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㉒베어온 머리 숫자로 포상

전쟁 끝나면 잘린 머리 산더미처럼 쌓였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형식은 할복이나 실제는 참수형이었다. 원칙적인 할복 절차에 의하면, 형장에 여러 가지 준비와 확인을 위한 참관인이 미리 대기하고 있고, 할복할 사무라이는 전통 복장에 자신의 목을 쳐 줄 ‘가이사쿠’를 대동하고 형장에 나타난다. 할복하는 자는 단좌하고 앉아 단검으로 왼쪽 배를 찌르고 서서히 오른쪽으로 잡아 당겼다가 다시 왼쪽으로 오면서 몸이 앞으로 넘어지기 시작하면 그때 가이사쿠가 목을 친다.

잔인함의 끝

할복을 하는 과정에서 배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고 심하면 내장이 튀어나오는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지만, 고통의 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찡그려서도 몸이 뒤로 넘어가서도 안 된다고 한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지만, 이것이 진정한 무사의 모범적인 할복이라고 여겼다. 물론 이런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할복하며 죽은 무사도 있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할복을 빙자한 참수형이었다.

사무라이는 영주 또는 주군의 명을 받아 할복하지만, 스스로 알아서 선택하기도 했다. 앞에서 여러 번 얘기했듯이 사무라이의 직책과 녹봉은 대물림되는 것이었다. 잘못을 했을 때 스스로 알아서 할복하면 적어도 그가 갖고 있던 직책과 녹봉은 아들에게 대물림될 것이나, 죽음이 두려워 머뭇거리다간 주군으로부터 할복을 명받아 죽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던 직책과 영지도 몰수당하는 것이다.

사무라이들의 할복에는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지만 “영주님! 저는 저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할복합니다. 그러니 저의 잘못에 대해 그만 노여워하시고, 나의 직책과 녹봉은 아들에게 물림되어 남은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의미가 짙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도쿠가와(에도 막부)시대에 이르러 가이사쿠는 공식적인 참수인이 되었다. 사무라이에게는 할복에 사용할 진검 대신 가짜 칼을 주거나 상징적인 의미로 부채를 주기도 했다. ‘47인의 무사’들의 할복 의식(실제로는 참수형)을 거행할 때 주어진 것 역시 백지에 싼 부채였다.

할복 의식은 실제로는 사무라이들이 칼이나 칼을 대신할 물건을 손에 쥐기만 해도 가이사쿠가 칼을 내리쳐 목을 베었다. 비록 할복은 자결을 가장한 참수의 형태로 행해졌지만 할복의 의식, 의례에 대한 것은 철저하게 준비되었다. 이미 할복은 형벌로서 자리매김하였고 관리들 앞에서 의식적으로 집행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의식을 어길 경우 가족에 대한 처벌이 추가될 수도 있었다. 생사를 걸고 임하는 전투에 특별히 정해진 형식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온갖 작전과 술책을 동원하여 무조건 이겨야지 이기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는 전장에서 전투 대형은 장소와 공격 대상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당시의 일반적인 전투 모습을 보면 사무라이들의 생활과 전투에 임하는 그들의 마음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부인 전장에 끌고 와 군사들 반 협박
패색 완연하면 스스로 목 잘라 숨겨


당시의 사무라이들은 오늘날의 군인들처럼 통일된 제복은 없었다. 한 영주에 속하는 사무라이들도 색과 디자인이 다른 갑옷을 입었다. 그 갑옷은 당대에 마련한 것도 있지만, 주로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갑옷을 입었다. 직책을 물려받으면서 갑옷 등의 무구도 같이 물려받는 것이다. 높은 직책의 사무라이일수록 직급에 어울리는 화려한 갑옷을 입었다.

통일된 색이나 디자인의 갑옷을 입을 수 없는 또 다른 까닭은 바로 임시 용병으로 동원되는 낭인 출신의 사무라이들 때문이었다. 당시는 전쟁 때마다 일정한 대가를 받고 전쟁에 참여하는 낭인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한 용병들에게 통일된 갑옷을 제공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옷의 색과 디자인에 상관없이 등에는 같은 색과 모양의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깃발에 어느 영주의, 어느 가신의, 누구라는 것을 표시하고 전장에 나갔다. 그리고 적군을 만나면 칼을 부딪치기 전에 큰소리로 통성명을 하는 ‘나노리(なのり)’라는 의식을 거치고 싸움을 시작했다.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상대가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만큼 치명적 부상을 입고 쓰러져도, 그냥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반드시 목을 잘라 그 머리를 본부석에 갖다 주었다. 그리고 누가, 누구의 목을 잘라 왔다고 장부에 기록하고 나서 다시 싸움터로 돌아갔다. 이렇게 자신의 공적을 확실하게 밝혀 두어야 전쟁이 끝난 뒤 그에 따른 포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부석은 대체로 전선 뒤 약간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본부석에는 가신들의 부인들이 기모노 차림을 하고 군사들이 베어온 적군의 목을 주군이 대면할 수 있도록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빗기고, 간단히 화장도 시킬 수 있는 도구와 전공을 기록해 둘 장부와 필기도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베어온 수급은 그야말로 피범벅이 된 아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다 죽은 무사들이었기 때문에 머리카락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있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 죽은 험상궂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처절했던 순간이 죽은 얼굴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싸움이 끝난 뒤 주군이 확인할 수 있도록 씻기고 간단한 화장도 시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머리를 쟁반에 받쳐 들고 영주로 하여금 확인케 하는 것이다. 전쟁은 며칠에서 몇 주씩 걸릴 때도 있었으므로 사상자도 엄청나게 늘어나 베어온 머리는 일일이 다 정리하지 못해 산더미같이 쌓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본부석의 가신들 부인은 전쟁에 필요한 일도 하지만, 전투를 하고 있는 남편들에게는 일종의 인질과 같은 마음의 부담을 주기 위한 영주의 작전이기도 하다. 전장에 나가 있는 가신들에게는, 전투에서 지거나 밀리면 부인은 적군들에게 겁탈당하고 처참하게 죽는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주는 것이었다. 영주는 높은 곳에 말을 타고 앉아 전시상황을 지켜보면서 작전을 지시하기도 하고, 누가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본다.


인권은 없었다

등에 단 깃발은 적에게 자기 존재를 알리는 것보다, 영주에게 자신의 활약을 알리는 의미가 더 컸다. 그래서 하위급 무사일수록 깃발을 반드시 부착했다. 전쟁이 끝나면, 영주는 베어온 머리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감히 네깟 놈이 나에게 도전을 해? 분수를 알아야지” 등의 조롱섞인 말을 하면서, 무사들의 전공을 치하했다.

이러한 의식을 구비짓켄이라고 하여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리고 베어온 머리들은 전리품으로 장대에 매달아 거리에 전시해 주민들에게 영주의 힘을 과시하였다. 특히 상대편 영주나 고위급 가신의 머리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따로 매달아 표시까지 했기 때문에, 무사들은 죽어서 자신의 머리가 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큰 수치로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 고위급 사무라이들은 패색이 완연히 드러나면 호위 무사에게 자신의 목을 미리 베어 흙 속에 묻게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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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