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 ‘에티켓 전도사’ 이미선의 차가운 머리로 만나고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서라③

장점과 단점을 적절하게 섞어라

품격 있는 에티켓을 가르치는 이미선 코리아매너스쿨 원장은 기본 에티켓을 제반으로 한 고객만족서비스교육을 실시해 경제효과를 증대시키는 데 앞장서는 인물이다. 그가 타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지침서 <차가운 머리로 만나고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서라>를 펴냈다. 이 원장이 전하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솔직함은 자신감과 겸손함에서 비롯된다
유머로 마음을 열고 신선하게 다가서라

그렇다고 솔직한 게 무조건 긍정적인 피드백을 가져올까? 앞에서 말한 대로 솔직함에는 상대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자존과 겸손이 전제되어야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힘들고 안 좋은 이야기만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는다면 과연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저 무능력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기억될 뿐이다.

엣지 있는 시선처리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할 때는 장점과 단점을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털털한 성격을 갖고 있다면 “저는 둥글둥글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그러나 무디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요”라고 하면 상대방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솔직함은 자신감과 겸손함에서 비롯된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꾸 자신을 감추려 하고, 겸손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자꾸 자신을 드러내고자 애쓴다. 자, 이제 누구를 만나든 당당해지자. 누구를 만나든 솔직해지자. 솔직함이야말로 나를 높이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대화로 성공한 인물이라고 하면 단연 클린턴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섹스 스캔들로 한 때 세계의 여론을 들썩거리게도 했었지만, 대화를 하면서 눈빛으로 상대를 휘어잡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클린턴은 대화할 때 자기가 말할 때건 상대방 말을 들을 때건 시선을 항상 상대방 눈동자에 고정해 놓았다고 한다. 심지어 콜라를 마실 때조차도 얼음이 든 유리잔 밑바닥을 통해서 상대의 눈을 직시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끌리거나 우호적인 관계의 경우, 대화하는 시간의 60~70% 동안 눈 맞춤을 유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시선 처리가 부자연스러우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상대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선 처리를 해야 할까? 시선 처리 연습을 할 때에는 거울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내 눈을 상대의 눈이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응시하며 편안하게 말을 걸어본다. 화장실에서나 출근하기 전 또는  엘리베이터에서 휴대용 손거울을 이용하여 연습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자연스러운 시선처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데 시선 처리를 위한 간단한 공식을 익힌다면, 이것 역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눈빛은 관심이지만 한편으로는 도발이다. 특히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권에서는 상대를 지나치게 주시하는 것이나, 윗사람과 대화할 때 빤히 쳐다보는 건 삼가야 한다. 눈 맞춤의 중간 중간에 자연스레 눈과 멀지 않은 다른 부분을 바라봄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하면 되는 것이다.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모두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상대의 눈을 바라보라. 그리고 잠시 시선을 거둬 찻잔을 한번 만지작거리고 다시 눈을 마주쳐라. 또 미간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눈을 마주치고 인중을 한번 바라보고 눈을 마주쳐라. 이런 식으로 잠깐씩 눈과 가까운 얼굴의 일부를 잠시 바라보거나 메모를 하는 식으로 시선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 하겠다. 만약 시선이 턱 밑으로까지 내려온다든가 이마 위로 올라간다든가 하면 마치 훑어 보는듯한 느낌을 주게 되므로 중간 중간에 바라보는 곳은 눈썹이나 미간, 인중, 턱 정도가 알맞다.


할리우드에서는 한 편의 영화제작이 끝나고 나면 심심치 않게 스캔들이 뒤따르곤 한다.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 실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까?”하고 질문을 해보면, “나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에 반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주어진 대본대로 열정적으로 눈을 마주치다가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눈을 바라보면 정이 생긴다’라는 명제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일이다.


나의 운명은 행복인지 불행인지 늘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 강의를 하는 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첫인상만을 간직한 채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 또한 나의 첫인상만을 간직한 채 나를 떠나보내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한 번 만나 헤어지고 말 사람들이니 부담이 없겠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첫 만남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나의 최상의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힘겨운 작업이기도 하다. 한 번 만난 것도 만난 것이니, 누군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첫인상만을 가지고 평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의뢰를 받고 기업체나 학교 등에 강의를 하러 나가보면, 자신에게 이 강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눈빛에서 회사가 시키는 교육이니 어쩔 수 없이 앉아 있겠다는 식의 태도를 엿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로서는 아주 불행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며 시간을 때울 순 없는 노릇. 최대한 그들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어 내 강의에 집중시키는 것이 내가 할 첫 번째 일이다.   


며칠 전 여사원들을 대상으로 매너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한 기업체를 찾았다. 그곳 강의실에서도 위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썰렁한 분위기가 내 예민한 촉수에 감지됐다. 나는 우선 칠판에 ‘Beauiful’이란 단어를 큼지막하게 썼다. 순간 조용하던 강의실이 약간씩 술렁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상황.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준비된 첫 말을 건넸다.


“여러분들을 뵈니 모두 아름다우시네요. 그것도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티(t) 없는 아름다움(beauiful)을 간직한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무관심을 관심으로

순간, 굳어 있던 여사원들의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여기저기서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강의는 어땠을까? 여러분도 짐작할 수 있듯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강의를 들을 의욕도 없는 사람들의 기분은 모른 체하고, 계획한 내용만 빨리 진행하고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아마도 그날 강의는 엉망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미선 원장은?
??-서울 출생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일본 JAL SERVICE ACADEMY 수료
-대한항공 선임 여승무원
-대한항공 사장 의전담당
-대한항공 교육원 서비스아카데미 초대 전임강사
-2002 한일월드컵 문화시민운동 중앙협의회 교육위원
-교육과학기술연수원 초빙교수
-코리아매너스쿨 원장, (주)비즈에이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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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