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4년 만에 총괄대표 선임 ‘2세 오너 경영체제’ 본격화
부회장 선임 후 보폭 넓히며 백화점·이마트 사업 두루 포섭
신세계그룹이 본격적인 오너경영 체제를 갖췄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총괄 대표이사로 전격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일찌감치 2세 경영인으로 지목받으며 활발한 행보를 펼쳤던 정 부회장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바빠지게 됐다. 유통업계는 이번 인사를 통해 한층 젊어진 신세계 정용진호가 어느 만큼의 위력을 발휘할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주)신세계 총괄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신세계 총괄 대표이사는 신세계의 주요사업인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의 투자, 인사, 관리 등 모든 부문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업계는 이에 정 부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신세계 그룹의 후계자로 확고히 자리를 굳힌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에 입사한 지 14년 만이다.
일찌감치 경영 수업
14년 만에 그룹 총괄
경복고 졸업 후 미국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정 부회장은 유학을 마친 뒤 1995년 신세계에 입사했다. 전략기획실 대우이사로 출발한 그는 1997년 기획조정실 상무로 승진했고 2000년 경영지원실 부사장, 2006년 부회장 등을 거치며 경영능력을 키워왔다.
그룹 내 주요 요직을 차지하며 보폭을 넓혀온 정 부회장은 사실 일찍부터 신세계의 후계자로 지목됐다. 이명희 회장이 대주주로 있긴 하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탓에 2대주주이자 이 회장의 외아들인 그가 ‘황태자’로 주목받아 온 것이다.
하지만 재계의 관심에 비해 정 부회장의 후계구도 확정은 시간이 걸렸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 1997년 삼성에서 계열 분리된 뒤 신세계는 구학서 총괄 대표이사 등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정 부회장의 행보가 적극적이지 못했다.
2006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맡는 등 2세 경영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설 때도 정 부회장의 입지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 정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대외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건 2006년 12월 부회장직에 오르면서다. 이 회장으로부터 사실상 경영권 승계를 인정받았다는 업계의 해석처럼 정 부회장은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서며 동분서주하는 행보를 펼쳤다.
우선 정 부회장은 틈나는 대로 현장을 찾았다. 그는 현장을 찾아 유통 매장의 운영에서부터 제품 구성까지 꼼꼼히 지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백화점 편집매장이나 식품관 구성까지 정 부회장이 직접 챙겼다는 신세계 강남점과 본점 등은 업계에서 백화점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확대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새로 개발한 이마트 점포를 빠짐없이 살피며 직원들과의 만남을 강화해 왔다.
이외에도 정 부회장은 신세계 유통의 PL(자체브랜드)상품 개발과 월마트 인수 등에 관여했을 뿐 아니라 중국 이마트 사업 진출과 SSM 출점 등 신사업 추진도 주도적으로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부터는 경영 총괄책임을 맡았던 구학서 부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한 발짝 더 보폭을 넓혔다. 주요 경영진 대동 없이 단독으로 기자간담회를 여는 등 대외 활동을 통해 오너 경영인의 면모를 알리기 시작한 것.
부회장 승진 후 적극 행보
정유경 상무 서포터 발탁
지난 2월엔 JP모건 주최로 열린 ‘한국 CEO 컨퍼런스’에 신세계의 대표로 참석해 미래 전략과 비전을 설명했고 5월말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 PL박람회’에 직접 참여해 PL상품 생산증가 등 사업 확대 의지를 나타냈다.
뿐만 아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내에 자리한 신세계 영등포점의 리뉴얼 오픈과 최근 착공한 아웃렛 2호점 파주 부지를 확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며 그룹 내 인지도를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올해 초부터 업계에선 조만간 정 부회장이 경영 최전선으로 나설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이번 인사 발령으로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 정 부회장은 앞으로 오너로서 그룹의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막중한 짐을 지게 됐다. 그러나 혼자는 아니다. 정 부회장을 보좌할 수많은 젊은 피가 수혈됐다. 신세계는 이번에 대표이사 내정자 5명, 부사장급 8명을 포함해 승진 48명 등 총 65명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를 실시했다. 그룹 탄생 이후 최대 규모의 인사다.
이마트 대표에 최병렬 신세계푸드 대표, 백화점부문 대표엔 박건현 센텀시티점장, 신세계푸드 대표에는 정일채 백화점부문 부사장,조선호텔베이커리 대표에는 배재봉 경영지원실 상무가 각각 내정됐다.
주요 계열사의 사장단은 정 부회장의 입맛에 맡는 사람들로 세대교체 됐다. 늘 소비자를 강조하며 현장 경험을 중시한 정 부회장의 지론처럼 현장 경험이 많은 실무진들이 전격 발탁됐다.
백화점 부문에 내정된 박 대표는 1982년 신세계에 입사한 뒤 20년 이상을 영등포, 광주, 죽전 매장 등의 점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이마트부문 최 대표는 1974년 신세계에 입사한 이후 1996년부터 이마트로 자리를 옮겨 분당점, 서부산점 점장을 지냈다. 2004년엔 신세계 푸드로 자리를 옮겼고 5년 만에 다시 이마트 대표로 자리를 옮겨 정 부회장의 글로벌 유통시장 정복에 함께하게 됐다.
이번 인사 발령 명단에는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도 포함됐다.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거쳐 미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정 상무는 지난 13년간 조선호텔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호텔 인테리어와 레스토랑 사업 등을 주로 담당했다. 정 상무는 조선호텔의 객실 리노베이션을 성공적으로 변화시켜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유통업계 관심 집중
오너2세 치열한 격전
그런 그녀가 부사장으로 2단계 수직상승한 파격적인 인사와 함께 그룹 핵심 기업인 신세계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정 상무는 이번 인사로 백화점 부문에서 매장 리뉴얼 및 인테리어, 디자인, 광고 등 마케팅 실무를 총괄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정 상무의 그룹 합류가 남매경영 체제를 구축해 정 부회장의 경영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이번 인사는 유통업계에서도 화두다. 정 부회장이 총괄대표직을 수행함에 따라 그동안 국내 유통업계의 대표인 롯데, 현대, 신세계가 모두 오너 2세 경영에 돌입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신세계와 ‘유통 지존’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롯데쇼핑은 신격호 회장의 아들인 신동빈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그룹경영을 이끌고 있다. 신 부회장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슈퍼 등 전 유통부문에서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를 무대로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정몽근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사장이 취임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 지었다. 현재 유통업계 3위인 현대백화점은 해외진출보다는 상대적으로 내수에 집중하고 있다. 오는 2015년까지 6개 매장 오픈을 예정하며 덩치를 키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업계는 평소 국내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를 ‘글로벌 유통 TOP 10’으로 이끈다는 포부를 밝혀온 정 부회장이 앞으로 어떠한 비전을 제시할지 집중하는 분위기다.
업계 일각에선 당분간은 정 부회장이 획기적인 변화보다는 본질에 충실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평소 소비자 중심의 현장 경영을 강조한 만큼 신세계 유통업의 본질적인 측면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힘쓸 것이라는 해석인 셈이다.
실제 신세계는 이번 인사에 맞춰 그룹 조직부터 대폭 개편했다. 백화점 부문은 서비스 차별화를 위한 고객서비스본부를 신설하고 이마트 부문은 상품본부를 식품과 비식품본부 체제로 재편했다.
이는 분야별 전문성과 책임 경영 체제를 강화해 상품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신세계의 설명이다. 업계는 정 부회장이 이 같은 상품 경쟁력 강화를 기반으로 국내 유통시장에 대한 공격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편에선 향후 정 부회장이 세계 시장 확대를 위해 인수합병(M&A) 등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동시에 국내 유통시장의 지속 성장을 위한 신 성장 동력을 찾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예측도 나왔다.
업계 일각에선 정 부회장이 그동안 관심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진 중국 이마트와 복합쇼핑몰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1968년생
▲1987년 경복고 졸업
▲1994년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 졸업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
▲1997년 신세계 기획조정실 상무
▲2000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사장
▲200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회장
▲2009년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