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아시아 물개’ 조오련<풀스토리>

지상의 바다도 좁았던 ‘물개’ 이제 천상의 바다로…

‘원조 마린보이’ 조오련씨가 5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전라도 해남 출신의 작은 체구를 가진 그는 한국 신기록을 50차례나 갈아치우는 저력을 보이며 수영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 1970년대 ‘아시아의 물개’로 불리며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는 은퇴 후에도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국민들에게 귀감이 되어왔다.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까지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며 멈추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던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수영복 없어 ‘사각팬티’ 입고 출전한 대회 ‘제패’
신기록 50차례 갈아치운 한국의 ‘원조 마린보이’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지난 4일 심근경색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조씨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전남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 자택 현관 앞에 쓰러진 채 부인 이모(44)씨에게 발견됐다. 심장마비 증세를 보인 그는 발견 즉시 119구조대의 도움으로 해남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낮 12시45분쯤 심폐정지로 숨을 거뒀다.

그는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인 내년 8월15일 생애 마지막 횡단에 도전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놓고 준비하다가 1주일 전부터 자택에 머물며 부인과 함께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영이 좋아 무작정 상경
한국 수영 역사 다시 써

한국 수영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는 1952년 전라도 해남 한 빈농의 집안에서 5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고향 실개천에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우며 자신감을 보였던 그는 중학생 시절 본격적으로 수영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결국 해남고 1학년인 1968년 말 자퇴서를 내고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좇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조씨는 당시 국내 유일의 실내 풀이 있었던 YMCA 수영장에 등록해 수영 실력을 갈고 닦았다. 먹여 주고 재워준다는 조건으로 YMCA 맞은편 간판집에 취직해 심부름 등을 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손님들의 구두를 닦아 수영장에 다닐 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경력도 없는 전라도 출신 시골 소년은 서울 선수들의 홀대를 받기 일쑤였다. 오산고에 특기자로 진학하려다 퇴짜를 맞기도 했다.

이듬해 첫 대회 출전을 한 그는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전에서 재학 중이 아니란 이유로 ‘대학·일반부’로 출전했다. 당시 수영복조차 없어 ‘사각팬티’를 입고 출전했던 그는 이 대회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를 잇따라 석권하며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조씨는 이를 계기로 양정고에 스카우트됐다. 그는 양정고로 스카우트돼 서울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고향집으로 내려갔을 때가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양정고 2학년 시절인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터라 그의 400m 경기에는 기자들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그가 1위를 차지한 후 신문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부랴부랴 대회가 끝난 후 호텔 숙소 복도에서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던 비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조오련’ 이름 석 자는 국제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체육특기생으로 고려대에 입학했다.
물론 그에게 굴곡진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이미 아시아를 제패한 한국 수영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조씨는 이 경기에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세계 수영의 높은 벽에 부딪힌 그는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뒤, 그는 제7회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자유형 400m에 이어 1500m에서도 우승하며 아시안게임 2연패라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이후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조씨는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기록을 이뤄냈다. 실제 그는 현역시절 배영 100m와 평영 100m, 200m를 뺀 모든 종목에서 통산 50개의 한국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조씨의 무한도전은 현역을 떠나서도 계속됐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실내 경기장에서 비릿한 내음이 풍기는 바다로  무대만 옮겨졌을 뿐이다.
그는 1980년 8월11일, 사상 처음으로 대한해협 횡단을 성공해 한국인의 위상을 뽐냈다. 부산 다대포에서 대마도 서쪽까지 55㎞ 바닷길을 13시간16분10초 만에 헤엄쳐 건넌 것이다.

2년 뒤인 1982년에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9시간35분 만에 건넜다. 2000년 6월에는 SBS가 특별기획한 ‘20년 전 약속, 대한해협횡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 국민에게 ‘도전자 조오련’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당시 프로그램에는 최종원, 이훈, 소지섭, 베이비복스, 오지호, 정유진, 유정현(현 국회의원) 등 연예인 10여 명과 장애인, 주부 등 일반인 10여 명이 함께 참여했다. 방송을 통해 대한해협 횡단을 위한 고된 훈련과정과 횡단 장면이 두 달에 걸쳐 고스란히 안방으로 전해졌다.

그때 조씨는 때론 엄하게 때론 자상하게 도전자들을 다독이며 이들이 장승포를 출발해 스시마섬 해변에 도착하는 도전에 성공하도록 이끌었다. 조씨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에 당시 인연을 맺었던 연예인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비통함을 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퇴 후에도 ‘무한도전’
‘독도사랑’ 몸소 실천

그의 도전은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은 뒤에도 계속됐다.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2003년에는 한강 600리 길을 종주하는가 하면, 광복 60주년인 2005년엔 두 아들(조성웅·조성모)과 함께 18시간 만에 울릉도와 독도 93㎞를 횡단했다.
지난해엔 독도 주변을 33바퀴 헤엄쳐 도는 ‘독도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33’은 지난 1919년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33명의 민족대표를 기리는 의미였다.

독도의 둘레는 4㎞ 정도로 그가 헤엄쳐야 할 거리는 130㎞가 넘었지만 실행에 옮겼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조국사랑에 대한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에 ‘독도생활일기’를 개재해 독도의 자연과 함께한 생활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심지어 미니홈피 주소도 www.cyworld.com/dokdolover로 정해 그의 지극한 독도사랑을 엿볼 수 있다.

불굴의 도전정신…내년 30년 만의
대한해협 횡단 도전 ‘미완의 꿈으로’  


거침없는 파도를 뚫고 끝없는 도전을 이어갔던 조씨의 개인사는 그의 도전인생 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그는 대한해협을 처음 건넜던 1980년 가수 송대관씨의 소개로 사별한 첫 번째 부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슬하에는 성웅씨와 성모씨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이후 자신의 수영장 마련을 위해 아내가 하는 봉제업에 손을 댔다가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1985년에는 교통사고로 얼굴과 오른팔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사고와 사업실패로 낙담하던 조씨는 1989년 ‘조오련의 수영교실’을 열며 제2의 수영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에는 전 부인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는 이후 오랫동안 술로 시간을 보내며 힘들어 했다고 전해진다. 2006년에는 고향 해남을 찾아 산속에 집을 짓고 밭을 갈며 조용한 삶을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올해 초 이곳에서 평소 친형제처럼 지내던 지인의 여동생인 13살 연하의 부인 이성란씨를 소개받았다. 사별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지난 4월18일 마을회관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열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 다시 찾아온 인연과 새 출발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약속한 두 사람의 인연은 조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108일만이 허락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굴곡진 인생 사별 딛고 재혼
108일만 허락된 사랑


한 번 더 높은 파도에 맞서겠다던 조씨의 40년 수영인생 마지막 도전도 미완으로 남겨졌다. 그는 최근까지 내년 8월 15일을 D-day로 정하고 30년만의 대한해협 횡단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생전 이번 도전을 통해 환갑의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적인 경제불황 여파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했다. 

하지만 제주도에 캠프장을 마련, 훈련에 전념해 오다 해남 자택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지 불과 1주일 만에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났다.

결국 “내년에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맞아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 한국인의 저력과 함께 60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보여 주겠다. 내 수영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온몸을 던지겠다”던 고인의 생전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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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