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⑤>고진감래 끝 승리 염홍철 대전광역시장

칠전팔기 오뚝이 시장의 대전 살림살이 “빛난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광역시장에 자유선진당 염홍철 후보가 46.7%의 득표율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4년 전 선거에 낙선한 후 보냈던 고통의 시간을 만회한 순간이었다. “시민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통해 대전 발전을 이뤄내겠다”는 염홍철 대전시장. 그의 족적을 따라감과 동시에 그가 대전을 위해 제시한 비전에 주목해봤다.

RCY 충남학생협의회 회장 시절 ‘스승의 날’ 전국화
‘대전엑스포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엑스포 시장’ 별명


염홍철 대전시장은 1944년 8월 충남 논산 채운면,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논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던 그는 대전으로 진학했다. 늘 문학인이 되기를 꿈꿔왔던 그이지만 집안 형편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때문에 대학진학을 꿈도 꾸지 못했던 그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전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염 시장은 전교 학생회장과 JRC 대전지구 연합회장직을 도맡아 하면서 교우관계를 넓힌 한편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특히 대전시내 고등학교에서 활동력이 있는 학생들로 이뤄진 ‘한다발회’는 오늘날까지 끈끈한 정과 신의로 이어져 오고 있다.

‘스승의 날’의 뿌리가 된 ‘은사의 날’을 전국화 시킨 것도 이때의 일이다. 대전공고 3학년 RCY충남학생협의회 회장을 지내던 그는 RCY총회에 참석해 매년 5월24일 충남 일부 학교에서 행해지던 ‘은사의 날’을 전국 행사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는 RCY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고 이듬해부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은사의 날’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5년 ‘은사의 날’은 명칭과 기념일이 ‘스승의 날’, 5월15일로 각각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결국 그는 대학진학을 결심했다. 기계 만지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특차생으로 당당히 입학한 그는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맞게 된다. 한일국교 정상화회담을 반대하는 학생시위인 ‘6·3사태’가 바로 그것. 염 시장이 학생시위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굴욕외교가 첫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경찰이 시위학생에게 냉차를 건넨 노점 할머니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정부의 부도덕성에 울분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시위 참여가 문제가 되면서 결국 그는 대학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게 됐고 백마부대 일원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제대와 동시에 복학한 그는 지식과 소양을 쌓는 데 열중했다. 공부가 좋았던 염 시장은 대학 졸업 후에도 학문에 매진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중앙대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성균관대,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며 경험을 쌓은 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경남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뿐만 아니라 교수 재직시절에도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유학하며 학문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특히 당시 학계의 관심사였던 선진국과 후진국의 정치ㆍ경제발전 이론인 ‘종속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제3세계와 종속이론>을 저술했다. 이 책은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는 등 일대 파문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학자로 쌓아온 이론과 경험을 국가발전에 활용하고 싶었던 그는 공무원이라는 새로운 항로에 들어설 것을 결심했다.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첫 공직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후 정치기획, 남북관계, 여성문제, 당정협조 등의 분야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다.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대표가 되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북한 대표들과 협상을 벌였고 국제 의원연맹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일국교 정상화회담
반대시위 적극참여

그렇게 5년 간 중앙행정을 꾸려오던 그에게 제2의 고향인 대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1993년 마지막 대전 관선시장으로 임명된 것.

2년 동안 대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93 대전 엑스포’를 성공으로 이끌면서 ‘엑스포 시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 정부대전청사를 기공한 그는 제75회 전국체전을 성공리에 치러냈다. 뿐만 아니라 대전의 세계화를 핵심으로 한 ‘21세기 대전 발전 구상’을 확정하기도 했다. 이런 천고의 노력 끝에 그의 관선시장 시절은 ‘대전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긴 시기’로 평가 받게 됐다.

이후 한국공항공단이사장으로 발탁된 염 시장은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계획을 수립해 국제적 허브공항을 만들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중부권의 세계화와 발전의 일환으로 청주국제공항을 완공하는 등 한국공항의 선진화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분투했다.

이후 그는 늘 꿈꿔 오던 대전발전의 뜻을 펼치기 위해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 한밭대 총장으로 2년 간 재임하면서 교명변경과 함께 대학 발전의 의지를 결집한 결과 한밭대를 중부권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밭대가 국립대학 종합평가에서 2년 연속으로 우수대학에 선정돼 수십억 원의 재정지원을 받아내고 전국 산업대학 특성화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제3세계 종속이론>
베스트셀러 저술

국립대 총장직을 마친 그는 지난 2002년 대전시장에 도전해 대전시민의 선택을 받게 됐다. 그는 대전이 ‘한국의 신중심도시’로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시정을 이끌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러다보니 임기 4년 간 개인적 시간을 쓴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재임시절 충청권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 시민들과 더불어 노력했다. 그 결과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또 타시도와 정치권의 끊임없는 분산지정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유일의 대덕연구개발 특구를 지정케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가적 경제성장 기지로 육성하는 데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이 밖에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개통과 민·관 자율참여 복지네트워크인 복지만두레, 시내버스 준공영제, 3대하천 생태조성사업, 대전 전역의 공원화사업 등도 시민들과의 공감과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룬 성과다. 무엇보다 시민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염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선3기 대전시장을 퇴임한 이후 염 시장은 봉사활동과 독서, 집필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2006년 9월 장관급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제7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때 그는 중소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을 파악하고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여 나감으로써 중소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

2007년 11월 퇴임 직전까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찾아다니며 경영주와 근로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정부에 바라는 내용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중소기업인들의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를 했고 여러 성과가 뒤따랐다.

염 시장은 스스로를 ‘소수파(minority)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시골출신(논산 채운초, 강경중 졸업)으로 고등학교(대전공고)와 대학 내내 같은 지역 출신이 적어 늘 소수에 속했고, 교수 시절 역시 동료교수에 비해 그럴듯한 배경을 갖지 못한 점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이유다. 중앙공직자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끊임없는 노력, 자기계발로 소수파 인생 뛰어넘었다”
“소통은 화합을 통해 대전발전의 원천을 이뤄내겠다”


하지만 그는 이런 소수파적 인생을 뛰어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에 대해 그는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라고 설명했다.

염 시장의 하루는 대학교수시절부터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했다. 강의가 없는 방학에는 더 많은 책을 읽고 논문을 썼다. 중앙공직자 시절이나 관선 대전시장, 한국공항공단 이사장, 국립 한밭대 총장, 민선3기 시장,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서도 “나는 열심히 일을 해야만 생존하는 사람”이라는 일념으로 뛰었다.

또 한 가지 염 시장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나눔과 섬김’이 바로 그것. 이는 그가 좌절할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언제나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는 염 시장. 그런 그가 이번에 대전시민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앞으로 대전의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민선5기를 맞은 대전의 10대 주요 정책과제는 ▲5년 간 10만 개 일자리 창출 ▲원도심 활성화 ▲엑스포 과학공원 활성화 ▲도시철도 2호선 조속한 건설 ▲영유아 보육 및 교육의 의무교육수준 확대 ▲첨단의료ㆍ관광도시 육성 ▲호수공원 및 스포츠 테마파크 조성 등 서남부권 개발 ▲와인&뮤직 축제 등 명품축제도시 육성 ▲복지재단(위원회) 설립 및 복지만두레 부활 ▲3대하천 생태복원 및 꽃길 조성 등이다.

염 시장은 와인 축제와 관련해 “거부반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 구상하는 와인&뮤직축제는 대전 근교의 포도생산단지 와인업체와 막걸리 등 전통주를 결합시키는 것”이라면서 “여기에 음악 축제를 접목해 세계인이 찾는 명품축제로 발전시키겠다”라고 밝혔다.

막대한 예산으로 사업성이 불투명했던 호수공원 조성 계획에 대해서는 “서남부권 호수공원 조성을 위해 실현가능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법령과 재원마련 방안을 적극 검토해 대전시의 역점사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끊임없는 노력
긍정적인 사고

이어 엑스포과학공원 활성화 방안과 관련, HD드라마 타운 조성 등 다른 공약을 반영해 엑스포공원을 교육과 과학, 첨단 놀이기능을 갖춘 테마공원으로 만드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또 세종시 원안을 적극 추진하고 기업 유치를 위해 부지를 확보하는 한편 의료관광산업 활성화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염 시장은 “시민이 시정에 직접 참여하는 ‘민·관 협치시대’를 활짝 열고 소통과 화합을 이뤄내 대전발전의 원천을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이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시민과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염 시장. 그의 말처럼 대전시민과 더불어 염원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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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