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다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서 재판까지 우여곡절…결국 쇠고랑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2000년대 이후 기업이나 정당 등 단체가 알바를 고용해 여론선동 및 이슈화를 주도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과정에서 증폭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2년부터 의혹이 불거진 원 전 원장을 필두로 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
정통성 논란
 
당시 민주당(민주통합당)은 12월11일 국정원의 직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인 문재인에 대한 비방글을 올리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민주당 당원과 기자들은 국정원이라고 추정되는 해당 직원의 오피스텔을 방문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20여명의 인원이 오피스텔 복도 앞을 점거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 측은 현직 국가정보원 직원이 정치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게시하는 것은 불법선거라며, 사실 확인을 위해 해당 오피스텔을 방문했다. 하지만 국정원이라고 추정되는 직원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찰 또한 정식 수색영장이 없는 상태기에 강제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면 현행범에 해당됨으로, 즉시 문을 열게 해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당 국정원 직원은 민주당이 자신을 감금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문을 열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직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조사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밤사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일명 국정원 댓글녀 혹은 국정원 댓글 알바라는 내용이 화제가 됐다. 국정원 대변인은 12일 새벽, 기자와 당원이 지키고 있던 오피스텔 복도에서 “김씨의 개인 컴퓨터 등에 대해 이르면 12일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이 입장 발표 후 댓글 알바로 의심받은 직원은 “정치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 관련 댓글을 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서울 수서 경찰서는 해당 인물이 사용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임의 제출하게 했다. 일주일 뒤 수서 경찰서는 댓글 알바 논란에 휩싸인 해당 직원을 소환조사했다. 경찰청은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대선후보에 관련된 글의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중간발표를 했다. 여론은 봐주기 수사 등 의혹을 내세우며 경찰을 비판해 나섰다.
 
IT전문가나 네티즌들은 웹캐시 등 댓글 증거를 확보하며 인터넷에 공개했다. 경찰 측에 해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조사 당국은 댓글이 올라온 것으로 알려진 6개 포털사이트와 32개 언론사에 통신자료 내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1심 집유…2심서 징역 3년 법정구속
중립의무 외면 정치 사안 개입 인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3년 1월3일 수사당국은 국정원 직원이 99회 걸쳐 대선에 관련한 댓글을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직원을 재소환하며, 조사당국은 기존 중간 브리핑과 달리 해당 직원이 정치성향 댓글 49개를 달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그냥 세봐도 100개는 넘는다”고 경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했다.
 
부실수사 의혹이 거세지면서 민주당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고발했다. 국정원은 이에 맞서 민주당에 제보한 전직 국정원 직원인 김씨와 현직 직원인 정씨를 직무상 기밀누설에 따른 국가정보법 위반으로 고발해 2월20일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부에서 수사에 착수했다. 
 
 

4월1일 민주당은 원 전 원장이 국가정보원을 이용해 국내 정치 관여 및 직권남용 등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했다. 18일 수서 경찰서는 국정원 직원 김씨 외 3명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원 전 원장을 수사할 특별수사팀도 만들었다. 하지만 수사에 진척은 없었다. 이에 당시 수서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했던 권은희 의원은 “국정원 수사에 윗선이 개입됐다”라고 내부고발을 했다. 불이 발등에 떨어진 검찰과 경찰은 이종면 전 국정원 3차장을 시작으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발표했다. 
 
당시 특별수사팀은 대검찰청에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모두 적용해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중간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를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했으나 법무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법리를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검찰과 법무부가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 여부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인 것이다. 이후 채 검찰총장은 혼외자식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퇴했으며, 팀별수사팀은 외압을 받는다.
 
이명박-박근혜
시그널 없었나
 
국정원은 지속적으로 댓글 개입에 대해 대북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대선에 관련된 것이 1281회, 정치 관련은 435회, 대북심리전인 북한과 중복에 대한 것은 143회에 불과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의혹은 국회에서 밝힐 일이라며 일축했다. KSOI 설문조사결과 78.4%가 국정원 개입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7월1일 여당과 야당은 7월2일부터 45일로 계획된 국정원의 국정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부분은 대선개입 의혹 일체, 전현직 직원의 비밀누설문제, 국정원여직원(감금주장)에 대한 인권침해 의혹이다. 하지만 특별위원의 선정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이 갈등하며 15일 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냈다. 이와 비슷한 시기 NLL논란이 불거진다. 하지만 민심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물타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론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검찰은 10월17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4명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고, 이 가운데 3명을 긴급 체포했다. 이들은 트위터 및 SNS 상에서 활동한 심리전단 5팀 소속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검찰은 곧바로 원 전 원장의 공소장을 변경하고 추가 기소했다. 
 

사실 이에 대해 <뉴스타파>는 지난 7개월 전부터 10여 차례 걸쳐 트위터에서 벌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실태를 집중보도 했다. 총 660여개 계정이 조직적으로 5만8000여 건의 대선과 정치적 관련 글을 올렸다는 정황을 밝혔다. 특히 핵심 계정인 ‘nudlenudle’ 국정원 직원 이씨라는 것도 규명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최종 확인된 것이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이번 사건을 ‘선거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범죄’라고 규정했다. 검찰 수사로 국정원의 정치와 대선 개입 의혹이 초유의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예상못한 판결 왜 뒤집혔나
심리전단 직원 파일 결정적 

재판이 시작된 지 1년1개월 만인 지난해 7월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이 구형했다. 박형철 부장 검사는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장 등 직위를 이용해 정치 관여 행위를 함과 아울러, 공무원의 직위를 이용하여 제18대 대선에 관여한 선거운동을 한 범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법 정치 선거개입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책임에 대한 준엄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최후의 변론에서 “60세가 넘은 사람으로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무슨 얘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심리전단의 활동이 문제가 있더라도 선거개입 목적이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11일 서울중앙지법은 원 전 원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국정원 댓글 알바에 이은 1년10개월만에 내려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첫 번째 판단이었다. 당시 이 선고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국가 기관에 의한 선거 개입이 있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판결 내용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번 판결의 핵심이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선거운동’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요 공소내용. 법원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행위자의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확인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검찰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때문에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2012 사건의 서막
2013 물타기 정국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의 근거로 ‘직접 대선 개입을 지시하는 원 전 원장의 발언을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꼽았으며, ‘선거운동에 이용할 목적으로 볼 명확한 근거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국정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공직선거법이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검찰 공소사실에 적시되지 않은 대선 결과를 가지고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재판부 논리는 이렇지만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모순적인 내용의 판결을 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증거로 인정된 심리전담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 수는 175개. 애초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1157개의 계정에서 작성한 78만여 건의 트윗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수집 과정 위법을 했다는 이유로 상당수가 증거에서 배제했다. 트윗 내용은 ‘박근혜 후보 후원 계좌 안내, 문재인이 대통령이 안되는 이유, 안철수는 종잡을 수 없다’ 등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지지, 비방의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선고 이후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지록위마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법원 내부게시판에 실명으로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A4용지 5장 분량의 강도 높은 비판글을 올렸다. 2013년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시민사회단체 역시 이번 판결은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치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조직적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정원 심리전단의 이른바 ‘방어심리전’ 활동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검찰이 항소 때 법조항을 조정할 경우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압으로 사실상 와해된 검찰 수사팀이 수사 의지를 가지고 항소심을 준비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지난 9일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선고 후 법정구속 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대선을 앞두고 지시한 사이버 활동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능동적으로 계획된 행위라고 판단했다. 정치에 개입했지만 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1심과 달리 국정원의 활동을 제18대 대선에 영향을 준 ‘선거 개입’으로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심리전단이 작성한 글 중 2012년 상반기에는 정치 관련 글이 80∼90%로 압도적이었다. 2012년 7월부터 선거 관련 글이 늘기 시작해 8월에는 선거 관련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이는 사이버 심리전단이 의도하는 바가 바뀌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심리전단이 작성해 퍼 나른 글들은 당시 이정희 대표 및 통합진보당을 반대하거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당시 무소속이었던 안철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논란이 됐을 때는 여자문제 등에 집중해 (트윗글) 작성 후 리트윗하고, 인혁당사건 발언이 나왔을 때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옹호하는 글을 대규모로 리트윗하거나 야당 측을 비난하는 글을 작성해 서로 리트윗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안 의원이 대선후보에서 사퇴한 이후 안 의원 관련 글이 현저히 줄어들고 12월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은 반면 민주통합당 소속 문재인 대선후보에 반하는 취지의 글이 급격히 늘어난 점 등에 비춰볼 때 당시 트윗글이 선거쟁점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이 점이 특정정당과 정치인의 당락을 목적으로 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중 선거개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상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심리전 활동을 벗어나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이 사이버 활동이라는 자신들의 주관적 평가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객관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변론에서 “부서장 회의에서 말한 것이 전 직원에게 공유되는지 한참 후에 알았다”면서 “직원의 트윗, 댓글은 개인적 일탈이지 조직적으로 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곧바로 상고 의사
대법원 판결 주목
 
원 전 원장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심리는 최장 10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구속 기간은 2개월이지만, 상소심에서 부득이한 경우 2개월 단위로 3차례까지 총 6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 2심 재판부가 정반대의 판단을 내림에 따라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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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