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말 못한 조풍언 비망록 추적

무기 로비스트 수첩에 야권 초비상

[일요시사 경제1팀] 김성수 기자 = ‘무기 로비스트’ 조풍언씨가 세상을 떠났다. DJ정권 때 ‘막후실세’로 불린 만큼 당시 각종 로비·특혜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도 ‘살아 있는’정치권 실세들의 이름이 조씨와 함께 오르내렸다. 특히 DJ·김우중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MB정권과 모종의 밀약설이 돌기도 했다. 조씨의 죽음과 함께 그를 둘러싼 의혹들도 영원히 미스터리로 묻히게 됐다. ‘조풍언 비망록’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측근인 조풍언씨가 지난 14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팔로스 버디스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조씨는 한국에서 투옥 후 줄곧 투병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란만장 인생사
조용히 세상 떠나

세간의 시선은 ‘조풍언 비망록’에 쏠리고 있다. 조씨는 평소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비망록 존재 가능성을 높인다. 투병생활이 길었다는 점은 별세 전 틈틈이 ‘작업’했을 가능성을 더한다.

문제는 내용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만큼 그가 생전 못 다한 말들은 굉장한 파급력을 머금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란 점에서 메가톤급 후폭풍까지 예고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조씨가 입을 열면 현직에 있는 ‘DJ 사람들’은 물론 야권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씨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한둘이 아니다. 하나같이 현 정국에 파장을 몰고 올 만한 핵폭탄급 X파일이다. 만약 ‘조풍언 비망록’이 존재한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재미교포 무기거래상 조풍언씨는 철저히 베일에 싸였던 인물이다. 전남 목포에서 선박업을 하는 갑부집 아들로 태어났다. 6·25전쟁 당시 상경해 경기고와 고려대를 졸업했다. 이때 맺어진 학연 인맥들은 조씨가 나중에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1973년 무역·제조업체 기흥물산을 설립한 조씨는 미국 군수업체인 ITT사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무기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는 ITT사의 한국 대리점권을 따내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중반 기흥물산을 매각한 조씨는 1983년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처음 벌였던 사업은 주류 도소매업. 사업 수완이 뛰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잡았고 큰돈을 벌었다. 조씨의 존재가 미국 교포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영업난을 겪던 가든스위트호텔을 인수하면서다. 당시 한인타운에선 호텔 매입자금의 출처를 놓고 갖가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조씨는 한국을 드나들며 무기중개사업을 계속했다.

DJ정부 ‘막후 실세’ 조풍언씨 별세
풀리지 않은 의혹들 그대로 묻히나

‘조풍언’이란 이름이 국내에까지 알려진 것은 DJ정부가 들어선 직후다. DJ와의 특별한 인연이 입소문으로 떠돌았다. 1990년대 후반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막역한 사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씨는 인맥 욕심이 많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누구를 통해서든 한번 알게 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다고 한다.

조씨와 DJ는 선대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둘은 같은 목포 출생으로 이웃사촌이었다고 한다. 조씨의 부친이 운영하는 선박회사에서 DJ가 청년시절 일했고, 조씨와 DJ는 모 청년단체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조씨가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난 계기도 1980년대 신군부가 DJ 계열로 분류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조씨와 DJ가 다시 만난 것은 1992년 DJ가 대선 패배 뒤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이 자리에서 서로 고향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씨는 DJ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덩달아 조씨의 행동반경도 넓어졌다. 조씨는 국민의 정부 시절 ‘얼굴 없는 실세’라 불릴 정도로 DJ정권의 숨은 가신으로 통했다. 조씨가 1999년 7월 DJ의 일산 자택을 구입한 사실이 공개돼 DJ와의 인연이 알려졌다. 이후 DJ 아들들의 후견인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조씨와 김 전 회장은 경기고 동문으로 ‘호형호제’하던 막역한 사이다. 김 전 회장이 조씨의 2년 선배다. 대우그룹 해체 여부를 둘러싸고 채권단과 정부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던 1999년 6월 김 전 회장은 조씨를 만나 의견을 나눌 만큼 절친했다고 한다.

‘조풍언-김우중-DJ’의 연결고리는 조씨가 김 전 회장의 부탁을 받고 대우그룹 퇴출 저지를 위해 DJ 측에 구명로비를 벌이지 않았냐는 의혹으로 번졌다. 검찰은 “1999년 대우그룹 퇴출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조씨를 통해 구명로비를 시도했다”며 “김 전 회장으로부터 로비자금 4430만 달러(당시 526억원)를 건네받은 조씨가 당시 정치권 실세들과 금융부처 등 정부 고위공무원에게 접근했다”고 확신했다.


조씨의 로비대상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당시 청와대 실세 L씨, 전 장관 K씨·P씨, 금융권 고위관계자 L씨와 또 다른 L씨 등이다. 그러나 실제 이들에게 돈이 전달됐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로비 실체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DJ는커녕 그의 측근들을 상대로 한 구명로비 의혹엔 손도 못 댔다.

그가 입 열면
여럿 다친다

검찰은 조씨와 DJ의 아들들이 돈거래를 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 역시 로비와 관련된 사실은 캐내지 못했다. 광범위한 금융 계좌 추적을 벌였지만 별 단서를 잡지 못했다. 특히 해외 금융을 통해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씨와 로비대상자들의 비밀 계좌도 추적했지만 소용없었다. 모든 의혹들이 미궁에 빠진 꼴이 됐다. 검찰은 수사 초기 ‘대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관계 로비 실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결국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은 무죄 판결이 났다. 2010년 12월 대법원은 “대가성이 없었다”며 조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2심 재판부도 “조씨의 혐의를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었다. 이렇게 ‘조풍언 게이트’는 종결됐다. 정재계 거물들의 이름이 오르내려 정국의 ‘핵뇌관’으로 부상했지만,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

미국 사업자금 출처?
대우그룹 구명 로비?
DJ·WJ 비자금 관리?
MB정권 모종의 밀약?

다만 조씨는 주가를 조작한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조씨는 LG가 방계 3세인 구본호씨가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공모해 미디어솔루션 주식을 대량 매입한 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가를 낮추려고 허위매도 주문을 내는 등 시세하락을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가 김 전 회장의 비자금 관리인이란 의혹도 있었다. 이 역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은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란 이유에서다.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추징금 낼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검찰은 조씨가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을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조씨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철저하게 함구로 일관했다. 검찰은 2005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의혹 수사 당시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해외금융법인을 통해 1억1554만달러를 빼돌려, 이 중 4430만달러를 대우 구명로비 대가로 조씨가 운영하는 홍콩 KMC 계좌로 입금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적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드러난 사실이 없었다. 검찰은 조씨가 2001년 9월 예금보험공사에서 가압류 신청한 KMC 명의 대우정보시스템 주권 163만주(액면가 81억5000만원)를 김모 전 감사에게 전달해 은닉한 혐의(강제집행면탈)만 찾아냈다.

구명로비를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 검찰이 밝힌 구명로비 자금 전달 시점은 대우그룹 퇴출 직전인 1999년 6월. 검찰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에 있던 대우그룹 측이 다각도로 대책을 모색하다가 조씨와 접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조씨도 “대우그룹 인사들이 먼저 찾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 자서전? 존재 여부 주목
만약 나온다면…거센 후폭풍 예고

반면 김 전 회장 측은 조씨가 구명로비를 최초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조씨가 대우그룹을 구명하기 위한 로비활동을 먼저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조씨가 DJ 측과 정부 최고위층, 금융관련 고위공무원 등에게 로비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진술했다.


쏙 들어간 의문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씨의 입국 배경도 석연치 않았다. 조씨는 1999년 6월 잠시 한국에 들어와 김 전 회장을 만났다. 김 전 회장에게 “대우그룹 구명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곧바로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고, 조씨는 미국으로 각각 출국했다. 이후 조씨는 검찰의 호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미주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도 미국에 묻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씨는 2008년 3월 갑자기 입국했다. 검찰은 즉각 조씨를 체포했다. 검찰에 잡힐 줄 알면서 조씨가 한국에 온 이유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검찰 안팎에선 조씨가 로비 의혹과 관련된 혐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왔다. 만약 조씨에게 알선수재,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적용한다면 대부분 공소시효가 7년으로 이미 종료된 상황이었다.

일각에선 조씨의 입국을 두고 MB정권과의 ‘모종의 밀약설’이 제기됐다. ‘자진귀국이냐, 기획입국이냐’하는 논란이 불거졌다. 다시 말해 전 정권 쪽을 겨냥한 배후세력의 음모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조씨는 2008년 4월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입국했다. 야권에선 총선 정국에서 ‘조풍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교롭게도 당시 BBK 사건과 관련해 야권 사주에 의한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이 나온 뒤였다. 검찰은 조씨의 입국 배경에 대해 “실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문제와 동창회 문제 때문”이라고 전했다.

망신당한 검찰
일부러 놔줬다?


조씨는 한국에서 검찰 수사와 수감생활을 마치고 2011년 1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입을 꾹 다물고 칩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조씨의 죽음과 함께 그를 둘러싼 의혹들도 영원히 미스터리로 묻히게 됐다. 생전 못 다한 말들이 담긴 ‘조풍언 비망록’존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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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