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②> 2009 검찰 수사 총결산‘검풍’ 스친 기업&총수 현주소

변죽만 울린 기축년 스캔들 “구린내만 풍겼다”

검찰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시작된 검찰발 기업 사정 작업은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올해 중반부터 속도를 냈다. 여기에 새로 부임한 김준규 검찰총장이 강한 기업비리 척결 의지를 보이면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검풍이 매섭게 몰아쳤다. 그 결과는 어떨까. ‘기업 손보기’에 나선 검찰의 기축년 성적표를 펼쳐봤다.

김준규 총장 취임 직후 전방위 기업비리 수사 속도   
전국서 동시다발 ‘사정폭풍’…윗선·정치권 겨냥


올해 들어 기업 비리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댄 검찰은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지난 상반기까지 ‘권력형 비리’란 꼬리표를 달고 수사선상에 오른 사건은 10여 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 구린내만 풍기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등 ‘소문난 잔치’ 또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흐지부지 끝났다.

상반기 깃털만 ‘만지작’
하반기 용두사미로 끝나

그나마 간신히 ‘은팔찌’를 채운 기업인들도 하나같이 무혐의나 집행유예, 보석, 불구속 등 개운치 않은 결과로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올해 처음 검찰에 꼬리가 잡힌 재계 인사는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이 회장 등이 2005년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관련 포스코 세무조사 무마 의혹에 연루된 정황을 파헤쳤지만 지난 1월 무슨 이유에선지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 회장은 검찰의 수사 종결 발표 3일 전 돌연 사퇴해 또 다른 의혹을 낳기도 했다. 같은 시기 CJ의 탈세 의혹도 석연치 않게 마무리됐다. 검찰은 지난 1월 CJ CGV가 2005년 3월부터 2년여 동안 관람객 숫자를 조작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혐의를 포착, CJ CGV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섰지만 흐지부지됐다.

전 자금관리팀장의 살인청부 혐의 조사 과정에서 수십억원대의 차명계좌가 확인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묻혀진’ 형국이다. 검찰은 당초 이 회장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 소환조사 뜻을 밝혔지만 지금까지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은 회사 공금 20억원을 빼돌려 청탁 명목으로 설범 대한방직 회장에게 15억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불과 한 달 만인 지난 1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벌 봐주기’란 비난을 받았다.

채 부회장은 지난 4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도 조용히 일단락됐다. 검찰은 조 부사장이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가 있다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수사 의뢰에 따라 9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각각 지난 3월과 9월 “범죄가 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무혐의 종결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MB정부의 사정기관이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사건을 다룸에 있어 한없이 관대한 ‘봐주기’ ‘감싸기’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권 1년여 동안 깃털만 만지작거리다 전광석화처럼 덮었거나 굼벵이 수사로 지지부진한 대형 부정부패비리 사건들이 수두룩하다”고 비판했다. 수사 대상 기업들은 변죽만 울린 검찰의 헛발질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와중에 지난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와 이에 따른 총장 중도사퇴, 새로 지명된 총장 후보자의 낙마 등의 여파로 검찰은 사실상 ‘개점휴업’이었다. 이도 잠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은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8월 지휘봉을 잡으면서 ‘재계 손보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기업을 향한 검찰의 칼끝이 더 예리해진 것.

인사청문회에서 “특별수사에 일선 지검의 특수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김 총장은 자신의 구상대로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각 지역 검사장들을 잇달아 불러 토착비리와 기업비리 척결을 적극 주문했고, 이후 검찰의 사정 폭풍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매섭게 몰아쳤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이 대통령의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도 힘을 보탰다.

그 첫 신호탄이 국내 굴지의 기업인 대한통운과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현대산업개발 등이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강압 논란을 빚은 대검 중수부 대신 일선 지검 특수부를 각개전투식으로 선봉에 세워 이들 4개의 기업을 정조준했다. 대한통운,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현대산업개발 수사를 각각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와 인천지검 특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울산지검 특수부가 맡은 것.

세 갈래의 수사 방향은 횡령, 비자금 조성, 특혜, 로비 등 고질적인 기업 스캔들과 그룹의 ‘윗선’ 또는 정치권으로 향했다. 검찰은 지난 9월 대한통운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결국 곽영욱 전 사장을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했다. 곽 전 사장이 이 돈을 정·관계 인사에게 건넸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수사는 예상대로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곽 전 사장이 2007년 초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것.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 전 총리에게 출석을 통보했지만 한 전 총리가 이를 거부하면서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검은돈’ 정황 캐내고
‘돈 흐름’ 단서 못잡아

검찰은 지난 7월 임원들의 개인 비리 정황을 포착,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도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 10월 계약상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대우조선해양건설 전 대표 김모씨를 구속했다. 검찰은 회사 측이 납품업체와 짜고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검은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현직 임원들이 정부지원금 79억원을 빼돌린 것. 검찰은 지난 11월 국책연구 과정에서 연구개발비용을 부풀려 정부지원금을 빼돌린 혐의로 두산인프라코어 계열사 사장 김모씨와 전직 임원 박모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임원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두산 측은 이들이 가로챈 79억원을 전액 반환하기로 했지만 그룹 전체로 수사가 확대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하청·협력업체들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혐의로 현대산업개발 공사현장 임원을 포함한 전·현직 간부들을 무더기 적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던 전국 6곳의 공사현장에서 하청·협력업체 6곳으로부터 모두 30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토착비리 수사는 대형 건설사들을 정조준한 형국이다.

“내사만 질질” 여전히 지지부진 사건도 수두룩
LG 곤지암, 효성 비자금, 태광 큐릭스 인수 등


재계에선 검찰의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대기업 비리에 대한 대대적 사정작업이 본격화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그 대상에 올라있는 기업은 한진, 두산, OCI(옛 동양제철화학), 신동아건설, 대림산업, SK건설, 금호건설, 롯데건설, 현대건설 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광범위한 사정작업은 특정 인물, 특정 기업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과 김 총장이 토착비리 등에 대한 척결 의지를 밝힌 이후 기업 비리에 대해서도 축적됐던 첩보를 하나하나 확인해 수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속도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이 있든 없든 무수한 기업들이 도마에 오르내리는 실정이다. 의혹과 소문만 키운 채 뜸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1조원대의 부동산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LG그룹의 곤지암리조트 특혜 의혹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 밝혀진 사실이 전혀 없다.

지난해 12월 개장한 곤지암리조트는 LG그룹이 1995년 착수한 대형 리조트개발사업이다. 문제는 리조트가 들어선 곤지암 일대가 팔당상수원 보호구역인 탓에 그동안 개발이 제한됐는데 참여정부 때인 2004년 갑자기 사업이 재개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지난 3월부터 이 부분에 대해 내사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을 둘러싼 의혹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효성그룹 일본 현지법인 수입부품 거래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200∼300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자 제보에 따라 지난 2월 수사에 착수했지만 별 성과가 없는 상태다. 검찰은 지난 9월 효성그룹 비자금 중 일부가 조석래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개인용도로 사용된 단서를 포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태광그룹의 큐릭스 인수 의혹도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검찰은 태광그룹의 티브로드가 올초 편법으로 업계 경쟁사인 큐릭스를 인수하면서 정치권 인사 등을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당시부터 첩보를 수집해 지난 9월 본격 내사에 나섰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2006년 12월 큐릭스의 대주주인 큐릭스 홀딩스의 지분 30%를 군인공제회가 인수한 후 2년 내에 태광그룹 산하 태광관광개발에 옵션을 붙여 되팔 수 있도록 이면 계약했다”고 주장했다.

티브로드는 방송통신위윈회가 큐릭스 인수 승인 결정 직전인 지난 3월 유흥업소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접대한 것으로 드러나 로비 의혹을 받았지만 이 역시 용두사미로 끝났다. 최근엔 검찰이 야심차게 덤볐던 SLS조선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싱겁게 마무리됐다. 검찰은 기업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허위로 공시한 혐의로 이국철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이 회장으로부터 공사 인·허가 등 행정편의를 봐준 대가로 미화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진의장 통영시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외주 가공업체를 설립해 공사금액을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45억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이 회장의 형인 이여철 SLS조선 대표이사와 계열사 관계자 등 4명을 구속 기소했지만 그 돈이 로비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미술품 강매 사건과 해외부동산 불법 취득에 연루된 기업들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 중이지만 뾰족한 단서를 찾지 못하는 형편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을 뇌물수수와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국장은 C사, L사, S사 등 기업 5곳에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 미술품과 조형물 등 36억원어치를 팔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 기업 외 굵직한 다른 대기업에 대해선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 넘긴 미스터리들
“뾰족한 수 있을까”

해외부동산 불법 취득 건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찰은 지난 10월 재벌그룹 오너일가의 해외부동산 불법 조성 매매에 대해 수사에 착수, 부동산 자금 출처와 이동 경로 등을 추적하고 있으나 3개월째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재미교포 안치용씨는 지난 9월 자신의 블로그에 효성그룹, 두산그룹, 애경그룹 등 재벌그룹 일가의 초호화 미국 부동산 거래를 공개해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