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소신 지킨 김이수 헌법재판관

남들 ‘예스’할 때 혼자만 ‘노’

[일요시사 사회2팀] 최현목 기자 = 군계일학.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후 한 정치평론가가 김이수 재판관을 가리켜 비유한 말이다. 물론 나머지 재판관이 닭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김 재판관의 소신이 돋보인 것을 사자성어를 빌어 표현한 것이다. 소수자 억압, 인권 침해 등을 헌법의 이름으로 막아달라는 헌법재판소 출범의 기본 취지를 끝까지 지킨 그의 삶을 짚어보자.

지난 19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있었다. 심판을 위해 참석한 재판관은 총 9명. 그중 8명은 ‘인용’ 판결을 내려 통진당 해산을 찬성했다. 반면 김이수 재판관은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8대1의 압도적 결과로 통진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5명의 소속 국회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했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결과에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각종 언론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쏟아졌다. 그리고 유일하게 해산을 반대한 김이수 재판관(61·사법연수원 9기)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1953년 출생
전남고 출신

김 재판관은 195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72년 전남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쭉 호남지방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 법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상경하게 되는데 그때 마침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한다.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을 중심으로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은 유신체제에 맞서 반독재·반체제 시위를 벌인 대학생 180명이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의 자격으로 맞선 김대중이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하던 중 1973년 8월8일 도쿄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된다.


이 사실은 삽시간에 퍼졌고 9월 개학과 더불어 대학생들의 반유신체제운동이 시위형태로 발생하게 된다. 그러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8일 긴급조치 1, 2호를 공포,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했고 위반자를 심판할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사태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불씨는 더욱 거세져갔다. 이에 4월3일 박 대통령은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했다. 긴급조치 제4호가 선포된 후 관련자는 구속·기소되었다.

이때 김 재판관과 부인 정선자씨는 함께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게 된다. 그리고 김 재판관은 64일간 구금 조치를 당하고 부인 정선자씨는 양심선언문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된다.

구금에서 풀려난 김 재판관은 대학을 졸업한 후 1977년 제 19회 사법시험을 통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1982년 대전지법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등법원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청주·인천지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을 역임하는 등 줄곧 법의 수호자로서의 삶을 산다. 그러던 중 2012년 야당의 추천을 받아 지금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일하게 된다.

그의 판결은 가히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할만 했다. 2004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도로와 학교부지 등 사회기반시설도 마련하지 않은 채 건설사에 아파트 신축허가를 내준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난개발’에 대해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시민들의 안전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주먹구구식 개발이 한창인 시절에 나온 이례적 판결이었다. 또한 해당 지자체의 무분별한 아파트 신축허가 남발에 대해 “지자체가 피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확정결론이 나온 첫 판결이었다.

같은 해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전철역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하반신 1급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던 윤씨(당시 62세)는 2002년 5월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역내 근무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모두 식사하러 갔다는 이유로 도와주지 않았고 혼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다 뒤로 추락해 사망했다.

군계일학
낭중지추


이 사실을 토대로 김 재판관은 윤씨의 아들(당시 37세)이 서울시 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공사 측은 원심보다 위자료 54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휠체어리프트 사고를 처리할 때 장애인의 시설접근권이란 개념을 정립한 첫 번째 판결로 일반인에 비해 가중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은 인간적 존엄과 가치, 행복을 지킬 수 있게 시설접근권이 보장돼야 하는데 공사 측은 사고 전 수차례 안전문제를 지적받았을 뿐 아니라 역무원들이 당시 윤씨가 안전하게 리프트를 타도록 작은 배려도 해주지 않은 잘못이 인정된다”며 “1심보다 위자료 5400만원을 더해 모두 1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혀 실질적으로 도시철도공사를 대상으로 괘씸죄에 따른 가중처벌을 내렸다.

근로자를 위한 행보도 빼놓지 않았다. 2005년 유씨는 산업용 전자기판 감광성 필름을 만드는 직장으로 출근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쓰러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평소 고혈압 증세가 있고 심폐기능이 약한 상태에서 매일같이 연장근무를 하다 출근 도중 숨진 것이다. 그러나 근로복지관리공단은 “의학적·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다.

이에 유족이 “사망원인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김 재판관은 “유씨가 맡은 업무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고 작업환경이 쾌적하지만 근무정황상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려 왔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유씨의 사망은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통합진보당 해산 유일한 반대표 던져
“일부 지향을 전체 정견으로 간주 안 돼”

법의 사각지대는 상식이 통하는 판결로 메웠다. 홀로 자녀를 키우는 택배 배달운전기사 심씨가 술을 마신 뒤 차량을 3미터 이동시켰다가 운전면허가 취소된 사건이 발생했다. 운전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면허증은 생명증과도 같았다.

이에 김 재판관은 경찰 처분의 위법성에 대해 법적 판단을 내렸다. 김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원고가 운전한 것은 노상주차장에서 유료주차장까지 왕복 3미터에 불과하고 이 거리 중 대부분은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비록 음주운전을 했지만 경찰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재판관은 부당한 공권력 사용에 대해서 엄벌을 내렸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있은 후 검찰과 국정원은 사실을 왜곡 발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말 그대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인 처사였다. 김 재판관은 이러한 사실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하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위법한 국가권력에 대해 단호한 법률적 제재를 가한 것이다.

고용환경에서의 성차별을 깬 역사적 판결도 있었다. 소위 ‘김영희 사건’으로 불리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전화교환원 정년차별 사건에서 눈에 잘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고용상의 성차별 관행에 철퇴를 가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청소년 고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미아리 택사스 사건’ 업주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려온 인물로 평가된다.

2012년 헌법재판관이 된 후에도 그의 신념은 바뀌지 않았다. ‘한미FTA 반대 시위 물대포 사용 사건’ ‘국가공무원법상 교원 정치활동 전면금지 조항’ ‘정당법·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교사 정당가입 금지 조항’ 등에서 위헌 의견을 내 다수의 의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김 재판관은 평소 포용력 있고 온화한 성품으로 잘 알려졌다. 특히 타인의 주장을 경청해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 후배 법관들과 직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에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인간미와 합리적 사고가 적절히 공존하는 선배’로 통한다. 또한 김 재판관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당사자가 직접 수행하는 사건에 대해 적극적이고 적절한 소송지휘로 당사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약자와 소수자 보호
합리적 판결

그가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도 지금과 같이 합리적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남다른 체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마라톤 마니아로서 2003년부터 입문, 다음 해인 2004년부턴 풀코스 완주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그는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풀코스 완주를 10회나 기록할 정도로 강철 체력을 보유하고 있다. 부인 정씨도 마찬가지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먼저 시작한 그녀는 2002년부터 입문해 이듬해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진보성향 강한 호남출신 법조인
장애인 기본권 향상에 큰 공헌

취미가 같다보니 부부동반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지난 2005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6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김 재판관은 부인과 함께 참가했고 풀코스를 완주했다. 결승선을 끊고 나서 김 재판관은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달려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뤘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부인 정씨는 마라톤 선배답게 김 재판관보다 10분 앞선 4시간26분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록 부인에겐 졌지만 김 재판관 역시 자신의 최고기록을 30여분이나 앞당겼다. 이를 위해 김 재판관은 지난 3개월간 혹독한 ‘동계훈련’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합리적 사고가 마라톤을 통해 뒷받침 됐다면 김 재판관의 인간미는 신앙심과 낭만을 즐길 줄 하는 성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 재판관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하다. 또한 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는 ‘애수의 소야곡’으로 알려졌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요마는”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떠나간 연인을 그리면서 우수에 젖어 있는 체념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고요하고도 애절한 가락이 가수 남인수 특유의 미성과 잘 어우러져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이다. 최근 가수 정인이 <불후의 명곡2>에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재판관은 이번 통진당 해산 판결에서도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 재판관이 밝힌 반대의견의 핵심은 그들의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범위와 시기, 그리고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먼저 김 재판관은 일부 당원의 행위를 당 전체의 움직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범위의 측면에 대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이나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야권단일화 여론조작 사건과 같은 피청구인 일부 구성원의 개별 활동이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민주적 의사결정원리를 존중하지 않았거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피청구인 전체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을 위해 조직적, 계획적, 적극적, 지속적으로 위와 같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기면에서 “과거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심판이 청구되고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건되기까지, 12만5000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 중 6000∼7000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현 상황을 우려했다.

통진당 해산
국민 손으로

마지막으로 방법적인 측면에서 “강제적 정당 해산은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당의 자유 및 정치적 결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을 초래한다”며 “해산 결정은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 정치평론가는 김 재판관을 ‘군계일학’으로 비유한 데 이어 베스트 인물로도 선정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의 투표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특정 정당을 장외로 밀어버리는 판결에 대해서 정말로 소신있게, 국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미를 강하게 대변한 김이수 재판관,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chm@ilyosisa.co.kr>


[김이수는?]

▲제19회 사법시험 합격
▲대전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 법원장
▲특허법원 법원장
▲사법연수원 원장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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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