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속내 궁금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어떻게 일궜는데 네놈들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그동안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두 아들 사이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창업자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두 아들은 기어코 아버지를 가운데 두고 ‘형제의 난’을 벌였다. 장남은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고, 차남은 그런 아버지를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했다. 자식들의 재산 싸움과 복잡한 가계도로 신 총괄회장의 노년은 복잡하기만 하다.

신 총괄회장은 1922년에 태어났다. 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고 경남도립 종축장에 말을 돌보는 기수보로 일했다. 
 
단돈 38엔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 총괄회장이 19살이 되던 1941년 돈을 벌 작정으로 단돈 83엔을 들고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조선인’이라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일본에 있는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때 당시만 해도 작가를 꿈꾸는 문학도였다. 돈만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특히 세계적인 문학가인 괴테를 동경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였다. 그는 결국 기술만이 살길이라 느끼며,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신 총괄회장은 1944년 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었다.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은 신 총괄회장에게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제안했다. 그 노인은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미군의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신 총괄회장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많은 한국인은 귀국에 올랐다. 신 총괄회장 친구들 역시 “귀국선을 타고 돌아가자”며 종용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다며, 일본에 남았다. 그는 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는 커팅오일을 응용해 비누와 크림을 만들어 팔았다. 신 총괄회장이 만든 비누는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으며, 감사의 표시로 집을 한 채 사서 선물했다. 이때부터 그의 사업가 기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 총괄회장은 남은 밑천으로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린다. 유지류나 특수고무 같은 물질들을 연구했다. 당시 시판된 껌들을 연구했는데, 이들의 장점을 모두 집약해서 껌을 개발했다. 신 총괄회장이 개발한 껌은 인기가 좋았다. 과자점 주인들이 서로 납품하겠다고 신 총괄회장의 연구소 앞에는 새벽부터 줄설 정도였다. 신 총괄회장은 투자자를 모집에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려 껌을 팔기로 했다. 
 
껌으로 세운 재계 5위…무너진 성공신화
장·차남 경영권 싸움…아버지 누구 편?
 
1948년 신 총괄회장은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를 탄생시켰다. 롯데라는 이름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샬롯데 이름에서 유래됐다. 껌회사에 붙인 이름 치곤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 한 신 총괄회장의 문학 작가의 꿈을 투영한 것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껌으로 시작한 롯데는 오늘날 재계 롯데그룹의 효시였다.
 
신 총괄회장은 껌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롯데 상사, 롯데 부동산, 롯데아도,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유통업을 망라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의 롯데 오리온스를 인수해 현재까지 3대 구단주로 소유하고 있다. 
 
1965년 한일수교로 일본 기업이 한국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자 1966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에서 라면과 과자로 종합 식품기업의 토대를 다져갔다. 그 뒤 한국에서도 사업을 다른 분야로 확장한다. 1973년 호텔롯데, 롯데 전자, 롯데 기공을 설립. 1974년 롯데 산업, 롯데 상사, 롯데 칠성 음료를 설립한다. 이외 한국 후지 필름, 대홍기획 등 건설사와 화학 공장 등 식품·유통·관광·건설을 아우르는 국내 재계 5위 종합 그룹으로 성장했다.  
 
신 총괄회장은 나이를 먹어가며, 그의 꿈을 대부분 이뤘다. 하지만 마지막 꿈이 남았다. 세계 최고 높이의 테마파크를 짓는 것이었다. 이른바 지금의 ‘제2롯데월드’였다. 
 

끝없는 사업 확장
제2롯데 화룡정점
 
신 총괄회장이 제2롯데월드 사업을 구상한 것은 1987년부터였다. 당시 계획은 잠실 롯데월드 부지 옆에 108층 높이의 마천루를 짓겠다는 거였다. 1994년부터 본격적인 사업 준비를 했다. 하지만 1998년 암초에 부딪혔다. 인근에 있는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공군 기지로 쓰이는 곳이라, 근처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전투기 조종사 시야 확보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근처에 고층 빌딩 높이 제한으로 부지 허가를 받기 어려웠다. 게다가 외환 위기도 겹쳐 자금 조달도 어려웠다. 

신 총괄회장은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김대중정부 말기 사업을 다시 추진했다. 계획도 더 키웠다. 계획했던 108층 높이(450m)를 123층 높이(555미터)로 수정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2006년 착공식을 했다. 하지만 서울공항 활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탓에 공사는 곧바로 중단됐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건물 높이 제한 규제가 풀렸다. 2009년 최종 허가가 났다. 
 
2013년부터 제2롯데월드는 부분 개장했다. 당초 2015년 12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약 1년 연기되어 2016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 건물은 그동안 한반도 최고층 빌딩이었던 높이 330m, 101층의 평양 류경호텔을 제치고 한반도 최고 높이의 건물이 되며, 완공 시 세계에서 6번째(555m)로 높은 빌딩이 된다. OECD 국가 중에서는 미국의 1WTC를 제치고 가장 높은 건물이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500m)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를 개장하고 온갖 사고가 잇따랐다. 거푸집 장비가 무너져 노동자가 사망했으며, 배관이음 폭발, 추락사 등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또 메가기둥, 피복 균열, 석촌호수 수위 변화, 석촌지하차도 싱크홀 등 안전성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여론이 나빠지자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으며, 서울시가 나서기도 했다. 정밀 안전 진단을 실시했고, 재개장 허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롯데월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신 총괄회장은 197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사업이 점차 확장되자 홀수 달엔 한국에서, 짝수 달엔 일본에서 머물며 셔틀경영을 펼쳤다. 이 때문에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93세가 된 현재까지 경영일선을 지켜왔다.
 
신 총괄회장은 성공한 사업가인 반면, 가족사는 전체적으로 불운하다. 신 총괄회장은 유난히 형제간 다툼이 심해 '비운의 빅 브라더'로 불리기도 했다. 롯데그룹 초창기 신 총괄회장은 남동생을 모두 경영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크고 잦은 분쟁이 이어지면서 동생들은 모두 분가(分家)했다. 남동생은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다.
 
아래 동생인 신철호 전 롯데사장은 1958년 신 총괄회장이 국내에 없는 틈을 타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롯데를 인수하려다 발각돼 구속됏다. 이후 신격호 회장과 틀어진 그는 작은 제과 회사를 차려 독립했고, 지금은 고인이 됐다. 3남 신춘호 회장과는 현재 전혀 교류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불씨는 ‘라면’이었다.
 
신춘호 회장은 일본 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신격호 회장의 만류에도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1965년 아예 롯데공업을 차리며 기존 롯데의 라면 사업과 경쟁을 벌이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신춘호 회장은 롯데공업을 농심으로 개명하면서 롯데 이름을 포기했다.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깊어 신춘호 회장은 아직까지 부친 제사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롯데제과ㆍ롯데칠성ㆍ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를 두루 거쳤고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운영본부의 부회장을 맡는 등 사실상 신 총괄회장을 대신해 한국 롯데 경영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다.
 
그러나 지난 1996년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치르며 사이가 벌어졌다. 이후 그는 그룹의 요직에서 밀려났고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으로 취임했다. 롯데우유는 롯데 브랜드 사용 금지 요청에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꾸면서 롯데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복잡한 갈등구도

복잡한 가족관계
 
신 총괄회장은 24살 터울 막내 여동생 부부와도 갈등의 골이 깊다. 막내 매제인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과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부부를 상대로 샤롯데 엠블럼 사용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갈등을 겪었다. 특히 롯데그룹이 2007년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관광업에 진출해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신 총괄회장의 가족사 또한 복잡하다. 신 총괄회장은 18세 때 노순화와 결혼했다. 노씨는 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인 신영자씨의 모친이다. 신 총괄회장은 노씨와 결혼을 한 상태에서 1941년 돌연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 딸인 다케모리 하쓰코와 1950년 중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이 된 하쓰코는 1945년 9월2일 일본 항복 문서 조인식에 참석했다가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다. 그녀의 부친은 일본 육군대좌로 1944년 사이판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졌다.
 
 
또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성공한 데에는 하쓰코의 친정 도움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신격호는 하쓰코와 결혼하면서 그의 외삼촌의 성씨를 따 시게미쓰 다케오로 창씨개명을 했고, 부인 역시 남편 성을 따른다는 일본의 관습에 따라 시게미쓰로 성씨를 바꿨다. 타국에서 사업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일본 명문가와 피를 섞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으로 귀화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신동주(히로유키), 신동빈(아키오) 형제 역시 한국 국적이다. 신격호가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는 사이, 첫 번째 부인인 노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동안 잡음 끊이지 않더니…
결국 갈등 수면 위로 떠올라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씨도 빼놓을 수 없다. ‘롯데의 별당마님’으로 불리는 서미경씨는 제1회 미스롯데(1977) 출신으로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돌연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가 37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으로 깜짝 등장해 구설에 올랐다. 그는 백화점과 영화관 매점 사업권 등 알짜 사업을 소유하며 그룹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딸 신유미씨를 신격호의 호적에도 올릴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고 한다.
 
 
이번 ‘형제의 난’으로 드러난 불투명한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가 드러났다. 특히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첨예한 가운데 롯데그룹 지배구조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혔다. 첫째 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씨의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도 롯데그룹의 소수지분을 갖고 있어 팽팽한 지분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일단 재계 안팎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 시도를 무산시킨 차남 신동빈 회장의 절대 우세를 점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분구조 등을 고려할 때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지분을 확보한 뒤 신동빈 회장을 향한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룹의 총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롯데판 왕자의 난'이 사실상 본 궤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대표격인 롯데쇼핑의 경우 신동빈 회장(13.46%)과 신동주 전 부회장(13.45%)의 지분율은 사실상 동일하다. 롯데제과도 신동빈 회장은 5.34%, 신동주 전 부회장은 3.92%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칠성은 각각 5.71%와 2.83%다. 무엇보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비상장 법인 광윤사의 경우 현재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은 29%씩, 신 총괄회장은 3%를 보유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지분율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오랜 기간 광윤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을 지배해 왔다. 따라서 신 총괄회장의 의중에 따라 후계구도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의 행보도 변수로 꼽힌다. 앞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난달 27일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을 주도할 때 신 이사장 역시 조카인 신동인(6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과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재계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형제자매도 신동빈 회장의 반대편에 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영자 이사장이 연합할 경우 한국 롯데그룹 일부 계열사에서는 신 회장의 지분율을 앞서게 된다.
 
경영승계 임박
자녀끼리 혈투
 
한편 지난달 30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자신을 다시 롯데홀딩스 사장에 임명한다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서명 지시서를 공개했다. 신 총괄회장이 이 지시서로 이사들을 해임시키려 했으나 이사들이 불복하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게 신 전 부회장의 주장이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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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