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천우희

28세 내공이…영화마다 신들린 연기

[일요시사 사회2팀] 최현목 기자 =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우리는 흔히 스크린에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배우를 가리켜 이런 수식어를 붙인다. 전도연, 송강호 등 국내 굴지의 배우들에게 붙는 찬사로 쓰이기도 하는 이 타이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신예가 있다. 배우 천우희는 ‘그녀만의 색깔’이 아닌 ‘그녀가 낼 수 있는 색깔’로 중무장한 충무로 ‘히든카드’다. 2014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 천우희에 대해 낱낱이 알아보자.

2014년을 가장 빛낸 여배우로 천우희가 선정됐다. 천우희는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한공주’역을 맡아 내공 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당당히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는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하진 않았지만 하는 영화마다 크고 작은 역할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덕분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신스틸러’로 불렸다. 그런 그녀는 이번 수상을 통해 개인 타이틀은 물론 존재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됐다.

2004년 데뷔
줄곧 단역만

현재 천우희의 나이는 28살, 연기 내공을 보여주기엔 아직 젊지만 그녀에게 나이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벌써 경력 10년차인 그녀는 2004년 영화 <신부수업>을 통해 데뷔했다. 비록 맡은 역할이 ‘깻잎무리2’라는, 흔히들 얘기하는 ‘행인2’만큼 비중이 없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천우희는 영화배우로서 발걸음을 땠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7살,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한공주’의 극중 나이가 17살이었다는 점은 우연치곤 기막힌 접점이 아닐 수 없다.

이후 그녀는 2년간 공백기를 가진 후 2007년 영화 <허브>에서 껄렁껄렁한 깻잎 소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단역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조연으로 출연할 기회가 찾아온다. 2009년 원빈 주연의 영화 <마더>에서 그녀는 배우 진구(진태 역)의 여자친구로 발랄하면서 은밀해 요사스러운 기운마저 풍기는 재수생을 연기하게 된다. 단역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한 그녀의 실질적 데뷔였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연기를 선보였다. 23살의 나이로, 또 여성으로서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베드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부모님께는 ‘노출연기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컸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현장과 잘 맞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대로 온전히 연기자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천우희는 영화 <사이에서>를 통해 주연배우로 거듭난다. 데뷔 후 빠른 시간에 주연을 맡았지만 영화에 대한 반응은 좋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게 된다. 생각보다 빠른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대중들에게 확실히 얼굴을 알릴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누적 관객 수 700만명을 넘긴 영화 <써니>의 오디션 기회가 생긴 것이다. 대게 많은 연기자들이 오디션에서 제대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고 떨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간만에 찾아온 기회였지만 긴장하지 않고 임해 당당히 배역을 따냈다.

그 비결에 대해 그녀는 “오디션을 볼 때 오디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지만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그냥 인연이 아니구나 생각하기 때문에 긴장을 별로 안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오디션에 임하다보니 ‘쟤 뭔데 저러지. 뭔가 엄청난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냐’라고 감독들이 생각했다는 후문이다.

노출, 본드 등
파격연기 맡아

<써니>에서도 천우희가 맡은 배역은 파격적이었다. 극중 본드를 마시는 여고생 상미로 분해 열연을 펼쳤는데 일부에서는 ‘진짜 본드를 마시고 연기한 것 아니냐’는 괴담이 돌 정도로 그녀의 연기에는 리얼리티가 있었다. 결국 그녀는 <마더> <써니>로 대표되는 두 파격연기로 관객들의 뇌리에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각인시켰다. 어떻게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부모님이 엄청 보수적이다. 그래서 ‘이제 나 다 컸어. 터치 하지 마’ 같은 심정으로 연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천우희는 기세를 몰아 2011년 <뱀파이어 아이돌> <뻑킹 세븐틴>, 2012년 <26년>, 2013년 <우아한 거짓말>에서 주·조연을 넘나들며 실력을 쌓아가던 중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한공주>를 만나게 된다.

2014년 가장 빛낸 여배우로 선정
집단성폭행 당한 여고생 역 소화


<한공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의 여중생을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약 1년 동안 수차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보호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해자는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등 전과기록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반해 피해를 당한 여성은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던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이 사실을 접한 국민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감한 사건을 다룬다는 것, 또 성폭행 당한 여성을 연기한다는 것은 여배우로서 꺼려지는 부분이 많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천우희가 말한 것처럼 영화를 봤을 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역을 받자마자 몰입했고 표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연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한공주’를 연기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다. 보통의 배우들은 어떤 사건을 겪고 난후 슬픔에 빠지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강한 의지로 극복해내는 연기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악을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트라우마를 서서히 이겨내는 모습을 표현해냈다. 그녀는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에 집중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천우희는 ‘한공주’를 강한 아이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순탄치 않은 환경 속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버팀목과 같은 장치가 필요했다. 천우희는 그 장치로 음악을 택했다. <한공주>라는 영화 속을 관통하는 것은 음악이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희망을 전달함은 물론이고 과거의 ‘한공주’와 현재의 ‘한공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즉 ‘한공주’가 과거에는 혼자 음악을 했다면 현재에는 친구와 얼굴을 마주하며 아카펠라를 부르는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쌓아놓은 마음의 벽을 조심스레 허무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에는 ‘Ciao,Bella,Ciao’라는 제목의 아카펠라 노래가 삽입곡으로 등장한다. 비록 전주만 나오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면 ‘한공주’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상과 연관성이 있다.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체주의에 맞서던 파르티잔이 부른 것으로 세계적으로 저항운동에서 많이 쓰였다.

“오 사랑스런 사람아. 침입자를 발견했다. 이제 죽을지도 모르니 만약 내가 죽는다면 꽃 아래 묻어다오. 사람들은 날 보고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겠지. 그러면 자유를 위해 죽은 꽃이라고 말해주오”

<한공주>는 천우희가 연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 선물처럼 찾아온 영화다. 그리고 그녀는 이 영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배우이자 가수인 마리옹 꼬띠아르는 천우희의 연기를 극찬한 바 있다. 패션·뷰티 매거진인 <GEEK>은 ‘만약 당신이 지금 주목할 만한 새로운 여배우를 찾고 있다면, 그건 단연 천우희일 거다’고 전했다.

한공주 연기로
세계적 여배우

영화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제13회 마라케시 국제 영화제 금별상, 제43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타이거상, 제16회 프랑스 도빌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상 국제비평가상 관객상, 제28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대상,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등 해외 영화제 9관왕을 차지했다.

저예산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양성 영화로 최단기간 내에 1만명 돌파,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단기간 10만 돌파, 최단기간 최다관객 동원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모든 것이 철저히 '한공주'의 상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 그녀의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수상소감을 준비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며 “또 이런 날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자기 일처럼 기뻐해준 저의 지인들과 글로써 격려해준 기자님들, <한공주>를 함께하고 사랑해준 모든 분들…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못다 한 소감을 밝혔다.
 


그녀가 <한공주>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카트>다. <부러진 화살> <변호인> <집으로 가는 길>등과 같이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사회고발 영화인 <카트>는 2007년 이랜드가 운영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 해고통지에 맞서 마트를 점거, 농성을 이어가던 중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복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천우희가 맡은 배역이 어두웠다면 영화 <카트>에서는 그녀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여기서 현대사회를 불안정함 속에 살아가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주위에 ‘긍정의 힘’을 전파하는 88만원 세대 ‘미진’역을 맡았다. 물론 아픔도 있다. ‘미진’은 계속되는 취업난 속에 점점 지쳐만 간다.

그러던 중 계약직으로 함께 일하는 다른 마트 언니들과 함께 회사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주위사람에게 힘을 북돋아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진’의 존재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관객에게 청량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등 쟁쟁한 선배들의 연기에 묻힐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빛이 난다.

한편 <카트> 시사회장에서 천우희는 “(연기를 위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금 내 나이 때 고민할 수 있는 것들,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 봤다. 많이 공감하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충무로 기대주 그녀가 떴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연구벌레

천우희는 철저히 변두리에서 시작했다. 지금이야 아역 배우부터 연기를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있지만 그녀가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녀는 ‘맨땅에 헤딩’과도 같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했다.


친구따라 연극반에 갔다가 연기를 하게 됐고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처럼 <마더> <써니> 등을 찍었다. 25살 때까지는 소속사도 없이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회사를 들어간다 해도 ‘내가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 줄 것이다’고 믿었다. 또래 여자에 비해 두둑한 배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짱도 두둑하지만 뚝심도 남달랐다. 주위의 간섭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캐릭터를 빚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한송이’를 연기할 때도 참고로 한 캐릭터 없이 본인이 고민해서 만들어냈다. 또한 관객의 평가는 신경 쓸지언정 주위의 목소리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화지 같은 외모는 그녀의 가장 큰 무기다. 그녀의 얼굴은 ‘매일매일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어떤 심리 상태를 가지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기에 마치 감정을 물감삼아 얼굴에 채색하는 듯 이채롭게 보인다. 그녀를 본 사람은 천우희가 누구를 닮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선뜻 말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천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연기를 할 때도, 모델로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녀는 본인만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 이런 점들이 그녀를 어떤 배역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만들었다. 자기복제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런 그녀의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배역을 만들 때 특정 이미지에 맞춰 배우를 섭외하는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천우희를 두고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과거 전도연이 그러하듯 단지 예쁘다는 아우라를 넘어서서 다양한 캐릭터의 색깔을 덧칠할 수 있는 배우. 얼굴과 연기에 비어 있는 모호함이 넉넉이 고여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배우”라고 평했다.

천의 얼굴 가진
청룡영화제 퀸

천우희가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13편 가운데 주연을 맡은 건 3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 외에는 모두 조연이나 단역이었다. 그런 그녀가 3번째로 주연한 영화에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리고 2015년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 <곡성> <뷰티인사이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이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섰다. 그리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여배우로 거듭났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보다 ‘보여 줄 모습’이 많기에 전문가는 물론이고 팬까지 그녀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천우희는 패션·뷰티 매거진 <GQ>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배우로 이영애를 꼽았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혹적인 분위기 때문이라 밝혔다. 하지만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알수 있다. 블랙홀처럼 상대를 빨아들이는 그녀의 눈은 충분히 고혹적이라고, 그 안에 담지 못할 배역은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그녀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지 사뭇 기대가 된다.

 

<chm@ilyosisa.co.kr>

 

[천우희는?]

▲경기도 이천 출생
▲양정여자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연기학 전공
▲제14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여자 신인연기자상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제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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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