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천우희

28세 내공이…영화마다 신들린 연기

[일요시사 사회2팀] 최현목 기자 =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우리는 흔히 스크린에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배우를 가리켜 이런 수식어를 붙인다. 전도연, 송강호 등 국내 굴지의 배우들에게 붙는 찬사로 쓰이기도 하는 이 타이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신예가 있다. 배우 천우희는 ‘그녀만의 색깔’이 아닌 ‘그녀가 낼 수 있는 색깔’로 중무장한 충무로 ‘히든카드’다. 2014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 천우희에 대해 낱낱이 알아보자.

2014년을 가장 빛낸 여배우로 천우희가 선정됐다. 천우희는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한공주’역을 맡아 내공 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당당히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는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하진 않았지만 하는 영화마다 크고 작은 역할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덕분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신스틸러’로 불렸다. 그런 그녀는 이번 수상을 통해 개인 타이틀은 물론 존재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됐다.

2004년 데뷔
줄곧 단역만

현재 천우희의 나이는 28살, 연기 내공을 보여주기엔 아직 젊지만 그녀에게 나이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벌써 경력 10년차인 그녀는 2004년 영화 <신부수업>을 통해 데뷔했다. 비록 맡은 역할이 ‘깻잎무리2’라는, 흔히들 얘기하는 ‘행인2’만큼 비중이 없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천우희는 영화배우로서 발걸음을 땠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7살,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한공주’의 극중 나이가 17살이었다는 점은 우연치곤 기막힌 접점이 아닐 수 없다.

이후 그녀는 2년간 공백기를 가진 후 2007년 영화 <허브>에서 껄렁껄렁한 깻잎 소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단역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조연으로 출연할 기회가 찾아온다. 2009년 원빈 주연의 영화 <마더>에서 그녀는 배우 진구(진태 역)의 여자친구로 발랄하면서 은밀해 요사스러운 기운마저 풍기는 재수생을 연기하게 된다. 단역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한 그녀의 실질적 데뷔였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연기를 선보였다. 23살의 나이로, 또 여성으로서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베드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부모님께는 ‘노출연기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컸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현장과 잘 맞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대로 온전히 연기자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천우희는 영화 <사이에서>를 통해 주연배우로 거듭난다. 데뷔 후 빠른 시간에 주연을 맡았지만 영화에 대한 반응은 좋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게 된다. 생각보다 빠른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대중들에게 확실히 얼굴을 알릴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누적 관객 수 700만명을 넘긴 영화 <써니>의 오디션 기회가 생긴 것이다. 대게 많은 연기자들이 오디션에서 제대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고 떨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간만에 찾아온 기회였지만 긴장하지 않고 임해 당당히 배역을 따냈다.

그 비결에 대해 그녀는 “오디션을 볼 때 오디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지만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그냥 인연이 아니구나 생각하기 때문에 긴장을 별로 안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오디션에 임하다보니 ‘쟤 뭔데 저러지. 뭔가 엄청난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냐’라고 감독들이 생각했다는 후문이다.

노출, 본드 등
파격연기 맡아

<써니>에서도 천우희가 맡은 배역은 파격적이었다. 극중 본드를 마시는 여고생 상미로 분해 열연을 펼쳤는데 일부에서는 ‘진짜 본드를 마시고 연기한 것 아니냐’는 괴담이 돌 정도로 그녀의 연기에는 리얼리티가 있었다. 결국 그녀는 <마더> <써니>로 대표되는 두 파격연기로 관객들의 뇌리에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각인시켰다. 어떻게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부모님이 엄청 보수적이다. 그래서 ‘이제 나 다 컸어. 터치 하지 마’ 같은 심정으로 연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천우희는 기세를 몰아 2011년 <뱀파이어 아이돌> <뻑킹 세븐틴>, 2012년 <26년>, 2013년 <우아한 거짓말>에서 주·조연을 넘나들며 실력을 쌓아가던 중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한공주>를 만나게 된다.

2014년 가장 빛낸 여배우로 선정
집단성폭행 당한 여고생 역 소화

<한공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의 여중생을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약 1년 동안 수차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보호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해자는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등 전과기록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반해 피해를 당한 여성은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던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이 사실을 접한 국민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감한 사건을 다룬다는 것, 또 성폭행 당한 여성을 연기한다는 것은 여배우로서 꺼려지는 부분이 많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천우희가 말한 것처럼 영화를 봤을 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역을 받자마자 몰입했고 표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연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한공주’를 연기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다. 보통의 배우들은 어떤 사건을 겪고 난후 슬픔에 빠지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강한 의지로 극복해내는 연기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악을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트라우마를 서서히 이겨내는 모습을 표현해냈다. 그녀는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에 집중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천우희는 ‘한공주’를 강한 아이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순탄치 않은 환경 속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버팀목과 같은 장치가 필요했다. 천우희는 그 장치로 음악을 택했다. <한공주>라는 영화 속을 관통하는 것은 음악이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희망을 전달함은 물론이고 과거의 ‘한공주’와 현재의 ‘한공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즉 ‘한공주’가 과거에는 혼자 음악을 했다면 현재에는 친구와 얼굴을 마주하며 아카펠라를 부르는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쌓아놓은 마음의 벽을 조심스레 허무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에는 ‘Ciao,Bella,Ciao’라는 제목의 아카펠라 노래가 삽입곡으로 등장한다. 비록 전주만 나오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면 ‘한공주’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상과 연관성이 있다.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체주의에 맞서던 파르티잔이 부른 것으로 세계적으로 저항운동에서 많이 쓰였다.

“오 사랑스런 사람아. 침입자를 발견했다. 이제 죽을지도 모르니 만약 내가 죽는다면 꽃 아래 묻어다오. 사람들은 날 보고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겠지. 그러면 자유를 위해 죽은 꽃이라고 말해주오”

<한공주>는 천우희가 연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 선물처럼 찾아온 영화다. 그리고 그녀는 이 영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배우이자 가수인 마리옹 꼬띠아르는 천우희의 연기를 극찬한 바 있다. 패션·뷰티 매거진인 <GEEK>은 ‘만약 당신이 지금 주목할 만한 새로운 여배우를 찾고 있다면, 그건 단연 천우희일 거다’고 전했다.

한공주 연기로
세계적 여배우

영화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제13회 마라케시 국제 영화제 금별상, 제43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타이거상, 제16회 프랑스 도빌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상 국제비평가상 관객상, 제28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대상,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등 해외 영화제 9관왕을 차지했다.

저예산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양성 영화로 최단기간 내에 1만명 돌파,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단기간 10만 돌파, 최단기간 최다관객 동원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모든 것이 철저히 '한공주'의 상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 그녀의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수상소감을 준비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며 “또 이런 날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자기 일처럼 기뻐해준 저의 지인들과 글로써 격려해준 기자님들, <한공주>를 함께하고 사랑해준 모든 분들…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못다 한 소감을 밝혔다.
 

그녀가 <한공주>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카트>다. <부러진 화살> <변호인> <집으로 가는 길>등과 같이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사회고발 영화인 <카트>는 2007년 이랜드가 운영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 해고통지에 맞서 마트를 점거, 농성을 이어가던 중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복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천우희가 맡은 배역이 어두웠다면 영화 <카트>에서는 그녀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여기서 현대사회를 불안정함 속에 살아가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주위에 ‘긍정의 힘’을 전파하는 88만원 세대 ‘미진’역을 맡았다. 물론 아픔도 있다. ‘미진’은 계속되는 취업난 속에 점점 지쳐만 간다.

그러던 중 계약직으로 함께 일하는 다른 마트 언니들과 함께 회사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주위사람에게 힘을 북돋아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진’의 존재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관객에게 청량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등 쟁쟁한 선배들의 연기에 묻힐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빛이 난다.

한편 <카트> 시사회장에서 천우희는 “(연기를 위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금 내 나이 때 고민할 수 있는 것들,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 봤다. 많이 공감하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충무로 기대주 그녀가 떴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연구벌레

천우희는 철저히 변두리에서 시작했다. 지금이야 아역 배우부터 연기를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있지만 그녀가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녀는 ‘맨땅에 헤딩’과도 같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했다.

친구따라 연극반에 갔다가 연기를 하게 됐고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처럼 <마더> <써니> 등을 찍었다. 25살 때까지는 소속사도 없이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회사를 들어간다 해도 ‘내가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 줄 것이다’고 믿었다. 또래 여자에 비해 두둑한 배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짱도 두둑하지만 뚝심도 남달랐다. 주위의 간섭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캐릭터를 빚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한송이’를 연기할 때도 참고로 한 캐릭터 없이 본인이 고민해서 만들어냈다. 또한 관객의 평가는 신경 쓸지언정 주위의 목소리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화지 같은 외모는 그녀의 가장 큰 무기다. 그녀의 얼굴은 ‘매일매일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어떤 심리 상태를 가지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기에 마치 감정을 물감삼아 얼굴에 채색하는 듯 이채롭게 보인다. 그녀를 본 사람은 천우희가 누구를 닮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선뜻 말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천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연기를 할 때도, 모델로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녀는 본인만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 이런 점들이 그녀를 어떤 배역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만들었다. 자기복제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런 그녀의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배역을 만들 때 특정 이미지에 맞춰 배우를 섭외하는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천우희를 두고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과거 전도연이 그러하듯 단지 예쁘다는 아우라를 넘어서서 다양한 캐릭터의 색깔을 덧칠할 수 있는 배우. 얼굴과 연기에 비어 있는 모호함이 넉넉이 고여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배우”라고 평했다.

천의 얼굴 가진
청룡영화제 퀸

천우희가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13편 가운데 주연을 맡은 건 3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 외에는 모두 조연이나 단역이었다. 그런 그녀가 3번째로 주연한 영화에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리고 2015년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 <곡성> <뷰티인사이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이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섰다. 그리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여배우로 거듭났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보다 ‘보여 줄 모습’이 많기에 전문가는 물론이고 팬까지 그녀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천우희는 패션·뷰티 매거진 <GQ>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배우로 이영애를 꼽았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혹적인 분위기 때문이라 밝혔다. 하지만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알수 있다. 블랙홀처럼 상대를 빨아들이는 그녀의 눈은 충분히 고혹적이라고, 그 안에 담지 못할 배역은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그녀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지 사뭇 기대가 된다.

 

<chm@ilyosisa.co.kr>

 

[천우희는?]

▲경기도 이천 출생
▲양정여자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연기학 전공
▲제14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여자 신인연기자상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제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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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