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2기 경제팀인 윤증현 호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윤 장관은 지난 2월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던 1기 경제팀 강만수 호의 뒤를 이어 국내 경기회복을 위한 구원투수로 선발됐다. 경기급락세 진정과 환율 안정, 내수 경기 활성화 등 많은 숙제를 안고 출발했던 윤 장관은 짧은 시간 동안 숨 가쁜 릴레이를 펼쳐왔다. 취임 후 윤 장관은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내수 진작을 위해 갖가지 부동산 완화 정책을 펼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재계의 평가는 아직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일요시사>에선 윤 장관이 지난 100일간 이룬 다양한 성과와 앞으로 풀어야 할 미완의 숙제들에 대해 파헤쳐 봤다.
주가 상승, 환율 안정, 경상수지 최대 흑자 등 급한 불 소등
기업 구조조정, 일자리 창출, 내수시장 안정 “갈 길은 멀다”
28조원 추경 예산은 임시방편
800조원 유동성 자금 관리해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윤 장관의 행보에 대해선 ‘대체로 잘해왔다’는 평가다.
실제 윤 장관 취임 후 불안한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일부 표면적인 경제지표들이 회복세로 들어섰다. 1200을 밑돌던 주가가 1400을 넘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고 1600원을 오르내리던 원-달러 환율도 1200원대로 내렸다. 경상수지도 3~4월 연달아 큰 폭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게다가 1/4분기 국내총생산률(GDP)도 전기 대비 0.1% 증가해 지난해 4/4분기의 -5.1%란 급격한 감소세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같은 플러스 성장은 1분기 경제성장률이 집계된 OECD 17개 회원국 중 유일하다.
윤 장관은 지난 2월 취임 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냈다. 가장 먼저 힘쓴 것은 시장으로부터의 신뢰 얻기와 관계 회복이다.
그는 첫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부 공식 발표로는 처음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성장임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성장률 전망을 기존 ‘+3% 내외’에서 ‘-2% 내외’로 수정하고 추경의 필요성을 솔직하게 밝혀 시장과 국회의 공감을 얻어냈다.
적극적 리더십 발휘
시장 소통·신뢰 중시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28조원의 경기부양 추경 예산안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추경통과 이후에도 신속한 집행 조치로 국내 경제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장관은 취임 이후 현장에서 발로 뛰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애썼다. 실제 취임 다음날 경기도 성남 인력시장과 성남-장호원 도로건설 공사현장을 찾아 근로자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경제수장으로서는 11년 만에 한국은행을 직접 찾아 현 경기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경제5단체장 간담회, 서울국제금융포럼 기조연설, 삼성 글로벌투자자 컨퍼런스 기조연설 등 각종 세미나에서는 최근의 경제상황과 정부 정책 방향을 설명하며 시장과 소통하는 데 애썼다.
그런가 하면 기업 살리기에도 앞장섰다. 신용보증공급 규모를 18조원 늘리고, 올해 만기도래하는 보증지원분 34조원가량에 대해 원칙적으로 전액 만기를 연장시켜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힘쓴 것이 단적인 예다.
노후차 교체 세제지원을 통한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통해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도 보였다. 실제로 자동차업계는 노후차 세금지원으로 지난 5월 한 달 동안 판매율이 53%가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내수경기 완화와 실물 경제지표의 상승곡선에도 불구하고 정재계 일각에선 윤증현 경제팀에 대한 의구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 예산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으로 그 실효성이 언제까지 갈 것이냐는 우려가 큰 탓이다.
내수 진작을 목표로 했던 양도세 감면, 미분양 해소 등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들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례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자 강남권의 부동산 투기 바람이 다시 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윤 장관은 “국지적으로라도 부동산 시장이 과열을 보이면 투기지역을 지정해 금융규제와 함께 비금융 수단도 총동원 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일부 실물지표들이 개선되고 있지만 국내 고용 및 내수 시장의 위축, 수출 감소 현상은 계속되고 있어 국내의 안정된 경기 활성화를 위한 숙제는 여전히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현안은 ‘기업 구조조정’이다.
윤 장관은 “기업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도 높게 외치며 기업 구조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급한 불 껐지만
미완의 숙제 풀어야
하지만 지지부진하게 진행 되는 기업 구조조정으로 현재까지 조선·건설업계의 작은 몇 개 기업을 퇴출시킨 것이 전부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재정립하겠다’는 정부의 전방위 압력에 비해 기업들의 반응 역시 미온적이다. 일부에선 경기 호전세를 빌미로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또 다시 흐지부지 되는 모습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 현재 정재계가 ‘윤증현호’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부문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자리 나누기는 단순히 어려운 시기에 고통을 분담하는 정책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해 핵심 인력을 키워내는 하나의 인적 투자다.
하지만 대대적인 지원 아래 펼쳐지는 정부의 잡 세어링 정책의 효과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을 통해서만 그 수가 늘어났을 뿐 일반 기업체의 참여율은 낮은 편이다.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동성 자금에 대한 관리 철저도 요구사항 중 하나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말 현재, 6개월 미만 단기성 수신자금이 811조3000억원이다. 현재 이 자금은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 중이다. 따라서 800조원이 넘는 단기자금이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몰려 거품이 생기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기 이후의 한국 경제를 위해 성장 잠재력 강화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도 ‘윤증현호’에 주문하는 또 다른 사항이다. 이 같은 요구는 윤 장관이 취임 초기 “의료·교육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산업을 육성해 성장기반을 다지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까지 정부 부처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우리는 경제지표 급락세를 겨우 진정시켰을 뿐이다.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체감해야만 진정한 변화다.”
윤 장관이 지난달 19일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한 말이다. 윤 장관은 자신이 이끈 2기 경제팀의 지난 100일간 성과에 대해 스스로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아직까지 제조·건설 등에서 고용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소비자 설비투자 등 민간의 자생적 경기 회복력은 미흡한 수준이다. 경기 급락세가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안심하기엔 이른 것이다.
윤 장관도 GM 등 거대기업의 파산 가능성과 동유럽 금융 불안,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 증가,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시 은행 부실화 가능성 등을 앞으로의 경제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성난 소처럼 지난 100일간 앞만 보고 달려온 경제팀은 윤 장관의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몇 가지 추진계획을 밝혔다.
윤증현 호 경제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업 구조조정 등을 통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본격 추진하고 전통 제조업의 녹색혁신, 신재생 에너지 개발 등 녹색성장 전략과 신성장동력 확충 전략이 그것이다.
아울러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관련 부처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책추진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