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서 MB 손 들어주고 1년10개월 만에 집권여당 대표로
친이·친박계 사이 중심잡기로 당 화합 ‘조정자’ 역할 기대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정치 입문 22년 만에 집권여당의 수장이 됐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내리 6선을 한 정 최고위원이지만 당직을 가진 지 불과 1년 10개월 만의 일이다. 짧은 시간 동안 당내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데다 지난 전당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을 기반으로 당 대표직에 오른 것이어서 당 안팎에서는 정몽준 대표가 기회를 얻었다는 평에 주저함이 없다. 다만 땅이 굳기도 전에 10월 재보선이라는 실험대에 올랐다는 점이 위기가 될지, 기회로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정몽준 대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한 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당 대표최고위원직에 올랐다.
정 대표가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도 그가 승승장구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정 대표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한 뒤 지난 대선 전까지 무소속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라는 든든한 재력과 현대중공업 사장, 회장이라는 경력,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하며 쌓은 국민적 인지도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정 대표지만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것과 정당에 속해 움직인다는 것은 엄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기적인 생명체와 같은 정당 활동에 적응해야 하고 친이, 친박계로 나뉜 한나라당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야 했다. 정 대표는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하고 당의 전략공천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당에 대한 기여도를 쌓았다. 당 의원들과 만나고 지역구를 방문해 당원들과의 접촉빈도도 늘렸다.
무소속 색깔 벗은 MJ
여당 수장으로 정치력 시험
이를 통해 처음 한나라당에 발을 디딜 때는 이재오 전 의원의 양보로 최고위원이 됐던 그지만 지난 전당대회에서는 자력으로 대표최고위원 경선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정 대표는 친이, 친박계에 휩쓸리지 않고 당과 정책, 정치 현안 등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왔다.
정 대표는 박희태 전 대표가 10월 양산 재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대표직을 이어받게 됐다. 이는 그의 정치 인생에 있어서 ‘위기이자 기회’가 될 전망이다.
빠르게 정상까지 오른 정 대표지만 당에 몸담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지지기반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나라당은 친이, 친박계가 양분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당 장악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반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몽준계’라고 불릴 만한 세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친이, 친박계 사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조정자’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탕평인사도 가능하다.
정 대표는 취임 첫날인 지난 8일 당직 개편을 단행했다. 새 대변인에는 조해진 의원,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정양석 의원을 임명했다. 당직인선에는 계파보다는 능력과 직책에 따른 적합성을 고려됐다. 당 경험이 많은 정 의원은 오랜 무소속 생활을 해 온 정 대표를 잘 보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 측은 “정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국장, 기획조정국장, 수석 부대변인 등을 거쳐 당의 생리를 잘 안다”면서 “오랫동안 무소속으로 활동해온 정 대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기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대표 본인도 당 대표로서 나름의 ‘정치 실험’에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박희태 전 대표처럼 원외 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라는 것. 평소 강조해왔던 공천제도 개혁과 당헌 당규 개정, 당정청의 실질적 협력관계 등에 대한 의중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당장 신임 당 대표로 이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당청간 소통강화를 요청했다. 정 대표는 “당과 나라를 위해 사심없이 대표직을 수행하겠다”면서 “대통령과 정례적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고 대표뿐만 아니라 중진의원들이나 다른 의원들과 만남의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답했다.
조정자 역할 자처
친이, 친박 사이 균형잡기
반면 위험요소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내년 지방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향방을 알 수 있는 10월 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게 그것이다.
정 대표는 당을 ‘정몽준 체제’로 바꾸고 제대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기도 전에 10월 재보선을 치러야 할 처지다. 이 경우 취약한 정 대표의 당내 기반으로는 소신껏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게 된다. 게다가 지난 4월 재보선 결과로 당 지도부가 휘청거린 바 있어 10월 재보선 결과를 낙관할 수도 없는 처지다.
결국 10월 재보선은 현 정권과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인 동시에 정 대표의 정치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조기전대론도 부담이다. 당초 조기전대론은 4월 재보선 참패 후 당 쇄신위에서 논의된 사항이다. 9월 조기전대는 물리적 여건상 유야무야 됐지만 아직 2월 조기전대론은 살아있다.
이재오계 공성진 최고위원은 “정 대표가 잘하면 그냥 그런 거지만, 잘 못하면 가지고 있는 큰 꿈이 자칫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조심조심 잘하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 최고위원은 10월 재보선을 거론하며 “박희태 대표의 개인적인 처신에 따라서 승계를 한 것이고, 이번 10월 재선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따라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승패에 대해서”라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에는 져야 한다. 2월이 될 수도 있고 3월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정기국회가 진행되지만 10월 재보궐선거가 국민적 기대에 워낙 미진하다면 거기에 대해 신중하게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조기전당대회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9월 정기국회에서 여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부터 10월 재보선, 조기전대론,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정 대표 앞에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걸어야 할 가시밭길인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대표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명운이 갈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표직 수행에 대한 평가는 곧 정 대표 본인의 대권 가도와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눈앞에 닥친 재보선
2월 조기전대론 고민
정 대표가 넘어야 하는 것은 정치적 이슈만이 아니다. 당을 이끌며 ‘재벌’이라는 이미지의 족쇄도 풀어야 한다.
정 대표가 대표직을 승계하자 야권에서는 “대통령도 현대 출신 CEO고 한나라당 대표도 현대가의 오너 출신인 정 대표가 맡게 되니 마치 현대가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이 된 것이 아닌가 의아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 한 관계자는 “재벌 출신으로 과연 친서민정책을 펼 수 있을까 하는 국민의 의구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정 대표의 부친은 현대그룹을 세운 고 정주영 회장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1982년 31세에 불과한 나이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 중 가장 규모가 큰 계열사이자 세계 최대 조선사였다.
정 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정 대표에게 맡긴 것은 일찌감치 그에게 정치를 시키기로 마음먹고 안정적으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자 했던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전언이다.
정 대표는 13대 총선에 출마하기 전까지 7년간 현대중공업에서 사장과 회장 등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대중공업이 워낙 알짜배기 기업이었던 만큼 정 대표의 경영능력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그의 경영능력이 어찌됐든 계열사 분리 당시 재계 순위 20위권에 머물던 현대중공업은 재계 순위 9위가 됐고 정 대표의 재산은 주가하락으로 반토막이 났어도 여전히 1조를 훌쩍 넘기고 있다.
지난 최고위원 선거에서의 ‘버스비 70원’ 발언으로 재벌 엘리트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정가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이 서민정책, 중도실용주의를 통해 지지율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은 정 대표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재벌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정 대표에게 득보다는 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재벌 출신이라는 점이 현 정부의 친서민 행보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우리나라의 평범한 가정,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며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갔을 때 찍은 사진 2장을 꺼내든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다.
정 대표는 또 재산의 사회 헌납과 관련, “내 재산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현대’ 대통령, 당 대표
부자 이미지 벗을까
정 대표는 당 대표가 된 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의장단 회의에서 정 대표의 일정을 보고 다들 놀랐다”고 말했을 정도다. 주변에서도 “보좌관이 지칠 정도의 일정”이라는 말이 많다.
취임 첫날인 지난 8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10여 개의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 날에는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과 조찬 회동을 가졌으며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을 찾았다. 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를 “선배님” “총재님”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0일에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 3대 종단 지도자들을 차례로 예방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정 대표가 조언을 부탁하자 ‘무설설’(無說說)을 인용해 “말이 없는 가운데 말이 있다는 뜻이다. 말이 많다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관스님은 “여러 가지로 자기 입장만 주장하면 잘 안 통할 수가 있다”며 역지사지의 자세를 당부하기도 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정 대표를 만난 정진석 추기경은 정 대표가 취임 직후 ‘공직은 죽음과 같다’는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격언을 이용한 점을 거론했다. 정 추기경은 “그런 자세로 가시면 되겠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다”며 “로마 사람들은 이끌고 가는 것보다 뒤에서 밀고 가는 것을 공직의 자세로 봤다. 목자가 양떼를 몰 때는 앞에서 끌고 가지 않고 꼭 뒤에서 몬다. 정 대표의 발언 중 세네카의 격언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엄신형 목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권오성 총무를 차례로 만났다.
11일에는 취임 인사차 상도동 자택을 방문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했으며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만나 신종플루 대책을 들었다.
일정표 빼곡히 채우고
민심·당심 얻으려 잰걸음
취임과 함께 시작된 정 대표의 강행군은 고령이었던 박희태 전 대표와 차별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당 대표가 젊어진 만큼 당에도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다는 것. 또한 민생행보 외에도 야당·종교계·언론 등과 폭넓게 소통하는 것은 그가 당에서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역할’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잰걸음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 대표. 그가 당 대표직을 맡으면서 일장춘몽을 꾸고 말지, 득시즉가(得時卽駕, 좋은 기회를 맞아 일을 성취한다)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몽준은 누구?
▲1951년 부산출생
▲존스홉킨스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
▲1983년 울산대학교 이사장, 대한양궁협회 회장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 도쿄대학교 교환교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1990년 학교법인 현대학원 이사장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1993년~2009년 대한축구협회 회장
▲1994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1995년 존스홉킨스대학교 재단 이사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아산재단 이사
▲1999년 고려대 석좌교수, 고려중앙학원 재단이사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1세기 평화재단 이사
▲2002년 2002월드컵 조직위원장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2007년 FIFA 올림픽조직위원장
▲2008년 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9년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2009년 말레이시아 다투 작위 수상
▲2009년 9월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