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어깨 무거운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원내대표

문재인과 궁합은…찰떡? 물과 기름?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신임 원내대표로 이종걸(경기 안양 만안) 의원이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비주류·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4선 의원이다. 지난해 두 차례 원내대표 선거 탈락의 아픔을 딛고 삼수 끝에 제1야당의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1957년 5월22일 이종걸 원내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이 원내대표는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다 안양으로 이사했다. 안양시 만안에 있는 만안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970년 이 원내대표는 만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민변 변호사 활동
99년 정치 입문
 
이 원내대표는 경기중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가 무시험 전형으로 바뀌었다. 그의 어머니는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서울의 예술전문학교인 예원학교 피아노과에 지원 입학시켰다. 중학생 시절 그는 안양에서 서울까지 완행열차 정기권으로 통학했다.  
 
이 원내대표는 예원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예원학교 3학년 무렵부터 예술 전공이 자신의 가야 할 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했다.
 

그의 핏속에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원내대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친구들과 ‘귀 있는 자 들어라’라는 유인물을 만들었다. 학교 교내 전관에 뿌리는 일에 가담했다.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알았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한편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 원내대표는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싶어 이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수학적 재능이 없음을 느끼고 문과로 전과한다. 1976년 2월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다. 
 
1977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성균관대 진학 이후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종로 경찰서의 학생담당 정보과 형사의 주요 시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독립운동 자금을 부치기 위해 마련한 하숙집에 할아버지의 동지가 찾아왔다가 가면 여지없이 종로경찰서 고등계형사가 와서 괴롭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라며 이 원내대표가 형사들의 감시를 받는 것에 대해 슬퍼했다. 그러면서 그의 아버지는 이 원내대표의 행동이 경솔하지 않도록 조심시키면서도 그의 학생운동에 대해 ‘그만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이 원내대표는 대학교에 다니며 아카데미 운동을 했다. 서울 마포지역의 노동자 야학운동에 참여했다. 야학 은강학교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학변자(운동학생들이 시위하다 잡히면 바로 군대로 끌려가는 것)로 군에 징집되어 입대했다. 
 
삼수 끝에 당선 1야당 사령탑 접수
당내 비주류·중도 성향…4선 의원
 
이 원내대표는 양평에서 3년 남짓 복무하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그는 복학 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중퇴했다. 이후 1983년 서울대학교 인문 2계열에 다시 입학했다. 1987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다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학사편입한다.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범 시험을 2년간 준비한 끝에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1989년 졸업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이 원내대표는 사법연수원 2년 차 때부터 변호사 운동을 준비했다. 그 무렵 당시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 변호사를 만난다. 그는 잠시 박 변호사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참여연대’ 설립 기초를 마련했다. 이 원내대표는 참여연대 기초 사항을 작성했다. 
 
1991년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치자마자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서 인권 변호사로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민변의 간사 변호사로 활동하며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인권 관련 사건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김영삼 정부 당시 노동악법 및 개악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시도할 때 안양에서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이를 계기로 모인 시민운동가들로 창립된 안양의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인 ‘안양지역시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서울대 민족활동가 사건, 천주교 기독교 애청사건, 시노맹사건 등 많은 시국 사건을 도맡아 승소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위원으로서 동티모르 인권침해반대투쟁, 간첩조작사건의 재심사건, 양심수석방을 위한 위원회 활동 등 인권운동도 전개했다. 
 
무계파로 분류
투사 이미지도 
 
노동분야의 활동에서도 노동조합의 법률자문을 역임하며 사업자와 임금협상 등 단체교섭 시에 발생하는 노동법률문제를 자문했다. 수많은 해고 무효확인 소송, 임금 소송 등 노동관계 소송을 맡았다. 
 
이 원내대표는 한국 사회 여성의 권리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의 초안을 마련해 입법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을 담당하여 승소했다. 그 공로로 1998년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그는 법제정 분야에서도 성폭력특별법 제정 및 가정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서 여성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초안도 작성했다. 이 때문에 1999년 <여성신문사>가 선정한 ‘여성인권에 가장 기여한 남성 10인’에 선정됐다. 
 
 
1999년 11월 새천년민주당은 이 원내대표를 변호사 20인 중 한 명으로 영입한다. 이듬해 국회의원 총선거에 입후보했다. 
 
2000년 4월 이 원내대표는 제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안양 만안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다. 이때 그는 노무현 후보 비서실 차장이 됐다. 선거 직전인 12월에는 수행실장 역까지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안양 만안구)에 출마해 재선의원이 됐다. 그는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다. 당선 후 열린우리당 원내 수석부대표로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중에게 인지도를 늘렸다.
 

이 원내 대표는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에 재선되고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 위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을 맞으며 종횡무진 했다. 그해 12월 민주당 내 소장파 모임인 민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9년 4월 이 원내대표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신문사 이름과 최고경영자 실명을 거론해 소송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XX일보 X사장을 모셨고, 그 후로 스포츠XX X 사장을 모셨다고 했다. 보고받았나”라고 질문했다. 이 때문에 해당 신문사는 이 원내대표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국 철회하면서 사실상 이 원내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2010년 경기도지사에 예비후보로 입후보했으나 당내 여론에 따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양보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체제가 들어선 6.9전당대회에서 5등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선 한달 앞둔 그해 11월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인적 쇄신 취지로 이해찬 대표 등과 함께 지도부에서 사퇴했다. 
 
이후 김한길 대표 체제에서는 당 정치혁신실행위원장을 맡아 국회의원 지위 남용 금지를 골자로 한 정치혁신의 로드맵을 그렸다. 최근에는 ‘클린 종걸’을 자처하며 야당 의원들에 대한 사정기관 수사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야당탄압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5월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장, 올해 2월 박상옥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장을 잇따라 맡았다.
 
지난 7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 원내대표가 당선됐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경선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7표 가운데 66표를 얻었다. 61표를 얻은 최재성 의원을 8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앞서 1차 투표(128표 참석)에서 이 원내대표 28표, 최 의원은 33표를 각각 얻었다. 하지만 재적 과반(66명) 득표자가 없어 두 사람을 상대로 경선투표가 실시됐다. 역전은 없었다.
 
정치혁신 로드맵
‘클린종걸’ 자처
 
4·29 재보선에서의 참패와 그로 인한 계파 갈등의 위기를 극복하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를 가져올 적임자로 당심은 이 원내대표를 택한 것이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원내대표 3수 끝에 영광을 주셔서 그 힘으로 해나가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어렵고 참담한 상황을 여유 있게 힘 있게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에 패배하고 무시당하고 소수당의 참담한 심정을 더 신중하게 풀어나가겠다”며 “서로 나누고 소통해서 어려운 난국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원내대표 당선으로 대여 관계가 심각한 대척 구도로 기울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현안에 따라 강경 성향이 도드라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선수가 늘어가면서 의회주의자 면모 역시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서다. 이날 당선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 원내대표는 "공적연금의 강화를 먼저 처리하겠다"면서도 "국민의 불편이 없도록 지난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했던 민생 입법들을 이달 중에 처리하도록 합의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이 원내대표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장을 맡았다. 당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개최를 이끌어냈다. 
 
독립운동 할아버지 영향
독재정권 학생운동 주도
 
이 원내대표는 정계 입문 초기에는 당시 다수파였던 DY(정동영)계로 분류됐다. 하지만 18대 국회 이후로는 사실상 계파가 없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는 19대 국회에 들어서는 김한길계로 분류되고 있다. 중도 온건 성향 의원 모임은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에게는 투사의 이미지가 서려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적인 행보로 이 원내대표를 강경 이미지로 기억하는 여당 의원들이 적지 않다. 
 
실제 5명의 원내대표 후보 중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가장 괴롭힌 의원 중 한사람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이 원내대표가 되레 까다로운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내에서 이 원내대표가 ‘럭비공 리더십’ ‘비노 강경파’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제16대 총선 때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한 이 원내대표는 당시 당내 ‘대여 공격수’로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 비판하던 과정 유인촌 문화부 장관 등을 ‘졸개’로 비하했다가 논란을 일으켰다. 또 2012년 때는 트위터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그년’으로 표현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내대표 경선 투표를 앞둔 정견발표에서 "투쟁과 화합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대여 투쟁의 선봉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도 여야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당선 뒤에도 향후 공무원연금개혁 법안 무산에 대해 여당에 책임을 물으며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 생각한다. 야당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을 짓밟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새누리당이 스스로 파기한 약속 불이행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경고했다.
 
약자 위해 뛰었다
국민들 위해 뛴다
 
이번 대여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지는 공무원연금개혁의 향후 처리 과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은 “당장 여야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우윤근 원내대표 시절보다는 갈등과 대결 구도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원내대표도 협상만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원내대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여야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이종걸은?
 
▲서울 종로(1957년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30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기획간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장 
▲경기 안양 만안구 4선 국회의원(16∼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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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