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피겨 역사 새로 쓰는 ‘피겨여왕’ 김연아

황홀한 연기로 밴쿠버를 금빛으로 물들여라

<사진 제공: SBS>

김연아(19·고려대)가 피겨계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김연아는 지난달 29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합계 207.71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김연아가 받은 점수는 동갑내기 일본선수인 아사다 마오가 세웠던 여자 싱글 총점 기존 최고점인 199.52점을 무려 8.19점이나 끌어올린 것으로 여자 싱글에서 역대 최초로 ‘꿈의 200점대’를 돌파한 것이다. 이로써 내년 2월에 개최될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여자 싱글 사상 최초 200점대 돌파
ISU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세계랭킹·상금 1위 등극
올림픽서 금메달 획득하면 피겨역사 최초 그랜드슬램
숨은 4점 찾기 위해 플립 대신 러츠 콤비네이션에 포함

“올림픽도 다른 대회랑 별다를 건 없어요. 지금처럼 열심히 준비해서 금메달 따고 싶어요.”
2009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역대 최초로 ‘꿈의 200점대’를 돌파하며 우승한 김연아가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에서 가진 입국 기자회견에서 1년 뒤 열리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을 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 목표
최초 그랜드슬램 눈앞

김연아는 지난달 28일,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54명의 선수 중 52번째로 빙판 위에 올라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뽐냈다. ‘죽음의 무도’에 맞춰 환상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첫 번째 점프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멋지게 성공시킨 뒤 트리플 러츠에서도 무결점 연기를 선보였다.
한 번의 점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성공시킨 김연아는 플라잉 스핀, 레이백 스핀, 스핀 콤비네이션, 스파이럴 시퀀스, 스텝 시퀀스 등 다른 기본 동작에서도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이며 2분50여 초의 공연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김연아의 연기가 끝나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김연아도 우승을 자신한 듯 연기가 끝나자 미소와 함께 주먹을 쥐어 보였고, 오서 코치도 껑충 뛰며 기뻐했다. 이날 심판진으로부터 받은 점수는 기술점수 43.4점, 프로그램 구성점수 37.72점으로 쇼트프로그램 역대 최고기록인 76.12점을 따내며 1위에 올랐다.
2위를 차지한 조애니 로세트(67.9점)와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66.06·3위)와는 각각 8.22점, 10.06점 차이. 더욱이 지난 2월 벌어진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72.24보다 3.88이나 높은 점수였다.

다음날 펼쳐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는 단연 돋보였다. 한 차례 점프 실수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프실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 붉은 드레스를 입고 마지막조 4번째 연기자로 나서 ‘세헤라자데’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처럼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첫 번째 과제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9.50점)를 완벽하게 뛰어 0.4점의 가산점을 챙겼다. 연이어 이나바우어에 이은 더블 악셀까지 안전하게 착지했고, 트리플 러츠-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8.8점)에서도 1.0점의 가산점을 얻었다.
김연아는 또 플라잉싯스핀을 레벨 4로 돌고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까지 완벽하게 뛰었다. 하지만 ‘점프의 교과서’ 김연아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트리플 살코우를 뛰려던 순간 도약이 좋지 않아 더블 살코우에 다운그레이드까지 되면서 0.24점밖에 얻지 못했고 플라잉 콤비네이션 스핀이 체인징 풋 콤비네이션 스핀으로 처리되면서 마지막 과제로 실시한 체인징 풋 콤비네이션 점프와 중복돼 0점을 받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마지막 점프와 스파이럴, 스핀을 완벽하게 성공시켜 추가 실수 없이 연기를 마무리했다. 4분10초간의 연기가 끝나자 LA 스테이플스센터를 찾은 1만8000여 관중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수많은 장미꽃을 빙판 위로 던졌다. 김연아도 감격한 듯 얼굴을 두 손으로 감추고 가슴 벅찬 표정을 지었다.
이후 점수가 공개되자 김연아 자신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31.59점. 전날 쇼트프로그램(76.12점)을 포함해 합계 207.71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더욱이 207.71점이라는 점수는 지난 2006년 12월 그랑프리 6차 대회 ‘NHK 트로피’에서 아사다 마오(일본)가 세웠던 여자 싱글 총점 기존 최고점인 199.52점을 무려 8.19점이나 끌어올린 대기록이다.

이로써 자신의 생애 첫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우승이자, 역대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 돌파’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김연아는 이날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조애니 로세트(191.29점·캐나다)와 무려 16점 이상 차이를 벌리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2002~2003년부터 기존 ‘6점 채점제’ 대신 도입된 신채점방식(뉴저지시스템)에서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한 선수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됐다. 2006~2007년 시니어 무대 데뷔 이후 그랑프리 시리즈와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함으로써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가능성도 한껏 높였다.

김연아가 시니어 데뷔 이래 세계 메이저 대회 3개(그랑프리·4대륙·세계선수권)를 모두 석권했기 때문에 내년 2월에 개최되는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 피겨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김연아는 경기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은 오랜 꿈이었다”며 “꿈이 이뤄져 환상적이다”라고 우승소감을 밝혔다.
시상식 연단에 오른 김연아는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리는 순간 코끝이 발갛게 물들면서 이내 눈물을 훔쳤다. 김연아는 “시상대에 올라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나곤 해서 그동안 꾹 참았지만 오늘은 너무나 기다렸던 순간이라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 김연아는 세계랭킹(4652점)도 단숨에 2단계 끌어 올려 세계 1위에 올랐다. 또한 올 시즌 상금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김연아는 종전 2008~2009시즌 총 상금 6만9000달러(약 9500만원)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상금 4만5000달러(약 6000만원)를 더해 11만4000달러(1억5500만원)로 올 시즌 상금 1위를 차지했다.

여자 싱글 최초 200점 돌파
세계랭킹 상승 1위 등극

세계선수권대회 이전까지 김연아는 올 시즌 그랑프리 1차, 3차 우승을 차지, 각각 1만8000달러씩 총 3만6000달러를 챙겼고 이어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으로 상금 1만8000달러, 4대륙선수권 우승으로 상금 1만5000달러를 획득해 모두 6만9000달러를 손에 넣은 바 있다.
시니어 데뷔 이후 그랑프리시리즈와 4대륙선수권대회 등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세계선수권까지 석권하면서 ‘피겨여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재벌로 거듭났다.

김연아의 상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즌 종료 후, 세계랭킹 1위에 오를 경우 상금 4만5000달러가 추가로 지급된다. 이에 따라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랭킹 1위를 확보한 김연아는 모두 15만9000달러(2억1400만원)를 받게 돼 상금랭킹도 1위에 오른다. 
김연아의 연기를 지켜본 외신과 은퇴한 피겨스타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AP통신은 김연아가 207.71점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직후 ‘김연아, 진정한 피겨퀸! 첫 세계선수권 우승’(Queen Yu-na, indeed! Kim wins first world title)이란 제목의 기사를 전송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이미 압도적인 점수차로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도 AP통신은 “전날 이미 거대한 리드로 이번 대회는 경쟁이라기보다는 (피겨여제) 즉위식이었다”고 표현했다.
은퇴한 미국의 피겨스타 티모시 게이블도 김연아에 대해 “김연아는 전율이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게이블은 최초로 쿼드러플(4회전) 살코를 경기에서 선보인 스케이터로 ‘쿼드 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게이블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피겨스케이팅 전문웹사이트 ‘아이스네트워크’에 올린 글을 통해 주요 수상자들에 대한 평을 게재, 김연아에 대해 “김연아는 정말 특별했다. 김연아가 했던 모든 연기는 편안하고 수준도 높았다”면서 “김연아의 착지는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듯 가벼웠다”고 했다. 이어 “김연아의 점프는 파워과 스피드가 있었다”며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김연아와 경이적인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SBS>그러나 김연아는 여자 싱글 사상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 207.71점이란 경이적인 점수로 우승하긴 했지만 이 점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산술적으로 210점대 진입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김연아는 동계올림픽이 포함된 2009~2010시즌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으로 변경해 변화를 주기로 했다.

‘점프의 정석’으로 불릴 정도로 점프 연기에 강점을 보였던 김연아는 주니어 시절부터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를 모든 프로그램의 첫 번째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그랑프리 컵 오브 차이나부터 플립 점프에서 미세한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롱에지 판정을 받은 데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어텐션 지적을 받았다. 테이크오프 동작에서 에지가 바깥쪽으로 살짝 눌리면서 점프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무사히 넘어갔지만 지난 2월 4대륙선수권대회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연거푸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어텐션 지적을 받으며 기술평가점수에서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았다.


러츠로 변경해 성공하면
210점대도 돌파 가능

4대륙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으로 평균 0.5점의 기술평가점수를 받았다. 기술평가점수가 심판마다 최대 +3점에서 -3점까지 줄 수 있는 걸 감안하면 무척 저조한 점수다.
따라서 김연아는 굳이 어텐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플립 대신 다음 시즌부터 러츠를 콤비네이션에 포함시켜 점수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김연아에게 플립보다 러츠가 상대적으로 쉬운 이유도 작용했다. 김연아가 콤비네이션에서 플립을 러츠로 변경해 성공할 경우 총점 증가폭은 4.0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돼 210점대 돌파가 가능하게 된다.
트리플 플립의 기본점수가 5.5점인데 반해 트리플 러츠의 기본점수는 6.0점으로 0.5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트리플 토루프의 기본점수가 4.0점이니 콤비네이션의 기본점수가 9.5점에서 10.0점으로 향상되는 효과가 나온다.
여기에 어텐션 지적을 받지 않으며 기술평가점수에서 다른 점프 동작와 마찬가지로 2.0점까지 받을 경우 예전에 비해 2.0점이 증가한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모두 감안하면 총점에서 4.0점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김연아는 강렬하고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공략할 전략이다. 김연아는 “다음 시즌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즌과 비슷한 분위기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번 시즌 프로그램을 결정하면서 팬들의 귀에 익숙한 음악을 선택했고 더불어 귀여운 이미지를 벗어나 숙녀로서 강렬한 이미지를 내뿜을 수 있는 안무를 짰다.
김연아는 시니어 무대에 진출하고 나서 쇼트프로그램으로 ‘록산느의 탱고’(2006-2007), ‘박쥐서곡’(2007-2008)을 써왔고, 프리스케이팅에는 ‘종달새의 비상’(2006-2007), ‘미스 사이공’(2007-2008) 등을 써왔다.
그러나 이전까지 사용했던 배경 음악들은 크게 대중적이지 않았고, 안무도 발랄함과 아름다움에 집중하다 보니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과 머리를 맞댄 끝에 ‘강렬함-대중성’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이렇게 선택한 프로그램이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와 프리스케이팅 ‘세헤라자데’였다.

김연아는 ‘죽음의 무도’를 준비하면서 짙어진 눈화장으로 연기력을 돋보이게 했고 피겨 배경음악으로 여러 차례 사용됐던 ‘세헤라자데’를 통해 대중성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김연아는 두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선수권대회 생애 첫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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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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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