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마을 출신 한 소년이 37년 뒤 세계를 제패했다. 승전보는 멀리 미국에서 들려왔다. 상대인 타이거 우즈에 비하면 무명이나 다름없던 양용은 골프선수가 호랑이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것이다. 볼보이로 골프에 입문해 물에 찬밥을 말아먹으면서도 훈련과 대회 출전에만 전념했던 그이기에 우승의 감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메이저대회 챔피언십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트로피를 차지한 양용은 선수의 뚝심 있는 도전의 기록을 쫓아봤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꺾고 PGA 챔피언십 우승컵 차지
아시아 첫 메이저 제패…세계랭킹 34위-상금랭킹 9위 기록
‘바람의 아들’ 양용은 선수(37·테일러메이드)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트로피를 차지해 3연승에 도전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콧대를 누른 것이다. 양용은은 지난 17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해즐타인내셔널GC에서 치러진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US PGA챔피언십의 최종 라운드에서 타이거 우즈와 맞붙었다. 전문가들도 양용은은 우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3라운드까지만 해도 우즈의 압승이 예상됐다.
랭킹 110위→34위로 껑충
놀란 외신 일제히 ‘떠들썩’
그러나 4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변했다. 양용은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페이스를 유지해 간 반면 우즈의 샷은 번번이 실수를 낳았다. 전반 2타를 잃은 우즈는 양 선수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중간 합계 6언더파로 팽팽하게 맞서던 양용은과 우즈의 승부는 14번 홀에서 갈렸다. 우즈가 먼저 버디 기회를 만들어 놓았지만 곧이어 양용은이 결정적 순간의 파4홀 이글을 이끌면서 전세는 역전했다.
남은 것은 네 홀. 그러나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우즈는 계속해서 실수를 연발하며 양용은에게 기회를 만들어줬고 양용은은 차분하게 경기를 이어갔다. 결국 우즈의 세 번째 샷이 홀을 크게 지나치자 양용은의 우승은 현실이 됐다. 세계 골프 역사를 다시 쓸 기록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이번 우승으로 양용은은 135만 달러의 상금을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올 시즌 수상한 상금이 총 322만 달러를 돌파해 상금랭킹 9위로 뛰어 올랐다. ‘호랑이 사냥’에 성공한 덕분에 110위였던 세계 랭킹도 34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더불어 PGA챔피언십은 물론 마스터스와 US오픈, 브리티시오픈까지 4대 메이저대회에 5년간 출전권을 확보했다. 또한 세계골프연맹이 주최하는 특급대회 초청장에도 1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미국 대표팀과 인터내셔널팀이 맞붙는 프레지던츠컵 출전도 확정됐다. 금전적인 혜택도 무수하다. 정규시즌이 끝나면 정상급 선수들은 초청료를 받고 이벤트 대회에 출전하게 되는데 일반대회 우승자의 경우 10만 달러가량의 초청료를 받는 반면 메이저대회 우승자는 최소 30만 달러의 초청료를 받게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양용은이 시즌 후 이벤트 대회 초청료만 최소 150만 달러 이상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 최초로 PGA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쥔 양용은에게 향후 3년간 국제선 전 노선 항공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양용은 선수 부부는 아시아나 항공이 취항하는 국제선 1등석을, 세 아들은 비즈니스석을 3년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수치적인 변화에서 드러나듯 양용은의 이번 대회 우승은 가히 역사적인 수준이다. 언론은 일제히 역대 골프대회 사상 최대의 이변이라고 전했다. 주요 외신들도 앙용은의 우승을 ‘긴급뉴스’로 타전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AP통신은 “올해도 의외의 선수는 많았지만 그중 최고는 양용은”이라며 “그는 모든 사람들이 우즈에게 기대했던 샷들을 날렸다”고 전했다. 폭스스포츠 역시 ‘영원하라, 양(Forever Yang)’이란 극찬과 함께 “22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언더파를 기록한 그의 우승은 마이클 조던이 결승 7차전에서 종료 버저와 함께 덩크슛을 내리꽂은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전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양용은은 입이 벌어질 만한 마무리를 보였다. 승자는 인기나 이름값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즈 역시 “랭킹 110위가 1위를 꺾었다”며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기절시키고 골프 세계를 전율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양용은은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골프장 인근 한국식당에서 부인 박영주씨, 매니저 등 관계자들과 함께 조촐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온 양용은은 “TV를 보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았다. 평소 같으면 피곤할 텐데 역시 메이저 우승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뜬눈으로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다는 양용은 선수. 당연한 말이다. ‘눈뜨고 나니 스타더라’라는 말처럼 하룻밤 사이 세계적인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됐기에 피곤을 느낄 새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골프를 향한 그의 무수한 노력과 역경들을 살펴본다면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성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주 섬마을 농부의 아들
끝없는 도전 ‘인간 승리’
알려진 대로 그는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 아니다. 골프의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제주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살 때 보디빌더를 꿈꾸며 몸을 만드는 데 열중했고 고3이 되어서는 남들처럼 대학진학이 꿈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젊은 나이에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공사판의 잡부로 전전해야만 했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용인 골프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의 새로운 꿈이 시작된다. 양용은은 연습장에서 볼보이로 일하며 어깨 너머로 골프를 배웠다. 골프채 하나 마련하기 어려워 어렵게 중고 골프채를 얻어 연습했다. 고액의 레슨은 꿈도 꿀 수 없어 거의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양용은은 1997년 프로에 데뷔했다. 그해 8개 대회에 출전해 상금랭킹 60위에 올랐는데 상금은 590만원에 불과했다.
1999년엔 상금랭킹 9위에 올랐다. 그가 그해 벌어들인 돈은 1800만원이었다. 세금을 떼고 나면 1000만원이 겨우 넘는 돈이었다. 양용은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일반 직장인 월급조차 되지 않는 상금 앞에 말없이 내조하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듬해인 2000년부터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투어에서 활약하는 틈틈이 일본 투어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조차 만만치 않았다.
연습장 볼보이로 골프인생 시작
중고 골프채 얻어 독학으로 익혀
2002년 일본투어를 떠나기 전까지도 그는 용인에서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 아내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하는 배고픈 인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양용은은 스폰서도 없이 월세방을 전전하면서도 결코 골프인생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2002년 11월 열린 KPGA투어 SBS최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양용은은 성공을 향해 질주했다. 2004년부터는 국내 투어를 접고 일본 투어에 전념해 2승을 거뒀다.
2006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 대회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타이거 우즈가 출전했던 대회였다. 이후 이번 대회에서도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하자 외신들은 “타이거 우즈에게 양용은은 아킬레스건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양용은의 세계 제패를 향한 발걸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메이저 챔피언의 기쁨을 뒤로한 채 강행군을 펼치게 된다.
양용은은 이번 주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후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 출전한다. 플레이오프 대회는 27일 열리는 더 바클레이스를 시작으로 도이체방크챔피언십(9월4~7일), BMW챔피언십(11~13일), 투어챔피언십(24~27일)까지 4주 연속 열린다. 10월8일부터는 프레지던츠컵이 시작된다. 프레지던츠컵은 미국 대표와 인터내셔널팀(유럽 제외)이 각각 12명씩 출전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 제패 일정 빡빡
미국팀은 타이거 우즈, 스튜어트 싱크와 필 미켈슨, 앤서니 김 등이 나서고 인터내셔널팀은 양용은과 어니 엘스(남아공), 비제이 싱(피지) 등이 포진됐다. 양용은은 여기에서 우즈와 또 한 번의 맞수 경기를 펼치게 된다. 국내 팬들을 만날 기회도 잡혀있다. 양용은은 10월15일부터 용인레이크사이드CC에서 개막하는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할 예정이다. 대회가 끝난 후 20일부터는 올해 4대 메이저대회(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 우승자들만 출전하는 그랜드슬램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동한다.
11월에는 타이거 우즈를 꺾어 ‘타이거 헌터’라는 별명을 처음 얻게 된 월드골프챔피언십(WGC) HSBC챔피언십(11월5~8일·중국 상하이)에 참가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1월26일부터 중국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리는 오메가 미션힐스 월드컵에도 출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