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그룹이 3세 경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현대차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시킨 것이다.
그룹 핵심사업인 현대차 기획영업 부문으로 옮겨지면서 정 부회장은 앞으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인사발령의 성격이 짙은 만큼 향후 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지분승계 작업도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초고속 승진으로 현대차그룹
3세 경영 본격화 세대교체 예상
현대차 기획·영업 등 핵심 업무
맡아 그룹 내 목소리 키울 듯
현대기아차그룹(이하 현대차)은 지난 21일, 정의선(39) 기아차 사장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현대차는 정 부회장의 발령에 대해 “신임 정 부회장은 기아차 글로벌 판매를 맡은 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3위로 도약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밝힌 정 부회장의 담당 업무는 기획과 영업 부문으로 국내외 영업망을 총괄하게 된다.
입사 후 초고속 승진
10년 만에 그룹 핵심
해당 업무는 지난 1월, 최재국 전 부회장의 퇴임으로 줄곧 공석으로 남겨져 있던 상태다. 이번 인사로 정 부회장은 사실상 그룹을 총괄하는 핵심 인물로 부상하게 됐다. 사실 정 부회장은 지난 1999년 현대차 자재본부 이사로 입사하면서부터 일찌감치 현대가의 후계자로 주목을 받아왔던 터다.
부품 조달과 자재관리를 담당하는 자재부문은 자동차 제조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분야로 경영수업을 위한 현대가의 전통 코스다. 현장에서 기초부터 익혀야 한다는 현대가의 경영스타일이 내포된 것이다.
업계에선 정 부회장의 자재본부 입사를 두고 “정몽구 회장이 선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던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후 정 부회장은 초고속 승진을 이어왔다. 그는 입사 1년 만인 2000년 현대차 이사로 2001년 초에는 상무로 승진했다. 2002년 초에는 전무로 승진해 국내 영업본부 영업담당과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을 겸임했다.
2003년부터는 현대차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그해 1월 현대차 전무로 승진하더니 곧바로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고속 승진은 계속 속도를 내 2005년에는 기아차 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이어 올해 초 인사를 앞두고 한때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진입이 거론됐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로 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정 부회장의 진입이 한 차례 연기됐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정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 조만간 현대차로 수평이동 또는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날 것이라고 입을 모아왔다. 이 같은 분석 이면에는 올해 들어 정 부회장의 대외적인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이 자리를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 상반기 제네바·상하이모터쇼 등 국제모터쇼에서 모습을 보였고 2월엔 정몽구 회장과 함께 기아차 미국 조지아 공장을 방문하는 등 활동 폭을 넓혔다. 이어 6월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는 현대차그룹을 대표해 CEO 만찬에 참석하며 대내외적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게다가 세계 경제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되어 가고 기아차 사장 재임시절 정 부회장의 경영성적도 긍정적으로 평가되면서 업계는 현대차의 경영 승계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해 왔다. 결국 이번 인사발령으로 정 부회장은 입사 10년 만에 그룹 핵심 인물로 굳건히 자리를 잡게 됐다. 동시에 그는 후계자로서의 경영능력을 평가받아야 하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기아차 사상 최대 실적 좋은 평가
핵심 계열사 지분 확보 주력 예상
현대차는 그룹 내 2위 계열사인 기아차에 비해 덩치가 큰데다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판매 증진은 물론 그룹의 미래 전략 구상에도 힘을 쏟아야 하ummy는 과제가 주어졌다. 일단 정 부회장의 그동안의 경영 성적은 양호한 편이다. 정 부회장이 2005년부터 사장으로 재임한 기아차는 수년간 적자에 허덕였지만 지난해부터 디자인을 강화한 신차 포르테·로체·쏘울 등을 내놓으며 현재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기아차는 정 사장이 취임한 첫해인 2005년 전 세계에 118만8905대를 팔았으나 지난해에는 137만7738대를 판매해 15.7% 증가했다. 세계 경제위기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한 가운데 올해 상반기 매출도 8조1788억원, 영업이익 4192억원을 내며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3%, 91.5% 증가한 좋은 결실을 거뒀다.
또한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을 맡은 뒤 ‘디자인 경영’을 기치로 기아차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대폭 개선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말에는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향후 정 부회장은 대내외적으로 능력을 검증받는 동시에 그룹 지배력 확보에도 힘을 써야 할 입장이다. 후계구도 측면에서는 지분 변동이 가장 중요한 이슈인데 정작 아직까지 정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 지분이 전혀 없다.
현재 현대차의 지배구조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 형태의 순환출자구조로 이뤄져 있다. 정 부회장은 지배구조 핵심을 이루는 이들 계열사들 중 기아차 지분 1.87%를 소유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향후 정 부회장의 전 계열사 지분을 살펴보면 기아차 1.87%, 글로비스 31.9%, 이노션 40% 등이고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나 모비스 지분은 0.01% 미만이다. 결국 그룹 전체를 지배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인 것이다.
업계에선 이에 현대차가 앞으로 정 부회장의 법적 상속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 부회장이 만약 31.9% 지분을 갖고 1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 지분 전량을 팔아 기아차 주식을 사들인다면 자연스레 그룹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비스가 정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해도 안정적인 확보는 가능하다는 것.
경영 승계 움직임 활발
법정 상속 본격화 예상
물론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법원이 현대차의 글로비스에 대한 지원을 부당 내부거래로 규정한 것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7년 현대차그룹과 계열사가 ‘물량 몰아주기’로 총수 일가가 최대 주주로 있는 물류회사 글로비스를 부당지원했다며 시정을 명령하고 6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현대차는 이를 부당히 여겨 항변했지만 법원은 지난 21일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기존 과징금보다 줄어든 550억원을 부과하라고 판결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그동안 재벌 총수들이 계열사를 부당지원하면서 편법 상속을 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글로비스를 통한 그룹 장악에 대한 견제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