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400홈런 달성 국민타자 이승엽

‘라이언킹’ 살아있는 전설이 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라이언킹’ 이승엽이 기어이 400홈런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이다. 한국과 일본 무대 홈런을 합치면 559개다.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400 고지는 일찌감치 넘었을 것이다. 이승엽이 그동안 기록한 1호 홈런부터 400호 홈런까지, 그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본다.  
 
 
이승엽(40)은 청소년 시절 투수와 타자로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좌완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93년 청룡기대회에서는 발군의 실력으로 맹활약하며 12년 만에 모교에 우승기를 안겼다. 그는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1994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승엽은 거듭 활약을 펼치며 우승기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고3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타자로 전향했다. 당시 부상이 오늘의 금자탑을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 1∼100호  ]
[1995-1999년]
 
이승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능에서 총점 40점 이하를 기록해 대학 진학 자격을 잃게 됐다. 이 때문에 이승엽은 연고 지명을 통해 계약금 1억3200만원에 연봉 2000만원의 조건으로 1995년 연고팀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승엽은 좌완투수 유망주였지만 경북고등학교 시절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했다. 삼성 입단 초기부터 투수훈련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우용득 감독과 타격코치는 이승엽에게 배팅 재능이 있음을 알아봤다. 사실상 그는 청룡기 결승전에서 결승홈런을 쳤으며,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때도 타자로만 활약해 홈런상과 득점상을 받은 바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돌연 이승엽을 타자로 전향시켜 1년간 타자로 기용한다.  
 

그의 첫 번째 홈런은 1995년 5월2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를 상대로 뽑아냈다. 당시 그는 만으로 18세였다. 이승엽은 데뷔 첫 시즌 타율 0.285에 13홈런으로 신인으로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같은 팀인 이동수에게 밀려서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1996년 삼성라이온즈에 백인천 감독이 부임했다. 백 감독은 이승엽에게 외다리타법을 전수했다. 그는 두 번째 시즌을 조정기로 보내며 전 시즌보다 저조한 기록으로 홈런 9개를 치며 3할의 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이승엽이 다음 시즌 홈런제조기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400호 홈런 신기록
영원한 홈런왕…일본까지 합치면 559개
 
1997년 이승엽은 본격적으로 장타에 눈을 뜬다. 이때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화려한 타선의 중심축에 서게 된다. 그는 3할을 쳐내는 정교함과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타격 본능으로 팬들에게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해 이승엽은 홈런 23개(1위), 타점 114개(1위), 최다안타 170개(1위)를 기록한다. 정규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1998년 이승엽의 기량은 더욱 무르익었다. 이미 전반기에만 홈런 25개를 때리며 2위와 8∼9개 차이를 벌렸다. 홈런왕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뒤에서 좇아오던 두산 베어즈의 타이론 우즈가 9월과 10월에만 11개의 홈런을 추가하면서 이승엽을 앞질렀다. 이에 반해 이승엽은 후반기 들어 좀처럼 홈런을 치지 못했다. 결국, 그해 홈런왕은 타이론 우즈가 됐다. 이승엽은 38개 홈런과 102타점을 기록했다.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을 빼앗긴 뒤 이승엽에게 남은 것은 독기뿐이었다. 그는 1999년 5월5일 홈구장인 대구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100홈런을 뽑아냈다. 당시 22세로 최연소 100호 홈런 고지를 정복했다. 
 

[101∼200호 ]
[1999-2001년]
 
이승엽은 1999년 8월까지 약 3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였다. 7월에 이미 전년 타이론 우즈가 세운 42개 홈런을 돌파했다. 그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50홈런을 치며 신기원을 이뤄냈다. 한화 이글스의 장종훈이 40홈런 시대를 연 지 7년 만에 기록을 깬 것이다. 그는 홈런 54개(1위), 타점 123개(1위), 득점 128점(1위), 출루율 0.458(1위), 장타율 0.733(1위)을 기록하며 타격 5관왕에 올랐다.
2000년과 2001년은 이승엽에게 위기의 시기였다.
 
 
외다리타법의 약점이 드러나자 2000년에는 홈런 36개와 2001년에는 홈런 39개를 기록했다. 지나 시즌 50홈런을 기록한 선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 타율도 0.279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만 24세이던 2001년 6월21일 대구 홈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200홈런을 달성했다. 외다리타법이 약점이 됐지만 꾸준한 기량을 과시했다.
 
또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일본과 예선전에서 괴물투수로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렸고,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다시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때려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02년 시즌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경쟁을 벌여 홈런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다. 그해 한국시리즈 LG 트윈스와의 6차전 경기에서 마지막 타석 전까지 20타수 2안타로 극도의 타격 부진을 겪는다. 9회말 이승엽은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나온 마해영의 끝내기홈런으로 이어져 삼성 라이온즈가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수훈을 세웠다. 비록 상대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지만, 이승엽은 시즌MVP, 홈런왕, 골든글러브 1루 부분을 수상했다. 
 
[201∼300호 ]
[2001-2003년] 
 
이승엽에게 2003년은 전성기였다. 타격폼을 수정한 그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6월22일 대구구장, 이날은 이승엽의 300홈런 볼을 잡기 위해 관중석에 잠자리채가 등장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팀이 2대3으로 뒤지던 8회말 이승엽은 초구 직구가 가운데로 몰리자 주저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홈런임을 직감한 그는 두 팔을 번쩍 들며 경기장을 돌았다. 300홈런을 축하하는 축포가 달구벌 경기장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날은 단순히 300홈런만 기록한 날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이승엽의 경기수는 1075경기로 아쉽게도 일본 다부치 고이치가 기록한 세계 최소기록인 1072경기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승엽의 당시 나이는 26세로 일본 왕정치(27세)의 세계 최연소 300홈런 기록을 무려 5개월 앞당겼다. 
 
이날 동점이던 9회말 2사 만루에서 생애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의 대기록을 자축했다. 9시즌 만에 300홈런을 달성한 이승엽은 종전 장종훈이 14시즌 만에 달성한 기록을 5시즌이나 앞당겼다. 경기수로는 490경기, 타수로는 1271타수를 줄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해 이승엽이 몇 개의 홈런을 치느냐로 모아졌다. 그는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2003년 9월25일 광주 KIA전에서 이승엽은 아시아 한 시즌 최다 55홈런을 뽑아냈다. 그 당시 이승엽의 홈런 타구가 많이 나오는 우측 외야 쪽부터 관중석이 꽉 채워졌다. 관중들은 그곳에서 역사적인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를 들고 있었다. 이승엽의 55홈런볼의 가치는 현재 1억2500만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승엽은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한 일본 왕정치(55홈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승엽이 한 번만 홈런을 때리면 아시아의 신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당시 모든 관심은 이승엽의 신기록 달성 여부에 모였다. 수십명의 기자들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매일같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좀처럼 남은 홈런 한 개를 추가하지 못했다. 
 
10월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는 이승엽이 홈런을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날 이승엽은 2회초 공격 4번타자로 나왔다. 선발투수가 던진 공을 통타한 그는 드디어 56호 홈런을 기록했다. 일본의 왕정치가 1964년 55개의 홈런을 터뜨린 후 무려 39년 만에 나온 대 신기록이었다. 이날은 이승엽이 ‘국민타자’로 거듭난 날이었다.
 
[301∼400호 ]
[2004-2015년] 
 

이승엽은 이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03년 시즌이 종료되고 FA자격을 얻게 됐다. 그의 거취는 야구팬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승엽은 이미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희망하고 있었다. 팬들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인 그가 최고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며 미국 진출은 불투명해졌다.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12월 일본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한다. 이후 약 8년간 일본 무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승엽은 한국에서 화려했던 전성기와 달리 일본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복과 부침이 심했다. 그의 야구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시리즈 우승반지를 껴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2011년 10월21일 이승엽은 기자회견을 열어 8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귀국했다. 그해 12월5일 연봉 8억원, 플러스옵션 3억원에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2012년에는 타율 0.307,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해 여전히 강타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홈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013시즌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는 KIA 타이거즈의 나지완과 결승대결에서 6대2로 이기며, 데뷔 이후 첫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을 맛봤다. 두산 베어스와 맞붙었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타격 부진이 계속되어 7경기에서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에 그쳤다. 2013년 11월1일 대구에서 열린 7차전까지 단 한 점의 타점을 뽑아내지 못하다가 7차전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동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타격자세 교정을 받았고, 그 결과 전년도의 부진을 털고 역대 최고령 3할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며 국민타자의 부활을 알렸다. 2014년 6월14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7월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타점을 쓸어담았다. 9월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역대 최고령 30홈런을, 한 달 후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으로 최고령 시즌 100타점을 돌파했다. 
 
투수서 타자로 전환
세계 최연소 100홈런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하였지만 2차전에서 홈런을 때리며 타이론 우즈를 제치고 포스트시즌역대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시즌 기록은 3할8리 32홈런 101타점을 기록했다. '회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 6월3일 이승엽은 포항야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3회말에 투수 구승민을 상대로 두 번째 타석에 올랐다. 이승엽은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2구를 우익수 뒤로 날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통산 400홈런을 기록했다.
 
개인통산 400홈런은 1982년 KBO리그가 출범한 이후 34시즌 만의 첫 기록으로 이승엽은 1995년 데뷔 이후 13시즌 만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현역선수 중 2위는 NC 다이노스의 이호준으로 그는 299홈런으로 이승엽에 100개 이상 뒤져있다. 
 
역대 KBO에서 30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는 양준혁(351홈런), 장종훈(340홈런), 심정수(328홈런), 박경완(314홈런), 송지만(311홈런), 박재홍(300홈런) 등 총 7명이다. 이승엽을 제외하면 심정수가 15시즌으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고, 박경완은 23시즌을 소화했다.  
 
이승엽의 개인통산 400홈런은 국내에서 처음 나온 기록인 만큼 의미가 깊다. 세계에서 지금까지 400홈런의 위업을 달성한 선수는 총 70명뿐이다. 147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52명. 80년 일본프로야구에서는 18명만이 400홈런의 위업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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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