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등장’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

“MB 잡던 대항마 MB 구세주 되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중반기를 이끌어갈 2기 내각을 꾸렸다. 주목할 부분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신임 국무총리로 내정한 점이다. 정 내정자는 과거부터 정부를 향한 건설적인 비판으로 정계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아왔던 ‘준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 때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항마로 손꼽히며 정계 입문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스스로 대선불출마 선언을 한 후 뚜렷한 정치 행보가 없던 터라 정 내정자의 이번 행보는 다소 이례적이다. 정·재계는 정 내정자의 ‘깜짝 등장’에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똑소리’ 나는 정부 비판으로 국민 인지도 상승
집권 2기 내각 국민통합과 소통·민생안정 ‘숙제’

9·3 개각 결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한승수 국무총리에 이은 현 정부 2대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됐다. 정 내정자는 차후 인사청문회만 잘 넘긴다면 MB정부의 집권 중반기를 이끌고 가는 핵심 인사로 부상하게 된다.

충청권 출신 ‘뉴페이스’ 인사
서울대 총장 역임한 경제학자

정계는 MB정부의 정 내정자 선임을 두고 출신지역 색깔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대부분의 인사가 영남권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차별화된 선택이란 얘기다. 실제 정 내정자는 충남 공주 출생이다. 1947년 2월 다섯 남매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정 내정자에겐 어려운 시절마다 손을 내밀었던 지인들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동기의 아버지인 이영소 전 서울대 교수의 도움으로 경기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경기고 재학 시절엔 영국 출신 캐나다인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뒷받침으로 학업을 이어갔다. 그 결과 196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기미독립운동에 도움을 준 사람으로 정 내정자에게 사회를 바르게 비판하는 시각을 길러줬다. 

화합과 통합의 코드 중도실용의 경제철학
정치러브콜 사양하더니 돌연 정부 핵심인사로


서울대 은사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도 정 내정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 내정자는 대학졸업 후 당시 최고 직장으로 꼽히던 한국은행에 조 전 부총리의 추천으로 무시험 입사했다. 이후 조 전 부총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도 올랐다. 정 내정자는 마이애미대에서 1년 만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경제학 최고 명문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부터는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 내리 31년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는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고 이후 다시 교편을 잡아 현재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 내정자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인지도를 넓힌 것은 2002년 교수 직선을 통해 서울대 총장에 임명되면서부터다. 정 내정자가 추진한 각종 서울대 개혁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다양한 인재 선발을 기치로 내걸고 도입한 ‘지역균형선발제’는 국민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정 내정자의 서울대 총장 재임은 그의 몸값을 드높인 고공점프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그는 국립대학 총장의 신분으로 정부와의 부담스러운 마찰을 마다하지 않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민감한 입시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의 대립각을 세울 때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임기 내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도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중도 성향 띠며 ‘바른말’ 행보
17대 대선 ‘MB대항마’ 후보로

그는 참여정부를 향해 “경제정책의 방향성이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어 오늘은 이 정책, 내일은 저 정책이 나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어느 정부나 잘하려는 의지가 있겠지만 현 정부는 식견이나 전문지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이 같은 정 내정자의 뚝심 있는 발언들은 국민의 신임과 지명도를 쌓는 지름길이 됐다. 자연히 정부나 정치권의 러브콜도 쇄도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한국은행 총재직을 맡아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고사한 이래 정 내정자는 개각 때마다 경제 관련 부처나 청와대 경제수석 후보 0순위로 거론됐다. 정 내정자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으로부터도 정치 격변기 때마다 영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 정당 모두가 정 내정자 영입에 뛰어들었다.

특히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정 내정자를 만나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 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대세론’ 확산에 마땅한 대항마를 찾지 못하고 있던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의 대선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정 내정자가 경제학을 전공한 대학 총장출신이라는 점에서 경제와 교육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례적 행보에 속내 ‘갸우뚱’
민생안정·경제회복 과제 산재

또한 그는 충청도 출신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보여줬듯이 충청권의 향배가 승패의 관건이라는 점에서 정 내정자는 정치권의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 내정자의 인지도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정치분야 여론주도층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범여권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에 오를 정도였다.

정 내정자 역시 범여권의 대권후보로 거론됐던 2007년 초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대권행보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해 정계 입문의 물꼬를 트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정 내정자는 결국 “여태껏 정치세력과 그 활동을 이끌어 본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나설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말을 남긴 채 정치권을 떠났다.

그랬던 그가 돌아왔다.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정치적 움직임이 없던 정 내정자가 MB정부의 살림을 이끌어가는 핵심인사로 정계에 첫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정 내정자의 갑작스런 노선 변경에 정계 일부에선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 내정자는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 구조조정, 감세 등 핵심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계는 그동안 정계 진출을 고사했던 정 내정자가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보이는 데에는 분명 숨은 속내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계 한 관계자는 “정 내정자가 이번 총리직을 수락한 데에는 시기적인 요소가 클 것”이라며 “충청권의 민심을 잡는 동시에 경기 회복세에 들어선 지금이 수월하게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시점이라는 계산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 내정자가 당면한 과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 내정자가 후보 소감문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거시경제, 서민생활, 사교육비, 일자리 창출, 사회·지역적 대립, 남북 갈등 등 어느 하나 쉽게 풀어 갈 수 있는 현안들이 없다. 물론 현재 국내 경기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신용등급이 상향될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정계는 이를 위해선 국민 피부에 절실하게 와 닿는 부동산 불안정부터 해소해야 하고 크게는 출구전략과 노사 문제도 원만하게 끌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 내정자를 중심으로 한 2기 내각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도 녹록하지 않다. 개헌을 비롯해 행정구역과 선거제도 개편 등 굵직한 현안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시점이다. 앞으로 9개월 뒤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여야 간 정치적 갈등도 더욱 격화될 것이다.

정 내정자는 이런 경제적 정치적 난관들을 돌파할 수 있는 수완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정계 한 관계자는 “정 내정자가 서울대 총장 말고는 이렇다 할 행정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며 “하지만 학자 출신의 한계가 있다는 일부의 비판에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 약력

▲ 충남 공주 출생(1947)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70)
▲ 미국 마이애미대 경제학 석사(1971∼72)
▲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1972∼76)
▲ 한국은행 근무(1970∼71)
▲ 미국 컬럼비아대 조교수(1976∼78)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1978~)
▲ 한국금융학회 회장(1998∼99)
▲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2002. 2∼6)
▲ 서울대 총장(2002. 7∼2006. 7)
▲ 한국경제학회장(2006. 2∼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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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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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