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자진사퇴한 ‘천성관’ 후보자

24일만에 천국서 지옥으로 곤두박질


강남 고급아파트 매입, 스폰서검사 의혹 등 치명적
사퇴·내정 철회 일사천리…검찰 지휘라인 공백 혼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제때 퇴임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검찰총장들. 이번엔 검찰총장 내정자가 임명장도 받기 전 자진사퇴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내정 이후 온갖 의혹에 시달리던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내정 24일 만에 불명예 퇴진한 것. 그는 아파트 구입 자금의 출처, 부인의 호화생활, 스폰서 검사 등의 의혹으로 도덕성에 흠집만을 남긴 채 24년 검사생활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에 검찰은 지휘부 공백에 따른 혼란에 빠졌고 이명박 정부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천국에서 지옥을 오간 천 후보자의 24일을 돌아봤다.

검찰총장 자리가 또다시 공석이 됐다. ‘스폰서 검사’라는 비아냥 속에서 내정 24일 동안 바늘방석에 앉아있던 천 후보자는 스스로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천 후보자는 지난 14일 오후 8시30분 낸 ‘사퇴의 변’에서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공직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공안검사 외길 인생
새 정부 구미에 맞아

이명박 대통령도 서둘러 천 후보자의 내정을 철회했다. 이 대통령은 사퇴의사를 밝힌 다음 날인 지난 15일 “무엇보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내정을 철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차기 검찰총장직을 수행하겠다는 천 후보자의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천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 ‘공안통’으로 평가받아 올 만큼 검사 임관 후 줄곧 공안 외길을 걸어왔다. 충남 논산 출신인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수원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하면서 공안검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1995년 대검 공안부에서 검찰연구관직을 수행하면서 본격적인 공안검사로서 활동을 했다.


굵직한 공안 사건에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부산지검 공안부장이었던 1998년에는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을 맡아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신시당위원장 등 15명을 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부장검사로 지내던 2000년 8월에는 의료계 폐업 사건과 관련해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의권쟁취투쟁위원장)의 구속 수사를 지휘했고, 2000년 4·13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주도한 총선연대 공동대표 최열과 박원순 상임집행위원장, 장원 대변인을 수사했다.

2001년에는 만경대 방명록 사건을 수사했다. 천 후보자는 8·15 민족통일대축전 방북단이었던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를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내용을 적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처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맡아 지휘해온 천 후보자였지만 탄탄대로의 출세 길을 걷지는 못했다. 2005년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서울고검 차장으로 부임한 뒤 주요 핵심 부서에 입성하지 못한 채 일선 지검장만을 역임했던 것. 이에는 공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공안 검사의 위상이 약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던 천 후보자가 날개를 달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였다. 공안 기능을 강화한 현 정부는 그에게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내줬다. 천 후보자의 위상도 점차 높아갔다.

그리고 2009년에는 용산참사 사건과 MBC의 <PD수첩>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진행했다. 이때부터 천 후보자는 언론과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시작했다.

먼저 용산참사 사건에서 천 후보자 아래에 있던 수사팀은 농성자 20명,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했으나 경찰에는 책임을 묻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 또 <PD수첩> 광우병 보도 수사에서는 방송 작가의 7년에 걸친 이메일을 압수수색하고 그 일부를 언론에 공개해 여론 몰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천 후보자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를 주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에 대한 여론의 시선은 더욱 차가웠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6일자 신문에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노 전 대통령 구속 여부를 묻는 전화를 돌렸고 전화를 받은 검찰 간부 절반 이상이 임 총장의 불구속 기소 의견에 동조했지만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과 신상규 광주고검장은 원칙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을 보도해 파문이 일었던 것.

그러나 천 후보자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검찰총장 후보자로 전격 발탁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지난 6월21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검찰총장에 내정되면서 검사로서 그의 인생은 절정에 치달았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검찰 분위기를 일신하고 법질서 확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미래지향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섬기는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로 판단되어 발탁했다”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검찰 안팎에선 천 후보자를 검찰총장직에 내정한 것을 두고 파격인사라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현 정부에게 천 후보자가 가진 요소들은 여러모로 입맛에 맞았다. 충청 출신인데다 공안통 검사 출신이란 점도 강점이었다. 기수서열을 파괴해 변화와 쇄신의 느낌을 주는 인사라는 것도 위기에 처한 검찰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 한몫을 할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그가 해결했던 사건들도 발탁 배경으로 꼽혔다. 지난해 수사를 맡았던 ‘여간첩 원정화 사건’과 안양초등생 혜진, 예슬 납치 살해 사건, 경기도시공사 개발비리 등이 그것. 온화하고 겸손하며 합리적인 성품을 갖췄다는 주위의 평가도 검찰총장을 맡기기에 손색이 없었다.

천 후보자는 “어려운 시기에 총장으로 지명돼 어깨가 무겁다”며 “법질서를 확립해 국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검찰의 기본임무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검찰총장직을 수행할 뜻을 밝혔다.

내정 직후 흘러나온 의혹
도덕성에 치명타 입어

그러나 내정 발표 직후부터 그에 대한 반대여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5일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하태훈 고려대 교수)가 ‘천성관 임명반대, 비(非)검찰 법무장관 임명, 검찰개혁특위 설치’를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총장 자격이 없는 천성관 내정자의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천 후보자를 두고 ‘인권침해 수사 책임자’ ‘공정성을 상실한 편파수사 책임자’ ‘무리한 공안수사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 책임자’라고 단정을 지으며 강한 어조로 이번 인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주장했다.

천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한 의혹도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의혹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가까워올수록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3일, 천 후보자에게 악몽의 날로 기억될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야당은 천 후보자에게 일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그중 하나가 서울 강남 고가아파트 구입과정에 관한 의혹이다. 천 후보자는 지난 4월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고급아파트를 29억7500만원에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친동생과 처형에게 각각 5억, 3억원씩을, 지인인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15억5000만원을 차용했다. 이 중 박씨에게는 이자 400만원과 원금 7억5000만원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8억원이 부채로 남아있는 상태다.


민주당은 이에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검찰 간부가 거액을 차용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고 차용 성격도 석연치 않다며 의혹을 드러냈다.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청문회에 앞서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2004년까지 18평짜리 다가구주택에 전세 살던 천 내정자의 동생이 갑자기 2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하고 형에게 5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무이자로 빌려줄 정도의 재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문회에서도 아파트 매입과정에서 불거진 박씨와의 고액채무 관련 의혹을 천 후보자에게 집중 추궁했다. 이에 대해 천 후보자는 청문회 당시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박씨에게 15억5000만원을 빌린 부분에 대한 금융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증인으로 채택된 박씨마저 불출석한 것도 천 후보자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박씨와 천 후보자 사이의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박씨가 천 후보자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나온 것.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2004년 천 후보자와 박씨가 일본으로 골프여행을 함께 간 것으로 나오고, 올해 2월10일에는 천 후보자의 부인과 박씨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3000달러짜리 샤넬 핸드백을 함께 구입한 기록도 있다”고 지적하며 여행경비 및 명품 구입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천 후보자는 “같이 여행 간 적은 없다”면서도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는지는 모르겠다”는 어설픈 해명을 했다.

천 후보자의 부인 김모씨가 승계한 제네시스 차량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됐다. 이 차량은 천 후보자의 지인이 대표로 있는 S사가 지난해 5월부터 임차해 사용해 오던 것으로 검찰총장 내정자 발표 다음 날인 6월22일 S사로부터 보증금 1700만원에 매달 170만여 원을 주는 조건으로 리스 계약이 승계됐다.


그러나 계약 승계 이전인 지난해부터 이 차량이 천 내정자의 아파트 주차대장에 천 내정자 집 차량으로 등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천 후보자 측이 지인을 통해 무상으로 차량을 이용해 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휘라인 잃은 검찰
‘구원투수 어디 있어?’

또 천 후보자의 부인이 모 백화점이 연간 3500만원 구매실적 이상의 VIP고객에게 제공하는 멤버십인 ‘J클럽’ 회원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천 후보자는 이에 대해 “‘J클럽’ 카드는 윗동서 카드인데 처갓집 자매들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이밖에도 아들의 병역특례 의혹, 자녀 위장전입 의혹 등이 청문회 자리에서 천 후보자를 옥죄었다. 그러나 천 후보자는 이렇다 할 해명도 하지 못한 채 청문회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낱낱이 드러난 허술한 자기관리와 비도덕적인 면모는 결국 그에게 어려운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내정된 날로부터 24일이라는 시간은 천 후보자에게 ‘일장춘몽’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천 후보자가 물러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폭풍만이 거세지고 있을 뿐이다. 또 지휘라인이 초토화된 검찰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인사검증 시스템 재검토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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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