 애도물결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20일 경상남도 거제(통영군)에서 1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을 꿈꾸며 자랐다. 어렸을 땐 자신의 책상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씨를 써놓고 공부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 전 대통령은 서울대 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장택상 후보의 국회의원총선거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다 그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비서관이 되었다. 이렇게 정치에 입문하게 된 김 전 대통령은 정치사에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제3대 총선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26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김 전 대통령은 여당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3선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자 “이 당은 안 되겠다”면서 이승만의 자유당을 탈당했다. 이때부터 김 전 대통령은 길고 긴 야당 정치인 생활을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최연소자로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된 후 제5·6·7·8·9·10·13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9선 의원을 지냈다. 이는 헌정사상 최다선 기록이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김종필 전 의원, 박준규 전 의원이 9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쿠데타를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68년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향토예비군을 설치하자 향토예비군법 폐지안을 발의하고 박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1969년 초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를 맡고 있었던 김 전 대통령은 자택 인근에서 괴한들에게 습격당했다. 일명 ‘초산테러’라고 불린 당시 사건을 두고 김 전 대통령은 정권 차원의 테러라고 주장하며 박정희정권과 갈등을 더욱 키워나갔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철승 전 의원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당 내 경선에서 영원한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며 고배를 마셨다.


맞수 DJ·JP
애증의 반세기

1974년 '선명야당론'을 기치로 신민당 총재에 선출된 김 전 대통령은 유신체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1979년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 사건을 이유로 박정희정권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의원직을 제명하고 가택연금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의원직 제명과 가택연금은 부마항쟁을 촉발시켰고 이는 결국 유신정권 붕괴의 계기가 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발언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에는 김대중, 김종필 등과 대권을 놓고 경쟁했다. 하지만 전두환과 신군부의 쿠데타로 좌절되었고,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계속된 가택연금과 정치적 탄압에 항의하며 장기간 단식투쟁을 단행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회복, 정치복원 등 민주화 5개항을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으며 전두환정권은 김 전 대통령이 단식을 한 지 1주일이 지나자 그를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도 단식을 계속했다. 이를 통해 가택연금 해제를 얻어냈다. 이 단식은 추후 민주화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김대중·김종필과 함께 3김시대 주역
군사 독재에 항거…민주화 운동 투신

이듬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운동추진협회의(민추협)를 발족시켜 전두환정권에 맞서 싸웠다. 민주화운동의 성과는 1987년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 쟁취로 나타났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의 동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직선제 개헌을 계기로 사이가 벌어졌다.

두 사람은 제13대 대통령선거에 모두 나섰으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며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승리를 내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이라는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쳐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것. 3당 합당으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 승리의 초석을 다졌지만 민주화 진영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1992년 민자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김 전 대통령은 제14대 대선에서 김대중·정주영 후보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로써 김 전 대통령은 32년 간의 군사독재를 끝낸 첫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재임기간 평가가 김 전 대통령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사례도 드물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초반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강도 높은 개혁으로 절대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우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군대 내 최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청산을 통해 국방 문민화의 길을 텄다.


군정 부정과 정통성 확립에 집중했고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기도 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수사와 신군부 처벌도 이끌어 냈다. 투명한 경제 민주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금융·부동산 실명제도 도입했다. 풀뿌리민주주의인 지방자치제 실시와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 강도 높은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시스템 전반을 한 단계 끌어올린 ‘개혁’은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방위 개혁
친인척 비리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즐겨먹었는데 재임시절 김 전 대통령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칼국수’로 상징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군 평시작전통제권 회수, 최초 남북정상회담 합의와 추진도 김 전 대통령이 이뤄낸 업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아들 현철씨가 한보비리에 연루되는 등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로 임기 초반 누렸던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대부분 잃고 임기 말에는 초라한 퇴장을 하고 말았다.

퇴임 후 지난 1999년 6월에는 외국 순방길에 나서면서 김포공항 제2청사에 갔다가 환송객과 악수를 하던 중 붉은 페인트로 채워진 달걀 세례를 받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에게 페인트 달걀을 던진 재미교포 박의정씨는 “IMF 때문에 5000명 이상이 자살하는 등 대한민국을 너무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기반으로 삼은 민주화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직접 발굴한 상도동계 사람들 맹활약
김무성·서청원 등 정치권 쥐락펴락

김 전 대통령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바로 ‘상도동계’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은 1969년 김 전 대통령이 안암동 자택을 팔고 이사한 뒤 46년 넘게 산 곳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함께 현대 정치사의 명암이 서려 있다. 군부정권과 맞서 싸우던 시절 상도동 자택은 가택연금의 장소로, 또 동료의원들과 모여 당론을 결정하던 곳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수많은 정치거물들을 정치권에 입문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무현ㆍ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4월 13대 총선 때 당시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김 전 대통령에게 영입돼 부산 동구에서 금뱃지를 달았다.

극과 극 평가
역사 뒤안길로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3월 치러진 14대 총선에 민자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과 경쟁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영입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YS의 깜짝 발탁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 전 대통령이 정주영 명예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경쟁자의 품으로 들어간 게 도덕적 논란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의원, 정병국 의원은 여전히 여의도에서 활약하고 있는 상도동계로 꼽힌다. 김 대표와 서 의원은 198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민추협에서 정치경험을 쌓았다. 정 의원은 1987년 대선 때 홍보업무를 담당하며 김영삼의 사람이 됐다. 이외에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정의화 국회의장, 홍준표 경남지사, 안상수 창원시장, 이완구 전 총리도 모두 김 전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김영삼 키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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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