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17)풀무원 화물노동자

“대기업 노예로 살긴 싫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열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풀무원의 화물 노동자 이야기입니다.

영화 <베테랑>은 화물 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용역 업체를 통해 화물 노동자를 간접 고용는 탓에 화물 노동자는 재벌과 사측 사이에서 핍박받고 탄압당한다.

“죽을 각오로…”

영화속 배 기사는 밀린 월급 420만원을 받기 위해 끝까지 대기업에 맞섰다. 하지만 재벌은 배 기사와 사측 사장에게 권투 글로브를 던지며 싸움을 붙인다. 배 기사는 자식 앞에서 사측 사장에게 흠씬 맞아야 했다. 재벌에게 철저히 농락당하고 만다. <베테랑>에서 비치는 화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단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달 24일 풀무원 화물 노동자 2명이 여의도 국회 앞 30m 높이 광고탑에 올라갔다. 풀무원 화물 노동자인 연제복씨, 유인종씨 등 2명이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풀무원 화물 노동자는 지난 9월부터 사측에게 ‘운전기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50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풀무원의 제품 등을 실어 나르는 화물 기사다. 풀무원의 물류 자회사인 엑소후레쉬와 도급계약을 맺은 운송 업무 대행업체 소속으로 화물 기사는 개인 사업자에 속한다.

풀무원 화물 노동자는 지난 9월4일부터 ▲도색유지 서약서 폐기 ▲노사합의서 성실 이행 ▲노조탄압 중단 ▲화물연대 인정 ▲산재사고 보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임종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 충북지부 음성진천지회장은 “풀무원은 우리(화물 노동자)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고공 농성에 들어간 화물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이들이 올라간 광고탑이 있는 파천교 주차장 밑을 찾았다. 연씨와 유씨를 직접 인터뷰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광고탑 주변에 병력을 배치했으며, 외부인 접근을 막았다. 또 광고탑 주변 에어쿠션도 설치해 놨다. ‘고공 농성 중인 2명이 행여나 다칠까 설치 했나’ 싶었다.

임 지회장은 “내일(27일) 있을 박근혜 대통령 국정 연설 때문에 에어쿠션을 설치한 것이다”며 “행여 위에 올라간 조합원이 자살하면 골치 아프니깐, 경찰까지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풀무원과 화물 노동자의 갈등은 노조활동에서부터 시작됐다. 임 지회장은 “풀무원이 노조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지난 1월 ‘도색유지 서약서’를 제시했다”며 “이에 불응할 시 배차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혔다”고 말했다. 풀무원 로고(CI) 도색이 되어있는 제품 운송 화물차량은 그렇지 않은 차량보다 약 5000만원가량 더 비싸다. 즉 풀무원 제품을 운송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화물 노동자들이 풀무원 로고를 5000만원이나 들여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 풀무원 측은 지난 1월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을 종료한 이후 화물 차량에 풀무원 로고를 지우고 백색으로 도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풀무원은 도색유지 서약서를 작성하면 풀무원 로고를 유지할 수 있다고 화물 노동자에게 통보했다.

여의도 국회 앞 광고탑서 목숨건 고공농성
운전기사 처우개선 요구…사측은 묵묵부답

하지만이 도색유지 서약서에는 화물 노동자에게 불리한 온갖 조항이 들어가 있다. ‘화물차량의 풀무원 로고(CI)를 현수막, 스티커 부착 등으로 훼손 시 월 운송료 2배의 금액을 즉시 지급’ ‘3일 이내 원상복구하지 않을 경우 3일 초과 일부터 월 운송료의 1/30씩 과징금 배상’ ‘운송원 교체(계약해지) 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임 지회장은 이를 두고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사측이 강요한 노예 계약서다”고 말했다.

그동안 화물 노동자는 풀무원에 산재 보험 가입 및 대치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임 지회장은 “장시간 운행과 살인적인 노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못 쉰다”며 “상하차 작업은 운전기사들의 일이 아니지만, 풀무원에서 상하차 인력을 감축하면서 운전기사들이 상하차까지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몇몇 화물 노동자는 상하차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화물 노동자인 김모씨는 지난해 상하차를 하다가 손가락을 골절당해 15일 가량 입원 후 3개월 동안 깁스를 했다. 이 때문에 치료 기간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치료비와 요양비 등을 본인 부담했다. 또 일하지 못한 기간 동안 발생하는 대차 비용도 김씨가 부담해야 했다.

당시 김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뼈가 붙으려면 3개월은 걸린다고 했지만, 퇴원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월급도 못받으면서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부담하고 대차비용을 하루에 5만원씩 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그 동안 노조탄압을 계획적으로 했다는 의혹을 샀다. 풀무원은 현제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에 가입해 있다. 임 지회장은 “풀무원은 화물연대 노조활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측은 조합원들을 매수하여 ‘사단법인 바른 먹거리’를 설립하는 데 관여했다”며 “이게 생긴 이후 조합원 절반이 여기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풀무원은 CCTV와 드론을 이용한 노조활동 감시, 불법 용역경비 투입, 조합원 폭행 등 노조 활동을 무력화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현재 고공 농성 중인 연씨는 “풀무원과 대화로 풀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 진전도 없고, 풀무원은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왜 굳이 국회 앞에서 고공 농성을 하느냐’는 질문에 “탄압 받는 많은 노동자가 최후의 선택으로 고공 농성을 택했다”며 “아직 가족들에게 고공 농성 중이라고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연씨는 국회 앞을 택한 또 다른 이유로는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때문이라고 꼽았다. 연씨는 “원혜영 의원은 풀무원 창업주다. 남승우 풀무원 대표이사와도 친구다. 지금까지 원 의원에게 그렇게 요청했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편 원 의원은 풀무원 지분을 17년 전에 전량 매각해 이번 노조 탄압과 무관하다. 

풀무원의 노조 탄압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문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제 노동자단체 등 해외 곳곳의 노동자단체도 풀무원을 규탄하고 불매운동 동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2∼16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 본부에서 열린 도로운수 부문 안전 보건에 대한 노사정 회의에서 화주들의 횡포와 화물 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도로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주요 의제로 토론됐다. 특히 토론과정에서 풀무원 노동자의 고통과 파업투쟁이 여러 차례 언급됐다.

“대화하고 싶다”

풀무원 불매운동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유럽 등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팀스터노조, 호주, 네덜란드, 벨기에 등 해외 운수노조들은 최근 풀무원 사태 동영상을 SNS를 통해 조합원에게 배포하고 연대를 호소하며 풀무원제품 불매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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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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