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17)풀무원 화물노동자

“대기업 노예로 살긴 싫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열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풀무원의 화물 노동자 이야기입니다.

영화 <베테랑>은 화물 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용역 업체를 통해 화물 노동자를 간접 고용는 탓에 화물 노동자는 재벌과 사측 사이에서 핍박받고 탄압당한다.

“죽을 각오로…”

영화속 배 기사는 밀린 월급 420만원을 받기 위해 끝까지 대기업에 맞섰다. 하지만 재벌은 배 기사와 사측 사장에게 권투 글로브를 던지며 싸움을 붙인다. 배 기사는 자식 앞에서 사측 사장에게 흠씬 맞아야 했다. 재벌에게 철저히 농락당하고 만다. <베테랑>에서 비치는 화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단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달 24일 풀무원 화물 노동자 2명이 여의도 국회 앞 30m 높이 광고탑에 올라갔다. 풀무원 화물 노동자인 연제복씨, 유인종씨 등 2명이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풀무원 화물 노동자는 지난 9월부터 사측에게 ‘운전기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50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풀무원의 제품 등을 실어 나르는 화물 기사다. 풀무원의 물류 자회사인 엑소후레쉬와 도급계약을 맺은 운송 업무 대행업체 소속으로 화물 기사는 개인 사업자에 속한다.

풀무원 화물 노동자는 지난 9월4일부터 ▲도색유지 서약서 폐기 ▲노사합의서 성실 이행 ▲노조탄압 중단 ▲화물연대 인정 ▲산재사고 보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임종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 충북지부 음성진천지회장은 “풀무원은 우리(화물 노동자)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고공 농성에 들어간 화물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이들이 올라간 광고탑이 있는 파천교 주차장 밑을 찾았다. 연씨와 유씨를 직접 인터뷰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광고탑 주변에 병력을 배치했으며, 외부인 접근을 막았다. 또 광고탑 주변 에어쿠션도 설치해 놨다. ‘고공 농성 중인 2명이 행여나 다칠까 설치 했나’ 싶었다.


임 지회장은 “내일(27일) 있을 박근혜 대통령 국정 연설 때문에 에어쿠션을 설치한 것이다”며 “행여 위에 올라간 조합원이 자살하면 골치 아프니깐, 경찰까지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풀무원과 화물 노동자의 갈등은 노조활동에서부터 시작됐다. 임 지회장은 “풀무원이 노조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지난 1월 ‘도색유지 서약서’를 제시했다”며 “이에 불응할 시 배차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혔다”고 말했다. 풀무원 로고(CI) 도색이 되어있는 제품 운송 화물차량은 그렇지 않은 차량보다 약 5000만원가량 더 비싸다. 즉 풀무원 제품을 운송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화물 노동자들이 풀무원 로고를 5000만원이나 들여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 풀무원 측은 지난 1월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을 종료한 이후 화물 차량에 풀무원 로고를 지우고 백색으로 도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풀무원은 도색유지 서약서를 작성하면 풀무원 로고를 유지할 수 있다고 화물 노동자에게 통보했다.

여의도 국회 앞 광고탑서 목숨건 고공농성
운전기사 처우개선 요구…사측은 묵묵부답

하지만이 도색유지 서약서에는 화물 노동자에게 불리한 온갖 조항이 들어가 있다. ‘화물차량의 풀무원 로고(CI)를 현수막, 스티커 부착 등으로 훼손 시 월 운송료 2배의 금액을 즉시 지급’ ‘3일 이내 원상복구하지 않을 경우 3일 초과 일부터 월 운송료의 1/30씩 과징금 배상’ ‘운송원 교체(계약해지) 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임 지회장은 이를 두고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사측이 강요한 노예 계약서다”고 말했다.

그동안 화물 노동자는 풀무원에 산재 보험 가입 및 대치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임 지회장은 “장시간 운행과 살인적인 노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못 쉰다”며 “상하차 작업은 운전기사들의 일이 아니지만, 풀무원에서 상하차 인력을 감축하면서 운전기사들이 상하차까지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몇몇 화물 노동자는 상하차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화물 노동자인 김모씨는 지난해 상하차를 하다가 손가락을 골절당해 15일 가량 입원 후 3개월 동안 깁스를 했다. 이 때문에 치료 기간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치료비와 요양비 등을 본인 부담했다. 또 일하지 못한 기간 동안 발생하는 대차 비용도 김씨가 부담해야 했다.

당시 김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뼈가 붙으려면 3개월은 걸린다고 했지만, 퇴원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월급도 못받으면서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부담하고 대차비용을 하루에 5만원씩 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그 동안 노조탄압을 계획적으로 했다는 의혹을 샀다. 풀무원은 현제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에 가입해 있다. 임 지회장은 “풀무원은 화물연대 노조활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측은 조합원들을 매수하여 ‘사단법인 바른 먹거리’를 설립하는 데 관여했다”며 “이게 생긴 이후 조합원 절반이 여기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풀무원은 CCTV와 드론을 이용한 노조활동 감시, 불법 용역경비 투입, 조합원 폭행 등 노조 활동을 무력화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현재 고공 농성 중인 연씨는 “풀무원과 대화로 풀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 진전도 없고, 풀무원은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왜 굳이 국회 앞에서 고공 농성을 하느냐’는 질문에 “탄압 받는 많은 노동자가 최후의 선택으로 고공 농성을 택했다”며 “아직 가족들에게 고공 농성 중이라고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연씨는 국회 앞을 택한 또 다른 이유로는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때문이라고 꼽았다. 연씨는 “원혜영 의원은 풀무원 창업주다. 남승우 풀무원 대표이사와도 친구다. 지금까지 원 의원에게 그렇게 요청했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편 원 의원은 풀무원 지분을 17년 전에 전량 매각해 이번 노조 탄압과 무관하다. 

풀무원의 노조 탄압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문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제 노동자단체 등 해외 곳곳의 노동자단체도 풀무원을 규탄하고 불매운동 동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2∼16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 본부에서 열린 도로운수 부문 안전 보건에 대한 노사정 회의에서 화주들의 횡포와 화물 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도로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주요 의제로 토론됐다. 특히 토론과정에서 풀무원 노동자의 고통과 파업투쟁이 여러 차례 언급됐다.

“대화하고 싶다”

풀무원 불매운동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유럽 등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팀스터노조, 호주, 네덜란드, 벨기에 등 해외 운수노조들은 최근 풀무원 사태 동영상을 SNS를 통해 조합원에게 배포하고 연대를 호소하며 풀무원제품 불매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