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인사 김장수 신임 주중대사

속옷 갈아 입으랬더니 뒤집어 입었다

[일요시사 취재팀] 김명일·한종해 기자 = "속옷을 갈아 입으랬더니 뒤집어 입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주중대사로 임명한 것을 두고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김 신임 대사는 국가안보실장 시절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켜 경질됐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왜 직접 경질한 인물을 9개월 만에 다시 불러들인 것일까? 김 대사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의 앞과 뒤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신임 주중대사로 임명한 것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인적쇄신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김 대사를 임명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더러워진 속옷을 갈아 입으랬더니 뒤집어 입은 격"이라며 혀를 찼다.

뼛속까지 군인
또 그를 왜?

김 신임 대사는 국가안보실장 시절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켜 경질됐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고작 9개월 만에 주중대사라는 주요 직책을 다시 맡게 된 것이다. 더구나 김 대사는 중국과 별다른 연결고리도 없다. 한중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전문가도 아니고 경솔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켜 경질을 당했던 인사를 주중대사에 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의 실수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주중 대사 임명은 같은 사람만 계속 쓰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과 김 대사에 대한 보은 인사 성격이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대사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았었다.

우선 정치권에서는 군인 출신의 대북 강경파로 평가받고 있는 김 대사가 주중대사로서 한중관계를 원활하게 풀어갈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군 출신이 중국 대사를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중대사는 한-중 관계뿐만 아니라 한-미나 북-중, 미-중 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고도의 외교력이 요구되는 자리다. 그래서 역대 10명의 주중대사는 대부분 고위 외교관 출신이었고, 정치인 출신 인사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외교통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주중대사를 맡았었다.

주중대사 임명 논란…군 출신에 외교를 맡겨?
아무리 사람 없어도 그렇지…또 회전문 인사


국방부장관 시절 '꼿꼿 장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북 강경론자로 분류됐던 김 대사가 외교현장에서 요구되는 유연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김 대사는 국방부장관 시절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면서 유일하게 허리를 굽히지 않아 '꼿꼿 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게다가 김 대사가 지난 해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것은 정무 감각의 부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외교 무대에서 그런 말실수를 했다가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외교가에서는 김 대사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염두에 둔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중국과의 이견차가 너무 커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중국 외교가에서는 벌써부터 김 대사를 사드 대사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

세월호 책임 회피
청와대 경질 1호

사드는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의 핵심 요격수단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같이 높은 고도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탐지, 격추하는 시스템이다.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고성능 X밴드 레이더도 함께 배치돼 중국은 미국의 직접적인 감시망에 노출된다. 때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7월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신중한 처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김 대사가 사상 첫 군 출신 주중대사인 만큼 사드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중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의 시각차는 하늘과 땅차이다. 중국 측 외교 고위 인사는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사드 문제는 이미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만큼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은 오히려 김 대사가 청와대와 미국을 잘 설득해 사드를 포기하도록 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 대사가 사드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다면 이번 인사가 뒤늦게라도 재평가를 받겠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하지만 청와대는 김 대사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내면서 중국 고위급과의 교류가 잦았다며 주중대사직을 수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청와대는 김 대사가 한·중 군사협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현재 장교 교류와 군 최고지휘부 상호 방문 정도에 머물고 있는 양국 군사 교류를 우방국 수준으로 확대하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도 "김장수 대사는 안보전문가이고, 주중대사에 걸맞은 능력과 자질을 갖추 있는 적임자"라며 "박근혜 정부의 외교철학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는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보은인사도 회전문인사도 아니다. 야당은 고질적이고 상투적인 인사 발목잡기를 하기 이전에 외교에 관해서는 정파를 초월해 국익을 먼저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 정부 때부터
연속으로 중용

그러나 야권에서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인적 쇄신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 당시 파문을 일으켜 경질된 사람을 회전문인사로 다시 기용해 경악했다"며 "인적 쇄신의 취지가 정말 무색하다. 박 대통령의 불통 인사를 보면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을 찾을 수 없고, 어떻게 국정을 쇄신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박 대통령의 인사를 거듭 비판했다. 인적쇄신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던 박 대통령은 또 한 번 인사 참사로 발목이 잡히게 된 셈이다.

김 대사는 1948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27기로 임관했다. 1996년 육군 제1군 사령부 작전처장을 시작으로 2000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2001∼2003년 4월 육군 1군단장 등을 거쳤다.

이후 2004년 5월까지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냈고 이어 한미 연합사령부 부사령관, 2005년 제37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데 이어 1년7개월 만에 제40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노무현정부 임기 끝까지 국방부 수장의 자리를 지켰다. 참모총장에서 국방부 장관 직행 티켓을 끊은 것은 김 대사가 창군 이래 처음이다.
 

군 시절 김 대사는 '소신파'였다. 2007년 제2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 장수'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비공개 만찬 석상에서는 북핵 문제를 꺼내 북 측 인사들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사는 "군사적으로 적대국가에 있는 국가의 원수에 대해 68만 국군의 수장으로 적장에게 허리를 굽힐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례적으로 인터넷 팬클럽도 생겼다.

김 대사는 자신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한 노 전 대통령과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두고 대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김 대사는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앞두고 결국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 NLL 문제는 장관 뜻대로 하시라"는 백지위임을 받아냈다. 

2005년 연천 530 GP 총기난사사건도 그의 소신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참모총장이던 그는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각종 군 기밀 노출이 이어지자 '국익에 반하는 기밀 공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회의 무분별한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꼿꼿 장수'의 귀환
경질 9개월 만에 복귀

무난하게 장관 임기를 마친 그에게 이명박정부 초기 인수위는 초대 국방부 장관 제의를 했으나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18대 총선 직후 통합민주당은 '비례대표' 카드를 꺼내며 김 대사에게 무수한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한나라당이었다. 당시 통합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이 "김 전 장관은 지난 2일 손학규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60만 군대의 명예를 위해 비례대표 2번을 달라고 요구했던 분"이라고 지적한 뒤 "한나라당의 행태에도 분노를 느끼지만 김 전 장관도 결국 정치적 판단에 근거해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린 것 아니냐는 배신감이 든다"고 밝히면서 그가 비례대표 의원이 되기 위해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 양측과 '밀당'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한나라당 비례대표 6번으로 당선되며 정치권에 발을 들인 김 대사는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의원, 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최고위원 등을 거쳤다. 그러나 "19대에는 지역구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대로 2012년 19대 총선에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대선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국방·안보 분야 공약을 만들었다. 당시 김 대사는 문재인 대선 후보캠프의 국방정책을 비판하며 날을 세웠다.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 분과위 간사에 이어 박근혜정부에서 5년 만에 부활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안보실을 개편하면서 박 대통령이 김 대사에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직토록 하면서 정권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김 주중대사의 '독주 체제'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온 것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때였다. 사고 초기 그는 박 대통령에게 사고 상황을 가장 먼저 보고하고 '지하벙커'인 위기관리센터에 들어가 구조 현황을 파악하는 등 사고 대응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정부의 부실한 초동 대처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안보실의 책임이 부각되자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통일·안보·정보·국방의 컨트롤타워"라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해 여론이 등을 돌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 대사는 5월1일 법령상 안보실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설명자료를 내기까지 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박 대통령의 우산이 걷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5월22일 김 대사는 박근혜정부 '청와대 경질 1호'가 됐다.

끝까지 보은
야권은 경악

주중대사는 미국, 러시아, 일본과 더불어 '4강대사'로 꼽힐 정도로 정부 외교라인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 중 하나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군 출신이 주중대사를 맡게 되는 것으로 김 대사는 점차 중요해지는 중국과의 안보협력에서 국방 분야 전문성을 한껏 발휘할 것으로 점쳐진다. 김 대사는 부인 박효숙씨와 사이에 1남1녀가 있으며 아들도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mi737@ilyosisa.co.kr>
<han1028@ilyosisa.co.kr>

 

[김장수 누구?]

▲1948년 광주광역시 출생
▲육군사관학교 27기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대한민국 육군 7군단 단장
▲제37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제40대 국방부 장관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새누리당)
▲국가안보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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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