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700호 특집> ⑥ 직장인‘밤문화’변천사심층해부

네온사인 아래 ‘휘청’ 시름은 ‘훨훨’

“퇴근 후 맥주 한잔 어때?” 피곤한 하루를 보낸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은 언제부터 유행했을까. 정답은 ‘샐러리맨들의 등장과 함께’일 것이다. 시대에 따라, 유흥문화의 변화에 따라 다르지만 샐러리맨들이 있는 곳엔 퇴근 후 밤문화도 늘 존재했다.
직장인들을 잡기 위한 업주들의 노력도 끝없이 진화했다.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서비스로 이들의 발길을 잡으려는 유흥업소의 변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직장인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직장인들의 밤문화를 돌아봤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는 직장인들의 밤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도시에 일자리가 늘어나 샐러리맨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밤도 변화를 맞이했다.

샐러리맨들의 지친 하루 맥주 한잔으로 모두 잊어

그 시절 직장인들이 퇴근 후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는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포장마차였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된 노동에 지친 샐러리맨들은 소주 한잔에 싸구려 안주 한 접시로 시름을 달랬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광목으로 바람만 겨우 가린 채 잔소주를 팔던 포장마차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금의 형태와 비슷하게 변화했다.

회식이나 단합대회 등 한국의 독특한 직장문화가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일자리가 부족해 취직이 어려운데다 직장 안에서의 경쟁도 심했던 그 시절, 상사가 주도하는 회식자리에 불참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강압적인 회식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도 당시의 시대상과 무관치 않다. 한창 맥주소비가 늘었던 70년대 말에는 서구화된 맥주집에서의 회식도 함께 늘었다. 술과 함께 춤, 노래를 즐길 수 있는 유흥업소도 70년대 들어 성행했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나라가 관리했던 독재정권 아래에서도 음주가무 문화는 꾸준히 발전했다.

도시화 본격화된 70년대부터 직장인들 밤문화도 서서히 시작
통금시간 속에서도 대포집, 고고장 등 직장인들 유흥문화 발전
 직장인들 소비능력 향상되면서 유흥업소도 고급화물결
성매매특별법으로 변종 성매매업소 생겨 직장인들 유혹

술과 음악, 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업소 중 하나는 스탠드바. 1930년대에 생긴 스탠드바는 70년대 들어 크게 유행했다. 음악연주를 하고 쇼를 보여주는 무대를 앞에 두고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그 시절 스탠드바의 형태였다.

이른바 ‘고고장’이라고 불리던 나이트클럽이 대중화된 것도 70년대다.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라이브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그때의 나이트클럽이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고고장에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다가도 자정이 가까워 오면 집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자칫 잘못해 통금시간을 넘겼다간 여관신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카바레, 룸살롱 등 유흥업소 역시 급격히 늘어났다. ‘아가씨’가 술을 따러주는 고급 술집도 70년대 말 속속 생겨났다. 이때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의 성문제와 윤리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고도성장의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는 ‘밤문화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흥문화가 초고속으로 발전한 시기다.
정권이 바뀌면서 통금이 해제되고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호화로운 룸살롱 등의 유흥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직장인들의 퇴근 후 풍경도 크게 변했다. 직장인들의 월급이 오르고 소비능력이 향상되면서 서민들의 안식처였던 포장마차와 대포집의 인기는 서서히 식어갔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호프집과 카페다. 이로 인해 막걸리와 소주의 소비량은 점차 줄었고 맥주와 양주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다. 또 기업의 접대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폭탄주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술자리는 2, 3차로 이어져 새벽까지 유흥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증가했다.
기계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는 가라오케가 확산된 것도 80년대의 일이다. 음악을 듣고 쇼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노래를 부르는 유흥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나이트클럽의 형태도 변화했다. 고고장을 대신해 등장한 것은 ‘디스코텍’. 디스코 춤의 열풍과 함께 확산된 업소였다.
또 하나 80년대 밤풍경의 특징은 성의 상품화가 두드러졌다는 것. 술자리에 여종업원이 나와 ‘서비스’를 하는 형태의 업소가 크게 증가했고 퇴폐적인 쇼를 보여주는 업소 등 선정적인 유흥문화가 확산됐다.

경제 상황에 따라 유흥업소도 변화일로

윤락산업 역시 발전했다. 천호동 텍사스촌, 청량리 588등의 집창촌 뿐만 아니라 증기탕, 퇴폐이발소, 마사지업소, 티켓다방 등 다양한 형태의 윤락업소가 생겨 직장인들을 유혹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88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성을 파는 여성의 수는 120만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윤락산업이 활황을 맞으면서 술을 마신 뒤 윤락여성과 잠자리를 가지는 직장인들도 늘어났다.

경제성장의 절정을 맞은 1990년대는 밤문화의 고급화를 더욱 부추겼다. 특히 1991년 주류 수입이 개방되면서 세계 각국의 술이 밀려왔다. 고급 양주부터 와인, 맥주 등 다양한 술이 들어오면서 술집 역시 다변화의 길을 걸었다.
이런 가운데 뜬금없이 소주가 인기 술로 떠오르기도 했다. ‘소주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주점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과즙 등을 첨가한 달콤한 맛의 칵테일소주가 등장하면서 술이 약한 여자 직장인들도 부담 없이 술집을 드나들 수 있었다. 9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또 하나의 ‘방’은 노래방이다.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던 가라오케가 쇠퇴할 무렵 생긴 노래방은 순식간에 전국의 유흥풍속도를 바꿨다. 직장인들의 회식문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1차 술자리가 끝나고 난 뒤 노래방으로 향하는 것이 코스처럼 정착된 것도 이 무렵이다. 또 음주와 함께 가무를 즐기길 원하는 이들을 위해 단란주점이 유행하기도 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룸살롱도 변화를 맞았다. 이른바 ‘하드코어’를 표방하는 ‘북창동식’ 룸살롱이 확산되면서 보다 화끈하고 질펀한 유흥을 원하는 직장인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윤락산업도 발전을 거듭했다. 성매매 시장은 90년대에 들어 보다 체계적인 산업으로 변모했다. 성매매 알선업자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하는 보도방도 90년대에 들어 성업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가정주부, 직장여성, 대학생 등 평범한 여성들까지도 매춘에 뛰어들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또 외환위기 이후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원조교제’로 미성년자 성매매가 등장해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당시 10대 여학생들과 중년의 직장인 남성들이 성을 사고파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IMF가 남긴 상처를 안고 출발한 2000년대는 밤문화에도 하락세를 가져왔다. 불황과 실직의 여파로 마시고 노는 문화는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경기침체로 인해 주점, 클럽 등도 불황을 맞았다. 그러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 술집이나 강남 일대의 클럽 등의 유흥업소는 불황에도 굴하지 않고 손님들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직장인들의 회식문화와 접대문화도 간소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 ‘거품 빼기 운동’이 이 같은 문화를 확산시킨 것.

성매매특별법 생기면서 변종 성매매업소 우후죽순

그러나 유흥업소들은 환골탈퇴를 거듭하며 직장인들의 구미를 맞춰갔다. 그 중에서도 룸살롱업계의 판도를 바꾼 것은 일명 ‘텐프로’란 업소다. 텐프로는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종업원들 중 자신의 수입의 10%만 업주에게 주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팁의 10%만 업주에게 줘도 업주들이 서로 데리고 갈 정도의 출중한 외모와 몸매를 가진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얼짱’ 여종업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 텐프로 업소다. 북창동식 룸살롱도 황금기를 맞이했다. 주머니사정이 어려워진 직장인들은 유흥업소를 선택할 때도 본전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룸살롱들은 날이 갈수록 화끈한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룸살롱에서 성매매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풀살롱’이 등장한 것도 불황을 타계하려는 업주들의 아이디어였다.
여자 직장인들을 위한 유흥업소도 등장했다. ‘호스트바’가 그것. 여자 손님들을 위해 일명 ‘선수’라 불리는 남자 접대부가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다. 그리고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직장인들의 밤문화는 걷잡을 수 없이 자극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단속을 교묘하게 피한 변종 성매매업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 이른바 ‘유사 성매매 업소’로 불리는 업소의 대표주자는 ‘대딸방’이다. 여성의 손이나 신체부위를 이용해 남성의 자위행위를 돕는 대딸방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성매매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노래방도 변화했다. 여자도우미를 고용해 남자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 이는 주부들의 탈선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안마시술소, 페티시클럽, 키스방 등의 퇴폐업소들도 속속 생겨 직장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성매매업소에 비해 단속으로부터 자유로울 거라는 생각을 한 직장인의 발걸음은 끝없이 이들 업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퇴근 후 직장인들의 밤문화는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변화를 거듭해왔다. 화려한 조명과 음악 속에서 시름을 떨쳐버리려는 직장인들의 밤문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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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