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로 코너 몰린 김태영 국방부장관

41년 군인인생 천안함과 함께 침몰?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해군의 미흡한 초동대응과 사고과정을 숨기기에만 급급한 태도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화살은 김태영 국방부장관에 쏠리고 있다. 국방부 수장으로서 위기관리능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데다 사고원인 등에 대해 오락가락한 답변을 해 신뢰감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김 장관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고 해결 지지부진…김장관에 따가운 눈길
승승장구했던 군인 인생에 커다란 오점 남길 위기 처해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취임 6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국방부장관에 내정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분위기 속에서 환영을 받았던 김 장관. 하지만 천안함 침몰은 김 장관의 군인인생까지 침몰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김 장관의 퇴진이 기정사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사고가 김 장관에게 던진 타격은 크다.

군인 생활 내내 엘리트코스를 밟아 오며 인정받았던 김 장관이기에 이번 사건은 더욱 뼈아프다. 김 장관이 국방부장관으로 내정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당시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이 퇴진하면서 차기 장관자리에 낙점된 것이 김 장관이었다. 육사 29기의 선두주자인 김 장관은 여러 모로 국방부장관 자리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로 꼽혀왔다. 먼저 야전과 정책부서를 모두 거쳐 군사 현안에 대해 정통하다는 것이 김 장관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었다.

야전과 정책부서 거친 ‘엘리트’
일찌감치 차기 장관으로 낙점

1984년 15사단 26포병 대대장을 시작으로 야전지휘관, 육군사관학교 교수,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등을 거친 김 장관은 야전 지휘관과 정책 부서를 경험한 ‘전략·정책통’이다. 김 장관의 또 다른 강점은 개방적 리더십이다. 김 장관은 평소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부하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아 ‘덕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독단적인 의사결정보다는 부하들의 의견을 수렴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성품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부하들과의 스킨십도 중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말해주는 일화도 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강원도지역에 큰 피해가 있었을 때 김 장관은 2주 동안 공관에 들어가지 않고 장병들과 함께 숙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소탈함과 함께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1군 사령관 시절에는 2000쪽이 넘는 작전계획 서류를 퇴근길에 들고 집에 들어가 검토해 부인의 눈총을 받았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합참의장을 맡을 당시에는 많은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생일을 맞은 부하들에게 책을 선물해주고 같은 사무실 사병이 전역하면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등 따뜻한 인간미도 두드러졌다. 또 한 가지 장점은 통역 없이도 국제회의에 참여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췄다는 것. 육사 재학 당시 독일에서 3년간 유학한 경력이 있는 김 장관은 영어 뿐만 아니라 독일어 실력도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김 장관은 매일 5km 이상을 뛰는 ‘마라톤맨’으로 알려져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또 합참의장으로 재직하면서 한ㆍ미 군사관계 업그레이드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점으로 인해 한미동맹 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처럼 김 장관의 성품과 평소 생활태도, 업무 추진 스타일 등은 국방과 군 조직문화 발전, 군의 선진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이렇다보니 김 장관의 인사청문회는 다른 후보자들과는 달리 별다른 공방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재산문제 등 개인적인 의혹이 불거지지 않았던 김 장관의 청문회에서는 다른 후보들의 청문회와는 달리 국방관련 정책 문제가 주요 현안이었다. 임진강 댐 방류사고에 대한 추궁, 국방예산 문제 및 기무사 민간인 사찰 논란, 군 복무기간 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부각돼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청문회가 끝이 났다.

하지만 이런 김 장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북문제. 김 장관은 지난 2008년 3월 합참의장 내정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발언을 해 남북관계 악화의 빌미를 제공한 바 있다. 당시 청문회에서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에게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김 장관은 “정밀 타격하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장관은 “제일 중요한 것은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서 타격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미사일 방어 대책을 강구해서 핵이 우리 지역에서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고 말했고 그의 발언에 대해 북한은 “김태영 의장이 사과하지 않으면 모든 남북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반응해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또 하나 걱정스런 부분은 김 장관으로 인해 ‘국방 문민화’가 후퇴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김 장관은 합참의장 이임식과 전역식이 열리고 한 시간 뒤 국방장관 취임식을 가졌다. 이 같은 ‘번개 취임’은 어렵게 진행됐던 국방 문민화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현역 군인은 전역 10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에 임명될 수 있다는 점을 국가안전보장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국방 문민화는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전역 1시간 만에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김 장관의 사례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일류 국방경영’ 다짐
전 장관과 차별화

이처럼 기대와 우려 속에서 국방부 수장이 된 김 장관은 ‘일류 국방경영’을 모토로 내걸고 이상희 전 장관의 색깔을 빼는데 주력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일류 국방경영을 위해 국방부의 조직 및 업무수행체계 효율화,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하는 국방정책, 방위산업의 신성장동력화 등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욕적으로 장관직을 시작한 김 장관. 하지만 지난 3월 뜻하지 않은 파문에 휩싸였다. 흑인 비하 발언을 해 비난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이 발언은 지난 3월20일 김 장관이 제주도 서귀포호텔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나왔다. 시 김 장관은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제주도가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아프리카 밀림에 가면 자연이 있다. 그게 관광 명소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기는 그냥 무식한 흑인들만 뛰어 다니는 그런 곳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발언에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는 성명에서 “일국의 장관이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무식하게 뛰어다니는 흑인’이라는 표현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는 것 자체도 심각하지만, 마치 제주의 대표 경관인 강정이 천연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아프리카의 그런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뉘앙스”라고 비판했다.
 
범대위는 이어 “이는 제주의 대표 경관지이자 천혜의 생태계 지역인 강정마을과 주민들을 사실상 비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이에 대해 분명한 해명과 더불어 도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김 장관이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 수장으로서 위기관리능력 부족 드러나 신뢰감 하락
지휘부 라인 문책 불가피해 김 장관 향후 거취에 이목 집중 


유은혜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일국의 국무위원으로서 ‘무식한 흑인’ 운운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은 크나큰 외교적 결례이며, 이명박 정부가 주창하는 아프리카 등 해외자원외교 측면에서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발언임에 틀림없다”며 흑인 비하 발언을 질타했다. 이어 유 대변인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이로 인한 외교적 결례와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발언을 한 김 장관은 더 이상 국무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김 국방장관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데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김 장관은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사과했다. 김 장관은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을 통해 “제주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과정에서 돌발적인 발언이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장관은 이어 “‘국무위원으로 좀 더 신중하게 발언했어야 했는데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고 원 대변인은 전했다.

이 같은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 김 장관의 두 번째 위기는 천안함 침몰로 찾아왔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김 장관은 국민들에 실망을 안겨줬다. 사고 원인조차 뚜렷이 밝히지 못한데다 초동대응과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도 번번이 어설픈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 장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발언이 이어졌다.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국방위가 연 전체회의에서 “초동조치는 비교적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민주당 서종표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해군 초동대응을 잘했다고 말했는데 동의하느냐”고 질문하자 이 같은 답을 내 놓은 것. 이에 대해 의원들과 국민, 유가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사고원인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하는 답변을 해 신뢰를 떨어뜨렸다.

장관생활 두 번째 위기
돌파구 찾을지 주목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이 어떤 짓을 해 놓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침묵)할 수도 있고, 또 오해를 안 받기 위한 행위이거나 도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며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같은 날 열린 국방위에서 “합참의장을 하고 있던 2008년도에 (기뢰)이야기가 있어서 다 수거했다. 기뢰 가능성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낮은 수심에서 여러 압력으로 인해 진흙이나 펄에 묻혀 있던 기뢰가 떠올랐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조사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의 지적에 “북한 기뢰가 흘러들어와 우리 지역에 있었을 수 있다”고 대답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김 장관의 모습은 군 전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번지고 있다. 또 군과 정부의 위기대응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커진 것에 대해 책임 문제를 피하기 어려울 거란 의견도 많다. 특히 김 장관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군의 지휘 라인에 대한 문책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향후 김 장관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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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