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68)

적당히 치고 다음을 기약하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감정에 치우쳐 일 그르치지 말라
인상착의와 신체 특징을 기억하라

“사모님, 죄송하지만 좀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고자 하니 문을 열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 사장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모님 말씀을 믿고 싶지만, 회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확인하고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내가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이자 부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내 처지를 이해라도 해주었는지, 아니면 어차피 한 번은 확인 시켜 줄 테니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의도인지 말없이 대문을 열어주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감사합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부인을 따라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에는 채무자의 아버지로 보이는 80세 정도의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채무자의 부인은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를 거실 소파에 눕힌 후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가져다주었다.
“시아버지께서 부도 이후로 몸이 더욱 나빠 지셨어요.”
부인은 서있는 상태로 시아버지가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며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많이 편찮으신가 보죠?”

“지난해에 애기아빠가 부도가 나자 집에도 알리지 않고 도망을 간 후 채권자들이 들이닥쳐 몇 날이고 아빠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며 소란을 피우자 그 충격으로 쓰러지셨지요. 얼마 전 겨우 불편하지만 저렇게라도 일어나 거동을 하고 계셔요.”
부인은 아직 남편이 도망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만감이 교차하는 어두운 표정이었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대리점 사장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수십억원의 부도를 내고 잠적을 하는 등 남편 때문에 하루아침에 상류층에서 빈민층으로 신세가 뒤바뀌었으니 그 자존심과 충격이 오죽이나 컸을까싶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칠 수 없었다. 부인의 말을 들으면서 거실을 주욱 둘러보니 전자제품과 가재도구들이 그리 고급제품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채무자와 부인이 애기를 안고 있는 다정한 모습을 담은 가족사진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을 쓴 보통의 30대 초반 남자로 보였다. 나는 사진에서 눈을 돌려 부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사장님과 찍은 사진이 자연스럽게 잘 나왔습니다.” 
부인은 아무런 대답 없이 관심이 없다는 듯 무반응이었다. 어쩌면 사진을 찍을 당시의 행복했던 순간과 현재 처해있는 자신들의 처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부인을 의식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거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마침 거실에 진열되어있는 대형 오디오 진열장속의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나 사장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인상착의를 알 수 있는 사진이 필요했다. 그래서 앨범 속에서 나 사장의 사진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잠들어 있던 아기가 잠시 눈을 떠 엄마를 확인 하듯 옹알거리는 것을 달래주고 있는 틈을 타서 나는 진열장 앞으로 다가가 그 부인을 향해 말했다.

“사모님 죄송하지만 앨범 좀 봐도 되겠습니까?”
“앨범은 왜 보시려고요?”
“사실 저는 영업담당자가 아닌 채권관리업무를 하는 관계로 사장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가 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장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하는데 사진이 꼭 필요합니다. 어떤 사진이라도 좋으니 한 장만 주십시오.”

나는 생각나는 대로 그럴듯하게 둘러 대면서 부인의 답변이 있기도 전에 이미 앨범을 꺼내 펼치고 있었다. 당시 회사 업무 특성상 거래를 중단하여 미수가 발생되거나 혹은 부도로 인해 피해를 입힌 자들만 상대하다보니 대리점장들의 인상착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알아챌 수 있도록 사진의 인상착의를 유심히 보며, 얼굴을 비롯한 신체적 특징을 내 잠재 기억 속에 깊이 담아 두어야 했다.
부인은 내 행동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앨범을 펼쳐보면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자연스럽게 부인을 향해 물었다.

정면으로 승부하라

“사모님! 저희 회사 외에 나 사장님이 부도낸 금액이 모두 얼마나 됩니까?”
“저는 잘 몰라요. 애기아빠를 만나야 상세한 것을 물어 볼 텐데, 애기아빠가 없으니 물어 볼 수도 없고. 식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대리점 직원들이나 관련자들에게 들었을 것이 아닙니까?”
“대략 한 20억 정도 된다나 봐요.”
“아, 예. 그래도 사모님만은 나 사장님과 연락을 취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내가 유도 질문을 하자 “잘 오지 않아요”라며 채무자와의 연결을 부인했다.

“잘 오시지 않는다고 해도 며칠에 한 번 아니면 몇 주일에 한 번 정도는 왔을 것 아닙니까?”
나 사장의 행방에 대해 깊이 파고들자 부인은 대답하기가 곤란한 듯, 곤히 자고 있는 애기를 안고 나를 피해서 방안으로 들어가 포대기로 감싸 들쳐 업었다. 나는 일단 이정도로 하고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앨범 속에서 보아두었던 나 사장의 전신이 담긴 사진 두 장을 꺼내 상의 안주머니에 찔러 넣은 뒤 앨범을 덮어 제자리에 꽂아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녀가 주방에서 젖먹이 우유통을 들고 나오더니 노인이 있는 방문을 열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애기 우유 사러 슈퍼에 다녀올게요.”


부인이 돌아서자 방안에서 노인이 허리를 굽혀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내가 먼저 집안 문을 열고 나오면서 부인을 향해 말했다.
“사모님, 실례했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사장님과 연락이 닿으면 저희 회사에서 한 번 만나 협의를 하자고 전해주십시오. 어떻게든 만나서 해결하셔야지, 언제까지 숨어 지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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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