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박지성이다. ‘캡틴’ 박지성의 캐넌슛 한 방이 무패 질주에 제동에 걸릴 위기에 놓였던 허정무호를 구해냈다.
한국은 지난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B조 최종전에서 난타전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4승4무(승점 16)로 최종예선을 마감한 한국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예선전 무패 기록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지난해 10월 주장 맡은 뒤 대표팀 경기력 상승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후배 자발적 참여 이끌어
최종예선전 무패 기록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요인 가운데 ‘캡틴’ 박지성의 빼어난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최종예선 두 번째 경기인 지난해 10월15일 아랍에미레이트(UAE)와의 홈경기부터 주장을 의미하는 ‘노란 완장’을 찬 박지성은 6월17일 이란과 최종전까지 주장으로 8경기를 치르면서 때로는 후배들을 챙기는 자상한 형님이자, 때로는 감독을 대신해 상대방과 신경전을 불사하는 전사 역할을 하면서 팀의 중심에 우뚝 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거의 풀타임으로 소화하느라 그 누구보다 몸은 피곤했지만 프리미어리거라는 ‘이름값’에 자만하지 않고 누구보다 더 많이,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게 축구계의 평가다.
무엇보다도 군림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후배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어느 때보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대표팀의 전력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린 촉매제로 작용했다.
군림하지 않고 솔선수범
자발적 참여 이끌어내
일단 박지성의 활약은 기록에서 빛났다. 그는 지난해 UAE와 홈경기 이후 3골을 기록했다. 올해 2월11일 이란 원정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35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대표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냈다.
특히 6월17일 홈에서 열린 이란과의 리턴 매치에서도 패색이 짙어가던 후반 35분 이근호와 멋진 2대 1 패스를 통해 극적인 동점골을 꽂아 넣어 무패 본선 진출의 위업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경기 외적인 면에서 박지성의 존재는 더욱 빛났다. 선수들을 감싸는 동시에 강한 정신무장을 촉구하는 발언은 대부분 박지성의 입에서 나왔다.
이란과 최종예선 1차전에서 자바드 네쿠남이 “열성적인 10만 관중의 압박은 그들에게는 지옥이 될 것”이라고 자극하자 “지옥이 될지, 천국이 될지는 경기가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응수했던 박지성은 리턴 매치를 앞두고는 “이란이 천국으로 가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강단을 보여줬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도 박지성에 대해 “어린 선수들은 지성이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다”고 극찬했다. 자신만이 아닌 팀 동료의 전력까지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캡틴’ 박지성의 존재가 주목받는 이유다.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전을 끝낸 박지성은 1년 앞으로 다가온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월드컵 출전이 될 것 같다”며 최후의 월드컵 출전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한국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도 뚜렷이 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프리미어리그 우승, 유럽축구연맹 챔스리그 우승 등을 경험한 그가 1년 후 월드컵 무대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지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박지성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한 이유는 체력 때문이다.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하면 한국 나이로 30세가 되는 그는 34세이 되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자신의 체력이 버텨줄지 의문 부호를 달았다.
16강 진출 가능
7년 전 대표팀과 닮아
그의 주 포지션은 측면 미드필더이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심하다. 때문에 4년 뒤에는 지금처럼 ‘산소탱크’의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듯했다. 이런 탓에 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16강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밝힌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대표팀이 워낙 강하긴 했지만 비교하자면 선후배 조합이 7년 전 대표팀과 닮았다”고 전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홍명보, 황선홍 등 고참들과 박지성 등 막내 선수들까지 모두 하나가 돼 4강 신화를 완성했다. 박지성의 말처럼 2010년 대표팀도 2002년처럼 신구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허정무호 출범 이후 세대교체를 단행, 대표팀이 젊어졌다. 기성용, 이청용, 이근호 등 젊은 피들이 대거 가세, 이운재와 이영표, 박지성 등 고참들과 팀워크를 잘 이루어 무패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책임졌다. 2002년 분위기를 잘 아는 박지성이 2010년 월드컵 16강 진출에 희망을 갖는 가장 큰 이유다.
박지성은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제15회 아시안컵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본 뒤 태극마크를 반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박지성은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고 박수 받을 때 떠나겠다는 뜻을 밝히기에 앞서 “2014년 월드컵에는 나보다 좋은 선수가 나올 것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나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며 남아공월드컵이 태극전사로 뛰는 마지막 월드컵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시안컵 우승한 후
박수 받을 때 떠나고파
박지성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지막 무대를 아시안컵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시안컵 우승은 월드컵 4강 진출 이후 가장 큰 일이 될 것”이라며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지 꽤 된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성의 말대로 태극호는 56년 1회 대회와 60년 2회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한 이후 정상탈환에 번번이 실패했다. 박지성이 아시안컵 정상에 대한 열망을 보이는 건 아쉬움 때문이다.
박지성은 대표팀 막내 시절인 2000년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나갔지만 태극호가 사우디아라비아에 1-2로 패한 탓에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4년 뒤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때 다시 한 번 정상을 꿈꿨지만 대표팀이 이란과의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3-4로 패하는 바람에 울분을 토해냈다. 2007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4개국이 공동주최한 아시안컵에는 무릎부상으로 인한 수술 탓에 최종명단에서 빠지는 아픔을 겪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마지막 출전하는 월드컵 될 것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아시안컵 우승 목표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고 태극호와의 아름다운 작별을 준비하는 박지성이지만 그의 꿈을 가로막을 만한 변수가 하나 있다. 카타르가 걸프만 지역의 7~8월 기온이 높은 점을 감안해 아시안컵을 1월에 개최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대회 시기가 2010~2011 잉글랜드 프리미어십 중간에 걸쳐있어 맨유가 박지성의 태극호 합류에 난색을 보일 수 있다.
물론 프리미어십 구단들이 1월에 열리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때 소속팀 선수들을 해당 대표팀에 보내주기는 하지만 박지성의 대표팀 합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10년 6월까지 맨유와 계약돼 있는 박지성은 조만간 구단과 재계약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지성을 옆에서 지켜본 허정무 감독은 박지성의 은퇴시기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밝혔다.
허정무 감독은 “대표팀에서 계속 박지성을 원한다면 더 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체력적인 수준을 볼 때 다양한 변신을 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2014년 월드컵까지 충분히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무패로 본선에 진출한 한국대표팀. 그 중심에 서있는 ‘캡틴’ 박지성이 본선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쳐, 국민이 바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