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보면 따뜻해지는 이 사람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아트룸 정해철 실장

투명한 얼음조각(Icecarving)은 생동감과 웅장함으로 연회장의 분위기를 한껏 높여준다. 최근 국제제과대회 얼음조각 부분에서 한국이 우수한 성적을 거둬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얼음조각은 아직까지 생소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아이스카빙 기원은 신라 지증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라상 올릴 때 음식에 띄우는 얼음을 조각하면서부터였다고 하니 그 역사가 1천년을 넘는다. 그러나 활동 영역이 한정돼 있는 탓에 역사에 비해 아이스카버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얼음조각가는 1백여명 정도. 최근 들어 각종 축하연에 얼음조각이 빠질 수 없는 장식물로 인식되면서 얼음조각가는 늘고 있는 추세다.

"얼음조각을 요리합니다"

“얼음조각은 묘한 빛을 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스스로 녹아 없어지며 예술로 승화하죠.”
얼음조각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 누구보다도 시원한 직업을 가진 얼음조각가 정해철(48)씨. 우리나라 초창기 얼음조각을 시작한 그가 지금까지 만든 얼음 작품만도 수천 개에 달한다. 현재 그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아트룸 실장이자 한국 얼음조각가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호텔 내의 모든 국제 행사와 결혼식, 가족행사, 컨퍼런스, 파티에는 그의 얼음조각이 선보인다. 2000년도 26개국 아시아 유럽 정상들의 아셈 행사 때는 피사탑, 에펠탑, 개선문, 남대문 등 26개국의 상징물들을 얼음으로 조각해서 찬사를 받았다. 또한 우리나라 유수의 눈꽃 축제, 얼음 축제, 스키장에는 그가 회장으로 속해있는 얼음조각협회에서 직접 만든 얼음조각 작품들이 선보인다.
“돌이나 나무가 아닌 얼음을 깎아 만드는 조각품은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요.”
‘얼음조각가는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는 그의 항변.
“어휴, 말도 마세요. 워낙 강도가 센 육체노동에 가까운 일이어서 작품 하나 만들고 나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 게 예사인 걸요. 시원하기는커녕 장화를 신고 일하니 무좀에 걸리기 십상이고. 겨울엔 또 야외에서 작업하다 보면 코나 귀가 얼얼해지죠.”
정씨가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얼음조각가는 불과 10여명에 남짓했다. 아직도 전국에 얼음조각을 하는 이들은 1백여명에 불과하다.
“당시만 해도 전기톱도 없어서 손으로 톱질해서 집채만한 얼음 잘라 원앙도 만들고, 다보탑도 만들었죠.”
정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영숙 여사가 만든 ‘정수직업훈련원’에서 목공예 기술을 처음 배웠다. 전문학교에서 공예전문학과를 다니다가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상 학업도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군대를 제대하고 훈련원의 선배의 소개로 당시 워커힐 호텔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얼음조각은 손재주 좋은 주방장이 직접했다. 그러던 것이 주방장보다 목공예 출신인 정씨가 솜씨 좋게 얼음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자 소문이 퍼져 어느덧 하얏트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 본부 호텔로 인터컨티넨탈 호텔이 개관하면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수많은 연회의 얼음조각 작품이 들어섰다.
“얼음은 영하 5∼10도에서 48시간 가량 얼려야 투명하고 잘 녹지 않아요. 얼음은 석고나 돌, 나무 등의 소재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 형태가 사라지는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작업 후엔 많은 아쉬움이 남지요. 하지만 끝없는 창작 욕구를 자극합니다.”

얼음과 사투… 시원하기는커녕 온몸은 땀 범벅
목공예 출신 솜씨 좋아 호텔업계에서 스카우트

얼음조각을 할 때는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 세밀한 부분은 나중에, 두텁고 큰 부분부터 가능한 빨리 조각을 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얼음조각은 냉동실에서 보관되어 행사 1시간 전에 설치된다. 만든 지 2시간 정도 지나 조금씩 얼음이 녹아 내리기 시작할 때가 가장 예쁘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으면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수정구슬처럼 아름답다는 것이 장씨의 설명이다.
“얼음조각은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죠. 당연히 작업할 때에는 잡념 없이 일에 빠질 수 있고요. 성취감도 아주 좋아요.”
나무나 돌과 같은 다른 재료와 달리 얼음의 성질을 제대로 알고 감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1년을 꼬박 연습해도 작품 하나 완성하기 어려울 만큼 쉽지 않은 일. 얼음 조각을 배워보겠다고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포기해버린 것도 그런 까닭이다.
“힘들지만 큰돈은 되지 않는 직업이지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직은 얼음 조각의 멋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정씨는 호텔의 고품격 결혼식 행사를 위해서 하트 모양의 얼음 조각에 장미꽃을 넣어 고급스러우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국제 행사 때는 보다 웅장한 작품으로 한국적인 다보탑, 독립문 또는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경주마, 용, 월드컵 4강 기원을 위한 대형 축구 선수 모형, 지난 남북 총리 회담 때는 북한의 대동문 등 그가 만든 작품 수는 이루 셀 수가 없다.
“연회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독수리상이에요. 고희연에는 학이나 봉황, 결혼식 때는 잉꼬나 하트 모양의 조각이 많이 나가죠. 나름대로 꾸준히 개발해 둔 디자인만 1백여종이 넘습니다.”
지난 1월에는 새해를 맞이하여 서울 올림픽 공원 평화의문 광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얼음조각가협회 회원들이 얼음조각 전시회를 가졌다. ‘얼음 공룡전’이라는 테마 아래 총 13개의 작품이 선보였으며 이 전시회를 위해서 얼음 4백장(5만6천kg)의 얼음이 사용되었다.  
“외국에서는 얼음조각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해줘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없고, 얼음 조각 작품에 대한 홍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씨는 앞으로 한국 얼음조각이 대중에게 더욱 알려지고, 일본의 삿뽀로 국제 얼음조각축제나 중국의 ‘빙등제’처럼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인 얼음축제를 만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축제를 통해서 많은 작품 활동으로 얼음 조각을 대중들에게 보다 많이 알리고 싶어요.”
곧 50세를 앞 둔 나이에도 희망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Tip - 얼음조각가가 되려면    
삿포로 동계 얼음조각대회 입상이 지름길
얼음조각에 대한 수요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겨울철에는 전국 곳곳에서 ‘눈과 겨울’을 테마로 한 축제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는데 다양한 캐릭터를 조각한 얼음조각들은 풍성한 볼거리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또 여름에 만들어지는 얼음조각은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도 한다.
이렇듯 얼음조각은 사계절 내내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각종 축하연에 빠질 수 없는 장식물로 인식되고 있다. 대형 호텔에서는 ‘아트룸’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얼음조각을 만들고 있으며 결혼식이나 연회 등 각종 축하모임에서 얼음조각의 수요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얼음조각가 분야를 가르치는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없다. 그래서 얼음조각가가 되려면 일단 호텔의 조리부나 아트 분야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보통 미대를 졸업한 사람이 많이 택한다. 일본의 삿포로 동계 얼음조각대회에서 입상하면 빨리 인정받을 수 있어 얼음조각가가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얼음조각에 필요한 도구
1? 톱
얼음을 조각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다. 얼음과 얼음을 붙일 때 사용하며 얼음조각 표면에 거친 느낌을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2? 얼음집게
얼음집게는 조각용 얼음을 눕히거나 세울 때 또는 이동할 때 사용하는 얼음조각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
3? 전기톱
대형 공예작품을 만들 때 얼음을 쉽게 자를 수 있어 조각하는 데 편리한 도구이다. 톱은 크기가 다른 2종류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톱날의 길이가 40~45cm인 것을 사용한다. 얼음조각의 기본인 스케치가 끝나면 가장 먼저 톱의 사용법을 익히게 되는데 조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얼음조각 작업의 40~50%는 톱을 사용한다.
4? 전동 그라인더
작품의 최종 마무리 전 단계에서 사용하는 그라인더는 세밀한 공예 작업 전에 작품의 모서리를 갈면서 전체적으로 작품을 매끄럽게 다듬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연마석은 굵은 것부터 고운 연마석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5? 평끌(평칼)
평끌은 긴것, 짧은 것, 넓은 것, 좁은 것, 두꺼운 것, 얇은 것 등 크기별로 5가지 종류가 있다. 날의 길이가 12cm, 10cm, 8cm, 5.5cm, 3.5cm 등으로 평끌의 종류는 다양하다. 특별한 사용법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날이 얇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작업하기가 수월하다. 평끌의 종류는 위의 사진에서와 같이 다양하지만 얼음을 조각할 경우 톱을 사용한 다음에는 보통 ‘가장 큰 평끌’을 사용한다. 그러고 나서 한 단계 작은 크기의 평끌을 사용한다.
6? 원형각끌(원형각도)
천사의 날개, 파도 등과 같은 부드러운 곡선과 홈을 만들 때 사용한다.
7? 각끌(각도)
각끌은 넓이가 4cm, 3cm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 각끌 크기가 같고 칼의 자루가 길면 대형 공예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하면 좋다. 전체 공정이 끝나고 최종 마무리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
8? 창칼
창칼은 주문식이 아닌 맞춤형으로 개인에 맞게 제작하는데 이번에 소개된 창칼은 칼날과 칼자루의 길이가 30-30cm, 30-20cm, 20cm-18cm. 칼자루의 길이는 칼과 함께 본인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조각 특성에 맞도록 주문 제작해야 사용할 때 편하다. 창칼은 각도 칼을 사용하기 전에 전체를 다듬고 정리할때, 움푹 들어 간 곳을 정리할 때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9? 냉각제
순간적으로 분사되는 냉매는 얼음과 얼음 사이를 순식간에 얼릴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칼이나 창 모형처럼 날카로운 부분을 따로 조립할 때 유용한 도구로 얼음조각 작업 중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깨진 얼음조각을 붙일 때에도 사용한다.
[10] 줄자
얼음조각에 스케치를 하거나 여러 장의 얼음을 조합하여 대형 작품을 만들 때에 사용하는 것으로 비례를 맞추고 크기를 조정할 때도 줄자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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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